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벤츠 최초 여성 익스테리어 디자이너 조진영
벤츠 최초 여성 익스테리어 디자이너 조진영
  • 서효정 기자
  • 승인 2015.07.24 15:1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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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 벤츠 사가 선택한 한국인
 

이제 고작 서른 살의 청춘이지만 조진영 디자이너를 따라다니는 수많은 ‘최초’라는 타이틀이 붙기까지 그녀의 삶은 누구보다 치열하고 열정적이었다. ‘자신의 능력을 믿어라, 그리고 실행하라’는 삶의 좌우명처럼 언제나 실천하는 삶이 결국 오늘날의 그녀를 만들었다. 독일 벤츠 익스테리어 디자인 팀의 유일한 홍일점인 조진영 디자이너의 ‘현재진행형’ 성공스토리.

취재 서효정 기자 | 사진제공 조진영 | 자료제공 <자동차 그리는 여자>(열림원)


한때 유튜브를 뜨겁게 달궜던 ‘샤넬카’를 기억하는가. 홍익대학교에 다니던 한 미대생의 졸업전시회 출품작이기도 했던 그 작품은 기존의 틀을 많이 벗어난 획기적인 감성 디자인으로 높은 평가를 받으며, 전문가들은 물론 일반인들에게까지 많은 찬사를 받았다. 그리고 그 미대생은 그 작품으로 삶의 전환점을 맞았다. 그녀의 뛰어난 능력에 세계가 주목하기 시작했고, 대학원으로 진학한 영국 왕립예술학교(RCA)에서 최우수 졸업상을 수상, 이후 포르쉐에서 최초의 여성 인턴 생활을 한 뒤 BMW i를 거쳐 마침내 벤츠 최초의 여성 익스테리어(외관) 디자이너가 되었다. 이 드라마틱한 스토리의 주인공이 바로 조진영 디자이너다. 화려하고 여유로워 보이는 백조가 물밑에서는 끊임없이 헤엄을 치고 있듯이 실패 없는 완벽한 성공 가도를 걸어왔을 것 같은 그녀 역시 사실은 끊임없는 자기 자신과의 싸움 끝에 오늘에 도달할 수 있었다.
 
발상의 전환으로 나만의 가치를 발견하다
 

 

뭇 사람들은 말한다. 미국에서 태어났고, 중·고·대학교를 모두 한국에서 순탄하게 다닌 뒤에 대학원 진학을 위해 영국 유학을 떠났으며, 이제는 독일에서 세계적인 회사에 다니고 있는 그녀는 원래부터 부족한 것 없이 자랐기에 그 모든 것을 ‘혜택’처럼 얻은 것이 아니냐고. 물론 예술을 전공하신 어머니 덕분에 아주 어린 시절부터 자연스레 미술을 접했고, 경험과 기회 역시 많았던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혜택’이라고 하면 거기까지 정도일 뿐 그녀는 어린 나이에 홀로 영국, 독일에서 생활하며 끊임없이 내면의 외로움, 두려움과 싸워야 했다. 너무 힘든 나머지 모든 것을 다 포기하고 가족과 친구들이 있는 곳으로 돌아가고 싶다는 생각을 매일같이 했고, 남성들이 주류를 이루는 자동차 업계에서 상대적으로 여성이 능력을 인정받기는 현실적으로 힘든 일인지라 좌절도 수없이 했다. 벤츠 최초 여성 익스테리어 디자이너가 되기까지 그녀의 지난 삶은 결코 ‘혜택’이라는 말로 쉽게 재단할 수 없는 엄청난 노력이 필요했다는 뜻이다.
“자동차 업계의 특성상 대부분의 직원이 남자예요. 실제로 제가 학부 시절부터 대학원 시절까지 자동차 디자인 분야를 공부하며 느낀 것은 역시나 남학생들이 이 업계의 주류가 되고, 또 그만큼 잘하기도 한다는 것이었어요. 공학적인 면과 3차원을 다루는 면에서 확실히 여성들보다 감각이 있으니까요. 그래서 제가 이 분야에서 여성 디자이너로서 성공하기 위해서는 분명한 저만의 장점이 있어야 했어요.”
자동차에 대한 공학적 이해도는 떨어지지만 대신 다양한 나라의 문화와 다양한 디자인 분야의 트렌드를 이해하고 있었던 그녀는 학생 때부터 소비자의 눈으로 디자인을 바라보고 자동차에도 패션이나 건축, 제품 디자인의 트렌드를 접목할 수 있도록 많은 노력을 기울였다. 홍익대 졸업 작품으로 많은 주목을 받았던 ‘샤넬카’ 역시 이러한 생각의 전환을 통해 탄생한 작품이었다.
“졸업 작품으로 무엇을 해야 할지, 또 어떤 자동차 브랜드를 잡고 진행을 해야 할지 많은 고민을 하던 중 문득 떠오른 질문이 ‘왜 항상 자동차 브랜드를 위한 자동차를 디자인해야 하는 걸까?’였어요. 자동차 브랜드를 위한 콘셉트카가 아닌 패션 브랜드를 위한 콘셉트카를 디자인하면 어떨지 생각해 보게 됐던 것이 샤넬카 아이디어의 시초가 됐어요. 실제로 샤넬은 여성이라면 누구나 로망으로 삼는 브랜드인데, 샤넬의 클래식 가방을 자동殆� 접목시킨 것이죠.”
기존의 자동차 디자인 방식을 완전히 벗어났던 조진영 디자이너의 ‘샤넬카’는 실제로 유튜브에서 엄청난 조회 수를 기록하며 폭발적인 인기를 끌었다. 이후 영국 왕립예술학교(RCA)졸업 작품인 ‘포르쉐 929’ 역시 시작은 발상의 전환이었다.
“친환경 디자인 콘셉트들이 대세인 요즘 자동차 시장에 있어서, 유독 럭셔리 브랜드들은 그 친환경 콘셉트에서 제외되는 경우가 많은데, 저는 포르쉐 고객을 상대로 한 셰어링 카 멤버십이 있다면 어떨까 하는 생각으로 프로젝트를 시작했어요. 일반적으로 포르쉐 고객들은 평균적으로 세 대 이상의 포르쉐 차량을 소유하고 있는데, 이것은 공간적으로도 친환경적으로도 좋지 않은 영향을 끼칠 수 있잖아요. 그래서 한 가구 당 한 대의 차량만 소유하고, 그 밖에 차는 멤버십 안의 고객들과 함께 공유하는 시스템을 디자인하는 것이 저의 주요 콘셉트였어요. 현실적이면서도 자연 친화적인 디자인을 원했던 거죠.”
그렇게 해서 탄생한 조진영 표 ‘포르쉐 929’는 영국 왕립예술학교(RCA)의 21개 학과 중 단 두 명에게만 주는 명예 졸업상을 수상했고, 이후 그녀는 포르쉐에서 최초의 여성 인턴으로서 경험을 쌓았다.
이후 첫 직장이었던 BMW i를 거쳐 벤츠에 입사한 지 올해로 4년차가 됐다. 그녀가 소속돼 진행했던 두 개의 프로젝트를 3년 뒤쯤에는 길거리에서 볼 수 있을 것이라고 하니 기대를 해봐도 좋을 것 같다.

애써 이기려고만 하지 않을 것

현재 독일에서 홀로 생활하고 있는 그녀에게 가장 지독한 싸움의 상대는 바로 ‘외로움’이다.
사무실 동료들은 모두 남성이다 보니 그들이 하는 이야기에 항상 백 프로 공감하기도 어렵고, 여자로서 힘든 순간이 있을 때 마땅히 이야기를 털어놓을 동료도 없다. 언어나 문화 부분에서도 어려운 점이 많다. 미국에서 태어났기에 영어는 능숙하지만, 독일어는 서툰 편이라 언어로 답답함을 느낄 때도 있고 음식이 입에 맞지 않아 힘들 때도 많단다. 그럴 때마다 집에서 한국 TV 프로그램을 보고 한국 음식을 해먹으며 스트레스를 해소한다는 그녀다.
“타지 생활이라는 것이 그렇듯이 사실 하나하나 따지면 힘든 부분이 너무 많아요. 그런데 그럴 때마다 저는 그냥 아무 생각을 하지 않으려고 노력하는 편이에요. 고민을 하고 스트레스를 받을수록 절망감만 더 커질 뿐이거든요. 일이 잘 풀리지 않을 때도 그냥 그런 시기인가 보다, 언젠가는 지나가겠지 하면서 스스로 마음의 부담을 내려놓으려고 애쓰는 방법을 터득했어요.”
한국에서 취업난으로 힘들어하는 또래 청춘들에게도 그녀는 전하고 싶은 말이 많다. 늘 1등이 되기 위해 노력하고, 2등은 실패자 취급을 받는 분위기 자체도 문제지만 청춘들이 스스로 마음가짐을 달리해서 남들과 똑같은 방식이 아닌 자신만의 방법과 길을 찾았으면 좋겠다는 것이다.
“저희 부모님은 제가 어렸을 때부터 무엇을 강요하시거나 어떤 일을 못한다고 나무라신 적이 없어요. 제가 2등을 하면 다음에는 1등을 해라가 아닌 어떻게 2등이나 할 수가 있냐며 정말 잘했다고 감탄하시고 용기를 북돋아 주셨죠. 그런 용기와 칭찬이 살면서 제게 얼마나 큰 힘이 됐는지 몰라요. 저와 또래들, 혹은 저보다 더 어린 친구들도 이런 마인드를 가졌으면 좋겠어요. 남들과 다 똑같이 좋은 대학을 나와 대기업에 취직하는 것을 인생 전체의 목표로 삼기보다 새로운 방향을 두려워하지 말고 찾아보세요. 매년 반복되는 대기업 공채만 기다리기에는 시간이 너무 아깝잖아요. 그 사이에도 충분히 할 수 있는 또 다른 방향의 기회를 놓치지 마시고, 스스로에게 자신감을 가졌으면 좋겠어요. 동창회에 나갔을 때의 위상이나 부모님과 친척들에게 보여줄 수 있는 타이틀은 신경 쓰지 마세요. 중요한 것은 바로 나 자신의 행복이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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