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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엔난민기구 명예사절 정우성, 남수단 난민촌에 가다
유엔난민기구 명예사절 정우성, 남수단 난민촌에 가다
  • 송혜란
  • 승인 2015.07.28 13:41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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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타의 선행
▲ 사진제공 : 유엔난민기구(조세현)

배우 정우성이 오랜만에 모습을 드러냈다. 남수단 난민촌에서! 그가 아프리카의 ‘잊힌 난민 위기’ 중 하나로 표현되는 그곳에 간 이유는 무엇일까?

송혜란 기자 사진 및 자료 유엔난민기구(조세현)

지난 5월 19일, 훤칠하게 생긴 한 남성이 남수단 난민촌에 등장했다. 왕 구슬만한 땀이 포도송이처럼 달린 얼굴에 흰 티, 베이지색 조끼, 청바지, 워커를 신은 그의 모습이 왠지 낯설지 않다. 자세히 들여다보니 배우 정우성이다.

지난해 영화 <신의 한 수>, <마담 뺑덕> 출연을 최종으로 이후 가끔 인스타그램을 통해 알린 소식 이외에 이렇다 할 공식 활동이 전혀 없었던 그가 오랜만에 대중 앞에 모습을 드러낸 것.

현재 유엔난민기구 명예사절로 활동 중인 정우성. 그는 수십만 명의 난민들이 겪고 있는 장기화된 어려움을 한국은 물론 전 세계 사람들에게 알리는, 이를테면 그들의 눈과 귀, 입이 되어 전도자 역할을 하고 있었다.

난민촌 아이들과 함께한 행복한 모습

정우성의 이같은 최근 근황은 그가 인스타그램에 “ADDIS ABABA AIRPORT(아디스 아바바 공항)”이라는 짤막한 설명과 함께 셀카 한 장을 게재하면서 알려졌다. 공개된 사진 속 정우성은 에티오피아 아디스 아바바 공항의 대합실에 앉아 있다. 정우성의 다소 수척해 보이는 얼굴에는 피곤함이 묻어 있다. 그가 왜 아디스 아바바 공항에서 그러한 모습으로 있을까 궁금해지는 순간이다.

그때 유엔난민기구가 연달아 그의 모습이 담긴 사진을 페이스북에 게시했다.

“드디어 소식을 전합니다. 남수단 아중톡 난민촌에서 난민들과 만난 정우성 유엔난민기구 명예사절의 모습입니다. 아중톡은 ‘사자의 입’이라는 뜻을 가지고 있다고 해요. 정우성 명예사절과 함께 남수단 난민들의 어려움에 관심을 가져주세요.”

유엔난민기구가 발표한 사진 속 정우성은 난민촌 아이들과 마주 보며 해맑게 웃고 있다. 그들과 함께 휴대폰으로 셀카를 찍는 데 여념이 없었으며, 카메라를 향해 하트 모양의 손짓을 건네는 모습이 그려지기도 했다. 수많은 난민촌 아이들이 그를 줄곧 따라다니는 모습도 눈에 띄었다. 그런 아이를 두 손으로 번쩍 들어 올려 안는 모습에서는 왠지 모를 아빠 같은 따스함이 느껴졌다.

정우성은 피곤한 기색도 역력했지만 웃음만큼은 잃지 않으려고 노력하는 것 같았다. 아니, 어쩌면 그러한 상황에서 굳이 노력하지 않아도 자연스럽게 지어질 법한 웃음 같아 보이기도 했다. 오랜만에 보는 그의 밝은 모습은 보는 이의 마음을 훈훈하게 만들었다.
 
남수단 난민촌은 관심 절실한 곳

그를 이렇게 웃게 한 아이들이 사는 남수단 난민촌은 어떤 곳일까? 계속되는 내전 상황으로 국내 실향민이 올해 5월 말 기준 150만 명이 넘어선 남수단. 인접국에서 피신한 난민의 수 역시 26만2,000명 이상이라고 한다. 그곳은 현재 유엔난민기구의 주요 긴급구호 활동지 중 하나다.

“최근 지중해 난민선 침몰과 네팔 지진 등 세계 곳곳에서 일어나고 있는 안타까운 소식이 언론을 통해 알려지며 많은 사람이 도움의 손길을 보내주고 있어요. 남수단 역시 심각한 어려움으로 사람들의 관심이 절실한 곳입니다.”

남수단은 KBS 구수환 PD의 다큐멘터리 영화 <울지마 톤즈>의 배경이 된 곳으로도 유명하다. 고 이태석 신부가 암 투병 중에도 혼신을 다해 의료봉사활동의 끈을 놓지 않았을 만큼 많은 이들이 도움의 손길을 필요로 하고 있다.

그러나 시리아나 이라크 등 다른 지역에 비해 그 어려움이 특히 한국과 같은 아시아권에 덜 알려져 남수단은 난민 및 국내 실향민의 보호활동에 큰 곤란을 겪고 있다. 2015년 5월 기준, 남수단 구호활동을 위한 모금액이 올해 재정적 수요의 30%도 채 되지 않은 상태라고 한다.

“저도 어릴 적 판자촌에 살았어요”

정우성은 난민촌에 도착해 짐을 풀고 현장을 둘러보다 놀란 표정을 감출 수가 없었다고 한다. 난민들은 섭씨 40도가 넘는 찜통 더위에 천막만 친 집에서 살고 있다. 허리를 굽혀야 겨우 들어갈 수 있는 천막촌 입구엔 파리들이 들끓는다. 5명 이상 생활한다는 2평 남짓 천막 안은 이불 하나 없는 흙바닥이다.
특히 그는 그곳의 한 난민과 인생 이야기를 나누다 눈시울이 붉어졌다고. 안타까운 사연을 접한 정우성은 자신도 어릴 적 생활이 어려웠다고 털어놓았다. 난민촌 사람들의 고통을 그 누구보다 잘 이해하고 있는 정우성. 그에게도 한때는 그들과 비슷한 시절이 있었던 것이다. 가슴 아픈 이야기이지만 정우성은 한 언론사와의 인터뷰를 통해 이같이 고백했다.

“저 또한 중학교 때까지 다 무너져가는 판자촌에서 살았어요. 모든 집이 다 철거되고도 저희 집은 늘 마지막까지 남아 있었죠. 집앞 벽까지 무너질 때는 비참함을 느꼈습니다. 가난이 부끄러워 집을 나오기도 했어요.”

그의 가난했던 어린 시절 에피소드는 3년 전 모 예능프로그램에서도 한번 전해진 바 있다. 재개발로 인해 이사를 많이 다녔고 늘 형편이 안 좋아 주변의 집들이 다 무너지고 중장비가 들어서는 철거 직전에 집을 나갔다고. 눈물 없이는 듣기 힘든 이야기라 가슴을 더 뭉클하게 한다.

“저희 집은 늘 그랬어요. 금이 간 벽도 고칠 필요가 없었죠. 웃풍 때문에 누워서 잠을 자려 하면 입김이 나올 정도였어요.”

그는 놀라움을 금치 못하는 사람들 앞에서도 아랑곳하지 않고 꿋꿋하게 10대 후반의 기억을 떠올리며 이야기를 이어갔다.

“현관 바로 앞의 옆집 담장 벽이 있었어요. 그런데 어느 날 이 담장이 무너졌어요. 저희 집 형편을 세상으로부터 가려줄 수 있는 가림막이었는데, 그때는 정말 발가벗겨진 기분이었죠.”

그러나 그는 어려운 집안 환경을 원망해서는 안 된다고 생각했다고 떠올렸다.

“‘이 가난이 아버지의 것이지, 나의 것은 아니다’고 생각했어요. 이를 극복해 다른 나의 삶을 만들어야 한다고 줄곧 생각했던 것 같아요.”

이러한 굳은 다짐에 그는 배우가 되기로 마음먹었고, 그 출발선으로 모델 일을 시작하게 되었다. 지금은 보란 듯 톱스타가 되어 어려운 사람들을 보면 어린 시절의 동병상련을 느끼는 정우성. 그는 남수단 난민촌에서 만난 난민들에게 자신이 어떻게 가난을 극복하게 됐는지를 소개하며 주변국의 도움을 통해 큰 꿈을 가졌으면 좋겠다고 소원했다.

“우리나라도 6·25라는 전쟁을 통해 UN연합군의 도움을 받아 재건을 하고 지금까지 성장해 왔어요. 여러 나라의 도움을 받아 발전할 수 있었고, 지금은 역으로 우리가 다른 나라에 도움을 주는 곳이 됐습니다. 지금 도움 받는 것을 부끄러워하지 말고 큰 꿈을 꿨으면 좋겠어요.”

그의 아름다운 마음이 남수단 난민촌 주민들의 마음에 따뜻한 온기를 불어넣고 또 그 온기가 전 세계로 퍼져나가기를 두 손 모아 소망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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