UPDATED. 2024-04-20 13:45 (토)
 실시간뉴스
이것이 PD의 드라마다 - '프로듀사'
이것이 PD의 드라마다 - '프로듀사'
  • 이윤지
  • 승인 2015.07.29 17:40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종영 드라마
▲ 사진=KBS

김수현, 공효진 두 사람의 이름으로 일찍이 이슈가 됐던 <프로듀사>가 12회 짧은 시간 동안 제대로 인기를 누리고는 종영했다. 방송국 PD들이 주인공으로 한 드라마국이 아닌 예능국에서 만든 독특한 형식으로, 골 때리게 엮인 캐릭터들의 심장 쫄깃해지는 러브라인이 일품이었다. 편집실, 회의실을 주 무대로 한 피곤한 ‘방송국 일상’과 그들만의 현장 언어도 역시.

월화, 수목, 토일 말고 ‘금토’ 드라마가 대박을 쳤다. 예능국에서 만들어서 편성 요일이 독특하게 빠진거다. KBS 예능국 서수민PD, <별에서 온 그대>의 박지은 작가의 이름이 눈에 띄는 <프로듀사>. 방송국을 배경으로 한 드라마가 없었던 것도 아닌데 이렇게 본방 사수율을 높이다니! ‘프로듀사’라고 바꾼 교묘한 말장난부터가 심상치 않기는 했다.

빠져든다 ‘예능국 이야기’

‘방송국 사람들’ 이야기가 흥미로운 건 왜일까. 우리들은 모두 각자의 직업군에 속해 있으며, 직업이 다른 여럿이 모이면 또 각기 다른 푸념들을 우르르 쏟아낸다. 그런데 따분하기 그지없는 직장에서의 일상이 그 안에서 호기심 또는 갈망을 불러일으키는 경험을 할 때가 있다. 딱 일주일만이라도, 서로 바꿔보면 어떨까 하는 마음이 들도록 말이다.

혼미한 정신으로 끊임없이 회의를 해야 하는 운명, 장소와 출연자 섭외로 지친 멘탈, 밤샘 촬영, 밤샘 편집의 악몽으로 점철된 방송국의 일상을 들여다보는 것은 일단 이 같은 심리로 시작하며 재미를 느끼게 된다. 하물며 너무나 익숙하면서도 우리를 중독되게 하는 예능 프로그램들을 만들어내는 그들의 이야기라니. 대본으로 빚었다고 해도 안 보곤 못 배길 만하다. 물론 작가부터 출연진까지 이름들이 든든했다는 사실도 큰 몫을 했다.

이 드라마는 예능국 PD들과 작가, 연예인들의 삶을 본격적으로 디테일하게 그려냈다. 첫 번째 주요 에피소드인 ‘본의 아니게 하차통보’ 편은 까다로운 중견 여배우에게 하차통보를 해야 하는 상황을 놓고 제작진들이 겪는 고초를 세세하게 보여준다. 아마 이들이 실제로 겪는 강도가 센 난감한 일이기에 이 에피소드는 유독 강렬했을 것이다.

KBS 예능 <1박 2일> 팀으로 배치된 지 겨우 5시간 된 신입 PD 백승찬은 베테랑 PD들도 대하기 어려운 배우 윤여정에게 갑작스러운 하차 통보를 해야 했고 윤여정의 기분을 최대한 상하지 않게 하려다 하차 사실을 제대로 전하지 못해 결국 '쫑파티'를 망치게 된다. 이 와중에 벌어지는 주인공들의 슬프고 웃긴 처지, 위로가 필요한 방송 예능국의 우여곡절을 성공적으로 엮어낸 세밀한 방식은 PD들의 드라마가 바로 이런 것임을 인지시킨다.

이 독특한 장르적 특성에 더해 <별에서 온 그대>, <넝쿨째 굴러온 당신>을 집필한 박지은 작가가 썼다고 하니 단연 돋보일 밖에. 박지은 작가는 특히 로맨스와 유머에 강한 사람으로, 이번 협업의 중심에서 역시 굉장한 기량을 선보였다. 주연, 조연 할 것 없이 왁자지껄한 예능국 식구들 하나하나에 뚜렷한 아이덴티티를 입히며 지루할 틈이 없도록 했고 이른바 세련된 ‘연결’로 극의 세련미를 높였다.

큰 꿈을 안고 예능국에 입사한 신입 PD에게 선배는 “PD에게 제일 중요한 게 뭔지 알아? 바로 시간 외 근무수당 신청이다. 잘 챙겨”라며 “어쨌든 환영한다. 절대 그만두지 마”라고 말했다. 실제로 PD라는 직업은 소위 스펙도 높아야 하고 경쟁이 치열한 직업군이다.

하지만 애처로운 속사정들이 있다는 것이 밝혀지면서 신입 PD와 시청자는 씁쓸한 절망을 함께 맛보게 된다. 그리고 그럼에도 동경과 희망은 다시 품어진다. 짜릿한 희열, 은근한 감동 역시 못 이기는 척 모습을 드러낸다. 아무렴 시청자들을 웃기고 울리는 일이 이루어지는 곳인데 찌든 단면이 예능국을 대표하지는 않는다. 그런데 또 어쨌든 웃음을 끌어내는 지점은 이 ‘고스펙 허당들’의 어설픈 나날들이다.

일할 때엔 성능 좋은 슈퍼컴퓨터처럼 몸과 머리가 뜨겁고 빠르지만 마음을 짚고 관계를 맺는 것에는 익숙하지 못해 엇갈리고 때로 망쳐지기도 하니 그 반전하는 모습들이 참 재밌는 거다.

예능국 사람들의 일상을 다큐로 찍고 있다는 설정으로 보여주며 시작해, 주인공들은 홀로 남은 공간에서 인터뷰를 통해 닿지 못한 마음들을 고백할 수 있었다. 처음엔 출입 카드를 찍고 회사에서 좌충우돌하고, 하룻동안 쌓인 불만들을 허겁지겁 내뱉던 일이 다반사였지만. <그들이 사는 세상>의 경우 드라마국 PD들의 작품론과 신념을 구체적으로 다뤘었다.

역시 연애와 사랑, 그 사이의 갈등들을 내세우기는 했지만 그만큼 빛났던 것이 드라마에 대한 연모와 열 오르는 토론이었다. 노희경 작가의 정밀 카메라 같은 눈으로 본 그들의 치열한 현장이 주된 이야깃거리였던 것.

<온에어>는 4인 주인공 체제라는 점이 유사하나, 배우와 PD  또 작가와 배우 사이의 신경전, PD-스타 드라마 작가-톱 여배우-성공한 매니저의 교묘하면서도 촘촘하게 엮인 관계성이 보다 드라마틱하게 전개된다는 데서 <프로듀사>와는 차이가 진다. 셋 모두 방송국을 무대로 해 일과 사랑을 다루며 시청자들의 남다른 관심과 큰 사랑을 받았다.

오랜만에 이 소재를 끌어낸 <프로듀사>는 앞선 두 작품과는 확연히 다른 덤덤한 뉘앙스와 ‘직업 다큐’ 같은 투박한 분위기를 내세운다. 더구나 <그사세>를 연출하기도 했던 표민수 PD의 반가운 합류로 화면은 과하지 않은 생동감으로 멋스럽게 흘렀고 10회에 이르도록, 야무지게도 주인공들의 ‘밀당’을 끝내주지 않았던 박지은 작가가 과연 고난이도의 필력을 선보인 덕에 <프로듀사>는 꾸준히 다음 화를 기다리게 만들었다.

프로듀사들

KBS 예능국 김태호 CP의 저서 ‘예능 PD란 무엇인가’ 속 소제목이 <프로듀사> 각 회의 제목이다. ‘본의 아니게 대형사고’, ‘본의 아니게 하차통보’, ‘결방의 이해’, ‘예고의 이해’ 같은 독특한 시리즈 부제는 매회의 주제의식을 잘 압축해주며 몰입도를 높였다.

‘프로듀사’의 의미는 별다를 것 없다. 감투에 민감한 승찬의 아버지가 승찬의 입사를 축하하는 자리에서 “프로듀...사, 사 맞네!” 하며 발음했던 말임이 첫 회 에필로그를 통해서 전해진다. 삶과 일, 사랑에 관한 이해와 이런저런 본의 아니었던 일들은 ‘프로듀사’들뿐 아니라 누구에게나 적용 가능한 요령 또는 경험 같은 것들이다. 그래서 이 특수한 환경은 점점 친근하게 다가온다.

준모와 예진은 20년지기 친구로 서로 너무나 잘 알며 지내온 사이다. 프로그램 하나씩을 맡고 있는 PD들로 카리스마 넘치고 연애에서도 거침없을 법 하지만 서로의 서로에 대한 마음이 무언지 참 오랫동안 헷갈려 왔음을 이제야 감지했다.

출연자 물갈이, 하락하는 시청률, 폐지 위기까지 우여곡절을 겪고 있는 <1박 2일>의 라준모 PD(차태현 분)의 구역엔 현실감 뿐 열정과 낭만이라곤 조금도 없어 보이는 작가, 연출들 뿐이다. 그런데 좀 모자라 보이는 것이 불안불안하던 신입 PD 백승찬(김수현 분)이 어김없이 골치를 썩인다. 가벼운 차 사고로 예진(공효진 분)과 얽히며 세 사람은 묘한 구도로 함께 일도 하고 사랑도 하게 된다. 음악 부문을 넘어 예능에서 가장 핫한 스타 ‘신디’가 가세하니 멜로는 더욱 풍성해진다.

그들은 애정어린 시선으로 자신과 친구들의 시간을 카메라 들여다보듯 바라보고, 나름의 고민을 거쳐 수많은 해프닝들 중 어떤 것은 살리고 어떤 것은 편집으로 삭제하기도 한다. 처음부터 끝까지가 모두 담긴 테이프를 손에 쥐었지만, 그것을 다듬고 변형해 몇 분 또는 몇 시간짜리로 압축하는 그들의 일은 자칫 물리적으로 보이지만 사실은 너무나 감상적이다. 기억을 다시 맞추고 프레임에 잡힌 인물에 대한 시선을 정비하는 데는 예리한 감각과 따뜻한 눈이 반드시 필요하다.

이제부터 ‘프로듀사’가 된 배우들 이야기. 차태현은 본인이 출연 중인 <1박 2일>의 연출자를 연기한다. 이 얼마나 절묘한 조합인지 모르겠다. 직접 활약하고 있는 버라이어티 프로그램의 메인 연출가를 연기하고 있으니. 같은 타이틀에서 쭉 봐 와서 그런지 1박 PD라는 설정이 설정 같지 않게 익숙하다. 라준모는 친구이자 동료, 연인도 친구도 아닌 중간쯤의 여자인 친구 예진보다 키가 조금 작지만 참 든든하고 다정한 남자다. 딱히 진중해보이지는 않지만 속내가 깊은, 전형적인 ‘곁에 두기 좋은 사람’을 연기한 차태현은 처음부터 끝까지 흐름을 잡아주는 메인PD 역할을 제대로 수행했다.

살짝 얄미울 정도로 전성기가 길기도 한 공블리, 공효진은 KBS ‘뮤뱅’ PD가 됐다. 전문직 여성의 시크함이 몸에 잘 맞는 공효진에게 이 역할은 어쩜 어려울 것이 별로 없었을 것도 같다. 어떤 문장을 내놔도 생활형으로 스르르 풀어지는 화법은 <프로듀사>의 탁예진 PD와 찰떡궁합이다. 쌀쌀맞고 까탈스럽지만 순진한 구석이 있어, 남녀 사이의 기묘한 촉 같은 건 전혀 감을 못 잡는 재미있는 캐릭터다. 잔뜩 인상을 찌푸리고 시비를 붙이지만 뒤끝 없이 싱긋 웃는 참 괜찮은 여자, 이번에도 역시 딱 공효진 같은 역할이지만 지루하지 않았다.

신입 PD 백승찬이 된 김수현. <해를 품은 달>, <별에서 온 그대>에 이어 또다시 여심을 사로잡는 ‘연하남’으로 돌아온 그는 역시나 큰 환영을 받았다. 어눌한 말투와 한 박자 느린 템포, 묵묵히 보듬을 줄 아는 기특한 심성을 가진 백승찬은 이 드라마의 핵이다.

초반엔 웃음거리를 책임졌고 갈수록 ‘백승찬’의 속도와 차분한 언변에 빠져들도록 캐릭터를 잡아냈다. 아주 뚜렷한 ‘연상 취향’인 그의 사랑하는 방식은 너무나 풋풋했다. KBS에 입사하게 된 이유를 물으니 황당하게도 좋아하는 여자 선배 때문이라고 밝혔지만, 현장에 서게 되자 역시 조용하고 따뜻하게 짝사랑하듯 천천히 둘러보며 신선한 것들을 찾아낸다.

‘아닙니다’, ‘안됩니다’, ‘그렇습니다만...’같은 말투로 늘 진지한 눈빛을 유지하는 백승찬을 텍스트로만 만난다면 좀 지루한 사람일 것 같다. 준모와 예진 사이에서 슬며시 이상한 기운을 알아차리는 눈빛, 종종 뛰어가 예진 곁에 붙어 서는 아이 같은 천진함 같은 건 김수현 만의 디테일이다. 박지은 작가는 이 같은 그의 분석력을 일찍이 알아봤던 것 같다. 백승찬이 스스로 변화하고 자유롭게 움직일 수 있도록 <프로듀사>의 중심에 그를 두고 재밌는 그림을 원 없이 펼쳐놓은 것을 보면.

아이유의 캐스팅에 대해선 말들이 많았었다. 배우로서도 꽤나 활동해 왔던 아이유이지만 호평은 적었었기 때문. 게다가 공효진, 차태현, 김수현 같은 흥행이 보장된 베테랑들 사이에서 조화를 이룰지는 너무도 미지수였으니 말이다. 가수 출신 배우다 보니 예상대로 초반부 ‘어색하다’, ‘겉돈다’는 시청자 평이 주를 이뤘었다. 그러나 아이유는 발성과 몸짓에 집중했다.

 -----------------------------------------------------------------------------

그들은 애정 어린 시선으로 자신과 친구들의 시간을 카메라 들여다보듯 바라보고, 나름의 고민을 거쳐 수많은 해프닝들 중 어떤 것은 살리고 어떤 것은 편집으로 삭제하기도 한다.

 -----------------------------------------------------------------------------

 흘리듯 내뱉는 대사는 살짝 전달력이 떨어졌지만, 신디가 긴 말을 하기도, 친절하게 말하기도 싫어하는 거만한 인물인 것을 상기한다면 꽤나 영리한 스킬이었음을 알 수 있다. 고개를  치켜드는 각도와 한 쪽 머리카락을 휙 넘기는 손짓, 귀찮은 듯 내딛는 발걸음 등 기고만장의 끝에 서 있는 톱 아이돌 가수를 눈앞에서 본다면 바로 이런 모습이겠다 싶을.

간만에 만난 ‘서툰 사랑법’ 

’PD들의 일과 사랑’이라는 짤막한 설명으로 부족하지 않은 간결한 플롯의 매력을 보여주며, 12회 내내 사각관계의 결말을 궁금하도록 만든 드라마 <프로듀사>. 드라마나 예능처럼 화려하지 못했던 우리의 진짜 연애처럼 대부분 헷갈리고 종잡을 수 없는 시간들을 그려내며  고백과 응답보단 우연과 짐작으로 점철됐던 한 시절을 떠올리게 한, 떠나보내기 아쉬운 이야기.

<프로듀사>는 예능국의 생리와 실체를 여과 없이 드러내주며 드라마, 예능 프로그램을 보는 것과는 다른 느낌을 갖게 한 드라마였다. 그러나 그 리얼리티보다 더 또렷이 보였던 건 아마 그들 넷 모두가 늘 갈망했던 각자의 사랑이다. 20년지기 준모에 대한 마음을 점검하면서 혼란에 빠졌었던 예진의 사랑, 곁에서 묵묵히 바라보고 챙기며 돋아난 예진에 대한 풋풋한 승찬의 사랑, 또 기댈 곳 없이 지독하게 외로웠던 신디의 지친 마음을 바라봐주던 승찬의 눈과 갈수록 그 안락함을 찾게 되며 애달파졌던 신디의 마음까지.

좀 못나 보이고 답답했지만 눈이 부신 네온사인들 속에서 조용히 혼자 타오르는 촛불을 찾아내는 일 같은(<프로듀사> 예진의 대사 중 일부) 요즘 흔히 없는 아주 서툰 그들의 사랑은 보기 흐뭇한 이야기였다. 조금도 지체하지 않고 다가가고, 아니라고 하면 금세 접어지는 마음들에 지쳤던 지금 우리의 도처의 연애들과는 다른 은은한 사랑의 말들이 <프로듀사>의 가장 큰 의미가 아니었나 싶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