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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L.A.와 어바인 시에서 연이어 사회봉사상 받은 송효숙 여사
미국 L.A.와 어바인 시에서 연이어 사회봉사상 받은 송효숙 여사
  • 백준상 기자
  • 승인 2015.08.02 04:08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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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공헌
이번에 사회봉사상을 수상한 송효숙 여사는, 5선 국회의원을 지낸 한국 현대정치사의 거목 금암 최치환(崔致煥, 작고)선생의 부인이며 새누리당 김무성 대표의 장모이다.

국내 원로 봉사단원인 송효숙 여사가 미국 LA 시장과 어바인 시장으로부터 ‘사회봉사상’을 거의 동시에 수상했다. 5선 국회의원을 지낸 고 금암 최치환 선생의 부인인 송 여사는 남편을 충실히 내조함과 더불어 일생을 어려운 이웃들을 찾아 봉사한 여성이다. 영광의 사회봉사상을 받은 송효숙 여사를 만나 여사의 봉사하는 삶에 대해 들었다.

취재 백준상 기자 사진 양우영 기자

송효숙 여사(86)가 사회봉사상으로 LA시장상과 어바인시장상을 동시에 수상하는 쾌거를 이뤘다.
송 여사는 지난 5월 21일 미국 로스엔젤레스 에릭 가세티 시장으로부터 사회봉사 분야에서의 그동안의 공로를 인정받아 표창장을 받았다. 뒤이어 스티븐 최 캘리포니아 어바인 시장으로부터도 사회봉사상에 해당하는 표창장을 받았다.
서울에 거주하는 송 여사는 이메일을 통해 수상 사실들을 전해 받았으며, 고령의 나이로 인해 시상식에는 참여하지 못해 상장들을 우편으로 전달받았다.

일생 전반을 사회봉사로 일관

미국 LA 시와 어바인 시에서는 매년 사회봉사 분야와 장한 어머니 분야 등에서 활약을 펼친 인사를 선정해 상을 수여한다. 단기간의 공적이 아닌 오랜 기간 동안의 공적을 보아 수상자를 선정하는 경우가 많아 상의 권위가 높다.
이번에 사회봉사상을 수상한 송효숙 여사는, 5선 국회의원을 지낸 한국 현대정치사의 거목 금암 최치환(崔致煥, 작고)선생의 부인이며 새누리당 김무성 대표의 장모이다.

▲ 미국 LA시에서 송효숙 여사에게 수여한 사회봉사상 표창장.

LA 시는 “LA 한인타운의 YWCA 이사로 활동하고, 한국에서 고아원을 운영하기도 했으며, 국제 소롭티미스트 협회에 참여하여 봉사활동을 펼친 송효숙 여사가 로스앤젤레스 시를 위대한 도시로 만드는 시민정신의 귀감이 되는 것을 기려 친구와 가족, 공동체와 더불어 그 노고를 축하한다.”는 내용의 공로를 상장에 적시했다.

▲ 미국 캘리포니아 어바인시에서 송효숙 여사에게 수여한 사회봉사상표창장.

어바인 시가 밝힌 송 여사의 공적사항도 이와 크게 다르지 않았다.

“저보다 봉사활동을 더 많이 하신 분도 계실 텐데 제가 받게 되어 미안한 마음이 앞섭니다. 그리고  LA에 잠시 살았을 뿐인데도 상을 주시는, 한국 국민에 대한 미국 시장님들의 배려가 고맙게 느껴집니다.”

송효숙 여사는  미국유학 1세대로 1940년대 후반 서울대 문리대 학부 시절 도미해 미국 플로리다 주립대를 졸업했다. 이어 미국 컬럼비아 대학원에서 교육학 석사학위를 받고 박사과정도 마쳤다. 바쁜 유학생활 가운데에도 틈틈이 여러 봉사활동에 참여해 동포들을 도왔다.
LA시 한인타운에 있는 YWCA에서의 송 여사의 봉사는 워낙 오래 된 일이라 송 여사는 세세히 기억해내진 못했다. 다만 봉사자 모두 자발적으로, 자비를 들여 어려운 사람들을 돕는 분위기만은 생생히 기억하고 있었다.

미국 유학생활 중 봉사활동 중이던 송효숙 여사는 미 국무성 초청으로 유학 온 금암 최치환 선생을 만나 백년가약을 맺었다. 최치환 선생은 경찰 출신으로 해방 이후 지리산지구 전투경찰대 총사령관으로 혁혁한 전과를 올려 후일 태극무공훈장, 을지무공훈장 등을 수여받았다.

송 여사는 1954년 미국에서 귀국하여 금암과 혼례를 올리고 서울에서 살림을 차려 남편인 금암을 충실히 내조했다. 최치환 선생은 이후 경상남도 경찰국장, 전라북도 경찰국장, 충청북도 경찰국장을 거쳐 자유당 시절에는 공보실장(현 공보처장관)에 이르렀으나 송 여사는 남편의 직위와 상관없이 검소한 생활을 이어나갔다. 이런 노력에 힘입어 4.19혁명에 이어 5.16혁명이 일어났어도 금암은 청렴결백을 인정받아 정치로 재기할 수 있었다.

1960년 제5대 민의원 선거에 무속으로 출마하여 당선되었으나 5.16혁명을 맞았던 금암은 1963년 제6대 국회의원 선거에 출마하여 민주공화당 의원에 당선되었다. 송효숙 여사는 1965년 재단법인 희망소년원 이사장직을 맡아 고아원을 꾸려나갔다. 이승만 정권이 4.19혁명으로 하야하자 소년원 운영에서 손을 뗀 한 재벌로 인해 소년원 아이들이 굶게 생겼던 것이었다.
“겨울인데 시설이 변변치 않은데다 잘 먹지 못해 아이들이 헐벗고 굶주리고 있는 거예요. 재벌로부터 당시 1200평의 부지를 사비로 인수해 거기에 벽돌집을 지었어요. 주말마다 미군들이 흙을 파와 집 지을 땅을 메워줘서 건물을 올릴 수 있었지요. 당시 미군들은 월급에서 돈을 떼어 도와주면서도 물 한잔 얻어먹으려 하지 않았어요. 정말 고마워서 지금도 안 잊혀집니다.”
송 여사는 홍은동 부근의 희망소년원에서 당시 6~18세로 구성된 122명의 아이들을 10년간 길러냈다. 한 가지씩 기술을 가르쳐 큰 아이들이 독립할 때면 큰 보람을 느끼기도 했다. 지금과는 달리 정부의 지원금은 식비의 작은 일부분밖에 충당하지 못했다. 식비, 옷값, 교재교구비, 인건비 등으로 생활은 항상 쪼들렸다.
오죽하면 ‘고아원 아이들 키우느라 본 자식들이 고아처럼 됐다’는 말이 나돌 정도였다. 낡아 찢어진 옷이나 먹는 것에서나 본 자식들이나 고아들이나 별 차이가 없었던 것이다. 송 여사는 10년 후 고아원 운영을 잘한다는 한 목사에게 희망소년원 운영을 넘겨주었다. 하지만 송 여사는 그 일이 두고두고 신경 쓰였다고 한다. 소년원을 계속 신경 쓰고 돌봤어야 했다며 회한을 내비쳤다.

송효숙 여사는 1969년부터 3~4년간 대한적십자사 서울특별시지회 자문위원으로 활약하기도 했다. 다른 자문위원들과 회의에 참석하여 도움이 필요한 곳에 지원을 결정하는 역할을 맡았다. 당시 금암이 제7대 국회의원으로서 사회복지연합회 회장을 맡고 있을 때였다. 고아원을 직접 운영하며 어려운 이웃들의 삶을 꿰뚫고 있었던 송 여사였기에 그의 역할은 대한적십자사의 봉사활동에 실질적인 도움이 되었다.

국제소롭티미스트 봉사활동에 기여

 

송효숙 여사는 국제소롭티미스트 한국협회에도 관여하여 여성들의 봉사활동을 조직화하는 데에도 크게 기여했다.
소롭티미스트(Soroptimist)란 자신은 물론 소녀와 여성들이 꿈과 이상을 실현시켜주기 위한 국제적 여성봉사단체로 여성들로만 구성된 세계에서 가장 큰 여성자원봉사단체이다. UN에 상주직원을 파견하고 있으며 열악한 환경에 놓인 소녀와 여성들을 도와 그들의 삶의 질을 높여주고 격려하는 일들을 펼친다.
미국 캘리포니아 오클랜드에서 1921년 이상적인 봉사를 꿈꾸며 80여명의 여성들로 시작된 소롭티미스트는 현재 118개국에서 3천여 개 클럽이 활동하고 있다. 한국은 서울 대전 대구 부산 광주 등 5개 지역에서 30개 클럽이 활동하고 있으며 회원 수는 520명 이상이다.

한국의 소롭티미스트 활동은 1966년 서울클럽이 처음 결성되면서 시작됐는데, 송효숙 여사는 1970년 한국의 두 번째 클럽인 ‘한양클럽’을 결성하며 소롭티미스트를 통한 봉사활동에 뛰어들었다. 1982년부터 1984년까지는 국제 소롭티미스트 한국협회장을 맡았으며, 1985년에는 한국협회 감사로 활동했다. 1993년부터 다음해까지는 국제 소롭티미스트 미주본부 국제이사로 활약하기도 했다.
“소롭티미스트는 지역사회가 필요한 것들을 회원들이 자비를 들이거나 모금을 통해 해결합니다. 가령 지역사회에 어떤 불편함이 있으면 이를 해소하는데 적극 나서고 아동교육이 열악한 지역이면 교육을 돕는데 힘을 보탭니다. 봉사활동 분야는 경제사회 교육 환경 보건 등 매우 폭넓습니다.”
소롭티미스트가 되려면 우선 신실한 우정과 성취의 기쁨과 봉사의 존엄성과 올바른 직업관과 애국심을 지향하는 소롭티미스트의 이념에 충실할 것을 맹세해야 하는데 무엇보다 애국심이 투철해야 한다고 송 여사는 설명했다. “지역사회에 병이 발생하면 모두 적극적으로 나서서 도우며 위기를 극복했다”며 최근 메르스 발병 사태에 대해 안타까움을 나타냈다.

이밖에도 송효숙 여사는 2001년부터 4년 동안 한국 유니세프에서 사회공헌에 앞장섰으며, 1990년대 초반에 어머니들을 대상으로 ‘효율적인 부모 역할’에 대해 강의하며 재능기부 활동을 펼치기도 했다. 그녀는 어머니들이 아이를 소유하고 있다는 생각으로 아이에게 지나치게 간섭하는 일에 대해 반대했다. 어디까지나 아이들을 한 인간으로, 인격체로 대해온 송 여사였다. 그녀는 자신의 조그만 재능이라도 사회를 위해 사용될 수 있기를 바랐다. 여든이 훨씬 넘은 지금도 탁월한 영어실력을 유학을 앞둔 학생들을 가르치는 일에 사용하는 그녀다.
“남들보다 불편함이 적게 살았던 사람으로서 남을 돕는 것은 당연하다는 생각입니다. 큰 걸 나누는 것도 좋지만 작은 것부터 나눌 줄 알아야 한다고 봅니다. 남을 배려하는 마음을 항상 가져야 합니다. 세상을 뜰 때 좋은 사람이라는 인상을 남기고 떠나고 싶습니다.”

▲ 남을 배려하는 마음을 가지기를 자녀교육에도 강조해온 송효숙 여사와 막내딸 최순호씨.

미국에 살아봐서 정직함이라는 덕목의 중요성을 잘 아는 송 여사는 “남을 배려하기 위해서는 먼저 작은 것부터, 간단한 규칙부터 지킬 줄 알아야 한다.”고 말했다. 그리하여 남한테 피해를 주지 않고 남을 배려하는 사람이 스스로 되기를 바랐으며 자식들에게도 이를 강조하기를 주저하지 않았다. 베풀어야 자식이 잘 된다고 했던가. 덕분인지 자식들 모두가 현재 어렵지 않은 삶을 살고 있다.
첫째인 최양일 국제변호사는 미국 의료계 고문변호사로 활약 중이고, 둘째인 최양미 씨는 외과의사와 결혼해 미국에서 살고 있다. 셋째인 최양옥 씨는 새누리당 김무성 대표의 부인이고, 넷째인 최양오 박사는 시사평론가로 방송에서 활약 중이며, 다섯째 최순호 씨는 남편이 반도체 부품을 취급하는 미국계 회사 대표로 있다.
강원도 회양에서 거부의 딸로 태어났으나 분단으로 고향을 잃은 송효숙 여사는 고향에 가보는 소원과 함께 이 좋은 강산에서 후손들이 정직하고 배려하는 삶을 살았으면 좋겠다는 바람을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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