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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살 충격에 빠진 미국 명문대들
자살 충격에 빠진 미국 명문대들
  • 송혜란
  • 승인 2015.09.24 11:14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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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펜 페이스’, ‘잔디 깎기 부모’가 원인
▲ 사진=서울신문

최근 잇따르는 학생들의 자살로 미국 명문대학교들이 비상상태에 돌입했다. 스스로 목숨을 끊는 학생들은 평소 자신감이 넘치고 주위 친구들에게 인기가 많았던 터라 미국 사회는 그야말로 충격에 휩싸였다. 그 배경에는 소셜 미디어의 비교 문화와 부모의 지나친 기대, 간섭이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취재 송혜란 기자 사진 서울신문

미국 명문대학교에 재학 중인 캐슬린(가명)은 누구나 알아주는 성실한 학생이었다. 공부는 당연하고 외모도 배우 못지않게 매력적이었다. 그의 인스타그램에는 종종 예쁘고 화려한 사진들이 올라왔다. 항상 친구들의 부러움을 한몸에 받은 그였다. 그러던 어느 날, 대학교에 입학한 지 1년도 채 되지 않은 그가 스스로 생을 마감하는 안타까운 일이 벌어졌다.

지난 7월 27일 <뉴욕 타임스>는 미국 명문대학교 학생들이 잇따라 자살하는 사건이 일어나고 있다고 보도했다. 외신을 통해 알려진 바에 따르면, 미국 15~24세 인구의 자살지수는 2007년 10만 명당 9.6명에서 2013년 11.1명으로 꾸준히 늘어나는 추세다.

특히 명문대학교 내에서의 상황이 매우 심각하다. 아이비리그(미국 동부의 8대 명문대학교) 중 하나인 필라델피아대학교에서 2014~2015년 사이 13개월 동안 무려 6명이나 스스로 생을 마감했다. 코넬대학교에서도 2009~2010년 사이 6명이, 뉴욕대학교에서도 2003~2004년 사이 5명이 목숨을 끊었다.

“펜 페이스(Penn Face) 때문에…”

엘리트적인 삶을 누리며 행복하게만 보였던 그들이 돌연 죽음이라는 극단적인 선택을 하게 된 이유는 무엇일까.

지난해 초 태스크포스를 꾸린 펜실베이니아대학교는 학생들의 자살이 ‘펜 페이스(Penn Face)’ 때문이라는 보고서를 내놓았다. 펜 페이스는 슬프거나 스트레스를 받아도 늘 행복하고 자신감이 넘치게 보이려고 쓰는 일종의 가면을 말한다. 스탠퍼드대학교에서는 이를 ‘오리 신드롬’이라고 부른다. 수면 위를 매끄럽게 나아가는 듯 보이는 오리가 물속에서는 쉼 없이 아등바등 발을 젓는 것에 비유한 것이다.

학생들 사이에서 오래전부터 사용되어온 이 우려스러운 문화는 끊임없이 주위 친구들과 비교하며 생긴 열등감이 근원인 것으로 풀이된다. 고등학교에서 일등만 하던 학생이 명문대학교에 들어온 뒤 자신보다 훨씬 우수한 친구들을 만나며 겪는 심리적인 압박감이 적지 않은 탓이다.

소셜미디어, 비교 문화 부추겨

코넬대학교의 그레고리 엘즈 심리상담소장은 잇단 학생들의 죽음에는 일상을 미화하고 자랑하는 데 쓰이는 소셜 미디어의 영향도 크다고 분석했다.

사람들이 자신의 가치를 남들과의 비교를 통해 가늠한다는 사회적 비교이론은 수십 년 전부터 거론됐지만, 최근 고도로 계산된 모습만 드러내는 소셜 미디어가 이 비교문화의 위험성을 더욱 키우고 있다는 것이다. 그는 학생들이 ‘다른 학생들은 모두 행복해 보인다’는 착각에 빠져 있다고 했다. 또 다른 전문가는 소셜미디어에 드러나는 모습을 보며 학생들이 ‘나는 가치가 없다’는 생각에 이른다고도 설명했다.

헬리콥터 부모, 잔디깎기 부모 등 지나친 교육열이 부른 비극

자식들이 제 발로 일어설 기회를 빼앗는 ‘헬리콥터 부모’의 지나친 성공중심주의도 한 원인으로 손꼽힌다. 학생 주변을 맴돌며 감독하던 헬리콥터 부모에 이어 이제는 아예 자식 앞에 나타나는 장애물도 미리 제거해주는 ‘잔디 깎기 부모’까지 등장해 그들의 성장을 가로막고 있다는 지적이다.

스탠퍼드대학교 1학년 담당 학장 줄리 리트콧 하임스는 2002년 학장으로 취임한 뒤 부모가 자식과 항상 휴대전화로 통화하거나 수업 등록을 도와주러 직접 학교에 오는가 하며 심지어 교수 면담까지 신청하는 모습을 직접 보기도 했다고 덧붙였다.

혹시 우리 사회에도 ‘펜 페이스’, ‘오리 신드롬’과 같은 문화가 길들어 있는 것은 아닌지, 자신이 ‘헬리콥터 부모’나 ‘잔디 깎기 부모’처럼 자녀의 앞날에 해방 꾼이 되고 있는 것은 아닌지 한 번쯤 되돌아보아야 할 때다. 이에 대한 대책으로 미국 명문대학교 학생들 사이에서 일어나고 있는 ‘쇼윈도 SNS 탈피 운동’에 동참해볼 만도 하다고 전문가들은 입을 모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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