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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우 강수연의 뚝심
배우 강수연의 뚝심
  • 권지혜
  • 승인 2015.09.24 15:13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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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국제영화제 공동집행위원장 수락
 

어느덧 벌써 40대 후반이 된 배우 강수연. 그는 대한민국 여배우의 살아있는 전설이다. 그의 나이 4살 때 아역배우로 데뷔해 지금까지 변함없는 카리스마로 대중을 사로잡는다. “내 인생에서 배우 말고는 없었다”는 강수연은 화려했던 20~30대를 뒤로하고 잔잔하게 자신만의 필모를 그려왔다. 인생의 90퍼센트를 배우라는 이름으로 살아온 강수연이 이제는 부산국제영화제(BIFF) 공동집행위원장으로 나섰다.

8월 6일 오후 5시, 서울 중구 대한상공회의실 대회의실에서 사단법인 부산국제영화제조직위원회가 마련한 기자회견에서 보고 싶던 배우 강수연을 만날 수 있었다. 오랜만에 만난 그는 여전히 아름답고 우아한 여배우였다.

배우라는 이름에 걸맞는 진정한 배우 강수연

아역 출신으로 40년의 경력을 가진 영화배우 강수연. 그녀는 4살 때 데뷔해 숱한 작품을 연기해왔다. 당시 그의 행보는 여배우로서 독보적이었다.
영화 <씨받이>(1987)에서 그를 캐스팅했던 임권택 감독은 인터뷰집 <임권택이 임권택을 말하다>에서 “십팔 세 철없는 애로부터 씨받이로 가서 한 일 년을 그렇게 갇혀서 모진 삶을 살아내야 하는데, 그거를 거기서 일 년 후든 이 년 후든 나이와 관계없이 엄청난 체험의 세계를 살고 났을 때 연기가 저 앞하고 뒤가 전부 커버될 만한 충분한 기량을 가진 배우는 강수연뿐”이었다고 캐스팅 이유를 밝혔었다.
그리고 강수연은 영화 <씨받이>로 베니스영화제에서 여우주연상을 수상하게 된다. 그로부터 2년 후, <아제아제 바라아제>(1989)로 모스크바영화제에서 다시 여우주연상을 수상하며 1980년대에 ‘글로벌 배우’라는 타이틀이 붙여진다. 불과 20대 초반이었던 그가 당시 한국 영화계에서 차지했던 비중은 전부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후 이문열 작가 원작의 <추락하는 것은 날개가 있다>(1990)에서 30만 명에 가까운 관객 몰이를 하게 된다. 당시 관객 30만 명은 실로 어마어마한 숫자였다. 그리고 이어진 멜로와 로맨틱 코미디, 스릴러까지. 그는 모든 장르를 넘나들며 역할을 완벽하게 소화해냈다. 20대 여배우가 보여주기에는 독보적인 연기 스펙트럼이었다.
그 뒤에도 강수연은 21세기 시작과 함께 남녀노소 모든 이에게 그를 각인시켰던 드라마 <여인천하>(2001)로 브라운관을 점령하기에 이른다. 대중에게 ‘여인천하 강수연’은 고유명사 그 자체로 남아 있을 정도다. 그는 다시 2002 SBS 연기대상을 수상하게 된다.
하지만 이후 강수연은 배우로서의 색깔을 달리하게 된다.
영화 <한반도>(2006)와 드라마 <문희>(2007) 이후, 그는 주로 독립영화에만 출연하고 있다. 이는 배우 강수연이 그 나름대로의 필모를 그리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동시대에 활동했던 여배우들이 아직까지 중년배우로 활발하게 활동을 하고 있는데 비해 그의 행보는 놀라우리만치 차분하다. 지난 10여 년간 상업영화에서 그를 거의 만날 수 없었고, 드라마도 마찬가지다.
표정만으로도 스크린 밖의 대중을 뇌쇄시킬 듯한 카리스마와 우아함으로 작품을 ‘배우 강수연’의 것으로 완성시켰던 그. ‘이제나 저제나 볼 수 있을까’ 대중을 목마르게 했던 그가 자신의 작품이 아닌 다양한 영화를 대중에게 알리기 위해 BIFF 공동집행위원장으로 나섰다.

부산국제영화제의 구원투수로 나서다

해마다 가을이면 부산해운대 일대에서는 영화인의 축제인 부산국제영화제가 펼쳐진다. 부산국제영화제는 이제 더 이상 한국 영화인만의 축제가 아닌 전 세계 영화인들이 집중하는 축제가 되었다.
그러나 부산국제영화제는 영화진흥위원회 지원금이 반토막 나는 등 올 초부터 많은 논란 속에서 힘든 시간을 보냈다. ‘부국제의 위기’라는 말이 나올 정도였다.
이런 상황에서 부산국제영화제의 공동집행위원장으로 강수연이 나섰다. 영화제 초창기인 1998년부터 부산국제영화제 집행위원으로 국내외 영화인과 영화제 사이에 다리 역할을 했던 그는 영화제의 위기 앞에 위원장직을 수락했고, 이 위기를 극복하려는 의지를 보였다.
그동안 집행위원장을 맡아달라는 권유에도 계속 그 자리를 고사해왔던 그가 부산국제영화제가 위기를 맞자 집행위원장 자리를 선뜻 수락한 것이다. 항간에서는 하필 영화제가 이렇게 힘들 때 들어왔냐는 말도 들리고 있다.
이에 그는 “제가 계획한 제 인생에서 배우 말고는 없었어요”라며 운을 뗐다.
“영화제가 지금 힘든 상황에 있지만 그것을 넘어서, 국제 영화제를 통해 새로운 작가를 발굴하고, 좋은 영화가 나오는 것에 보탬이 된다면 그 또한 내가 배우로서 보람된 일을 하는 것이라고 생각했어요. ‘영화배우 강수연으로서도 도움이 되는 일이지 않을까’하는 판단 하에 공동 집행위원장 제안에 수락을 했습니다.”오직 배우의 길만을 걸으려 했던 그의 인생에서 집행위원장이라는 자리를 맡게 된 것은 이 일 역시 배우로서의 연장선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힘들 때 들어가는 게 맞다고 생각하고요. 저는 죽을 때까지 배우를 할 사람이기 때문에 나의 인생에도 도움이 되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정치적 논란에서 자유로운 영화제가 될 것

그는 배우 시절부터 보여줬던 강단 있는 모습으로 공동집행위원장으로서의 면모를 보였다. 특히 부산국제영화제에 위기를 안겼던 ‘다이빙벨’과 같은 영화 상영에 대해서도 의견을 말혔다.
“영화를 둘러싼 그런 상황은 앞으로 계속 있을 것입니다. 영화 선정 기준에는 어떤 것도 없어요. 예술적 완성도죠. 그 외에 어떠한 것도 영화 선정하는데 개입되지 않을 것입니다.”
그는 부산국제영화제는 이미 대한민국의 영화제가 아니라고 했다. 아시아 최고의 영화제고, 세계 영화인들이 주목하는 영화제가 되었다는 것이다. 이렇게 부산국제영화제의 위신이 높아지고 20회 만에 세계적으로 인정받는 영화제가 된 것은 “오로지 영화의 완성도와 예술성으로 선정했기 때문”이며 앞으로도 그러한 방침은 변함이 없다고 단호하게 말했다.
“어떤 성향이든, 경쟁적이든, 상업적이든, 인간적이든. 어떤 편향으로도 치우쳐서는 안 된다고 생각해요. 국제영화제가 그렇다면 누가 영화를 보내겠어요. 어떠한 정치 검열, 자국의 법적 조치와 상관없이 영화의 완성도와 예술성을 가지고 판단할 겁니다.”
그의 말 한마디 한마디에서 역시나 배우 강수연의 카리스마가 느껴졌다. 더불어 그의 영화 사랑이 돋보였다. 작품으로 대중 앞에 서있지는 않지만, 어쩌면 지금이 그의 배우 인생의 정점이 아닐까. 앞으로의 그의 행보를 기대해본다.


잘나가던 부산국제영화제 BIFF 왜 위기에 처했나

BIFF의 위기는 지난해 세월호 인양을 다룬 다큐멘터리 ‘다이빙벨’ 상영 이후 부산시와 갈등을 빚으면서 시작됐다. 이로 인해 이용관 집행위원장이 사퇴의 압박을 받았고, 이에 이 위원장은 사퇴를 불사하겠다는 의지를 보이며 영화제의 위신을 살리려 애썼다.
설상가상으로 영화진흥위원회가 부산국제영화제에 매년 지원해온 지원금이 지난해에 비해 반토막 났으며, 지난 5월 칸 국제영화제에서는 공동으로 주최하던 ‘한국 영화의 밤’을 7년 만에 영화진흥위원회 홀로 열었다. 그들의 골이 깊은 것을 확인하는 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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