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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과 정치를 말하는 '어셈블리'
사람과 정치를 말하는 '어셈블리'
  • 이윤지
  • 승인 2015.09.24 15: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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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라마, 정치를 고찰하다
▲ 사진=KBS

해고당한 노동자들의 농성이 울리는 화면. 지나치게 현실적이라 참담한 이야기 <어셈블리>. 속 시원하게 해 주는 히어로나 화려한 재벌들의 사랑이야기 대신 이런 드라마 어떨까. 우리가 정치를 잊어서는 안되는 이유를 내세우는 특별한 기획이다. 정재영, 송윤아 주연 휴먼전치드라마 <어셈블리>.

<어셈블리>는 지난해 대하드라마 <정도전> 신드롬을 일으킨 정현민 작가의 작품으로 기획 단계부터 큰 관심을 받아 왔다. 특히 정작가는 과거 국회의원 보좌관 경력을 갖고 있어 극의 리얼리티를 더욱 높이며 현실 정치를 더욱 생동감 있게 보여주고 있다. 한국형 정치드라마는 그 자체로 새로운 도전이다. 정치드라마에는 동시대 시청자들이 바라는 흐름과 정치적 이상이 담겨야 한다. 현실 정치를 직접 다루는 데에는 큰 부담이 따르는 것이 사실. <어셈블리>는 과감하게 2015년의 한국정치를 말한다.

‘정치’ 권하는 드라마

정치의 본산인 국회를 배경으로 한 드라마 <어셈블리>는 용접공 출신 국회의원과 의원 보좌관 등 다양한 인물들의 애환을 그린다. 수천년 전의 정치를 다룬 역사물은 흔했지만 현실정치를 직접적으로 이야기하는 ‘장’은 꽤 신선하기까지 하다.

'어셈블리'는 의회나 입법기관을 의미하는 단어로 우리나라 국회는 내셔널 어셈블리(National Assembly)로 표기된다. 이 드라마에는 뉴스에서는 볼 수 없었던 살아있는 정치 에피소드와 정치하는 사람들의 이면이 리얼하게 담겨 있다.

도전적이고 실험적인 정치 드라마인 만큼, <어셈블리>는 동시대의 문제의식을 제대로 꼬집어내겠다는 다짐을 처음부터 강렬하게 내비쳤다. 소통은 얼어붙고 희망은 찾아볼 수 없는 지금의 정치 행태를 흥미로운 내러티브 속에서 신랄하게 꼬집으며 공감을 사고 있다.

10년 간 보좌관으로 일했던 정현민 작가는 우리로서는 알 수 없었던 국회의 이면을 상세하게 해부해내고 날카롭게 풍자하며 시대를 관통하는 명대사로 가슴을 뚫어준다. 사실적인 무게감과 함께 드라마틱한 감동과 재미를 동시에 잡아야 하는, 국회를 배경으로 두고 정치판의 실질을 그려내는 만큼 고증 역시 철저하다. 관련 전문가들의 감수를 받아 만들어낸 에피소드들은 두루뭉술하게 주제를 훑는 것이 아니라 사실감을 기본으로 해 생생하고 또렷하게 의식을 드러낸다. 이 드라마의 관계자는 “<어셈블리>는 정치물의 기본적인 묘미와 쾌감은 살리되, 대중적인 드라마가 가져야 할 즐거움과 재미라는 덕목도 놓치지 않고 있다”며 “정치인들의 진검승부를 바탕으로 유머와 위트를 놓치지 않으며 긴장과 이완을 반복하는 방식으로 금세 시청자들을 정치드라마의 매력에 푹 빠져들게 할 것”이라고 자신감을 내비친 바 있다. 그간 역사물을 비롯한 정치 드라마가 암투와 배신이라는 장치를 반복해 왔다면 <어셈블리>는 정치판에 있는 사람들의 희로애락을 모두 꺼내 보여줌으로써 다양한 자문을 유도한다.

여기, 속 시원했던 외침들을 잠시 짚고 간다. <어셈블리>에는 해고에 울부짖고 현실에 좌절하는 안타까운 몸부림이 있다. 극 중 법정에 선 주인공 진상필은 대한민국 법을 ‘호떡’에 비유하며 “호떡 구울 때도 한번만 뒤집지 두 번은 안 뒤집거든요! 대한민국 법이 호떡만도 못 합니까”, “법을 개떡 같이 만드니까 판사들이 호떡 같이 뒤집는 겁니다”라는 기막힌 비유를 했다. “나 공부하라고 국민들이 월급 주는 거 아니잖아요. 당장 뭐라두 하라구 월급 주는 겁니다”라는 말 역시 실제 국민 정서를 대변하며 게으름 피우는 국회의원들을 날카롭게 꼬집고 있다.

“무슨 당요? 봉숭아 학당요 맹구세요?”, “내가 친청계의 허수아비면 당신은 반청계의 아바타냐? 영화 아바타 보셨어요? 못봤겠지 아주 접대받고 쳐 노시느라고” 같은 말로 당과 계파의 이익만을 쫓는 비상적인 정치행태를 적나라하게 폭로하기도 했다. 국민만을 위해 싸우는 ‘진상필식 정치’를 본격적으로 시작한 그는 ‘진심’이라는 키워드로 국민을 유쾌하게 하는 행보를 보여주고 있다.

어셈블리, 정치하는 사람들

배우 정재영이 분하는 진상필은 조선소 해고노동자 신분에서 일약 국회의원이 된 인물이다. 정재영은 거칠고 투박한 카리스마에 올바른 정치가의 품격을 더한 캐릭터로 강렬한 존재감을 선보이고 있다. 데뷔 20년 만. 드라마는 처음인 정재영은 “정치물임에도 사람냄새가 풀풀 나는 시놉시스가 너무나 흥미로웠다”고 소감을 밝힌 바 있다. 그는 “정현민 작가와 황인혁 감독을 직접 만나보고서 더욱 신뢰가 생겼다"고 최종 결정의 이유를 밝혔으며 “진상필은 단순 무식하지만 의외로 속이 깊은 인물”이라며 캐릭터에 대한 남다른 애정을 내비치기도 했다. 송윤아는 초보 국회의원 진상필을 돕는 보좌관 최인경 역을 맡았다. 그는 뛰어난 정무감각과 까칠한 카리스마로 무장한 국회 최고의 테크니션 보좌관. 송윤아 역시 “첫 정치극 도전인 만큼 걱정도 앞서지만 그 만큼 많이 설렌다. 이번 작품을 통해 저의 또 다른 면을 많이 보여드릴 수 있어 여러모로 기대가 크다”고 전했다. “감독님과 작가님의 훌륭한 전작에 대한 신뢰감과 함께 부담감도 있다”는 소견을 말하기도. 남자들의 세계라 일컬어져 왔던 정치판에서 고군분투해왔던 연륜이 고스란히 묻은 고집스럽고 강단 있는 표정을 띠고 있는 송윤아는 과연 ‘철의 여인’을 떠올리게 한다.

<어셈블리>는 해고노동자의 복직을 위해 싸우는 진상필의 모습을 아주 리얼하게 선보였다. 후줄근하고 허름한 차림새에 망연자실 힘없이 앉아있는 그의 모습에서는 해고노동자들의 소리 없는 처절한 고통이 느껴진다. 축 처진 어깨와 초점 잃은 눈빛에는 결국 사회에서도 가정에서도 버티지 못한 채 구석에 몰려버린 가장들의 애환이 서려있다.

용접봉으로 얼음을 녹이고 있는 진상필, 얼음 속에서 국회의원 배지를 발견하는 그의 모습으로 ‘얼어붙은 국회를 녹인다’는 상징을 보여준다. 희망과 소통이 사라진 국회를 변화시키리라는 예고다. 그간 정치드라마는 암투와 배신을 반복해 왔다. <어셈블리>는 자세히 보면 우리와 별반 다를 바 없는 정치판의 희노애락을 함께 보여주고 있다.

진상필과 대립 관계에 있는 백도현(장현성 분)은 지역구 숙원사업을 고리로 경제시 입성을 기정사실화 하고 있고, 진상필은 여론의 뭇매를 맞을 것을 알면서도 신항만 건설의 허구성과 부당함을 지적하여 정치적 위기를 맞는다. 경제성 없는 신항만 건설을 추진하려는 장현성과 이에 부화뇌동하는 정부를 싸잡아 비판하며 신항만 건설을 공식적으로 반대하고 나선 진상필에 대한 지역여론은 급격히 악화된다. 이 같은 상황에서 국회 최고의 테크니션 송윤아가 이전의 형식적인 보좌관에서 서로의 진심을 확인한 동지적 관계로 합류함으로써 정재영의 ‘진심’ 정치가 시너지를 발휘해 기대를 높였다. 초선의원 진상필과 사무총장 백도현 의 본격적인 정치맞대결이 예고되며 긴장감은 상승된다.

불꽃 튀는 대결, 선거

끊이지 않는 갈등과 대립, 파란만장한 국회 이야기를 따라가다 보면 우리가 알던 ‘국회’, ‘정치’가 지닌 정형화된 감각들로부터 서서히 벗어나 색다른 흥미로 넘어가는 시점이 느껴진다. 모든 상황을 자신의 계략에 이용하며 자신만의 터를 잡기 위한 수순을 밟는 치졸한 정치인, 공천에 목줄 잡혀 사는 허수아비같은 인간들이 얽힌 이야기는 그야말로 드라마다. 주인공 진상필은 불의와 구태에 불뚝심으로 맞서며 본격적인 표심잡기에 나섰다. 베테랑 보좌관과 함께 치밀한 전략을 세우고 흥미진진한 라이벌전을 펼치는 장면은 드라마의 백미 중 하나였다. 백도현과 진상필은 출신과 배경, 학력과 경력 등에서 극과 극의 차이가 지지만 보좌관인 최인경이 전면에 나서면서 승부는 예측하기 힘들어 진다. 드라마 관계자는 이 구도 속에서 진상필과 최인경이 어떤 방법으로 승리하는지, 정치가 가능성의 예술이 아닌 마술이 될 수도 있음을 보여줄 것이라고 예고했다.

진상필은 최인경의 조언에 따라 지역구 밑바닥 민심을 잡기 위해 나선다. 반면 백도현은 전직 해당 시 시장이었던 자신의 아버지에게 도움을 요청하고, 지역에 팬클럽 결성을 배후조정 하는 등 광폭행보를 펼친다. 백도현에게 정치적으로 속아 놀아났다는 것을 알게 된 여타 세력 박춘섭의 진상필에 대한 측면지원이 본격적으로 시작되고 무엇보다 이용당했다는 사실을 깨달은 진상필 본인의 분노가 이 싸움의 가장 큰 원동력이 된다. 정치판에 늘 있는 따분한 갈등이겠으나 이 하나의 사건을 촘촘히 짜인 이야기로 면면히 보게 된 우리로선 ‘정치’의 스릴을 새로이 느끼는 계기를 가지는 셈이다.

실제 국회 본관 로비와 회의장, 국회 도서관 등이 고스란히 보여지고 현장감 넘치는 장소들이 매회 전개에 몰입도와 깊이감을 더해간다. 특히 의원회관이 국회의장의 허가를 얻어 최초로 공개됐다. 회의장이 모여있는 본관이 일반인도 견학할 수 있는 열린 공간인데 반해 의원회관은 실제 국회의원들의 집무공간인 300개의 사무실이 위치해 있는 독립적인 특수공간으로 출입이 통제되어 있다고. 더군다나 그 내부는 그 동안 드라마나 영화에서 촬영된 적이 없는 내밀함으로 인해 더욱 시청자들의 호기심을 자극했다.

시대를 꿰뚫는 한국형 정치 드라마

난해한 정치, 경제 용어들은 극중 용접공에서 하루아침에 국회의원이 된 진상필에게는 외계어나 다름없다. 잘못된 정치 관행과 이해 못할 야합도 거칠지만 정직하게 땀 흘리며 살아온 그에게는 낯선 풍경일 뿐이었다. 진상필이 맨몸으로 깨지고 구르며 익히는 실전 정치의 과정 통해 낯설고 어려운 정치 이야기에 우리는 함께 한 발 더 다가설 수 있다. 세계에 한 발짝 더 가깝게 다가설 수 있을 것이다. 정치가 우리 일상에 필수적인 개념이라는 사실 역시 빠르게 상기될 것으로 예상된다. <어셈블리>는 대놓고 꾸며진, 자극적인 소재로 점철된 답답함을 깨고 페이소스와 리얼리티로 무장하고 있다.

가진 자들의 횡포에 짓밟힌 노동자들의 신음에 귀 기울이고 홀로 정의를 외치기에는 턱없이 힘이 모자란 정의로운 정치인들의 깊은 한숨을 들여다보며 현실을 꼼꼼히 짚어가는 <어셈블리>는 분명 어떤 울림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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