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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구나 할 말이 많다-‘토크’의 새 시대
누구나 할 말이 많다-‘토크’의 새 시대
  • 이윤지
  • 승인 2015.09.24 15:38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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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능의 즐거움
▲ 사진=tvN

요즘엔 어디서든 뉴스와 음악만큼이나, 누군가의 사적인 또는 구미당기는 ‘썰’을 찾아들을 수 있다. TV 역시 단독샷보다 왁자지껄 불러다 모은 프레임 안에서 온갖 이야기들을 나누는 화면을 자주 잡는다. 수다와 폭로, 시시껄렁한 농담이 주는 짜릿함이란.

김구라의 핀잔, 김제동의 공감, 신동엽의 음담

‘방송 중 진담’. 우리를 웃게 하는 반가운 트렌드다. ‘여러분, 반갑습니다. 늘 사랑해주셔서 정말 감사하고요, 여러분을 위해…’로 시작하는 경직된 얼굴보다 아주 솔직한, 피곤한 얼굴로 ‘아 지금 심경이요? 이 녹화가 좀 빨리 끝나면 참 좋겠다, 그렇죠 뭐’ 내뱉어 버리는 이경규의 말법이 훨씬 시원하고 재밌다. TV 속 ‘썰’들이 진지한 키워드를 놓치지 않으면서도 별 시답잖은 이야기들을 웃음거리로 던져주는 데 도가 텄다.

난상토론이 이렇게 재미있을 줄이야. 불과 몇 년 안 됐다. 둥그렇게 혹은 길게 펼친 테이블에 자리 차지하고 앉아 ‘자 오늘은 이런 주제로 이야기를 나눠볼까요’ 로 시작하는 프로그램이 흥행하게 된 건. 출연진이 딱히 튀지도 않고 주제들은 프로그램 성격들에 따라 다양하다. 정치, 사회, 문화, 연예가 두루 올라온다. 개그맨, 아이돌 스타들, 아나운서, 스포츠 스타까지 한 자리 차지해 실랑이를 벌이기도 하면서 한바탕 토론하고 정체성을 찾아간다.
술술 정확한 문장으로 말을 잘 하는 사람이 이 판을 재밌게 만드는 것이 아니다. 툭 튀어나오는 생뚱스런 반응, 무슨 얘긴지 잘 못 알아듣는 게스트의 어리바리함, 평소에 방송에서 보여주지 못했던 모습으로 나름의 의견을 조곤조곤 피력하는 의외의 아이돌 그룹의 멤버. 이 사람 저 사람의 지극히 평범한 모습들이 걸러지지 않은 채 어우러지면서 조화를 이룬다.

일찍이 ‘말’로 승부를 본 방송인 김구라는 이 필드에선 선생 급이다. 핀잔과 무시를 섞는데도 무리 없이 분량을 소화하는 완급 조절이 가히 볼 만하다. 신동엽은 꾸준하게 농도 짙은 음담패설로 사랑받는다. <마녀사냥>, <안녕하세요> 같은 시청자들의 사연을 다루는 프로그램을 주로 맡고 있는 지금, 그가 긴 전성기를 누리는 까닭은 뚜렷한 캐릭터와 사람에 대한 진정성을 균형 있게 갖추고 있기 때문이라고 하겠다.
‘토크계의 신’들이 무게중심을 잡고 보니 어수룩한 말솜씨여도 이 얘기 저 얘기가 돌아가는 와중에 의외의 신선함과 재밋거리들이 무수히 생성된다. 수다와 토론도 간접 경험이 되는 날이 왔나, 씁쓸함이 들기도 하지만 분명한 건 그 대화들에 생생하게 공감하는 기분이 과히 나쁘지 않다는 사실. 문득 ‘아 나도, 그런 적 있었는데 참!’ 하는 순간들 말이다.

다양한 얼굴들의 토크 캠프

토크 프로그램 속 일반인들의 활약도 짚을 만하다. 김제동의 토크콘서트 형식을 빌어 리뉴얼한 <힐링캠프> 새 시즌은 ‘힐링캠프 500인’이라는 이름으로 정말 500명의 방청객이 초대손님에게 질문하고 대화한다. 한혜진이나 성유리, 이경규 대신 일반인 500명을 데리고 무슨 재미를 이끌 것인가 싶었지만 김제동이 이끄는 힐링캠프는 더욱 활기찬 분위기로 다양한 이야기들을 끄집어내고 있다. 그도 그럴 것이 이제 ‘말 할 줄 모르는 사람’이 점점 줄어가니, 마이크 앞에서 주저하기는커녕 발언 시간이 모자라 아쉬운 얼굴들이다.

<김숙, 송은이의 비밀보장>은 요즘 가장 핫한 팟캐스트. 온갖 잡다한 주제들을 놓고 ‘결정 장애자들’을 위해 상담해 준다. 매뉴얼도 허술하고 내용은 어딘가 어설프다. 그러나 나이가 꽤 든 재밌는 언니들, 김숙과 송은이의 말장난은 금세 여럿 사로잡았다. 팟캐스트 1위로 우뚝 선 이들의 독특한 방송은 내내 낄낄대며 허송세월하지만 묘하게 속이 시원하고 웃음을 뿜은 덕에 속이 확 풀린다.
소소한 결정을 의뢰하고 고민을 털어놓는 사연자들의 말 또한 기폭제다. 오랜 친구들 모여 늘 하던 얘기 또 반복하고 치부를 펼쳐가며 노는 일이 늘 재미있듯, 수다와 토론은 프레임 안에서 산뜻한 활력으로 우리를 즐겁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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