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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긋지긋과 애틋 사이 <부탁해요 엄마>
지긋지긋과 애틋 사이 <부탁해요 엄마>
  • 이윤지
  • 승인 2015.10.27 18:11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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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들 대부분은 앙숙 모녀다. 징글징글하면서도 짠한 모녀간 애증의 이야기를 그린 드라마 <부탁해요, 엄마>는 그래서 특별한 공감 포인트를 지닌다. 엄마처럼 살기 싫지만 삶 속에서 늘 엄마의 모습을 빼닮게 되는 딸들 또는 엄마들의 역사.
 

▲ 사진=KBS

<엄마를 부탁해>와 <부탁해요, 엄마>는 분명 많이 다르지만 중요한 건 ‘엄마’다. 엄마라는 말을 생각해 보면 머릿속은 바쁘게 복잡해진다. 눈물 먼저 짜지는 않지만 모두의 사정이 다른 끝에도 결국은 눈이 빨갛게 변해버리는 그런 말인 것이다, ‘엄마’는. 엄마로부터 태어난 사람들의 세상이니 드라마 속 세상도 늘 엄마 천지다. <부탁해요, 엄마>는 그 ‘엄마’를 오랜만에 유심히 관찰하는 드라마다.

엄마와 딸이라는 숙명
<부탁해요, 엄마>에서 딸 진애 역을 맡은 배우 유진은 “대본을 읽고 정말 서운한 마음을 느꼈다”고 고백했다. 별 사건 없이도 티격태격하기 일쑤인 딸과 엄마 사이에 열등감과 허세로 살아가는 오빠, 아들만 추켜세우는 엄마의 고집이 있다. 언뜻 옛날 드라마 <아들과 딸>이 슬몃 지나가기도 한다.
<부탁해요, 엄마>는 첫 회부터 차별대우의 극치를 보여주는 밉상 엄마의 말법으로 강렬한 인상을 남겼다. 따다다다, 말대답 하는 딸보다 더 눈에 들어오는 퉁명스럽고 차갑고 딸만 몰아세우는 엄마. ‘맞아. 정말 엄마들은 왜 저럴까’ 하는 마음의 소리들이 여기저기서 들리는 것 같다.
사랑하는 마음을 늘 잔소리로 출력해내는 엄마의 속사정은 오죽할까 싶기도 하다. 엄마와 딸을 연기하는 배우들, 엄마와 딸의 대화를 써내는 작가 모두에게 이것은 어렵지 않은 임무일 것 같다. 신기할 만큼 세상의 모든 엄마와 딸의 모습은 서로 닮아있지 않던가.
진애와 엄마는 그야말로 ‘환상의 앙숙’이다. 집안의 모든 문제를 해결해도 '고맙다'라는 말 한마디 듣기 어렵고, 엄마는 늘 오빠 형규만 종교처럼 떠받든다. 오죽하면 '엄마는 날 괴롭히기 위해 일부러 낳은 건 아닐까'라고 생각할 정도다. 매번 힘든 시간을 겪던 진애는 다 버리고 떠나기로 결심한다.  하지만 끝내 완벽하게 모질게 돌아서지 못하고 악다구니 쓰는 엄마의 쓸쓸함을 모른 체하지 못한다. 엄마 역시 습관 같은 투박한 말이 화살이 된다는 사실을 모르지 않지만 그것을 바꿔내는 방법 역시 알 수 없어 헤매고 둘은 가족 중 어떤 관계들보다 악화돼 있는 듯 보인다.
명품 수트와 외제차를 타고 다니지만, 집안의 어려운 일은 잘도 외면해버리는 장남 형규에게 가족 중 그 누구도 불만을 내뱉지 못하는 상황. <부탁해요, 엄마>는 엄마와 딸 사이에 이 같은 불편한 과제를 던져 갈등을 부각시킨다. 궂은일부터 금전적인 문제까지 모두 떠맡아 해 온 장남과 다를 바 없는 진애는 늘 울고 불며 싸워야 한다. 돌아오는 건 장남 이형규(오민석 분)밖에 모르는 엄마 산옥의 앞 뒤 없는 주장과 심통 어린 반응들뿐이다.
그렇다고 해서 산옥에게 진애가 친딸이 아니라거나 진심으로 진애를 미워하는 마음인 것은 아니다. 아이러니컬하지만 다시 한 번, 세상의 모든 모녀들은 이 사실을 피부로 느낄 수 있다.

엄마는 도대체 왜 vs 저런 걸 딸이라고
‘세상에 다시없는 앙숙 모녀’. 징글징글하면서도 짠한 모녀간 애증의 이야기를 그린 <부탁해요, 엄마>의 엄마는 눈 뜨자마자 잠이 들 때까지 입에 '아들'을 달고 사는 엄마와 오빠에게 밀려 엄마의 사랑을 받지 못하는 딸 각자의 고군분투를 자세히도 보여준다. 
진애를 연기하게 된, 얼마 전 딸을 출산한 배우 유진은 “애증이라는 표현이 어울릴 정도로 수없는 갈등을 반복하는 모녀 관계는 내 입장으로서는 아주 익숙하지는 않기 때문에 더 매력을 느낀다”고 말하기도 했다. 진애는 모든 문제에 직접 총대를 메야 하는 성격이다. 툭하면 금전 사고를 비롯한 각종 사고를 저지르는 진애의 아빠 이동출(김갑수 분)이 있다.
그러나 명문대를 졸업하고 이혼전문변호사로 일하고 있는, 집안의 자랑인 장남 이형규(오민석)는 사고가 터져도 수습할 생각을 하지 않는다. 그러니 진애가 나설 수밖에 방도가 없다. 찔금찔금 모아온 돈으로 아버지 빚 갚고, 자질구레한 사고도 정리한다. 항상 가족들의 뒤치닥거리 하느라 딸 혼자 바쁘다.
엄마 임산옥(고두심 분)은 고된 시집살이와 철없는 남편 때문에 긴 시간을 지나오면서 억척 여전사가 됐다. 여느 자식들이 다 그렇듯 삶의 낙이기도 하지만 속을 뒤집기도 하는 3남매 형규와 진애, 형순은 세월이 지나도 그냥 놔버릴 수는 없는 아직 어린 애들 같다.
고두심은 딸 유진과 앙숙모녀인 만큼 연기가 아니라 진심을 다해 싸울 것을 예고한 바 있다. “(딸이) 미운 것이 아니라 나도 모르게 아들 이름이 습관처럼 나간다”며 엄마의 입장을 해명하는 한 편 “그런 것 때문에 투닥거리는데 자기도 시집가서 살아보면 제 속을 알 것”이라고 덧붙였다. 정말 어려운 숙제, 엄마가 딸-딸이 엄마를 알아가는 일이 설마 그렇게 쉽게 풀어지겠냐마는.
드라마 티저 예고편은 큰 아들 밖에 모르는 엄마 고두심의 모습과 그런 엄마의 모습에 상처 받은 딸, 그래서 더욱 악을 쓰는 딸 유진의 모습을 압축해 담았다. <부탁해요, 엄마>의 백미는 과연 두 사람이 ‘붙을’ 때다. 좋은 말이라곤 오가는 적 없다.
“엄마는 왜 맨날 오빠만 감싸고 들고 나한텐 다 내놓고 다 해내래!”
조금도 가라앉힐 텀을 두지 않은 채 대들고, 엄마는 “지랄맞은 성질, 누가 너한테 나서래? 애미가 돼서는 딸년한테 이것저것 상의할 수도 없냐?”
타당하지 않은 근거를 대며 억울하다는 표현으로 맞받아친다. 크고 작은 일들 속에서 실제 엄마와 딸이 자주 겪는 패턴이다. 이를 악물고 돌아서고, 모진 말을 했던 것이 못내 잊혀지지 않아 쉬이 잠을 못 이루는 밤. ‘엄마 미안해’, ‘너한테 말이 심했어’, ‘진심은 그렇지 않아’ 같은 혼잣말 같은 것이 덧붙여지지도 않지만 <부탁해요, 엄마>의 엄마와 딸이 각자의 방에서 생각에 잠기는 말없는 시간은 가슴을 조금씩 뜨겁게, 괜시리 아프게 만든다.
서로의 치부를 누구보다 잘 알고 있으면서도 직접 어루만져주기 민망하고 뱉었던 말들이 어떻게 꽂혔을지 짐짓 깊게 짐작하면서도 되돌리는 방법은 모르는, 많이 사랑하지만 내보일 수 없는 엄마와 딸은 짧지 않은 인생의 대부분을 싸우거나 침묵하며 지낸다. 갈등이 최고조에 이른 시점부터 보여주는 <부탁해요, 엄마>의 의미는 우리가 이 같은 시간을 돌아볼 수 있도록 한다는 데 있다.

그래도 사랑, 모녀
갈등의 중심, 엄마에게 사랑받는 장남 이형규는 허약하게 태어난, 순옥에게 유난히 아픈 손가락이자 귀하디귀한 장남이다. 우여곡절 끝에 변호사가 됐지만 명품 옷에 외제차를 끌고 다니며 좋은 부모 밑이 아니라는 콤플렉스를 어설프게 덮어가며 산다. 없는 집에서, 전폭적으로 지지만 받았을 뿐 가족들이 어려울 때 도움 한 번 제대로 준 적 없다보니 자신보다 더 장남 같은 진애에게 자격지심을 처리하지 못하고 방황한다.
진애는 자기 밥그릇은 알아서 챙기는 기특한 장녀다. 말은 않지만 산옥에겐 물가에 내놓더라도 전혀 걱정 없는 딸. 그렇다보니 어려울 땐 손 내밀고, 만나면 온갖 거친 말로 스트레스를 고스란히 풀게 된다. 싸움은 끝나지 않고 딸은 점점 전투적으로 “엄마처럼 살지 않겠다”고 결심한다.
‘모녀’에 대해서 당사자이기도 한 우리가 갖는 인상은 어떤가. 어련히 서로 이해해야 하는 관계, 누구든 별다를 것 없이 비슷한 얼굴들. 아직도 이만큼일까. 그저 매일매일의 소동일 뿐이라고 여기기엔 엄마와 딸이 겪는 갈등의 악순환은 사실 웃을 일 만은 아닌 것 같다. 짜증과 공격이 끝날 줄 모르는 상황에서 ‘거친 말 속 애정이 분명히 있다’는 메시지가 늘 타당한 것은 아닐테니까.
더딜지라도 관계는 새로운 장을 맞게 될 것이고 실제에서 역시 언젠가 그런 날이 오게되리라는 꿈을 꾸고 있다는 것을 보는 이들은 어렴풋이 깨닫게 될 것이다. 
돈 때문에, 늘 미안함 없이 손 벌리면서도 대놓고 구박하고 준 것 말고 또 요구하는 엄마와 어김없이 한바탕 한 진애는 오빠 형규에게 거금을 마련해주기 위해 전부와도 같은 가게까지 처분해버리는 모습에 기가 찬다. 황당한 웃음을 웃어보기도 하고 눈물을 애써 삼켜보기도 하면서 상황을 넘기고 나자 문득 시어머니와 남편, 자식들에 치여 늘 잠이 부족했던 엄마의 젊은 시절을 떠올린다.
지금의 엄마의 모습이 되기까지의 시간들을 딸이 어느 때고 되짚어볼 수 있다는 것은 참 다행한 일이다. 물론 그 때를 기억하고 있다고 해서 현재의 엄마를 전부 납득할 수 있는 것은 아니지만 단지 그렇게 해 봄으로써 갈등을 잠시 밀쳐낼 수 있으며 답을 얻지는 못하더라도 엄마의 마음에 조금 더 가까이 가 볼 수 있을 것이다.
끔찍하게도 싫은 예감, 나도 엄마처럼 될 것 같다는 불안과 영원히 화해할 수 없을 것 같은 숙명의 그림자. 너무 가깝다 보니 외려 그런 불안은 싱겁게도 그리 어둡거나 끔찍하기보다 일상이 돼 있다. 어쨌든 사랑으로 귀결되리라는 것을 엄마와 딸은 본능적으로 알고 있는 걸까.

<부탁해요, 엄마>를 부탁해
이건준 PD는 ‘<부탁해요, 엄마>는 엄마에 대한 포커싱을 맞춰 가족극을 만들어보자는 생각 출발한 드라마’라고 밝혔다. 배우 고두심은 “아들을 선호하는 분위기가 되다 보니까 딸과는 서로 부딪히고 하는데, 사실 그 진한 애정은 밑바닥에 깔려 있다”며 엄마의 속마음을 전했다. 딸 이진애와의 싸움에 대해 그는 “사랑으로 싸울 것”을 예고하기도 했다.
<부탁해요, 엄마>는 분명 엄마와 딸이 같이 보기 민망한 드라마다. 서로의 모습을 확인하면서 울고 웃을 수도 있겠지만 어느 때에는 분명 부지불식간 품었던 원망과 미안함이 동시에 솟아 서로의 얼굴을 보기 어려울지도 모른다. 그래서 더, 이 드라마는 참신하다.
엄마를 중심으로 엄마와 딸, 엄마와 아들, 오빠와 동생의 관계성을 다각도로 다루며 현실적인 순간들을 잘 잡아내고 있기 때문에. 결국 딸도 엄마가 된다. 엄마에게 딸이란 무엇인지 또 딸에게 엄마는 어떤 의미인지, 쉽지 않은 질문 속에서 묻어뒀던 고운 말들을 찾아내게 하는 건강한 드라마. 어쨌든 보다보면 가장 기다려지는 순간은 산옥과 진애의 티격태격하는 모습이다. 모녀 간 한판승부 레파토리가 이렇게나 딱딱 들어맞을 수 있나, 감동의 카타르시스라고나 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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