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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베테랑> 속 유아인에게 성립하는 범죄는?
영화 <베테랑> 속 유아인에게 성립하는 범죄는?
  • 송혜란
  • 승인 2015.10.28 16:5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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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활 속 법률

영화 <베테랑>이 천만관객을 돌파했다. 기본적인 줄거리와 긴장감 있는 연출, 배우들의 연기 모두 훌륭했다고 판단된다. 그러나 재벌기업의 갑질을 비판하는 목소리가 작지 않다. ‘힘없는 근로자를 철저히 짓밟은 재벌에 대한 응징’이라는 소재가 이 영화의 인기에 한 몫 한 것은 아닐까.

임금체불을 당한 트럭기사 ‘배기사(정웅인)’는 적반하장으로 나오는 현장책임자의 태도에 분노해 그룹 본사를 찾아간다. 이를 본 재벌 3세 ‘조태오(유아인)’는 배기사의 임금체불문제를 해결해 주기는커녕 오히려 그의 아들이 보는 앞에서 현장책임자와 권투시합을 강요하는 굴욕을 준다. 쓸쓸히 돌아가던 배기사는 자존심이 상했는지 아들을 먼저 돌려보낸 후 다시 조태오를 찾아가 재차 항의한다. 그러한 그를 더욱 구타하는 조태오. 그의 폭행에 넘어진 배기사는 기어코 테이블 모서리에 머리를 부딪쳐 꼼짝도 못하는 상황에 처하고 만다. 이에 조태오의 부하직원들은 배기사가 자살한 것으로 위장하기 위해 고층난간에서 그를 추락시키는 만행을 저지르는데…. 여기서 주목! 배기사를 죽인 조태오 일당에게는 무슨 범죄가 성립할까? 이를 형법적으로 판단하기 위해서는 배기사가 정확히 어떠한 경위로 죽게 되었는지를 살펴볼 필요가 있다.

1. 조태오에게 맞아 사망한 경우
조태오가 아무리 격투기를 수련했다지만 손발로 몇 대 타격한 정도로 살인의 고의를 인정하기는 어렵다. 조태오는 단지 폭행의 고의만을 가지고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이에 배기사가 조태오에게 맞아 테이블 모서리에 머리를 부딪쳐 사망한 경우라면 그에게는 단지 폭행치사죄가 성립할 뿐이다.

2. 배기사가 사망한 것으로 오인하고 추락사시킨 경우
조태오 일당이 배기사가 이미 죽은 것으로 착각하고 단지 자살로 위장하기 위해 추락시켰으나, 실제 사망은 추락시킨 행위에 의해 발생한 경우다. 이 때 배기사를 난간에서 추락시킨 행위가 사망의 직접적인 원인이 되었으므로 그의 일당에게 살인죄가 성립하는 것은 아닌지 의문이 든다. 그러나 배기사를 난간에서 추락시킨 행위는 증거인멸의 고의만 있을 뿐 살인의 고의는 없으므로 살인죄는 성립하지 않는다. 즉, 배기사를 때려 기절시킨 조태오에게는 폭행치상죄, 이미 죽은 줄 알고 추락시켜 사망케 한 그의 일당에게는 과실치상죄가 성립한다.

3. 배기사의 생사여부는 모른 채 사건을 은폐하기 위해 추락시킨 경우
배기사가 테이블 모서리에 머리를 부딪쳐 의식이 없는 상황에서 그가 죽었는지 살았는지 알 수는 없지만 두 경우 모두 조태오에게 곤란한 상황을 가져오므로 일단 자살로 위장한 경우다. 위 2항의 경우와 다른 점은 배기사가 죽었다는 적극적인 착오가 없다는 것이다. 분명하진 않지만 영화에선 아마 이 경우를 상정한 것으로 보인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이러한 상황이라면 조태오 일당에게는 살인죄가 성립한다. 죽었는지 살았는지 몰랐다는 것은 배기사가 살아있을 가능성도 인식했다는 것이기 때문이다. 형법상 ‘미필적 고의’라는 용어가 있다. 미필적 고의란 결과를 적극적으로 의욕하지는 않았지만 결과의 발생을 용인하거나 감수하는 심리상태를 말한다. 조태오 일당이 배기사의 생사여부에 대한 판단을 보류한 상태에서 후에 있을 곤란한 상황을 피하기 위해 일단 자살로 위장한 경우라면, 적극적으로 살인을 의욕한 것은 아니지만 난간에서 추락시키는 행위로 인해 아직 살아있는 배기사가 사망할 수도 있다는 가능성을 심리적으로 용인 내지 감수한 것이라 볼 수 있다. 따라서 영화 속 수사기관은 배기사의 사명 경위가 이 경우에 해당하는지 아닌지에 중점을 두고 조사할 것이다.

 

 

 

 

 

 

글 강신범 변호사

2004년 제46회 사법시험에 합격. 2005년 2월 서울대학교 노어노문학과를 졸업. 대한법률구조공단, 서울북부지방법원 소속 국선전담변호사 등을 거치면서 1천500건 이상의 소송을 수행하였고, 현재는 법무법인 청람에서 구성원변호사로 재직 중.
문의 02-596-9002  이메일 volkisadad@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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