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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홍준의 여덟 번째 <나의 문화유산 답사기>
유홍준의 여덟 번째 <나의 문화유산 답사기>
  • 권지혜
  • 승인 2015.10.30 17:14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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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무 가까이 있어 오히려 모르는 우리의 풍광”
▲ 사진=매거진플러스DB

지난 9월 15일 저녁 7시 30분, 백범김구기념관 컨벤션홀에서 유홍준 교수의 <나의 문화유산 답사기-남한강 편> 출간 기념 강연회가 열렸다. <나의 문화유산 답사기>의 다음 편만을 학수고대한 많은 팬이 강연 회장을 가득 채웠다. 유홍준 교수가 강단에 서자 일제히 그의 말에 집중하기 시작했다. 유 교수의 유쾌한 입담으로 강연은 시간 가는 줄 모르게 진행되었다.

유홍준 명지대 석좌교수의 <나의 문화유산답사기>가 8권, 남한강 편으로 돌아왔다. 유 교수의 <나의 문화유산답사기>는 청소년 필독도서가 될 정도로 유익하고, 그의 책을 읽고 있노라면 함께 답사를 다녀온 것 같은 생생함마저 느껴진다. 그는 이번에 답사 장소를 남한강 일원으로 잡았는데 이유는 “너무 가까이 있어 오히려 모르는 우리의 풍광을 알리고 싶었다”기 때문이다. 그가 풀어놓은 문화유산 이야기보따리는 2시간의 시간이 무색할 만큼 흥미로웠다.

남한강, 강원도 영월에서 경기도 양평 두물머리까지 
유홍준 교수는 오래전부터 남한강을 따라 내려오면서 아름다운 강변 풍광과 그 고을의 문화유산에 얽힌 이야기를 세상 사람들에게 들려주고 싶었다고 한다. 그간 헤아릴 수 없을 정도로 여러 번 다녀왔는데 혼자만 알고 즐기기에는 너무도 아까운 곳이라고. 
그래서 이번 주제는 강원도 영월에서 경기도 양평 두물머리까지 이어지는 호젓한 남한강 물길을 따라가며 주변 지역 곳곳에 숨겨진 이야기를 했다. 
“산상 호수로 유명한 나라가 스위스인데 충주호(청풍호)의 풍광은 그 이상이다. 외국계 기업에 지인이 오래 근무한 외국인 동료들과 야유회를 갈 때면 가장 즐겨 찾는 곳이 청풍·단양의 남한강과 충주호반이라고 해서 무척 놀랐다. 그 외국인들은 하루 만에 한국의 산과 강과 호수를 한꺼번에 즐길 수 있다는 것에 너무도 신기해하고 행복해했다.”
외국 여행도 많이 하는 유교수는 어디를 가든 반드시 만나게 되는 한국 관광객들이 외국의 풍광에 감동하고 부러워하는 것을 볼 때면 항상 ‘저분들이 국내 여행에서는 어떻게 느낄까’ 생각해 왔다고. 
그는 만약 국내 여행을 외국여행을 떠나는 것처럼 최소 5일, 길게는 보름의 여정을 잡고 남한강 물줄기를 따라 답사한다면, 정말로 우리나라가 금수강산임을 느끼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자연의 훼손에 대한 안타까움 
유 교수는 영월 주천강에서부터 답사를 시작했다고 한다. 강이 편안하게 흘러가는 곳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서울에서 영월로 가는 길은 옛날 같았으면 충주나 원주를 거쳐 제천에서 들어가게 되어 있었다. 영월에서 30분은 더 들어가야 주천강에 닿을 수 있었다. 하지만 지금은 중앙고속도로가 개통되어 원주시 신림 나들목에서 빠져나와 주천면으로 바로 이어진다. 그는 우리나라 길들이 워낙 잘 뚫려 있어서 깊은 산골이 오히려 더 빨리 갈 수 있는 곳이 되었다며 안타까움을 나타냈다. 
인제 내림천은 원래 양주에서 인제로 가서 또 거기서 한 시간 정도 가야 나오는 것인데, 지금은 길이 잘 뚫려 있어 홍천에서 뒤로 들어가면 바로 내림천이 나온다고 한다. 그는 “그게 무슨 내림천인가” 하며 “간선도로를 뚫어서 빨리 가더라도 지선은 남겨놔야죠. 그래야 오지로서의 맛을 살리는 것인데 뭐 급한 일이 있다고 5시간 가야 할 것을 3시간 만에 가게 할까” 하고 불만을 토로했고, 대부분의 청중이 고개를 끄덕이며 공감했다. 
또한 가뜩이나 좁은 우리나라가 더 좁아져 버렸다고 했다. 차를 타고 7시간 가야 도착하는 곳이 없어졌다는 것이다. 과연 그게 맞는 것인지. 아무리 오래 걸려도 그 동네를 찾는 사람들이 있을 때 그 동네가 사는 것이지, 그렇지 않으면 그냥 지나가는 곳이 되어버린다는 것이 그의 지론이다.

절을 향해 가는 아름다운 길 
큰 화면에 법흥사로 들어가는 진입로인 소나무 숲길 사진이 띄워졌다. 그리고 그는 그 길에 대해 이야기했다. 
절은 건물 자체가 아름다운 것이 아니라 그 절로 들어가는 길이 아름다운 법. 우리나라의 절의 아름다움은 진입로에 있다. 법흥사로 들어가는 소나무 숲길은 웅장하고 아름다웠다. 우리나라 절로 들어가는 길은 대게 500m에서 1km 정도. 그 길이 사람의 마음을 편안하게 해주는데, 스님들이 하는 얘기로 “해인사는 들어갈 때가 멋있고, 송광사는 나올 때가 멋있다”는 것이다. 그 말을 듣고 보니 정말 해인사는 들어가는 산중의 깊이가 좋고, 송광사는 나올 때가 멋있더라고. 
그는 소나무 숲길 사진을 보면서 풍경 사진을 찍는 간단한 팁을 알려준다. 
“제가 어디 가서 사진을 찍어오면 우리 학생들이 제가 찍은 그 자리에 가서 그대로 찍어옵니다.”
그가 풍경 사진의 앵글을 잡을 때 여러 구도로 생각을 하는데, 그 중 하나가 풍경 안에 사람이 나오게 찍는 것이다. 풍경 사진에는 사람의 유무로 차이가 크게 난다고 한다. 사람이 풍경 사진 안에 있으면 인간적인 분위기가 생기고 사람의 크기나 모습으로 그 풍경의 스케일이 사진에 담긴다고. 그는 청중에게 “더 과장되게 찍고 싶으면 사람들이 더 작게 보일 때 찍으면 된다”고 농담을 던졌다.

“역사는 유물을 낳고 유물은 역사를 증언한다” 
법흥사에 가면 비문이 하나 있다고 한다. 최원이라고 하는 사람의 비문이다. 교과서에 최원은 없다. 하지만 법흥사에 가보면 최원이 통일신라 말기에 최치원을 비롯한 유학자 세 명 중 한 명이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나라가 망할 적에 최치원은 세상을 등지고 가야산 속으로 떠나버렸고, 최원은 왕건에게, 다른 한 명은 견훤한테 가서 일생을 보낸다. 기가 막힌 것이 견훤과 왕건이 협정을 맺을 때 그 두 최씨가 만나 사인을 했다고 한다. 
“이런 이야기들이 사실 우리 역사 속에서 인생이라고 하는 것을 느끼게 해줍니다. ‘변혁기의 지식인들이 어떤 삶을 선택했는가’ 하는 여러 가지 역사적인 교훈을 보여주는 것이죠.”
그는 법흥사를 방문해서 이 비문을 만나야만 느낄 수 있다고 강조했다. 교과서에는 없지만, 답사기 속에는 얼마든지 있는 이야기로, 유홍준 답사기에는 교과서에는 없는 또 다른 역사 이야기를 담고 있다. 
그는 이 전에 일본답사기를 쓰면서 역사는 유물과 함께 기억해야 생생하게 나오고 오래 가고, 역사는 유물을 낳고 유물은 역사를 증언한다는 것을 느꼈다. “역사는 유물을 낳고 유물은 역사를 증언한다”는 말이 너무 멋있어서 그 자신이 한 말 같지 않았다고 한다. 어디선가 들어본 말을 자신이 한 것 같아서, 그냥 쓰면 표절이 될 수 있으니까 연구원에게 찾아보라고 했다고. 그는 “내가 이렇게 멋있는 말을 했을 리가 없다”고 말하자 청중들 모두 그의 유머에 웃음이 ‘빵!’ 터졌다. 그는 표절이 아님을 확인하자마자 책 앞에 그 명문을 썼다.

울적하면 폐사지(廢寺址)로 가라 
강연회는 그의 책에 담긴 여러 시인의 시와 함께했다. 그 중 사람의 심금을 울리는 데는 정호승 시인이 으뜸이라며 정호승 시인의 <폐사지처럼 산다>라는 시의 부분을 읊었다.

요즘 어떻게 사느냐고 묻지 마라 
폐사지처럼 산다 
요즘 뭐 하고 지내느냐고 묻지 마라 
폐사지에 쓰러진 탑을 일으켜 세우며 산다 
(…) 
부서진 석등에 불이나 켜며 산다 
부디 어떻게 사느냐고 다정하게 묻지 마라 
(…) 
입도 버리고 혀도 파묻고 
폐사지처럼 산다

쓸쓸한 것 같지만, 우리에게 처연한 마음을 보여주는 시다. 깊은 산골의 폐사지. 그는 뿌리째 뽑힌 주춧돌이 모로 누워 하늘을 바라보고, 무성히 자란 잡초들이 그 옛날을 덮어버린 폐사지에 가면 사람의 마음이 절로 스산해진다고 한다. 그 고요한 절터에는 사색으로 이끄는 침묵이 있어 “마음이 울적하거든 폐사지로 떠나라”고 권하기도 했다. 
유 교수가 시를 읊을 때 청중들은 그 내용에 마음이 동해 고요한 적막을 유지했다. 그의 강연에는 유쾌한 웃음도 있었지만, 청중의 마음을 움직이는 무언가가 있었다. 사람들은 그의 목소리에 홀린 듯이 강연에 집중했다. 
특히 16세기 중엽 무거운 세금을 감당하지 못해 도망가는 백성을 안타깝게 여기고 임금에게 구구절절한 상소를 바쳐 결국 ‘10년간 조세와 부역을 감면한다’는 답을 받은 단양군수 황준량의 사례를 소개할 때는 온 청중이 박수를 쳤다. 
유 교수는 “이 이야기는 지방선거 때 시장, 군수를 똑똑하게 뽑아야 한다는 교훈을 준다”며 “한 사람의 지방관이 그 고을을 살리고 죽일 수 있음을 보여준다”고 강조했다.

예정됐던 1시간 30분을 훌쩍 넘어 강연이 끝났지만 모두 시간이 이렇게나 빨리 갔나 하는 아쉬움을 보였다. 강연 후엔 작가의 사인회가 이어졌다. 너도나도 할 것 없이 그의 책을 품에 안고 줄지어 그와의 만남을 기다렸다. 
그의 다음 답사기는 ‘서울 편’으로 정했다고 한다. 이 답사기 시리즈가 몇 권이 되고 어디까지 갈 것인지는 그도 모른다고 했다. 이 시간을 다시 만날 때까지 ‘남한강’과 함께 행복한 여행을 떠나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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