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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시농부-유기농 채소 ‘상암두레텃밭’ 텃밭지기 박쌍애
도시농부-유기농 채소 ‘상암두레텃밭’ 텃밭지기 박쌍애
  • 송혜란
  • 승인 2015.12.28 15:2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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삭막했던 도시가 푸르른 녹음으로 뒤덮이고 있다. 도시농부들의 활약 덕분이다. 처음에는 주말농장을 찾더니 이제는 베란다, 옥상까지 넘어 도심 곳곳의 노는 땅을 소박한 텃밭으로 단장하고 있다. 그곳에서 만난 사람들은 공동체를 꾸린다. 옛이야기에서나 나올 법한 ‘두레’라는 이름으로. 서울 마포구에 자리한 상암두레텃밭을 찾아 텃밭지기 박쌍애 씨를 만났다.

취재 송헤란 기자 | 사진 양우영 기자

“건강한 채소를 나누니 행복도 두 배”
날씨가 화창한 어느 날, 서울 마포구의 한 고층 아파트 샛길을 걸으며 상암두레텃밭으로 향했다. 상암중학교까지 다다르니 길 건너에 상암두레텃밭을 알리는 안내판이 보인다. 곧 1, 2층 계단식으로 조성된 아담한 텃밭이 한눈에 들어온다. 1층은 한창 텃밭 교육을 받는 아이들로 붐볐다. 학생들 주변에서 한가로이 밭을 둘러보고 있던 박쌍애 씨가 직접 키운 우엉으로 만든 따뜻한 차 한 잔을 건네며 기자의 방문을 반겼다. 텃밭 옆에 자리한 작은 원두막에 마주 앉아서야 비로소 그와 이야기를 이어갈 수 있었다.

방치된 견인차 보관소 터 경작, ‘게릴라 농사’로 시작

상암두레텃밭이 자리한 곳은 원래 견인차 보관소로 지정되어 있던 공터였다. 주민들이 이곳에 견인차 보관소를 만드는 것에 극구 반대해 철망 속에 방치되어 있었다. 보다 못한 도시농부들이 2009년부터 게릴라 농사를 짓기 시작했다.

“불법은 아닌데 무단이었죠. 그냥 두기 아깝잖아요. 곳곳에 널려져 있던 쓰레기부터 치우고, 수북한 풀을 베며 돌을 골라 내 조금씩 텃밭을 만들어 갔어요. 주민들이 하나둘씩 더 모여들더니 속도가 붙더라고요.”
게릴라 농사를 시작한 지 어언 3년 만에 상암두레텃밭은 구청의 허가를 받아 냈다. 박원순 시장의 공동체 활성화 정책과 맞물려 음지가 양지로 탈바꿈한 것이다. 이윽고 지역 주민이 주체가 되어 농사를 짓는 공동체 도시 텃밭으로 발돋움한 이곳은 현재 구청과 미래여성 시민단체의 지원을 받고 있다. 매주 화요일과 목요일엔 구청에서 나온 아이들이 텃밭 수업을 받는 교육의 장으로 활용되고 있다.

 

 

우엉부터 상추, 고추, 배추까지 모두 유기농 재배

상암두레텃밭의 총면적은 700평 정도다. 땅의 모양에 따라 자연스럽게 구획이 그어진 텃밭 중 그는 5평 남짓한 곳에 토종 우엉부터 상추, 고추, 가지, 열무 등 다양한 채소를 기르고 있다. 모두 화학비료와 농약을 쓰지 않은 유기농 작물이다. 농사의 가장 기본인 땅을 일구는 일도, 거름을 주고 약을 치는 일도 기계 한 번 쓰지 않고 손수 해 내고 있다. 그럼에도 그는 힘든 내색 하나 없이 농사 자체에서 큰 행복을 얻는다며 미소로 가득하다.

“내가 먹을 채소가 최초 씨앗일 때부터 어떻게 커왔는지 누구보다 제가 그 이력을 잘 알잖아요. 농사짓는 일도 즐거운데 안심하고 먹을 수 있는 채소까지 생긴다는 게 농사의 가장 큰 매력인 것 같아요.”

언젠가 한 번 비닐하우스에서 상추를 키우는 과정을 지켜본 적 있던 그는, 그때부터 쭉 유기농업만을 고집해 왔다. 그가 20년간 농사를 지으며 품게 된 철학이다.

“비닐하우스에서 과잉보호를 받아 속성으로 키워진 채소와 온갖 자연 요소를 받으며 스스로 자란 채소는 영양 면에서 큰 차이가 있어요. 보기에는 안 예뻐도 벌레 먹은 채소, 그것이 바로 유기농 채소이지요. 유기농 채소는 한 달 내내 냉장고에 넣어 놓아도 쉽게 시들지 않아요. 씻다 보면 다 너덜너덜해져 미네랄이나 비타민은 다 떨어져 나가고 마는 보통 채소보다 훨씬 튼튼하지요.”

그가 유기농업만을 해온 데에는 무엇보다 어릴 때부터 먹어 온 유기농 채소가 입에 각인되어 시중에 판매되는 채소는 입에 맞지 않아 못 먹는 이유가 컸다.

“누군가는 마트에 가면 돈 주고 살 수 있는 채소가 널려 있는데 왜 수고스럽게 흙까지 만져가며 이런 일을 하느냐고 말할지도 모르지만, 저는 달리 봐요. 유기농 채소는 영양소뿐 아니라 일반 채소보다 맛도 확연히 다릅니다. 하다못해 어릴 때부터 제가 키운 채소만 먹고 자란 우리 손자들도 그 맛의 차이를 잘 알아요. 마트에서 사 온 채소는 맛이 없다며 입에 대지도 않을 정도이니까요.”

텃밭에서 키운 채소로 나눔 행사 열어

그는 자신을 포함해 60여 명이 함께 텃밭에서 키운 유기농 작물은 일 년에 두 번 정도 상암두레텃밭 장터를 열어 이웃에게 나누기도 한다. 도시 농사의 인기가 높아지자 텃밭 회원 경쟁률도 함께 올라 아쉽게도 농사에 참여하지 못한 이웃과 땀의 결실을 함께 나누고자 하는 마음에서다. 가격은 시중보다 3분의 1 수준으로 공급된다. 그렇게 모인 수익금은 소년원 등 어려운 이웃에 기부되는, 그야말로 공동체 행사다.

“우리 텃밭이 두레텃밭이니까 재배한 식물도 서로 나누려고 해요. 많은 돈은 아니지만 수익금은 모두 어려운 이웃에 기부하고 있고요. 농사를 지으면서 소통도 하는 텃밭 공동체를 만들어 가고 있습니다.”
 
도시 농사의 즐거움이 귀촌까지

도시 농사를 통해 느낀 행복감이 그의 인생까지 송두리째 바꾸려는 것일까? 서울에서 20년 넘게 농사를 지어 온 그가 이제는 도심을 벗어나 본격적으로 귀촌을 준비하고 있다.
“농사, 참 재미있어요. 매일 텃밭에 가는 데도 늘 새로움을 느낍니다. 제가 식물을 키우는 데 어떨 땐 식물이 저를 키우고 있다는 생각도 들어요. 작았던 채소가 조금씩 자라는 것을 보면 제 마음속도 함께 자란다는 느낌이 들거든요.”

그가 귀촌지로 점찍어 놓은 곳은 강원도 홍천의 전원주택 단지이다.
“한번은 지인을 따라 홍천에 있는 전원주택 단지에 간 적이 있는데 공기도, 풍경도 너무 좋더라고요. 그곳에서 계속 농사를 지으며 살고 싶어요. 내년 하반기쯤에 꿈을 이룰 수 있지 않을까 싶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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