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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울감성 가득, 평창동 산책 한 바퀴
겨울감성 가득, 평창동 산책 한 바퀴
  • 최효빈
  • 승인 2016.01.28 13:46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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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기행

가나아트센터를 비롯한 수많은 갤러리들이 밀집해 있으며 이름 모를 야생화, 칠이 벗겨진 담벼락이 눈길을 붙잡는 조용하고 깨끗한 동네 평창동. 평일 오후, 지친 일상을 탈출하여 겨울감성 충만한 힐링 스폿 평창동을 찾았다.

진행·사진 최효빈 기자

호기심이 많아 ‘핫 플레이스’라고 하는 곳은 전부 가봐야 직성이 풀리는 에디터에게 ‘평창동’은 낯선 동네였다. 잘은 모르겠지만 담이 족히 2미터는 되는, 주로 아침 드라마에 나오는 부잣집의 배경이자 서태지와 같은 톱스타들이 사는 ‘부자들의 동네’ 정도의 인식을 가지고 있었다고 하면 설명이 될까.
어쨌든 사람 많고 북적이는 트렌디한 곳을 찾아다니던 에디터에게는 궁금하지도, 설사 궁금하다고 해도 굳이 찾아갈 이유가 없는 멀고 먼 동네였던 것이다.
하지만 어느덧 에디터도 나이가 들고, 출퇴근 시간에 지옥철에서 부딪히는 수많은 인파를 매일 경험하며 주말과 같은 자유시간에 사람이 붐비는 곳을 더 이상 가지 않게 되었을 때, 거의 존재를 잊고 살았던 동네인 평창동을 찾게 되었다.
취재를 위해 평창동으로 발걸음을 향했던 날은 12월의 어느 금요일 오후였는데 신기하게도 그날은 한 주 내내 계속 되던 한파가 없었던 것은 물론, 꼭 봄 날씨만큼이나 해가 따뜻하게 비추던 날이었다.
평창동을 가기 위해 회사가 위치한 서촌 통인시장에서 버스를 기다리던 10여분, ‘도대체 가서 무얼 보고 찍어야 하나’는 생각과 마감에 대한 걱정으로 머리가 가득 차 있던 순간, 문득 너무도 따뜻한 햇살이 무릎에 와 부서지는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그리고 곧 스스로에게 건네는 ‘내가 언제 이렇게 가만히 햇살을 맞아봤지?’라는 질문.
버스가 오기 전까지의 짧은 시간 동안 돌이켜보니 여름휴가로 제주도 갔을 때 이후로 최근 몇 개월간 낮 시간 동안 멍하니 앉아서 햇살을 맞은 기억이, 또 받아야겠다는 생각을 한 적이 한 번도 없었다는 것을 깨달았는데, 그 사실을 안 순간 문득 ‘지금 너무 행복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게 시작된 ‘평창동 힐링 산책.’
평일 오후 시간이기 때문인지, 출퇴근 시간엔 승객들로 가득 차 고개한 번 돌리기 어렵던 버스가 텅 비어 있었는데, 덕분에 이어폰으로 노래까지 듣는 여유(?)를 즐기며 창밖으로 펼쳐진 낯선 풍경들을 감상할 수 있었다. 그리곤 그렇게 약 15분 정도를 더 들어가 가나아트센터로 가는 길목에 도착.
처음 마주하게 된 평창동은 소문대로 가파른 언덕길이 쭉 이어진 채 산에 둘러싸여 있었는데 다행히 운동화를 신어서인지 그리 힘들지는 않았다. 교회를 지나니 작은 카페가 나오고, 다음으로 평창동에서 가장 유명한 가나아트센터가 등장했다. 평창동에는 규모가 큰 가나아트센터뿐만 아니라 키미 아트, 자하 미술관, 토탈 미술관, 아트 스페이스 풀 등 크고 작은 규모의 다양한 갤러리들이 밀집해 있는데 조용한 동네인 만큼 어느 갤러리를 가도 조용하고 여유롭게 작품을 감상할 수 있다고 한다.
그렇게 가나아트센터를 지나쳐 큰 길 옆에 나 있는 조그만 골목, 공터를 따라 들어가니 꼭 시간이 멈춘 듯한 느낌을 주는 건물, 담벼락, 그리고 오래된 물건들이 눈에 들어왔다.



동네가 산에 위치해 있어서인지 평창동은 보행자보다는 주로 차들이 많이 보였는데(취재하는 두 시간 동안 보행자는 총 4명을 보았다) 그래서인지 한 쪽 구석에서 조용히 시간을 보내고 있는 오래된 것들이 더욱 쓸쓸히 느껴졌다. 괜히 카메라를 들이대며 잊혀진 것들에게 ‘아직 너를 보아 주는 사람이 있다’라는 메시지를 준 뒤 계속된 평창동 산책.
골목을 나오니 큰 길을 따라 큰 주택들이 이어졌는데, 키를 훌쩍 넘는 담 때문인지 사람이 사는 동네라는 느낌이 짙게 다가오지는 않았던 것 같다. 오히려 눈에 들어온 것은 길가에 조그맣게 핀 야생화나 칠이 벗겨진 담벼락, 세월이 빚어낸 담쟁이 넝쿨 같은 사소한 것들로 이러한 것들은 조용하고 깨끗한 평창동과 잘 어우러져 더욱 매력적으로 다가왔다.
그렇게 쭈그려 앉아 시간가는 줄 모르게 이것저것 구경하다 보니 어느덧 해질녘. 산에 둘러싸여 시내보다 빨리 해가 지는 평창동의 모습은 이른 오후와는 또 다른 분위기를 선사했다. 심심하지만 심심하지 않으며 겨울 감성을 즐기기에 가장 좋은 동네가 될 것 같은 동네 평창동. 앞으로 지친 일상을 탈출해 예술이 함께하는 고요한 이 동네를 종종 찾게 될 것 같은데 함박눈이 내리고 난 뒤의 모습이 더욱 장관이라고 하니, 조만간 다시 오는 걸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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