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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가 걸어가는 배우의 길
그가 걸어가는 배우의 길
  • 권지혜
  • 승인 2016.01.29 14:04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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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빠’가 아닌 ‘배우’ 조재현을 만나다
 

연극을 한 사람이라면 누구나 내 공연장을 만들고 싶다는 꿈을 꾼다고 한다. 조재현 역시 그런 배우 중 하나였고, 연극의 장, 대학로에 수현재컴퍼니를 설립했다. 함박눈이 내리던 어느 겨울날. 수현재컴퍼니의 가장 꼭대기 층에 있는 그의 아지트에서 그를 만났다. 그가 직접 불을 붙인 화롯불 덕분인지 훈훈한 온기가 자리했다.

강직한 분위기의 배우 조재현. 최근 예능 프로그램 <아빠를 부탁해>에 출연하면서 그 이미지가 사르르 녹던 중, 초연 40주년의 연극 <에쿠우스>에 다시 등장한다. 1991년 처음 <에쿠우스>와 만나 첫 남자신인상을 받았고, 그 뒤 두 번의 공연을 함께했을 만큼 인연이 깊다. 최근 연극계에서 행보를 보이는 조재현의 연기 인생을 돌아보며, 새로 들어가는 연극에 대한 감회를 들어봤다.

연출가, 영화감독, 그리고 수현재컴퍼니의 대표 조재현

조재현은 배우로서 숱한 명작에서 연기했지만, 그의 행보는 드라마나 영화에만 치우치지 않는다. 20대에 연극을 시작하면서 꿈꿨던 자신만의 공연장인 수현재컴퍼니도 설립했고, 연극 열전 프로듀서를 비롯해, <에쿠우스> 연출, 장진 감독과 공동 제작한 <꽃의 비밀>, 영화 <나홀로 휴가>로 영화감독 데뷔까지 했다. 여러 방면에서 종횡무진 활약하고 있는 그. 특히 대표로 있는 수현재컴퍼니에서는 좋은 작품들이 많이 나오고 있고, 브라운관의 배우들을 연극 무대에서 볼 수 있다는 것에 호평을 받고 있다. 
대표로서 작품을 선정하는 것에 특별한 기준이 있을 거라고 생각되지만, 그는 그런 기준은 따로 두지 않았다. 다만 코미디든 명작이든, 현대 희곡 중에서 선발했든, 가장 중요한 것은 지금 대중들과 멀리 떨어져 있지 않은 연극을 택했다. 그러면서도 대중의 성향을 너무 쫓아가거나 맞춰 가는 것은 지양한다. 대중의 입맛에 너무 쫓아가고 맞추다 보면 작품 본연의 연극성을 잃어버릴 수가 있기 때문이다. 무조건 대중성을 쫓지 않는 선에서 대중들과 함께 가되, 대중들이 조금 더 많은 선택을 할 수 있고, 또 다른 느낌의 연극을 고를 수 있도록 작품을 선택하고 있다.

5년 만에 다시 만나는 연극 <에쿠우스>와 조재현의 인연

연극 <에쿠우스>와 조재현은 깊은 인연을 갖고 있다. 1991년 백상예술대상 연극부문 신인상을 받았던 작품도 바로 <에쿠우스>였다. 10년 전에는 40세의 나이로 17세 소년 알런 역을 맡아 주목을 받기도 했다. 그런 만큼 그에게는 필연적인, 운명적인 작품이며, 다른 연극과는 달리 많은 의미를 부여한다. 
그는 대학교 2학년 때 <에쿠우스>를 처음 객석에서 만났다. 연극을 보면서 ‘나도 언젠가는 저 무대에 설 것이다’라고 혼자 다짐을 하면서 공연장을 빠져나왔던 기억이 생생하다며 회상에 잠긴다. 그리고 정확히 7년 후, 17세 소년 알런 역으로 그 무대에 서게 된다. <에쿠우스>로 연극의 참맛을 느낀 그는 언젠가 알런 역을 한 번 더 하고 싶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고, 결국 40세가 되던 해에 다시 알런을 연기하게 되었다. 6년 뒤 연출 겸 다이사트 역으로 다시 <에쿠우스>를 만난다. 그는 당시 “무대에서 받는 느낌과 객석 맨 뒤에서 연출자로 바라보는 느낌에는 차이가 있구나”하는 것을 느꼈다. 그리고 작품은 그에게 많은 생각을 하게 했다. 
“이 연극이 얘기하는 게 ‘우리가 사는 이 삶이 과연 인간적으로 가장 정상적인, 인간다운 것이냐’라는 기본적인 질문을 하는 연극이거든요. 그래서 우리가 정신병자라고 얘기하고 있는 이 소년을 치료하는 것이 올바른 일이냐. 우리가 말하는 정상적인 아이로 만드는 것이 과연 인간적인 일이냐. 이 소년이 가지고 있는 열정, 남이 갖지 못한 개성을 다 없애 버리는 것이 그게 잘한 일이냐는 의문을 던지는 이야기예요. 그런 질문은 20대 때도 그렇고 40대 때도 그렇고 지금 나한테도 항상 던지는 것과 같아서 저한테는 다른 연극과는 확연히 다른 의미가 있죠.”

40대와 50대 조재현의 다이사트

<에쿠우스>는 조재현이 맡은 다이사트보다 알런 역이 더 두드러지는 작품이다. 하지만 그는 역할의 비중에 대해 축구로 비유해 말했다. 
“축구로 따지면 골을 넣는 사람이 알런이에요. 하지만 종횡무진 수비부터 미드필더까지 책임지는 것은 다이사트죠.” 
무대 위에서 돋보이는 것은 알런이지만, 그는 다이사트의 내면의 모습에 주목했다. 다이사트의 내면세계는 그가 40대에 했던 것과 50대인 지금 연기하면서 갖는 느낌에 차이가 있다고. 40대 때는 어렴풋이 설익은 느낌이었다면, 50대에는 좀 더 익어가는 느낌이라고 한다. ‘무미건조한 삶, 안정적인 삶이 과연 행복한가’를 묻는 것이다. 
“우리나라 50대들은 대부분 억누르며 살고 있어요. 다이사트도 마찬가지죠. 그래서 나이가 먹을수록 그 내면의 세계에 깊게 공감되는 부분이 있어요.” 
그가 40대에 다이사트를 맡은 당시에는 연출을 겸하고 있어 연습을 많이 못해 아쉬웠다고 한다. 하지만 이번에는 배우로서 다이사트 역에 충실하게 되니 훨씬 더 홀가분하고 연기에 더 집중할 수 있게 되었다. 
조재현의 말 곳곳에는 연극에 대한 애정이 자리하고 있었다. 
“지루하지 않으면서 굉장한 긴장감 속에서 빨려들게 하는, 하지만 코미디와는 다른 재미를 느끼게 될 것”이라며 ‘연극다운 연극’을 느낄 것이라 자부심을 드러냈다. 또한 나이가 든 사람들은 지금 다시 보면 다이사트의 마음이 느껴질 거라고 했다. 그에게 40대의 다이사트와 50대의 다이사트가 달랐듯이.
“좋은 작품은 해가 지나고 보는 사람의 나이가 들면서 느껴지는 바가 달라지는 것 같아요. 아무리 좋았던 것이라도 시대가 지나면 약간 촌스러워지는 부분이 있는데, 정말 좋은 희곡 작품은 그게 좀 적어요. 그래서 명작으로 남는 거죠.”

주·조연, 장르 불문하고 작품을 선택하는 이유

조재현 정도 되면 조연은 맡지 않는 경우가 많다. 독보적 주연급이 아닌가. 하지만 그의 행보는 조금 남다르다. 주연은 물론이거니와 조연, 상업영화, 독립영화를 가리지 않고 작품을 선택하는 것으로 유명하다. 
그가 돈을 잘 벌 수 있는 상업영화만을 택하지 않고 독립영화를 찍는 이유는 따로 있다. 독립영화를 좋아해서 찍는다기보다 상업영화가 가지고 있지 않은 독립영화의 매력을 느꼈기 때문이다. 
독립영화는 감독이 작가가 되어 자기 생각을 담는 작가주의적 성향이 강한 작품들이 많다. 물론 모든 감독을 작가라고 할 수는 없지만, 자기 철학과 의식을 담은 작가주의적 영화들을 보면서 그는 독립영화에 대한 흥미를 느꼈다. ‘저 사람은 이 영화를 통해서 저렇게 생각하고 있구나, 무엇을 얘기하고 있구나’를 느끼면서 독립영화를 계속해 오게 되었다. 
“독립영화는 작은 규모지만 찍어 가는 방식이 좀 다른 느낌이에요. 작지만 정성스럽게 집을 짓는 것 같은 느낌이죠.”

배우 조재현이 가는 길

“오늘도 차를 타고 오면서 생각을 했어요. ‘왜 연극을 하지?’ 하고.” 
대부분 조재현 정도 나이가 되면 연극을 많이 하지 않는다고 한다. 드라마를 하는 게 훨씬 낫다는 것이다. 그 역시 꾸준히 영화나 드라마 출연 제의가 들어온다. 그런데도 그가 연극을 1년에 한 번씩 꼭 하는 이유는 ‘자신을 내려놓는 작업’이기 때문이다. 
그는 연극을 할 때마다 약간 후회한다고 했다. 대사를 외워서 매일 연습을 반복하는 원시적인 작업이기 때문이다. 게다가 그것에 대한 대가는 ‘자기만족’이다. 배우 하나를 놓고 봤을 때는 비효율적이고 비생산적인 작업이라는 것. 
그는 연극을 할 때마다 ‘아, 제작하고 기획만 해야지. 굳이 무대에 자꾸 서서 뭐하나’하고 후회하지만, 그런데도 연극을 계속한다. 
“영화감독도 해 보고 DMZ 다큐멘터리 영화제도 하고, 대학교에서 아이들을 가르치고 있지만, 연극을 하면서 나 스스로 ‘너의 본모습은 배우야. 정신 차려!’라고 말하는 것 같아요.” 
그는 스스로 어떤 배우가 되고 싶다고 하나로 규정지으려 하지 않는다. ‘어떤 배우’라고 규정하는 것은 보는 사람의 선택이고 판단이지 스스로 어떤 배우가 되고 싶다고 해서 되는 건 아니라는 것이 그의 생각이다. 그리고 그렇게 가고 있다. 
“만약 영화 쪽에서 톱 배우였다면 영화에 집중했을 거예요. 냉정하게 짚어 보면 그렇지 않기 때문에 다양한 길로 갔던 것도 있죠. 근데 톱 배우가 되더라도 연극은 했을 것 같아요.” 
그가 마흔 살 때 했던 드라마 <피아노>는 세간에 화제가 되었었다. 드라마 자체의 작품성은 물론 그의 연기력 또한 돋보였기 때문이다. 또한 영화 <나쁜 남자>로 여전히 깨지지 않은 김기덕 감독의 최고 흥행 기록을 안고 있기도 하다. 그렇게 드라마면 드라마, 영화면 영화로 승승장구하던 때에도 그는 연극 <에쿠우스>를 택했다. <에쿠우스>의 알런 역을 마지막으로 할 기회라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도 있지만, 그는 자신에게 “네가 그전까지는 연극을 해 오다가 이제 바빠졌다고 연극을 안 할 거니? 너도 그런 배우가 되고 싶니?”라고 묻게 되었다. 그리고 그는 연극에 대해 결론을 내렸다. 힘들고 고된 작업이지만, 할 때마다 후회하지만 “나는 또라이이기 때문에 한다”고.

연극 무대가 아닌 스크린이나 브라운관에서 언제쯤 그를 만날 수 있을까. 그는 현재 배우 유승호와 영화 <김선달>을 찍어 놓았다고 한다. 언제 개봉할지는 모르지만, 곧 스크린에서 만날 수 있지 않을까. 또 드라마 제안을 받은 것 중 관심이 가는 작품이 있다고 하니, 하게 될지 아닌지 구체적인 것은 아직 잡지 않았지만, 조만간 브라운관에서도 ‘아빠’가 아닌 배우로 만날 수 있기를 바라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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