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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란 전 대법관에게 듣는 우리 법과 민주주의
김영란 전 대법관에게 듣는 우리 법과 민주주의
  • 송혜란
  • 승인 2016.02.25 18:01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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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 최초의 여성 대법관인 김영란 석좌교수가 책 <판결을 다시 생각한다>를 내며 자신을 반성하는 행보를 보여 관심을 모았다. 대법관 시절 소수를 대변하는 진보적 의견으로 많은 이들의 관심을 한 몸에 받았으며, 부정과 부패에 맞선 ‘김영란법’을 제안해 사회적인 찬사까지 얻은 그였기에 그 울림은 더욱 컸다. 김영란 전 대법관을 만나 그가 우리 사회에 던지는 메시지에 귀 기울여 보았다.

취재 송혜란 기자 사진 양우영 기자

“대법관으로서 많은 판결을 내렸지만, 놓친 게 많았습니다. 그게 마음에 걸리고 억울해서 책을 썼지요. ‘대과’가 여기저기서 보였고 ‘소과’는 일일이 말하기도 민망할 지경입니다.”
지난 2004년 우리나라 사법사상 최초로 여성 대법관이 된 김영란 석좌교수(서강대 법학전문대학원)가 스스로의 판결에 대해 처음으로 입을 열었다. 하지만 그것은 자랑스럽기보다는 아쉬움에 가득 찬 것이었고 자기반성과 비판의 모습마저 띠었다.
지난 12월 17일 서울 마포구 서교동 창비 사옥에서 열린 그의 책 <판결을 다시 생각한다>(창비) 출간 기념 강연회에서 김영란 전 대법관은 대법관 시절 판결과 그에 관한 소감을 진솔하게 털어놓았다.
김 전 대법관은 대법관 재직 시절 한 달에 100건 이상, 6년간 1만여 건의 판결을 선고했다. 이 책은 그가 참여한 대법원 전원합의체 판결 중 ‘제일 길게, 열심히 다퉜던 10대 판결’을 뽑아 재조명했다.
대법원 전원합의체에서 김 전 대법관은 자신보다 연배가 높은 남성 대법관들 사이에게 치열하고 논쟁하고, 의견을  수정하고 설득하며 6년을 보냈다. 그는 이내 사회적 약자와 소수자를 배려하는 노력으로 ‘소수자의 대법관’이라는 별명을 얻었으며, 진보적 목소리를 높인 박시환, 김지형, 이홍훈, 전수안 대법관과 함께 ‘독수리 5남매’로 불리기도 했다. 그러나 그는 이 같은 별명들에 대해 겸손해하는 모습이 역력했다.
“사실 제가 그렇게 소수자의 삶을 산 것도 아니고, 소수자를 위한 판결도 얼마 못했어요. 누가 그렇게 저를 부르기 시작한지 모르겠어요. 다만 결혼한 여성으로 일하면서 사는 게 어떻게 보면 소수자로서의 의미가 있다는 생각이 들어요. 대법관으로 일할 때도 제 나이가 마흔 여덟이었던 반면 대부분 대법관은 예순 살 전후의 남성이었거든요.”
자신과 다른 성별과 나이 대, 배경을 지닌 대법관들의 생각을 뛰어넘는, 틈에 끼어드는 역할을 많이 하게 된 김영란. 자신이 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일까에 대한 고민의 답이 그러한 것뿐이었다고 한다.

자신의 잘못을 자문하는 방식, 책

대법관 출신이 변호사를 개업하면 전관예우로 인해 3년 안에 빌딩을 세운다는 말이 무성한 이 시대에 김영란 전 대법관은 6년간 맡아 온 대법관직을 사뿐히 내려놓고 퇴임식을 치렀다. 퇴임식 날 너무 싱글벙글해서 동료 대법관의 핀잔을 들을 정도였다고 한다.
그가 세운 퇴임 후 계획은 자신이 관여한 판결들을 다시 꼼꼼히 살펴보는 시간을 갖는 것. 퇴임을 앞두고 재임기간에 대과는 없었는지 자문해 본 그는 대과란 떠난 후 서서히 드러나는 것임을 알아차리고 이 같은 계획을 세웠다. 섣불리 스스로 나서서 대과가 없다고 말할 일도 아닐뿐더러 꼭 대과는 아니더라도 아쉬운 부분은 없는지 되짚어보고 싶은 마음이 컸다고 한다.
갑작스레 국민권익위원회 위원장으로 일하게 되면서도 그의 계획은 서서히 진행되어 갔다. 그 사이 우리 사회 정의에 큰 영향을 미친 ‘부정청탁 및 금품 등 수수의 금지에 관한 법률’ 입법에 힘쓰는 일도 소홀히 하지 않았다. 직무 관련성이 없더라도 공직자의 금품 수수를 처벌할 수 있게 한 이 법은 그의 이름을 딴 ‘김영란법’으로 불리며 그를 일약 스타덤에 올리기도 했다.
지금은 국민권익위원회 위원장직을 그만두고 서강대 법학전문대학원 석좌교수로 있는 그는 ‘판례실무 연구’라는 한 강좌를 맡아 학생들에게 대법원 전원합의 판결을 해설해주고 있다.
“로스쿨 학생들이 변호사시험을 준비하느라 다수의견과 소수의견, 보충의견들로 치열하게 논쟁 중인 판결들을 세세하게 읽을 여유가 없어요. 제가 그런 기회를 만들어보자고 생각했죠.”
그런데 강의를 준비하기 위해 판결들을 다시 펼쳐 본 그의 눈에 당시에는 미처 눈에 띄지 않았던 과오들이 속속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급기야 ‘있을 때 잘했어야지’, ‘떠난 후에 후회하면 무엇 하나’라는 온갖 생각이 머리를 뒤덮었다. 지금에서야 할 수 있는 일이라곤 이러한 회의와 아쉬움을 글로나마 가감 없이 담아보는 것이었다. 그렇게 나온 책이 <판결을 다시 생각한다>이다.

대법원 판결에 개인 견해와 비판, 반성까지

김 전 대법관은 자신이 관여한 대법원 전원합의체 판결 가운데 사회적으로 의미가 큰 굵직굵직한 판결들에 대해 당시에는 밝히기 힘들었던 자신의 견해와 비판, 반성을 나타냈다.
김 할머니 사건부터 포털사이트 명예훼손 사건, 양심적 병역거부와 K군 사건, 삼성 사건, 상지대 사학비리 사건까지 대개 우리 사회법과 민주주의의 의미에 대해 곰곰이 생각하게끔 하는 판결들이다.
이 사건들은 판결 당시 수많은 사회적 관심과 논쟁을 낳았을 뿐 아니라 이후에도 다른 판례와 입법, 정책 등에 많은 영향을 끼치며 우리 사회의 미래를 좌우해온 핵심적인 사건들이라고도 할 수 있다.
지난 2008년 평소 자연스러운 죽음을 희망해온 김 할머니의 가족들이 병원에 연명치료를 중단해 달라고 요구한 김 할머니 사건은 우리 사회에 존엄사와 관련한 본격적인 논의를 불러일으켰다. 자신의 운명을 스스로 결정할 개인의 권리와 생명을 보호해야 하는 국가의 의무가 대립한 가장 대표적인 사례라고 할 수 있다.
“안락사를 허용하는 스위스, 프랑스와 달리 우리나라는 안락사 문제에 대해 아직 초보적인 단계에 있어요. ‘존엄하게 죽을 권리’, ‘안락하게 죽을 권리’라는 말은 제한적인 의미만 가지지요. 회복할 수 없는 죽음의 단계에 들어섰을 때 인공호흡기를 달지 말라고 평소에 확실한 의사표시를 해두는 것 정도가 김 할머니 사건에서 인정한 죽음에 대한 권리입니다.”
결국 대법원의 판결에 따라 김 할머니에 대한 연명 치료는 중지되고 병원은 인공호흡기를 제거하며 이 사건은 일단락되었다. 이를 계기로 연명치료 거부에 대한 법률과 제도 등이 논의되기에 이르렀으나, 일반적인 의미의 안락사는 여전히 허용되지 않고 있다. 이 판결문을 다시 들여다본 그는 죽음의 판정, 즉 생명의 경계가 어떻게 주권권력의 범위에 포섭되어 가는지 극명하게 알아볼 수 있었다고 한다.
“조금씩 우리나라에서도 안락사에 대한 논의가 계속되겠지요. 그전에 자신이 정말 연명치료를 받고 싶지 않으면 눈에 잘 띄는 곳에 미리 써놓는 게 좋을 것 같아요. 저도 그렇게 하려고요.”

공익과 사익, 공인과 사인의 경계가 모호한 우리 법

포털사이트의 명예훼손 책임을 처음으로 인정한 2009년의 대법원 판결은 포털사이트에 명예를 훼손하는 기사나 댓글에 대한 관리 책임을 물을 수 있는지를 논의함으로써 사회적으로 큰 관심을 받았다.
“이 사건은 철저히 사적인 인물의 프라이버시는 보호되어야 한다는 의미가 컸지요. 여자친구가 자신 때문에 죽었다는 싸이월드 게시글이 인터넷에 일파만파 퍼졌던(…) 그래서 그 남자친구가 포털사이트 관리자에게 주의의무 위반으로 자신의 명예가 훼손됐다고 손해배상을 청구한 사건이었어요.” 
대법원은 포털사이트는 언론사의 기사를 저장, 선별해 게재하는 적극적인 기능을 하고 있으며 인터넷 포털사이트의 특성상 불법적인 게시물로 인한 피해가 크다는 이유로 포털사이트의 관리의무를 중대하게 평가했다. 이 판결 이후 포털사이트의 정책과 관련 법규 등에 변화가 생기는가 하며 인터넷 공간의 변화에도 적지 않은 영향을 끼쳤다.
“우리나라의 명예훼손 관련 법률은 민사상 책임뿐 아니라 형사상 책임까지 혼재해 있어 이것을 좀 정리하고자 이 사건을 다루게 됐어요. 표현의 자유에 대해서는 제도적인 정립이 꼭 필요해 보이고요. 공적이냐, 사적이냐 하는 것을 구별하는 것도 참 힘들지요. 연예인의 프라이버시는 어떨까요? 그 문제를 따지려면 연예인이 공인이냐는 답부터 찾아야 해요. 많은 논의가 필요한 부분입니다.”
앞선 두 경우처럼 두 가지 권리가 부딪히며 첨예하게 갈등하는 사건으로 K군의 사례를 빼놓을 수 없다. 사립고등학교의 일방적인 종교교육을 거부할 학생의 종교의 자유를 인정한  ‘K군 사건’은 우리 사회에서 종교의 자유 수준을 어느 정도 높이는 성과를 낳았다. 이는 학생들에게 특정한 종교를 선교할 학교의 ‘종교교육의 자유’와 종교를 믿지 않을 학생의 ‘종교의 자유’가 충돌한 사건이다.
대법원의 논의는 두 기본권 사이의 양립과 조화를 모색하는 방향으로 진행되었다. 그 과정에서 미성년자인 학생의 종교의 자유는 어디까지인지, 평준화 제도에 따라 강제로 학생들을 배정받는 학교의 권리는 어떻게 보호해야 하는지 등의 문제가 함께 대두된 바 있다.
종교의 자유와 관련해 우리나라에서 가장 시급한 과제로 남아 있는 또 다른 사안은 양심과 종교적 이유로 병역을 거부하는 양심적 병역거부자 문제다. K군 사건을 계기로 그는 양심적 병역거부 문제를 되씹었다. 국제적인 인권 문제로도 지적되고 있는 이 문제는 우리나라에서는 논의 자체를 꺼리고 있는 상황. 이에 대해 그는 다소 답답함을 호소했다. 
“우리나라 사람들은 군복무에 대한 트라우마가 너무 큰 것 같아요. 그래서인지 양심적 병역거부 문제가 도무지 논의의 장으로 드러나지 못하고 있어요. 정말 안타깝습니다. 징병제를 모병제로 바꾸면 어떨까요? 잘 모르겠어요. 세상에 군대가 없어져야 할까요? 세계에 군대가 없는 나라가 없을 뿐 아니라 특히나 분단국가인 우리나라에 군대를 없앨 수도 없겠지요. 극심한 대체 복무제를 실시하면 어떨까요? 정말 양심과 종교적인 이유로 병역을 거부하는 사람이 아니라면 절대 갈 수 없는…. 자꾸자꾸 이러한 논의가 이루어져야 한다고 봐요.”

사법부의 역할은 소수자를 보호하는 것

2시간여 동안 이어진 그의 이야기는 각각의 권리로 부딪히는 사건을 통해 우리 사회법의 모호성을, 특히 국가와 개인의 권리가 갈등하는 사례를 통해 민주주의의 의미를 깊이 고민하는 시간으로 마무리되었다.
“10대 판결은 사회와 법의식이 변화하는 가운데 법을 어떻게 해석할지, 사법부는 어떤 역할을 해야 할지 고민하게 한 사건들이었습니다. 하지만 분명한 건 헌법이 보장하는 소수자의 기본권을 보호하는 게 사법부의 역할이라는 것입니다.”
무엇보다 지난 판결을 보며 당시의 논의에 대한 아쉬움과 중요한 문제임에도 도무지 수면 위로 올라오지 않는 논의 안에 대해 안타까움을 토로하는 김영란 전 대법관. 그가 나름대로 풀어놓은 이번 이야기가 또 하나의 계기가 되어 향후 우리 사회에 핵심 사안에 대한 풍부한 논의의 장이 열리기를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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