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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산에 가고 싶다-광주 무등산
그 산에 가고 싶다-광주 무등산
  • 정현
  • 승인 2016.02.28 07:11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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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머니의 품처럼 넉넉한 국립공원의 막내
▲ 무등산 정상의 부드러운 곡선은 마치 어머니의 젖가슴처럼 포근하다

빛고을 광주의 진산 '무등산'(1187m)은 지난해 3월 정식으로 우리나라 21번째 국립공원으로 지정됐다. 국립공원 탄생은 1988년 변산반도와 영암 월출산 이후 24년 만이다. 국립공원으로 치면 막내라 할 수 있지만 무등산의 품은 어머니처럼 넉넉하기만 하다. 날카롭지 않고 푸근한 산세는 걷는 내내 마음을 보듬어주는 듯 따스했다.

인구 150만을 품은 도심 속 국립공원

무등산 산행은 초행길은 아니다. 출장 중 우연하게 무등산을 한번 찾은 이후 그 매력에 빠져 광주에 오게 되면 일부러 시간을 내어 여러 번 이 산을 올랐다. 하지만 출장 중 찾았던 무등산은 늘 시간에 쫓겨 조급했고, 그저 오르는 것에만 만족해야 했다. 그러나 이번에는 달랐다. 오로지 무등산을 목적으로 광주를 찾았고, 하루 종일 그 품에 안겨 구석구석 여유로운 시간을 보낼 수 있었다. 그리고 그동안 보이지 않았던 많은 것들을 마음에 담을 수 있었다.
무등산은 세계적으로 보기 드물게 150만 인구가 밀집한 대도시를 품고 있는 '도심 속 국립공원'이다. 특히 광주시민들에게는 무등산이 갖는 상징성은 남다르다. '무등'은 평등하다는 뜻, 산세가 모나지 않고 완만해 어머니처럼 넉넉하고 포근하게 도심을 품고 있어 '어머니의 산'으로 불려왔다.
무등산은 인구 100만 명 이상이 사는 대도시 근교에 있는 1000m 높이의 산으로는 세계에서 유일하다. 접근성이 뛰어나다는 것은 산객들에게 축복이나 다름없다.
무등산을 오르는 코스는 크게 2가지다. 증심사에서 출발해 서석대까지 오르는 코스를 사람들이 가장 많이 찾는다. 하지만 산을 오르는 내내 가파른 언덕길이 계속되는 이 코스보다는 반대편 원효사 쪽에서 출발하는 꼬막재 코스가 한결 수월하다. 무등산장에서 시작해 꼬막재, 장불재를 거쳐 입석대, 서석대에 오른 뒤 원효사나 증심사 쪽으로 하산하면 된다. 총 6~7시간 걸리는 만만치 않은 장거리 코스이지만 산길이 편안하고 내내 아름다운 풍광을 곁에 두고 걸을 수 있어 지루할 틈이 없다. 증심사에 비해 접근성은 떨어지지만 광주역이나 광천터미널에서 원효사까지 운행하는 1187번 버스를 이용하면 된다. 버스번호가 무등산 높이와 같은 '1187'이다.
공원관리사무소와 식당가를 지나 옛 무등산장에서 꼬막재까지는 울창한 원효사 계곡 상류를 거슬러 2㎞를 오르면 된다. 한시간 남짓한 오르막은 이 코스의 가장 난코스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완만한 오르막이라 그리 힘들지 않고, 울창한 숲길을 걷는 재미가 쏠쏠하다. 무등산 특유의 널찍한 돌이 많으면서도 부엽토로 뒤덮인 흙산이라 발걸음이 폭신폭신하다. 꼬막재 직전에는 힘줄처럼 뻗은 나무의 뿌리가 땅위에 그대로 드러난 길이 참으로 인상적이다. 그 힘찬 기운은 강진 다산초당 오르는 길에 있는 정호승 시인이 명명한 '뿌리의 길'에 전혀 뒤지지 않는다.

▲ 정상에서 내려다 본 산 아래 풍경

규봉암에는 신선이 살까?
 
꼬막재에 올라서면 잠시 땀을 식히는 것이 좋다. 이제부터 무등산의 진수를 하나씩 만나게 될 뿐더러 본격적인 산행이 시작되기 때문이다. 장불재까지는 4.3㎞. 계속 이어진 허릿길 따라 무등산을 한 바퀴 돌면 되는데 왼쪽으로 펼쳐진 아득한 산 아래 시골 풍경이 마음을 푸근하게 해준다.
지금까지와는 달라진 풍경에 취해 걷다보면 드넓은 신선대 억새평전에 다다른다. 산 위에서 광활한 억새숲을 만난다는 것이 꿈만 같다. 전에 이 길을 걸어갔을 때에는 시간에 밀려 바쁘게 걷다보니 눈에 들어오지 않았던 풍경이다. 신기하기도 하고 무슨 횡재를 한 것만 같은 기분이다. 이곳 억새평전에서 바라보는 무등산 정상의 유순한 곡선은 마치 어머니의 젖가슴처럼 포근하다.
계속 길을 잇는다. 1시간 정도 더 가게 되면 신선이 살 것만 같은 암자 규봉암 입구다. 규봉암에 들른 것도 이번이 처음이다. 산속 암자가 다 그저 그러려니 했다가 마주하게 된 규봉암을 보고는 그만 입이 떡 벌어지고 말았다. 신라고찰 규봉암은 등 뒤로 무등산 3대 석경(石景) 중 하나인 광석대를 비롯해 10개의 기둥바위가 숲을 이룬 절경을 자랑한다. 신선이 살 것 같기도 하고 저 모퉁이에서 손오공이 튀어나올 것만 같은 기이한 풍경이다. 암자에 살면서 길손들을 반겨주는 사자개 한마리가 더욱 그런 기분이 들게 했다.
규봉암에서 다시 허릿길로 들어서면 보조국사가 도를 닦았다는 보조석실에 지공대사가 설법을 펼쳤다는 지공너덜이 나타난다. 나무 한 그루 없이 큼직한 바윗덩이들만 끝없이 널린 지공너덜은 곧 만나게 되는 입석대, 서석대와 같은 주상절리대가 붕괴되면서 생긴 기이한 풍경이다. 흙산인 무등산 군데군데 바위무더기가 많은 이유이기도 하다. 지공너덜 바위에 난 길을 따라 다시 한 번 산허리를 돌아가면 장불재에 올라선다.

무등산의 백미 ‘입석대’와 ‘서석대’

▲ 입석대의 기이한 풍경

장불재는 무등산을 찾는 많은 등산객들의 지친 발걸음을 위로해주는 휴식처다. 그 위로는 정상인 천왕봉으로 오르는 길목에 무등산 최고의 절경이라는 입석대, 서석대가 있다. 계단을 따라 15분 정도 오르면 먼저 입석대가 반긴다. 병풍처럼 둘러선 돌기둥들이 마치 그리스 신전에 와있는 기분이다. 이 주상절리대의 형성 시기는 무려 8500만년 전으로 추정되며 중생대 백악기에 발생한 화산 활동으로 용암이 냉각, 수축하면서 생겨났다고 한다. 비슷한 모양의 서석대는 10분 정도 더 오르면 된다.
입석 무더기가 서쪽으로 늘어서 있는 서석대는 저녁이면 석양빛에 물든 풍경이 특히 아름답다고 소문났다. 어느 계절에도 좋지만 겨울철 돌기둥에 눈꽃이 피면 더욱 환상적이다. 광주시는 지난 2005년 12월 입석대와 서석대를 천연기념물 제465호로 지정했다. 유네스코 세계유산 등재도 추진 중이다.
서석대의 높이는 해발 1100미터. 87미터를 더 오르면 정상인 천왕봉이지만 가는 길목을 군부대가 막고 있어 더이상 갈 수가 없다. 하산길은 서석대에서 중봉을 거쳐 증심사로 방향을 잡으면 된다. 이제부터 지금까지 걸어온 길과 달리 2시간 가까이 가파른 내리막길이 이어진다. 하산길은 내내 시야가 탁 트여 장쾌한 풍광을 만나는 것은 보너스다. 아파트 군락이 우뚝우뚝한 광주 시내도 한 눈에 들어온다. 오랜 세월을 그 상처 많은 도시를 어머니처럼 안고 보듬어주는 산이 무등산인 것이다.
증심사가 있는 증심사 지구에 도착하면 6시간이 넘는 긴 산행도 막을 내리게 된다. 이제 어머니의 품처럼 푸근하고 넉넉했던 산세와도 이별이다. 언제 다시 그 품에 안길 수 있을까, 어머니의 품을 떠나는 어린 자식마냥 괜스레 서글퍼지는 마음으로 다음을 기약해본다.

찾아가기
원효사 쪽으로 올라 증심사로 내려오려면 대중교통을 이용하는 것이 편하다. 고속버스나 기차를 이용해 광주로 간다. 광주터미널에서는 25분 간격으로 운행되는 1187번 버스를 타고 종점인 원효사에 내리면 된다. 광주역 건너편에도 무등산행 1187번이 지난다. 증심사에는 시내로 가는 9번 버스가 기다리고 있다. 광주고속버스터미널에서 내려 방향을 잡으면 된다.

글.사진 | 유인근(스포츠서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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