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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복선의 민화가 있는 음식과 시
한복선의 민화가 있는 음식과 시
  • 송혜란
  • 승인 2016.02.28 07:44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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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복선 원장은 조선왕조 궁중음식의 대가인 고 황혜성 교수의 둘째 딸이자 중요무형문화재 제 38호 ‘조선왕조 궁중음식’ 이수자인 궁중음식 전문가다. 주식회사 대복을 운영하고 있으며 한복선식문화연구원 원장으로 일하고 있다. 수많은 요리책을 펴내며 미식작가로도 불리는 한 원장은 최근에 음식 시집을 출간하며 시인이라는 타이틀까지 얻었다.

취재 송혜란 기자 사진 이용관

시인이자 밥 하는 여자

처음 마주한 한 원장은 굉장히 긍정적이고 유쾌한 사람이었다. 굳이 질문을 던지지 않아도 그간 살아온 생애 히스토리를 쉴 새 없이 풀어놓았다. 그의 이야기를 다 듣고 느낀 점은 ‘한복선이라는 사람은 늘 새로운 것을 배우는 데 열정적이라는 것’.
“지난 후 생각해 보니 제가 해온 일에는 늘 텀이 있었던 것 같아요. 나이, 시기에 따라서요. 처음 궁중음식을 해야겠다 마음먹었을 때는 전통만 알아서는 안 된다는 생각에 식품영양학을 전공했어요. 당시 어머니를 도우며 옆에서 많이 보고 배웠지요. 향토음식을 많이 쫓아다녔어요. 학교를 졸업하고 나서는 결혼 후 미국으로 가 아이 둘을 낳고 5년간 시카고에서 요리를 배우기도 했고요. 다시 한국으로 돌아와서는 본격적으로 요리연구가를 직업으로 삼아 일이라는 것을 시작했습니다.”
어머니가 음식을 하는 거장이었지만 한 원장은 집에서 사사롭게 어머니에게 요리를 배운 적이 없다. 교육을 위한 교육이라며 어머니가 직접 옆에 끼고 그에게 조수로 일하게 하며 음식을 가르쳤다고. 그때까지만 해도 그녀는 궁중음식에만 몰두했다. 그러다 잠깐 싱가폴과 사우디에 1년씩 다녀오면서 처음 외국요리에 눈을 떴다. 다양한 종류의 음식을 흡수하던 때였다. 이후 궁중음식연구원에서 쭉 일하다 서초동에 한복선요리학원을 차리며 10년 동안 가정요리 수업을 진행했다.
“그때 참 잡지촬영을 많이 했어요. 하루를 오전, 오후로 나눠 늘 빽빽하게 스케줄이 잡혀 있었지요. 당시에는 셰프라는 직업이 없어 잡지의 쿠킹 지면을 요리전문가가 다 메꾸었으니까요. 부록이 나가는 달에는 한번에 70가지의 음식을 만들어 찍기도 했었어요. 하루에 책 한 권을 뚝딱 만들며 참 바쁜 시간을 보낸 때였어요. 지금 생각해보면 살면서 가장 요리를 많이 했을 때가 그 시기였던 것 같아요. 평소 해보지 못한 요리도 그때 다 했어요. 제 나이 40대였을 때인데 스스로 참 많은 요리법을 터득했지요.”
당시 ‘오늘의 요리’라는 방송 프로그램에까지 출연한 한 원장의 공부는 쉼이 없었다. 특히 한창 건강요리가 트렌드화 되던 때라 약선음식까지 따로 배우기도 했다. ‘왕실의 보양식으로는 무엇이 있는가?’란 콘셉트에 걸맞게 방송을 이끌려면 약선음식의 전문가가 되어야 한다는 생각이 컸다. 그래서 당시 동양 의학에 대한 공부에도 최선을 다했다고.
도중에는 학원까지 운영하면서 외식경영학에 대한 연구도 했다. 그는 배운 것을 활용하기 위해 지금은 학원에서 더 나아가 아예 주식회사를 설립해 운영하고 있다. 주로 음식상품을 개발해 인터넷과 홈쇼핑에 판매하는 일을 맡고 있다고 한 원장은 설명했다.

요리법에 음식 문화를 곁들이다

당시 한 원장이 공부한 분야가 요리에 대한 것만은 아니었다. 수많은 잡지촬영, 방송출연에 임하면서 자연스럽게 책 공부도 하게 됐다. ‘사람들이 왜 오늘의 요리를 좋아해 줬을까?’에 대해 많이 고민했다는 그는, 자신이 음식을 만드는 법뿐 아니라 음식에 관한 문화적인 이야기까지 들려줬기 때문이라는 답을 내렸다고. 그때부터 사람들은 이미 인문학에 목말라 있었던 것이다. 한 원장의 오랜 고민에 대한 답은 그가 처음 시를 쓰게 하는 밑거름이 되었다. 
“그동안 잡지에서나 방송, 강연에서 참 많은 이야기를 해왔습니다. 이를 글로 풀어쓰면 꽤 많은 양이 나올 거예요. 그 중 ‘음식은 이렇게 만들어야 맛있다’라는 글은 요리책으로 많이 냈고, 그곳에서는 다루지 못한 이야기를 펴낼 공간이 필요했어요. 예를 들면 음식에 대한 역사나 문화, 감수성 등이요. 음식에는 이러한 인문학적인 요소가 아주 많아요. 음식은 사람이 만들고 사람이 없으면 음식도 있을 수 없잖아요. 결국 음식이 사람인 거지요. 보통 시인들은 음식에 감성만 담아 시를 쓰는데 저는 거기에 실제로 음식을 만드는 법까지 함축적으로 녹여냈어요.”
자신의 시에는 어머니, 아내로서 여성의 삶 즉, 현 시대의 통과의례가 모두 들어 있다는 게 한 원장의 설명이다. 특이한 것은 시 자체에 음식을 만드는 법도 모두 함축적으로 들어갔다는 점.
이에 한 원장의 시를 찬양하는 독자들은 간혹 ‘어머니 찬장에 꽂아두고 싶은 책’이라는 표현을 쓰기도 한다. 그녀의 시 자체가 훗날 당시의 식문화를 알려주는 역사 사료의 역할을 할 수 있다는 평도 있다.
“제 시에는 ‘나는 오늘 햇반을 먹었다’든지 ‘홈쇼핑에서 무엇을 주문했다’든지 시대성을 알 수 있는 이야기가 많이 들어 있어요. 우리는 옛날의 식문화가 어떠했는지를 알고 싶을 때 고전을 펼쳐보잖아요. 역으로 몇십 년 후쯤에는 지금의 식문화가 궁금해 제 시를 연구할 수도 있지요.”

손수 그린 민화가 주는 우아함

한 원장은 두 번째 시집 <조반은 드셨수>에 손수 그린 민화도 함께 실었다. 민화를 배운 지 10여 년이 넘었다는 그는 자신의 민화에 소채(蔬菜)가 많이 등장하는데 그 화사한 색감이 궁중음식과 꼭 닮았다고 설명했다. 한 원장의 민화는 주로 꽃, 나비, 나무, 채소처럼 소박한 아름다움이 있는 것들이 소재로 활용됐다. 그림은 은은하면서도 화사해 고고하고 우아함 느낌을 준다.
“제게는 늘 전환기가 있었던 것 같아요. 어머니가 항상 제게 했던 말이 ‘너는 용두사미로 무엇을 시작하면 끝내지를 않는다’였어요. 어릴 때부터 하고 싶은 게 너무 많아서 꽃꽂이부터 기타, 피아노, 유화, 붓글씨 다 해봤어요. 그 중에서 제 마음속에 늘 항상 남아 있는 게 있었는데 그게 바로 그림 그리는 거였지요. 제일 꾸준히 해온 것이 바로 민화였어요.”
민화가 들어간 이번 시집이 첫 시집과 다른 점은 또 있다. 고민을 많이 해 조금 더 무겁게 썼다고. 이를 한 원장은 이처럼 표현했다.
“여자가 시집을 두 번 가려면 더 어렵지요? 그거와 똑같아요. 생각을 더 많이 해서 시집을 가야 하는 것처럼 저도 두 번째 시집을 낼 때 고민을 참 많이 했어요. 제가 알고 있는 음식에 대한 상식보다는 시 자체에 대해 더 집중했다고나 할까요. 시적인 요소를 더 많이 넣으려고 했어요."

“저는 심플하고 콤팩트 한 게 좋아요”

평소에도 한 원장은 시적인 삶을 살고 있다. 수필처럼 긴 글보다 함축적인 시를 더 좋아하는 것처럼 무엇을 하든 늘 심플하고 콤팩트 한 것만을 추구한다고. 쉽게 생각해 결정도 빠르게 진행하며 후회 없이 사는 게 생활화 되어 있다. 실제 집에서 음식을 만들어 먹을 때도 마찬가지다.
“사람들이 제가 집에서도 굉장히 잘 차려 먹을 거라고 생각하는데 실제로는 그렇지 않아요. 굉장히 심플하게 해먹어요. 사실 한식도 잘 안 해먹어요. 신랑이 찌개나 국을 좋아하지 않아 주로 서양음식을 해먹지요. 샐러드는 기본이고, 웬만하면 조리를 많이 하지 않는 음식으로 가짓수를 줄여 먹는 편이에요.”
나이를 먹으니 식성도 변해 이제는 조리하는 게 싫다는 한 원장은 요즘 요리를 보면 너무 도가 지나치다고 말한다. 예전엔 동물과 인간이 다른 점이 조리하는 것이라고 보고 그냥 날 것으로 따먹고 캐서 먹는 것은 동물이나 하는 것으로 여겼지만, 이제는 우리도 그럴 필요가 있다는 게 그의 생각이다.

한식의 대중화에 힘쓸 것

어머니도 그랬고 언니인 한복려 교수도 무형문화재로 나랏일을 하고 있다. 하지만 자신은 공적인 일보다 자기 자신에게 더 집중하고 있다고 말하는 그는, 현재 운영하고 있는 식문화연구원과 대복 등을 통해 한식의 대중화에 이바지할 것이라고 말했다.
“대복이라는 회사에서는 한식에 대해 연구하고 상품을 개발해 유통하는 일을 하잖아요. 저는 그것 자체가 한식의 대중화의 일환이라고 봐요. 사실 대복의 고객들은 한복선이라는 브랜드에 대한 믿음으로 제품을 선택해요. 그래서 앞으로 제가 해야 할 일은 음식을 하는 사람으로서 믿음을 줄 수 있는 사람, 본보기가 되는 사람, 모범적인 사람이 되는 것이라고 생각해요.”
요리가로서의 역할 이외에도 한 원장은 개인적으로 글쓰기, 그림 그리는 일을 계속하고 싶다고 말했다. 나이를 먹으면 먹을수록 더 그 나이에 맞게 사는 게 꿈이라고. 특히 시와 함께 어우러진 인문학적인 강의를 진행하는 것이 앞으로 본인의 역할인 것 같다고 남은 꿈을 펼친다. 이 모든 것은 그녀가 스스로 계획한 것이 아니라 매 순간의 결정에 따라 물 흐르듯 왔다는 데 의미가 있다. 마치 이미 정해진 운명에 조금씩 이끌려 온 삶처럼.

▲ copyright 한복선.

※ 한복선 추천 시

<조반은 드셨수>

마마 은주발에 수라상
새옹 곱돌솥에 백탄 때서 지으니 잣죽 끓는 듯 고소한 냄새
기미상궁 “마마 수라 젓수십시오”
둥근 해 빨간 수라상에 12첩 반상 드시고 백성을 이끄신다

아버님 독상차림
유기주발에 가마솥 솔가지 떼어 지은 밥
국 김치 반찬 고루 갖춰 3, 5, 7, 9첩 형편 따라
진지상 올려 힘나게 드시고 평생 식구를 키우신다

우리 어머니는 아픈 아기에게
어미 입에 밥 잘근잘근 씹어 먹이시며
밥 먹어야 힘 난다며 평생 부엌에서 사셨다
어머니 돌아가시기 전에도
막내아들 보며 “조반은 드셨수”
한낮인데 아침밥 걱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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