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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시대의 진정한 지성인 신영복, 영원히 잠들다
이 시대의 진정한 지성인 신영복, 영원히 잠들다
  • 권지혜
  • 승인 2016.02.29 13:31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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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 가는 길
▲ 사진=인터파크 제공

며칠째 하늘이 흐리다. 마치 신영복 교수(성공회대 석좌교수)의 타계를 슬퍼하는 이들의 마음을 대변하듯이 먹먹하다. 흐렸던 하늘은 그의 마지막 가는 길을 환히 비추듯 영결식 당일 맑게 개었다. 그의 빈소를 찾는 발길은 끊이지 않았으며, 1천여 명이 넘는 이들이 영결식에 참석했다. 이 시대의 진정한 지식인의 마지막 가는 길을 퀸이 함께했다.

고인이 떠나던 날

지난 1월 16일, 성공회대 신영복 석좌교수가 2년간의 투병 끝에 향년 75세로 타계했다. 2014년 희귀 피부암 진단을 받고 2년간 투병생활을 해오던 그는 암이 다른 장기로 전이되어 끝내 자택에서 숨을 거뒀다.
빈소가 마련됐던 성공회대 대학성당에는 지난 사흘간 그를 추모하는 발길이 끊이지 않고 이어졌다. 사람과 사람과의 관계를 가장 중요하게 여겼던 故 신영복 석좌교수. 고인이 떠나가는 마지막 길은 외롭지 않았다.
<더불어 숲>, <감옥으로부터의 사색> 등 고인이 집필한 서적과 서예 작품 등이 전시된 추모 전시실에도 고인을 기억하는 추모객들의 발길이 이어졌다. 작은 전시실 안에는 고인이 집필한 서적 15권과 서예 작품 25여 점이 전시됐다. 추모객들은 전시실 한 쪽에서 상영되는 고인의 생전 영상을 보며 눈물짓기도 했다. 전시실 밖과 교정 곳곳에는 신 교수의 제자들이 손수 적은 엽서 수백 장이 붙어 있었다.
엽서에는 ‘사람이 희망임을 온몸과 영혼으로 가르쳐 주셔서 감사합니다’, ‘선생님께서 살아오신 삶과 글을 보며 더불어 함께 사람들과 하겠습니다’, ‘선생님의 가르침에 부끄럽지 않은 사람이 되도록 노력하며 살겠습니다’ 등의 마음이 담긴 글로 신 교수를 추모했다.
정치권에서도 신 교수를 애도하는 물결이 일어났다. 문재인 더불어민주당 대표는 자신의 페이스북에 “신영복 선생님은 대선 패배에 누구보다 아파하시고, 다 함께 정권교체 꼭 해내자고 격려해주셨던 분입니다. 선생님이 제게 써주신 ‘처음처럼’과 노무현 대통령에게 써주신 ‘우공이산’은 저의 정신이 되고 마음가짐이 됐습니다. 선생님께 소주 한잔 올립니다”라고 애도했다. 이어 박원순 서울시장은 “우리 시대의 스승 신영복 선생님이 돌아가셨다”며 “써 주신 ‘서울’이라는 글씨가 마치 북한산과 한강같이 준엄하고 유려하다. 참 슬프다. 영면하소서”라는 글을 게시하기도 했다.
18일 오전 11시에 엄수된 영결식에는 칼바람이 부는 영하의 날씨에도 불구하고 유족과 지인, 일반 시민 1천여 명이 그의 마지막 가는 길을 지켰다.
참석자가 많아 일부는 통로 계단에 앉거나 선 채로 영결식을 함께 했다. 사회는 고인이 생전 강연을 했을 때 사회를 자처하고 나섰던 방송인 김제동 씨가 맡았다.
김기석 신부의 집례로 시작된 발인예배에서 김 신부는 “이 세상에서 귀한 가르침을 베풀어주신 것처럼 하늘에서도 세월호에서 생을 마감한 어린 영혼을 비롯해 미처 배움의 기회를 갖지 못하고 삶을 마감한 불쌍한 영혼들의 선생님이 되어주시길 바랍니다”라고 말했다.
영결식 중 생전 고인의 영상이 띄워지며 “아픔이나 비극도 꼭 그만한 크기의 기쁨으로 극복되는 것은 아니다. 관계야말로 기쁨의 근원이다”라고 말하는 고인의 모습이 나타나자 영결식장은 눈물바다로 뒤덮였다.
고인이 생전에 즐겨 불렀던 노래 ‘시냇물’을 추모객들이 함께 부르며 영결식이 끝났다.
“냇물아 흘러흘러 어디로 가니, 넓은 세상 보고 싶어 바다로 간다.”
이제 고인이 된 신영복 성공회대 석좌교수가 노래를 부르는 모습이 강당 화면을 가득 채웠다. 고인이 동요 ‘시냇물’을 선창하자, 영결식에 모인 추모객들은 한목소리로 노래를 따라 불렀다.
영결식이 끝난 후 국화꽃을 든 추모객들은 성당 입구에서부터 성공회대 정문 앞까지 길을 만들었고, 고인의 시신은 그 길을 따라 300m를 이동해 학교 정문 운구차로 옮겨졌다. 운구가 시작되자 추모객들은 관 위에 꽃을 한 송이씩 올리며 마지막 인사를 건넸다.

이 시대 지성인 신영복 교수의 ‘마지막 강의’

1941년 경남 밀양에서 태어난 그는 서울대 경제학과와 동 대학원 경제학과를 졸업했다. 그 뒤, 육군사관학교 경제학과 교관으로 있던 중 1968년 통일혁명당 사건으로 구속됐다. 1988년 광복절 특별 가석방으로 20년 만에 출소한 뒤, <감옥으로부터의 사색>을 출간해 큰 반향을 불러일으켰다. 수감생활을 하면서 느꼈던 한과 고뇌를 230여 장의 편지와 글에 담아 삽화와 함께 실었다. 이후 <엽서>, <나무야 나무야>, <더불어 숲>, <강의(나의 동양 고전 독법)> 등 깊은 사색과 폭넓은 사상이 담긴 책을 펴냈다.
그리고 2014년 겨울 마지막 강의를 마치고, 동양 고전에 대한 저서 <강의> 출간 후 10년 만에 성공회대 강의를 녹취한 원고를 바탕으로 펴낸 <담론 - 신영복의 마지막 강의>. 그는 “앞으로 강단에 서지 못하는 미안함을 이 책으로 대신한다”고 했다. <담론>은 신 교수의 철학을 집대성한 책인 동시에 그의 유작이 되었다.
<담론> 출간을 기념하는 마지막 강의에서 그는, 사전 검열에 막혀 옥중에서는 마음껏 전하지 못한 이야기를 솔직하게 털어놓기도 했다. 또한, 지금껏 그래 왔듯이 고통과 고난, 어려움을 겪고 있는 이 시대 청년들의 고민에 성실히 답해주었고, 그의 말 한 마디 한 마디는 많은 이의 가슴을 울리며 위안을 주었다.
“우리 시대의 청년들이 너무 힘든 것은 여러분들도 잘 알 것입니다. 여러 가지 당면한 목표가 있을 수도 있지만 내가 청년들에게 하고 싶은 말은 아무리 고생스럽더라도 청년 시절을 잃으면 안 된다는 것입니다.”
아름다운 멜로디로 강연을 더욱 빛내주었던 그의 제자들 ‘더숲트리오’는 “신 교수의 다음 책은 ‘신영복의 진짜 마지막 강의’가 될 것입니다”라는 바람을 드러냈었다. 가슴 아프게도 <담론>은 그의 진짜 마지막 강의의 기록이 되었다.
향년 75세. 우리에게 많은 가르침을 주고 떠난 故 신영복 석좌교수. 그는 이 시대의 진정한 참스승이자 지성인이었다. 이제 먼 곳으로 떠나 더는 가르침을 얻을 수 없지만, 생전 그가 남긴 글씨와 저서에 담긴 가르침으로 우리의 가슴 속에 깊이 간직될 것이다. 투병으로 힘들었던 지난 2년을 훌훌 털어버리고 부디 좋은 곳에서 편히 쉬시길 바란다.

퀸 8월호 생전 고인의 마지막 강의 기록

신영복 교수는 “삶 자체가 공부”라고 말했다. 삶은 세계라고 볼 수 있는데 세계와 인간, 삶과 사람이 어우러져 ‘삶’ 그 자체가 사람이고 공부라는 것이다. 특히 공부는 ‘사실’보다 ‘진실’을 찾아내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시경에 나오는 한 여자의 전설을 예로 들었다. 비록 그 전설 자체는 사실이 아니지만, 그 속에는 사실보다 더 중요한 당시의 상황인 ‘진실’이 담겨 있었다. 그러므로 공부는 “현실보다 그 배후에 있는 것을 찾아내는 일”임을 그는 재차 강조했다.

신 교수는 이어 어린 시절, 한 친구의 이야기를 통해 자신의 잠재의식 속으로 들어온 사색에 대해 풀어놓기도 했다. 정체성과 아이덴티티는 배타적인 자신만의 것들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수많은 사람들, 수십 번 겪은 일이 구성하는 것이라고 했다. 이런 생각을 하게 된 것은 그가 중학교 1학년 때 만난 친구의 말을 들은 뒤부터였다.

새해가 되어 담임선생님이 한 사람씩 새해 각오를 말하라고 시켰다. 그 때 그 친구는 “시간이라는 것, 세월이라는 것은 강물같이 흘러가면 그만인데”라고 말해 그는 적잖은 충격을 받았다고 한다. 그때의 경험이 그의 저서 <감옥으로부터의 사색>을 낳게 한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한다고.

이 책의 제목은 그가 감옥에 있을 때 후배들이 지어준 것이다. 그는 자신이 책 제목을 썼다면 절대 ‘사색’이라는 외람된 단어를 쓸 수 없었을 것이라고 겸손해 했다. “후배들이 보기에 그 글 속에 사색적인 면이 있었다면 그건 아마도 강물 같은 세월을 얘기한 그 친구 때문이 아니었을까”라는 그는 친구의 말이 잠재의식에 남아 보다 깊은 생각을 할 수 있었던 것 같다고 말했다. 자신과 주변인과의 관계를 자각하면 그 사회 안에서 살아가는 자신뿐 아니라 세계도 함께 변한다. 이에 그는 “공부는 머리에서 가슴으로 가는 데서 멈추지 않고 더 나아가 발끝까지 이르러야 하는 것”이라고 마지막 가르침을 전했다. 그의 말에 강연장은 일제히 깊은 사색에 빠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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