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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BS 정용실 아나운서, 어느 날 내 삶 속에 들어온 책
KBS 정용실 아나운서, 어느 날 내 삶 속에 들어온 책
  • 권지혜 기자
  • 승인 2016.02.29 13:3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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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년 차 베테랑 방송 아나운서 정용실. 그녀가 책을 만나고, 그와 관련된 활동을 하기 시작한 것은 꽤 오래 전부터다. 최근 모 대학의 특별 강연에서 “책의 깊이를 알게 되면 세상이 달라진다”는 이야기를 펼치기도 한 그녀. 정용실 아나운서에게 듣는 책으로 얻는 삶.

정용실 아나운서는 1991년 KBS 18기로 입사한 25년 차 베테랑 아나운서다. 대한민국 대표적 여성 진행자라고 해도 손색이 없다. <주부, 세상을 말하다>부터 시작해서 <여성공감> 등 여성 프로그램 진행했으며, <한국 한국인>, <즐거운 책 읽기> 등 주로 교양 프로그램에서 시청자들과 만나고 소통했다.
당시 27살이라는 이른 나이에 결혼해서 바로 아이까지 낳은 그녀에게 책은 어느 날 문득, 그녀의 삶 속으로 들어왔다. 힘들고 어려웠던 시기에 그녀는 책을 통해 돌파구를 찾았다. 그리고 달라진 그녀의 삶. 그녀는 19년째 책과 만나고 있다.

우연히 책과 만난 서른 즈음에

정용실 아나운서가 책과 인연을 맺게 된 때는 그녀 나이 서른이었다. 그전에는 책을 만났다고 얘기하지 않는다. 물론 누구나 그렇듯 그녀 역시 학교에 다니며 많은 책을 읽었고, 숙제하기 위해 책을 읽기도 했다. 하지만 그렇게 책을 읽는 것은 ‘만남’이 아니다.
“사람도 상황에 따라 만나기도 하고 필요로 만나는 경우가 있지만, 그 만남이 모두 인연이 되는 것이 아니듯이, 저와 책이 인연이 된 때가 바로 제 나이 서른이었죠.”
그녀가 아이를 낳은 지 2년 정도 됐던 시기다. 당시 그녀는 고민이 많았다. 아이가 너무 어려 말을 잘하지 못해 대화가 잘 안 되던 때. 게다가 직장 생활을 해야 하는데 잘 풀리지도 않았다. ‘아이가 자는 동안에 나는 나를 위해서 무엇을 할 수 있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방송이 있어서 준비하는 것도 아니고, 육아로 다른 것은 할 수 있는 여건이 안됐다. 집을 비울 수도 없었다. 그때 그녀가 아주 소극적으로 선택한 것이 바로 책이었다. 그리고 책과의 만남은 아주 사소하고 우연히 다가왔다.
“아이를 데리고 비디오 대여점에 갔어요. 아이들이 만화를 빌려 보는 것을 좋아하잖아요. 그때는 비디오 대여점 한편에 헌책을 진열해 놓고 빌려줬었어요. 평소 같으면 서점에서 사서 보는데 ‘그냥 한 번 빌려 보자’하는 생각에 책을 빌렸어요. 안 읽으면 도로 갖다 주면 되니까요.”
그때 그녀가 고른 책은 공지영 작가의 단편집이었다. 책이 어떤 즐거움을 줄 거라는 생각도 없었다. 그냥 우연히 빌려 와서 한 편을 읽었는데, 아주 많은 감정의 해소가 되었다. 책을 읽고 울기도 하고 웃기도 하면서 감정 해소에 도움이 되었다. 아이를 낳고 키우면서 힘든 부분, 직장 생활을 하며 한 여자로 살아가는 것에 대한 고민이 점점 해소되었다.
궁극적으로 자신을 도와주는 사람이 없다고 느끼던 그때, 그녀는 책으로부터 위로를 받았다. 어떤 사람들은 책에서 지식을 얻기도 하고 거창한 질문에 대한 답을 얻기도 하지만 그녀는 달랐다. 책에서 삶을 다시 살아갈 힘을 얻었다.
“그때 처음 읽었던 책이 소설이었어요. 지금도 소설을 읽고 있고. 왜냐면 해답이 그려져 있지 않아서 좋아해요. 우리 인생이 그런 거거든요. 정답이 없는 소설책이 우리 삶과 가장 비슷한 것 같아요. 저에게 소설책은 방송으로 사람들을 만나는 것처럼 한 사람의 이야기를 듣고 있다는 느낌을 줘요. 저는 그런 이야기를 듣는 것이 좋아서 아직도 방송을 하는 거구요.”

책을 만난 후 달라진 삶

책을 만난 후, 그녀의 인생을 많이 달라졌다. 서른에 책을 만난 뒤 그녀는 5년 정도 미친 듯이 책을 읽었다. 책의 주제를 막론하고, 그저 좋다고 느껴지는 책을 아무거나 읽었다. 장르는 주로 소설이었다. 읽다 보니 자신의 이야기를 쓰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글로 인생을 돌아보고 싶었다. 그녀는 일기처럼 자신의 인생을 정리했다.
‘나는 어렸을 때 어떤 아이였을까, 나는 뭘 좋아하지? 행복해지고 싶다고 말하는데 행복이란 뭘까?’
책을 읽기 시작하고 나타난 가장 큰 변화는 이런 것들을 정리하면서 자신을 멀리서 보게 되었다는 것이다. 그전에는 슬픈 일이 있으면 그 속에 갇혀 헤어 나오지 못하고, 상처를 치유하지 못했다. 하지만 글을 쓰게 되면서 그런 감정 속에서 허우적대다가도 한발 떨어져서 자신을 바라보게 되었다. 고통을 객관적으로 보게 되고, 감정에 빠져 있지 않고 나올 힘이 생겼다.
책을 읽으며 웃기도 하고 울기도 한다. 그러면서 그녀는 감정을 컨트롤할 수 있게 되었고. 그렇게 책을 읽으며 쏟아 내고 나면 시원한 느낌이 든다고 한다. 책은 정용실 아나운서의 삶을 훨씬 건강하게 만들어 주었다.
“책을 읽는다고 해서 단박에 변화가 오지는 않아요. 저는 5년 정도 걸렸는데, 제가 스스로 변하고 있다는 것을 느낄 때, 세상의 여러 가지 패턴이나 일들을 이해하게 될 때 ‘아 책을 잘 읽었구나’하는 생각이 들죠. 여전히 안 풀리는 문제들은 있지만, 그럴 때는 다시 책으로 들어가요.”

‘나’를 나타내는 단어, ‘열정’

우리나라 여성 작가의 책은 거의 다 읽었다는 그녀. 그녀는 자신의 인생 책으로 산도르 마라이의 <열정>을 꼽았다.
“사람마다 자기의 단어가 있어요. 자기가 많이 쓰는 어휘, 상대가 나를 보고 평가하는 어휘들이 있어요. 저는 열정이라는 말을 좋아해요. 항상 모든 일을 할 때 자기 것을 다 던지고 할 수 있는 것. 그게 굉장히 매력적으로 느껴져요. ‘그게 뭘까’ 늘 고민했었어요. 사람들이 저를 보고 열정적이라고 할 때 ‘왜 나는 열정적이지’ 하는 의문을 가졌죠. 열정이 뭘까. 저도 잘 모르겠는 거예요.”
그저 제목에 이끌려 고른 <열정>이라는 책은 사랑 얘기다. 그녀는 책을 읽으며 열정의 다른 말은 사랑이라는 것은 느꼈다.
“일에 대한 열정이 있다는 것은 일을 사랑한다는 뜻인 거죠. 사랑하지 않고는 열정이 생기지 않아요. 어떻게 사랑하지 않는데 열정적으로 할 수가 있겠어요.”
그녀는 이 책을 주변에 많이 추천한다고 했다. 국내에 많이 알려지지 않은 작가의 책이지만 글이 좋고, 짧다는 것. 책을 다른 사람에게 추천할 때, 두꺼운 책을 추천하는 것은 예의가 아니라는 것이 그녀의 지론이다.

여전히 하고 싶은 많은 이야기들

언젠가 그녀에게 어떤 후배가 “언니는 10년 뒤에 뭘 할 거야?”라는 질문을 한 적이 있었다. 그녀는 대답하지 못했다. 아나운서라는 직업 자체가 프로그램을 고르기보다는 주어진 대로, 그 속에서 최선을 다하는 것이기 때문이었다. 그렇게 하다 보니 자연스럽게 자신이 좋아하는 분야의 프로그램들을 맡게 되었다. 그리고 지금은 책을 내려고 준비 중이다. 그녀에게 글을 쓴다는 것은 훈련 과정과도 같다. 여전히 하고 싶은 이야기가 많아 계속 글을 써야 할 것 같다고 말한다.
그녀의 꿈은 아주 소박하다. 어쩌면 많은 사람이 어려워하는 것일지도 모른다. 자신이 좋아하는 것을 놓지 않고 계속 가져가는 것. 바쁘다는 이유로 좋아하는 것을 뒤로 미루지 않는 것이다. “과거의 10년이 현재의 나를 규정하듯이 현재의 내가 미래의 나를 결정하는 거니까요. 내가 즐겁고 재밌는 것, 그런 것을 하는 게 진짜 나니까”라고 말하는 그녀는 단지 현재를 열심히 살고, 즐겁게 살아야겠다고 생각한다. 주어진 것을 힘들게만 받아들이지 말고 그 안에서 의미를 생각하면서 하려는 것.
“그저 좋아하는 것을 계속하고 싶어요. 19년 동안 좋아하는 책을 놓지 않았듯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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