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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자를 위한 남자 이야기 - 작가 김형경의 현명한 조언
여자를 위한 남자 이야기 - 작가 김형경의 현명한 조언
  • 송혜란 기자
  • 승인 2016.03.09 04:56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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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내가 만난 남자, 정말 괜찮을까? 내 남편은 도대체 왜 이러는 거지? 수십 년을 같이 살아도 도무지 알다가도 모르겠는 내 옆의 남자. 그 남자를 이해하지 못해 속을 끓이는 여자들을 위해 김형경 작가가 나섰다. 국내 최고 심리 에세이스트의 날카로운 통찰과 진솔한 언어로 듣는 명쾌하고 현명한 조언.

취재 송혜란 기자 사진 창비 제공

30여 년 전 <문예중앙>에 시로, <문학사상>에 중편 <죽음잔치>로 등단한 김형경 작가는  소설가이지만, 인간의 내면 깊은 곳에 내재한 감정의 실체와 근본에 대해 사색하는 심리에세이를 주로 써왔다. 40대 이후 정신분석 치료를 받은 후 2년 동안 세계 곳곳을 여행하며 만난 수많은 사람들의 내면을 들여다본 에세이 <사람풍경>이 그 시작이었다. 이후 <천개의 공감>, <좋은 이별>, <남자를 위하여>까지 그의 심리에세이는 많은 사람들에게 크나큰 위로를 전해주었다. 이번엔 신간 <오늘의 남자>를 통해 다시 여자가 알아야 할 남자의 속내를 낱낱이 파헤쳤다. 다소 예리한 눈초리로 분석한 그의 남자 이야기는 이내 여자로서 남자를 따뜻한 눈길로 바라보게 해준다. 늘 유용하면서도 유쾌한 조언을 아끼지 않는 그를 만나기 위해 카페 창비를 찾았다.

나르시시즘에 젖은 여성에 화가 나는 남자들

사실 이전까지 그가 써온 심리에세이는 대부분 여성에 대한 이야기에 치우쳐 있었다. 그러던 어느 날 남성에 대한 이야기도 해보는 게 어떻겠느냐는 제안을 받은 그는 바짝 겁부터 났다고 한다. 그가 여성에 대한 이야기를 많이 했던 데에는 그녀들의 삶이 많이 불편해 보였던 이유가 컸다. 당시 남성들은 여성에 비해 상당히 편하게 사는 편이었다. 사회 기득권에 있었으니 그도 그럴 터.
“그런 사람들 편에 서고 싶지 않았어요. 잘못 썼다가 무슨 봉변을 당할까 걱정도 됐고요.(웃음) 그런데 2003년 무렵 굉장히 짧은 기간에 여성들이 많이 변해가더라고요. 사회적인 분위기도 함께 달라졌지요. 여성들이 더 이상 자신의 엄마처럼 참지 않고, 주체적으로 삶을 이끌어가고 있었어요.”
남자들은 변해가는 여성을 보면서 어떻게 대할지 몰라 화가 나 있었다. 반면 점점 나르시시즘에 젖은 여성들은 자신의 그러한 마음마저 충족해주는 남자를 꿈꾸면서 둘 사이가 점점 벌어져만 갔다는데….
“이제는 남자들도 많이 불편해진 것 같아요. 여성이 끊임없이 변해간 데에는 자기 성찰이 큰 몫을 했어요. 남자도 여자처럼 단계적으로 그러한 절차를 밟아가지 않으면 남자와 여자의 갭이 더 벌어지겠구나 생각하게 됐지요. 그래, 이제는 남자에 대한 이야기를 써보자. 용기를 냈어요.”
그렇게 월간지에 1년 동안 남자 이야기를 연재한 그는 자신의 이야기가 두 가지 관점을 가진다고 말했다. 하나는, 남성들이 얼마나 힘든가를 스스로 알았으면 좋겠다는 것. 다음은, 남자들이 오랫동안 누려온 기득권이 여자를 불편하게 한 아픈 이야기였다.
“당시 그런 이야기도 했던 것으로 기억나요. ‘과연 내가 이 땅에서 추방당하지 않을 수 있을까?’ 다행히 남자들의 반응은 꽤 수용적이었어요. 그렇다면 한 번 더 써볼까 하고 자신감이 생겨 이 자리까지 온 것입니다.”

남자를 이해해 가는 여정

요즈음 남자를 보며 그가 느끼는 감정은 무엇일까.
“한마디로, 참 힘들겠다.”
그가 주부들이 요청한 강연회에 가면 늘 하는 말이 있다고 한다. 만약에 아버지가 아닌 어머니가 어떤 사람을 평생 먹여 살려야 한다고 상상해보자. 그것도 한 사람이 아니라 두 명, 세 명, 점점 더 늘어난다고 가정해보라. 그 책임을 안고 산다는 것은 이루 말할 수 없을 정도로 고달프다.
“남자는 결혼과 동시에 바로 책임감이 생기잖아요. 어깨에 짊어져야 할 짐이 수십 가지이지요. 그런 것을 생각해본 적 없는 여자들은 남자가 늘 슈퍼맨이 되길 바라요. 예쁜 말로 자기와 소통도 잘해야 하고 가끔가다 꼭 감동적인 이벤트까지 해줘야 하지요. 심지어 가끔 ‘네가 나한테 해준 게 뭐가 있다고 그래?’라는 말을 심심치 않게 던져요. 저게 무슨 말인가 싶을 때가 많아요.”
연애를 한다는 것은 서로 친밀한 관계를 유지하며 윈윈 하는 것이라고 말하는 김 작가.
“우리가 삼돌이를 얻기 위해 연애를 하는 게 아니에요. 나르시시즘에 빠진 여성이 갈수록 남자들에게 원하는 게 더욱 많아지는 것 같아요. 예전에는 남자들에게 가장의 책임과 동시에 권위가 있었어요. 그런데 요즘은 권위는 사라지고 점점 향유할 수 없는 책임만 늘어나는 것 같습니다.”
그렇다고 남자가 힘들면 힘들다고 이야기할까요? 자문하는 그는 남자들은 힘들어도 절대 힘들다고 말하는 법이 없다고 즉답했다.
“대신 집에 와서 소리 지르고 화를 내지요. 남자들이 힘든 이유의 반은 외부에서 오지만 반은 내부, 자신이 만들어요. 그래서 저는요. 남자도 스스로 자신이 힘들다는 것을 인식하고 아내에게라도 털어놓았으면 좋겠어요. 그래야 여자든 남자든 서로와의 관계를 개선해갈 여지가 생기거든요.”

심리 치유의 시작은 자기표현

여자들이 자존감으로 무장한 채 주체적으로 변해가는 동안 남자들은 자기 내면을 알지도, 표현하지도 못한 채 그저 여자들을 못마땅해 하는 상태로 머물러 있다. 문제는 그런 이들이 부부가 되어 자녀에게 심각한 심리적 문제를 물려주는 데 있다. 생을 시작하기도 전에 고통부터 떠안는 청소년과 청년들의 미래를 위해서라도 지금의 부모 세대부터 변해야 한다.
“부모 세대가 해결하지 못한 심리적 문제는 자녀에게 고스란히 내려간다고 해요. 그 자녀가 부모가 됐을 때 문제는 훨씬 더 심각해지지요. 요즘 젊은이들이 퍽 하면 포기라는 단어를 쓰잖아요. 어떻게 저렇게 포기라는 말이 쉽게 나올까 싶어요.”
그래도 다행인 것은 조금씩 사회에 이러한 심리 치유의 필요성에 대한 물결이 일고 있다는 점이다.
“우리 사회에서 심리 치유에 대해 보편적으로 이야기하기 시작한 지 10년이 넘은 것 같아요. 여전히 남자들은 심리에 시옷도 듣기 싫어하지만요. 남자들은 ‘네 마음이 지금 어떻구나’라는 말만 들어도 화를 내는 경향이 있어요. 그러나 남자들도 이제 부인이든 여자 친구든 누군가에게 자신의 마음을 잘 표현할 줄 알아야 해요. ‘네가 이럴 때 나는 이런데 네 마음은 어때?’ 감정 표현은 심리치유의 시작입니다.”

남자를 선택하는 기준

보통 여자들은 남자를 선택할 때 이기적인 남자보다 헌신적이 남자를 선호한다. 그러나 이에 대한 여자의 남자 선택 기준에 일침을 가하는 김 작가. 그는 여자를 위한 진심 어린 연애 조언도 놓치지 않았다.
“앞서 이야기했지만 마님이 삼돌이를 구하는 게 연애가 아니잖아요. 이것은 분명 뭔가 잘못된 문화입니다. 연애할 때 여자들은 항상 남자들에게 대접을 받으려고 해요. 연애의 정의가 굉장히 잘못됐어요.”
그가 말하는 연애는 동일한 남녀가 만나 정서적, 심리적으로 친밀감을 나누는 것이다.
“사실 어떻게 보면 헌신적인 남자보다 이기적인 남자를 만나는 게 좋습니다. 헌신적인 남자는 자기가 못 받은 것을, 자기가 받고 싶은 것을 여자들에게 해주려고 해요. 내적인 결핍이 많습니다. 사랑을 많이 받아 본 사람은 주고받을 줄 알아요. 대개 헌신적인 사람은 헌신만 알지 진짜 사랑을 모릅니다. 자신을 먼저 사랑해야 남도 사랑할 수 있듯 오히려 이기적인 남자가 연애 상대로는 제격이에요.”
단 서른다섯 전까지만. 그는 조건을 달았다.
“남자가 서른다섯에 이르면 사회적 지위가 올라가면서 역할도 바뀝니다. 이기적인 남자도 곧 자연스럽게 헌신적으로 변해요. 그 나이에 맞는 양보와 배려, 헌신을 배우게 되거든요.”

언어보다 섹스를 통해 소통하는 남자

남녀 간의 관계에 있어 소통은 두말할 것 없이 중요하다. 그런데 이들은 소통에서마저 자주 갈등을 빚는다. 이는 바로 여자와 남자의 소통방식이 다르기 때문이다. 주로 언어를 통해 자신의 감정을 표현하는 여자와 달리 남자에게는 섹스가 곧 언어다.
“남자들은 감정을 언어로 표현하지 않아요. 여자가 자신의 방식대로만 남자와 소통하려고 하니 문제가 되지요. 남자는 일찌감치 언어로 감정을 표현하지 않는 방법을 사회화하는 환경에 있었습니다. 그들은 감정을 아예 느끼지도 않을 뿐 아니라 억압도 하지요. 감정을 느끼면 너무 힘들어지니까요. 그러다 밤새워 술만 마셔대고….”
결국 남자와 친밀함을 느낄 방법도 섹스밖에 없다고 말하는 김 작가. 남자는 섹스가 만족스러우면 사랑받았다고 느낀다고 한다. 남자란 정말 여자와는 정신적 토대부터가 다른 동물임이 틀림없다.
어쨌거나 이러한 남자들의 소통방식, 왜 자꾸 화를 내고 소리만 지르는지, 또 도통 자신의 속내를 잘 꺼내어놓지 않는 이유는 무엇인지 남자의 심리에 한 발짝 더 다가가 그들은 먼저 이해하는 것이 남녀 간의 갈등과 벌어진 틈을 메울 수 있는 최고의 방법이다. 이로 인해 사랑이 더욱 깊어져 그들의 내면에 잠재해 있는 아픔까지 치유해 준다면 좀 더 성숙한 사랑으로 발전해 수 있지 않을까.
마지막으로 김 작가는 이에 대한 하나의 방안으로 심리 치유와 관련된 책을 읽으며 자가 치료부터 시작하라고 강조했다.
“제가 여성분들에게 태어나서 열 살 미만까지 사랑을 듬뿍 받고 자란 남자와 사랑하라는 말을 많이 하는데요. 참 불공평하지요. 그때 사랑을 못 받은 사람은 지금도 여자의 선택을 못 받고…. 이런 분들은 사랑의 부재가 얼마나 불편한 정서를 심어줬는지 인식하는 게 필요해요. 그렇지 않으면 그걸 사랑하는 사람한테 던질 수도 있거든요. 심리와 관련된 책을 많이 읽으세요. 전문 서적이든 에세이든 그 책을 읽는 시간만큼은 자기 성찰의 기회가 됩니다. 그러다 전문가와 실질적으로 상담을 받아볼 수도 있는 거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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