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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일대 물리학과 출신 소설가 아일린 폴락 지상 특강
예일대 물리학과 출신 소설가 아일린 폴락 지상 특강
  • 송혜란 기자
  • 승인 2016.03.11 06:29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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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 과학자가 드문 '진짜' 이유
 

사회에서 여성에 대한 편견이 어느 정도 해소되고 더 나아가 여성의 권익 신장을 위해 달려가고 있는 요즈음. 한 소설가가 급작스럽게 브레이크를 건다. 미시간대 창작예술과 아일린 폴락 교수. 예일대 물리학과를 우수한 성적으로 졸업하고 소설가의 길을 걷고 있는 그녀는, 현 과학계에서의 여성 불평등 요소를 조목조목 고발한다. 경기영재과학고에서 열린 그녀의 강연회를 찾았다.

취재 송혜란 기자 사진 양우영 기자

다소 왜소한 체격의 한 여성 미국인이 강단에 올라서자 그녀를 환호하는 박수 소리가 온 강당에 울려 퍼졌다. 그녀는 바로 소설가이자 미시간대 창작예술과 교수인 아일린 폴락. 어릴 때부터 수학이나 물리 과목에 관심이 많아 예일대 물리학과에 입학, 최우수 등급으로 졸업한 그가 과학자가 아니라 소설가가 된 이유가 궁금해졌다.
아일린 폴락은 그 이유를 바로 자신이 ‘여성’이었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사회적으로 여성차별 문제가 점차 수그러들고 있지만 여전히 과학계에서의 여성 불평등은 꽤 심각하다고 털어놓는다. 최근 저서 <평행 우주 속의 소녀>를 출간한 그녀는 차분한 어조로 어릴 때부터 겪어 온 여성 과학자에 대한 사회적 편견, 불평등 요소를 찬찬히 풀어놓았다.
 
수학과 물리를 유난히 좋아했던 소녀

그녀는 어릴 적 미국의 한 작은 시골 마을에 살았다. 수학과 물리 과목을 유난히 좋아했던 그녀는 시험을 보아도 늘 남보다 우수한 성적을 보였다. 그럼에도 그녀는 ‘여성은 과학과 어울리지 않는다’는 사회적 분위기로 인해 거듭되는 좌절을 겪어야만 했다.
“많은 사람들이 미국에는 아주 거대한 도시만 있는 줄 아는데요. 미국에는 여러 주가 있고, 특히 저는 아주 작은 시골 마을에서 태어났습니다. 그곳에는 수학과 물리 과목 상급반 프로그램이 있는 공립학교가 있었어요. 제 자랑일지 모르지만 저는 수학과 물리를 좋아했을 뿐 아니라 그 분야에 있어 성적 또한 좋았습니다. 그 공립학교에 다니며 상급반을 신청했지요.”
당시 교장 선생님은 ‘여학생은 과학과 수학 분야를 공부할 수 없다’며 그녀의 신청을 받아주지 않았다. 교장 선생님은 그녀의 엄마에게도 ‘여자애들은 그 분야에서 절대 경력을 쌓을 수 없다’, ‘여자애가 수학과 과학을 월반하면 사회생활을 망치게 된다’는 이유를 덧붙였다고 한다.
“다른 수업이 지루했던 저는 우주와 시간에 대한 책들을 읽는 것으로 대신했습니다.”

예일대 물리학과의 홍일점

결국 고등학교에서 수학을 충분히 공부하지 못한 그녀는 남학생들보다 한참 뒤처진 채로 1974년 예일대 물리학과에 들어갔다. 첫 번째 물리학 중간고사에서 F학점을 받은 그녀는 크나큰 충격을 받았고, 그녀의 아버지는 지속적으로 그녀에게 전공을 바꾸라고 권유했다.
“저희 아버지는 저에게 왜 하필 물리를 선택했느냐며 꾸짖었어요. 어떠한 남자도 저랑 결혼하려 하지 않을 것이라면서 재차 전공을 바꾸라고 말씀하셨지요. 어머니도 함께 가세해 저보고 글을 쓰라며 다시 영어영문학과로 옮기라고 계속 설득하셨습니다.”
그 시대 예일대 물리학과에는 여학생이 단 두 명뿐이었다. 보통 수학이나 물리를 공부하다 어려운 문제가 나오면 친구들과 함께 풀곤 하는데 동료가 없었던 그녀는 친구들 사이에서도 굉장히 외로워해야 했다. 급기야 그녀 자신도 계속 물리를 공부할 수 있을까 자문하기 시작했다. 물리학에 대한 천재적인 재능으로 예일대를 우수한 성적으로 졸업한 후에도 그녀의 고민은 계속되었다. 아무도 그녀의 성과를 칭찬해주지 않았기 때문이다.
“중력이론 대학원 과목과 2개의 연구논문에서 A학점을 받으며 예일대 물리학과를 졸업했습니다. 큰 성취감을 느꼈지만 교수님이나 친구들 누구도 저보고 ‘대학원에 갈 거니?’, ‘너는 물리를 잘하니까 계속 이쪽으로 나가는 거 어때?’라는 류의 말을 해주지 않았어요. 제가 정말 물리를 계속해야 하는지 의문이 들지 않을 수 없었죠. 결국 저는 물리를 포기하고 부모님의 권유대로 작가의 길을 걷기로 했습니다.”

물리를 등지고 작가가 된 그녀, 이어진 삶은 고통의 연속

그렇게 물리학을 등지고 작가가 된 아일린 폴락 교수. 그 이후의 삶은 고통의 연속이었다.
“고등학교 교장 선생님이 제게 했던 말이 자꾸 머릿속을 맴돌았어요. 여학생은 물리학에 스마트하지 않다. 그래서 물리나 수학으로 직업을 얻을 수 없을 것이다. 꼭 거역하고야 말겠다고 다짐했던 그 말을 제가 마치 직접 증명한 것만 같아 고통스러웠어요.”
그러던 어느 날, 그녀는 하버드 총장 래리 서머스가 2005년 한 강연회에서 ‘왜 여자는 자연과학 분야에서 종신 교수직에 오르지 못하는가’라는 누군가의 질문에 ‘가장 높은 수준의 과학과 수학 영역에서는 남녀 간 선천적인 소질 차이가 있고, 대부분 여성이 강도 높은 헌신을 요구하는 직업을 꺼리기 때문이다’고 답한 기사를 읽고 화가 치밀어 올랐다.
“현대를 사는 사람들이 이 이야기를 들으면 믿기 힘들겠지만 불과 10년 전에 하버드 교수가 한 말입니다. 그 기사를 보고 너무 기가 막혔어요. 기어코 그에게 편지를 썼습니다. 쓰고, 또 쓰고 몇 번에 걸쳐 편지를 계속 보냈지요. 그러다 제가 편지만 쓸 게 아니라 책을 쓰는 게 어떨까 생각하고 이번에 글로 옮기게 된 것입니다.”

과학계에서 여성 불평등은 여전히 심각하다

자신이 겪은 쓰린 경험들을 허심탄회하게 밝히면서까지 그녀가 하고 싶었던 이야기는 여성과학자가 드문 ‘진짜’ 이유다. 하버드 교수의 말과 달리 그녀는 여성 물리학자가 부족한 이유는 좀 더 미묘한 데 있다고 말했다.
“과학 분야에서의 성적 편견이 아직도 지배적이기 때문이지요. 무엇보다 여성의 성적 매력과 기대하는 역할에 대한 미국의 전반적인 문화 자체가 문제입니다.”
그녀의 말에 따르면, 수학과 과학이 어려워 보인다는 이유로 이 과목을 잘하는 여학생들은 중·고등학교에서 따돌림을 당하거나 배척되는 경우가 적지 않다고 한다.
그녀 역시 대학 시절 남자들과 데이트하기 위해 그들의 관심을 끄는 것에 연연했는데 이것이 물리학자로서의 경력을 단념하게 한 이유 가운데 하나라고 솔직히 고백했다.
“사회와 문화적 가치관이 여성들의 심리 저변에 깊이 영향을 미치고 있기 때문입니다. 수학이나 과학은 인기 없는 괴짜들이 하는 것이라는 사회적 편견은 사람과의 관계에서 가장 예민한 시기인 청소년기의 여학생들에게 치명적인 악영향을 미쳐 과학자란 꿈에서 멀어지게 해요.”
그럼에도 어렵사리 과학을 선택한 여성에게조차 용기를 북돋우어 주는 것이 아니라 쫓아내려고만 하는 대학 교수들의 태도도 문제라고 그녀는 꼬집었다.
“여성은 태어나기를 남학생보다 칭찬을 더 필요로 합니다. 그런데 교수님들은 여학생들에게 칭찬하는 데 인색해요. 칭찬을 더욱 필요로 하는 여학생에게 그러한 교수님들의 태도는 과학을 지속하는 데 있어 방해 요소가 됩니다.”
실제로 그녀는 이를 증명하는 실험 연구 결과도 보여주었다.
“제가 한번은 학교에서 여학생들을 모아 두 그룹으로 나누고 실험을 해보았습니다. 첫 번째 그룹에서는 시험 문제를 주며 ‘여학생들은 이 과목을 잘 못 해요’라고 말했고, 두 번째 그룹에서는 반대로 ‘여학생들은 이 과목을 훨씬 잘합니다’고 이야기했습니다. 결과는 단연 후자 그룹에서의 성적이 훨씬 높게 나왔지요. 이 연구 결과만 보아도 사회적 통념과 칭찬이 우리의 성취 결과에 얼마나 큰 영향을 주는지 알 수 있습니다.”
누군가 한 명만이라도 자신에게 물리를 잘한다고 말해 줬더라면 이미 이론물리학자로 진로를 결정했을 것이라고 말하는 아일린 폴락 교수.
이에 그는 예일대에서 당시 함께 공부했던 교수님을 찾아가 직접 물었다고 한다. ‘교수님은 왜 제가 물리학을 계속할 수 있도록 칭찬이나 권유를 하지 않으셨나요?’ 교수님이 답하기를, “우리는 원래 학생들을 잘 칭찬하지 않는다”이었다.
“그렇지만 제 생각엔 모든 사람에게는 칭찬이 필요합니다. 교수님이 그렇게 말씀하시긴 했지만, 제가 보아온 교수님은 남학생들에게 질문을 더 많이 했을 뿐 아니라 추천서도 곧잘 써주셨어요. 교실 밖에서 또한 남학생과 더 많은 시간을 함께 하고 이메일을 받더라고 늘 긍정적으로 답변해 주셨지요. 모든 시스템이 여학생들에게 공정하지 않았어요.”

▲ 경기영재과학교에서 특강 중인 아일린 폴락

여성 과학자를 향한 칭찬과 격려 필요

더 이상 여성들이 유리 천장에 부딪혀 과학계의 아웃사이더가 되어서는 안 된다고 지적하는 아일린 폴락 교수. 먼저 그녀는 여자들이 좀 더 자신감을 가지고 용기를 낼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여자들 스스로 다시 자신감을 회복하고 설사 칭찬이나 격려가 없어도 씩씩하게 이겨낼 수 있도록 서로가 도움을 줘야 합니다.”
무엇보다 그녀는 더 많은 여성들이 과학계로 진출할 수 있도록 사회가 온 힘을 다해 도와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렇다고 여성 과학자를 향한 칭찬과 격려가 중요하지 않다는 말이 아닙니다. 변화를 모색해야 하는 더 큰 책임은 여성들이 아니라 사회에 있어요. 멋진 여성 과학자의 이미지를 TV나 영화에서 자주 보여주거나 과학적으로 놀 수 있는 장난감을 많이 사주고, 고등 수학이나 미적분 등의 어려운 과목도 들을 수 있도록 격려해주어야 해요. 흔히 남학생들이 관심 있어 하는 축구나 전쟁 같은 이야기를 여학생들에게도 흥미를 느끼게 해준다면 기꺼이 그녀들은 과학자로서의 꿈을 가지게 될 것입니다. 여성의 과학계 진출을 가로막는 또 하나의 장애물인 결혼과 출산, 육아 문제에 있어서도 사회가 정책적으로나마 지원해 주어야 함을 물론입니다. 머지않은 날 과학계에도 여성들이 활개 치는 세상이 오기를 기대해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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