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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불암, 훈훈한 나눔의 인생
최불암, 훈훈한 나눔의 인생
  • 김은정
  • 승인 2016.03.15 16:21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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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기 인생 50년, 봉사의 삶 35년
 

수사반장, 양촌리 김회장. 배우 최불암에 늘 따라붙는 타이틀이다. 하지만 그가 35년을 묵묵히 활동해온 또 하나의 타이틀이 있다. 초록우산어린이재단 후원회장. 그 어떠한 타이틀보다 더욱 열정적으로 살아온 그의 또 하나의 직함이다. 연기가 아닌 실제 치열한 삶을 이어온 최불암의 훈훈한 나눔의 삶을 들어보았다.

취재 김은정 사진 양우영 기자

비가 쌀쌀히 내리는 오후, 홍대카페에서 만난 그에게 인사를 하며 기자가 명함을 건네자 그도 명함을 꺼낸다. 얼굴이 명함 그 자체인데 무슨 명함이 필요할까 싶은데, 받아 보니 초록우산어린이재단 후원회장 최불암이라고 적혀 있다. 국민배우인 그가 명함을 건네니 왠지 낯설기도 했지만 그가 명함을 건넬 만큼 이 직분에 책임감을 느끼고 충실히 하고 있음이 아닐까 싶었다.

봉사의 삶을 시작한 지 35년

최불암에게 2015년은 많은 의미가 있는 한해였다. 연기 인생 50주년을 맞는 해이며, 봉사의 삶을 살아온 지 35년이 되는 해이기도 했다. 뜻 깊은 한해를 보낸 소회가 남달랐을 것 같았다.
“7월에 케냐에 갔던 일이 제일 기억에 남아요. 떠날 무렵엔 온통 메르스 사태로 온나라가 난리였는데 병원 가서 예방주사를 몇 차례나 맞고 가야 했지요. 그래서 힘은 들었지만 보람 있었어요. 가서 우물을 파줬거든, 몇날 며칠 판 끝에 물이 나오기 시작하니까 아~ 그렇게 기쁠 수가 없더라고... 기뻐서 울어보기는 그때가 처음이었어요”. 
이제 어느덧 70대 중반을 넘어선 그에게 먼 아프리카 땅의 봉사활동이 쉬운 일만은 아닐 터이지만 아직도 그때의 감격을 흥분된 어조로 전했다. 그가 초록우산어린이재단과 인연을 맺게 된 것은 1981년 전원일기에서 금동이를 입양시키고 시청자들의 큰 격려를 받게 된 것이 계기라고.
“작가의 필끝에서 나온 일일뿐인데 마치 내가 잘해서 그런 것처럼 많은 사람들이 칭찬을 해주는 거예요. 나도 놀랐죠, 그래서 뭔가 해야겠구나하고 봉사활동을 시작하게 됐는데, 결국 시청자들이 날 그렇게 움직이게 만들어준 거지요.”
그가 후원활동을 시작한 당시 초록우산어린이재단에 후원자가 7만 명 정도 수준이었는데 배우 최불암의 활동 이후 4년 만에 후원자가 17만 명을 훌쩍 넘어섰다. 당시만 해도 봉사와 기부문화가 정착되지 않았던 시절인데 그의 활동이 도화선이 됐던 것이 아닐까 물으니 손사래를 친다.
“내가 앞장선 것도 아니고 난 내 맘 편하자고 그냥 했을 뿐인데, 시간이 그렇게 만들어준 것 같아요. 사람들이 좀 살 만해지고 하니까 어려운 사람들을 돌아볼 여력도 생기고 한 거지. 내가 했다고 해서 그렇게 됐다고 생각하지 않아요.”
하지만 그가 누구인가. 최불암. 이름만으로도 존재감이 어마어마한 그가 봉사활동을 시작한 홍보효과와 파급효과는 컸을 터. 그래도 극구 부인하는 그에게서 진정성 있는 겸손함이 느껴졌다.
나눔의 삶을 35년이나 실천할 수 있었던 것은 그가 초록우산어린이재단의 후원활동을 하고 난 후 4년쯤 지난 무렵 미국에서 받았던 문화적 충격 때문이라고 한다. 84년도에 미국 본부에서 교육을 한다고 초청을 해 가게 됐는데. 거기서 한국인 입양아를 키우는 미국인 부부 가정을 방문한 일을 잊을 수 없다고.
“이름도 안 잊어요, 그레이스. 내가 들어가니까 그레이스가 자기 나라에서 손님이 왔다고 그냥 좋아서 막 뛰어나오는 거야. 그런데 그 양부모가 갑자기 그 애를 야단치면서 빨리 방으로 들어가라고 하더라구. 그래서 속으로 왜 저러나 참 섭섭하다 생각했는데, 알고 보니 그레이스가 간질병이 있었던 거야. 그래서 한국에서 온 나를 보고 너무 흥분해 발작하기 직전이 되어 그런 거였지.“  
미국인들이 당시 입양을 할 때는 건강한 아이보다 오히려 뭔가 어려움이 있는 아이를 더욱 입양하고자 한다는 것을 알고 그는 충격을 받았다고 한다.
“그 미국인 양아버지 이름이 코올스였거든. 그런데 한국 이름이 고을수라고 하더라구. 아이를 위해 이름도 한국식으로 지었던 거예요.”
그의 이런 깊고 진정한 사랑의 원동력이 무엇일까, 그는 진지하게 생각하게 되었고, 너무나도 궁금해 그에게 물어보니 어릴 때부터 받아온 교육과 청교도적인 윤리관 때문이었음을 알게 되었다고 한다.
그 일로 큰 깨달음을 갖고  한국에 온 최불암은 그냥 후원자가 아닌 전국 후원회장을 맡기로 했다. 유명 연예인들이 본인의 이미지 관리를 위해 명목상 그럴싸한 단체에 이름을 올리고만 있는 경우도 많은데 최불암은 사무치게 느낀 감동과 체계적인 교육을 바탕으로 진정성 있는 봉사활동을 실천한 것이다. 한 그루의 나무가 뿌리를 내리면 가지를 치는 법. 그는 초록우산어린이재단의 활동뿐 아니라 청소년문제에도 눈을 돌리게 되었다.

청소년 문화예술교육에도 힘써

 

3년 전부터 제로캠프라는 청소년들을 위한 비영리단체의 이사장직을 맡아 문화 예술을 통해 비행청소년들의 교화활동에도 나서게 된 것.
“학교 교육과 가정교육도 중요하지만 문화예술 교육도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청소년들이 연극을 연습하고 무대에 올리고 하는 과정을 통해 마음이 순화되고 바른 가치관을 가지게 되는 것을 많이 보았지요.”
우리나라의 문제청소년이 100만 명에 육박하다는 것이 참 안타깝게 느껴진다는 그. 얼마 전 <시유어겐>이라는 연극을 무대에 올린 것도 그 이유 때문이다. 중학생 시유라는 아이의 이야기로 혼자가 아닌 만남을 통해 따뜻한 정서를 나눌 수 있다는 메시지를 던져줬다. 이 연극에서 최불암은 예술감독을 맡아 연기자들을 지도했다. 그밖에도 그는 학생들의 인성교육 강연에도 나서는 등 청소년들을 위해 시간을 아끼지 않아 왔다.

물질보다는 사랑과 바른 정신이 가치 있는 것

이러한 많은 선행을 해온 그는 2015년 11월 잡지인의 날 기념식에서 ‘잡지인이 선정한 올해의 인물상’으로 선정되기도 했다. 소감을 묻자 잡지 매체와 글의 중요성을 이야기하며 더 나아가 정신이 부재인 요즘의 현실이 안타깝다고 이야기를 이어갔다.
“우리나라가 OECD 가입국 중 자살률 1위라는데 자살의 원인중 1위가 돈이라고 합니다. 가난해도 위축되지 않고 정의를 위해 가족을 위해 반듯하게 사는 신념이 필요한데 그게 없는 거예요.”
이야기는 어느덧 사랑의 범주까지 확대됐다.
“진정한 사랑은 발끝부터 손끝까지 그 사람의 세포까지 사랑하는 거예요. 모든 것을 이해하고 그 사람이 부족하면 메워주고 하는 것이 사랑인데 요즘 사람들은 너무 외모나 물질만 보고 내가 편하게 살려고만 하는 것이 안타까워요.”
깊은 세월의 연륜이 느껴지는 대목이었다. 이런 그를 국민아버지로 드라마에서도 다시 뵙고 싶다고 하니 손사래를 친다.
“아유, 무슨 국민아버지야, 이제 할아버지지... 그리고 이제 내가 있으면 젊은 연출자들이나 배우들이 불편해 해요. 분장실도 혼자 독방에 앉아 있게 하고... 내가 그렇게 불편한 존재가 되어버린 게지. 그래서 드라마 다시 하기는 힘들 것 같아요.”
그의 대답에 코끝이 찡해졌다. 수사반장의 냉철한 반장으로, 전원일기의 따뜻한 양촌리 김회장님으로, 그대 그리고 나의 터프한 선장님이었던 그가 아니던가. 그래도 드라마에 대한 미련은 남아 있는 듯했다.
“뭔가 사회적으로 영향력을 줄 수 있을 만한 아버지나 할아버지 역할이 오면 또 모를까 손녀, 손주들 연애나 하는 거 보고 있는 할아버지 역할은 별로 안 하고 싶어요.”
하긴 요즘 드라마의 현실이 그렇다. 가벼운 연애 이야기가 넘쳐날 뿐 가정과 사회문제를 깊이 바라보고 좋은 방향으로 이끌어갈 만한 내용은 보기 힘들다. 그는 작가들이 그런 사회에 대한 책임감을 가지고 글을 써줬으면 한다고 바랐다. 더불어 젊은 배우들이 너무 외모에만 신경을 쓰는 것 같아 아쉽다고도 했다.
“내가 좀 얼굴이 잘 생기지 않아도 좋은 옷을 입지 않아도 내정신과 주장이 뚜렷한 배우가 돼야 해요. 그런데 요즘 촬영장에 가보면 코디들이 붙어 머리카락 하나도 예쁘게 다듬어주고 있더라고. 배우는 외모만 중요한 게 아니라 정신이 더 중요한 건데...“
연기인생 50년의 배우가 들려주는 이 말에 그가 왜 국민배우인지를 실감할 수 있었다.
 
오래 갈 수 있는 비결은 인화단결

2011년 시작해 꾸준히 10%대를 상회하는 높은 시청률을 유지하고 있는 ‘한국인의 밥상’ 이야기를 빼놓을 수 없었다. 최불암은 전국 팔도를 누비며 우리 먹을거리와 그 속에 담긴 정을 소개하고 있다.
요즘 같은 쿡방과 먹방이 넘쳐나는 시대에 5년 이상 이렇게 인기를 얻고 있는 비결이 궁금했다.
“사람들의 향수를 달래 주기 때문인 것 같아요. 어릴 때 고향에서 먹던 음식과 또 시골 사람들의 살아가는 모습이 많은 사람들에게 위로를 주나봐요.”
그러면서 예전 전원일기 때와 비교했다. 80년대인 그때 당시 많은 사람들이 상경을 하느라 고향에 대한 향수가 깊은데 전원일기를 보며 그 향수를 달랠 수 있었다는 것. 그런 맥락에서 ‘한국인의 밥상’도 지친 현대인들에게 위로를 주는 프로그램이 되고 있는 것이다. 수사반장 18년, 전원일기 23년, 한국인의 밥상 5년째 진행 중. 그가 맡았다 하면 길게 가는 비결이 궁금했다.
“인화단결이지. 전원일기도 30명이 넘는 배우들이 다 화합해서 장수할 수 있었고, ‘한국인의 밥상’도 연출자와 내가 세대가 달라도 의견을 조율하고 절충해가며 만들어 가고 있는데 그런 인화가 참 중요한 것 같아요.”

북한 어린이들을 빨리 만나고 싶다

그에게 앞으로의 계획을 물어보았다.
“북한 어린이들을 빨리 만나고 싶어요. 지금도 가끔 뉴스에서 ‘꽃제비’라는 말이 들리면 가슴이 철렁해져요. 북한 어린이들을 돕는 게 제일 우선이에요.”
최불암. 그는 단순히 불우이웃을 돕는 봉사활동가가 아니었다. 시대와 미래를 걱정하고 젊은이들을 위해 자신이 할 수 있는 역할이 무엇일까를 고민하는 이 시대의 진정한 어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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