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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시대' 작가 박금선의 멋진 아줌마로 사는 법
'여성시대' 작가 박금선의 멋진 아줌마로 사는 법
  • 송혜란 기자
  • 승인 2016.03.18 10:44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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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 ‘여보~’, ‘금선 씨!’ 여기저기서 자신을 쉴 새 없이 찾아대는 소리에 혼이 나갈 정도로 바쁜 일상을 보내고 있는 요즈음 여성들. 여자 나이 서른 살이 넘으면 주어지는 역할도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난다. 하고 싶은 일보다 해야 하는 일이 더 많아지는 이때 사랑도 일도, 아이도 포기할 수 없어 방황하는 여성들. 이에 MBC 라디오 <여성시대> 작가 박금선이 전한다. 후배들에게 보내는 따뜻한 조언.

취재 송혜란 기자 | 사진 양우영 기자

현대를 살아가는 여성이라면 MBC 라디오 <여성시대>를 모르진 않을 것이다. 20년이 넘게 <여성시대>를 이끌어온 박금선 작가는 아시아태평양 방송제에서 대상을 두 번이나 받았으며, MBC 방송연예대상 작가상과 교양 부문 한국방송작가상을 휩쓸기도 했다. 명예로운 상을 여러 번 받은 그녀의 공로가 예사롭지 않다. 그러나 그녀는 이러한 상보다 훨씬 더 감사하게 생각하는 것이 따로 있다고 말한다. 바로 <여성시대> 청취자가 보내준 수백만 통의 편지들이다. 심한 고부 갈등은 물론, 남편의 부재로 직접 밥벌이에 나서며 아이까지 책임져야 하는 힘겨운 삶 속에서도 당당한 청취자들의 사연이 하루에도 수십 번씩 내리막길 치는 그녀의 마음을 다잡아 주었기 때문이다.
그도 그러한 것이 그녀는 꽤 고단한 인생을 살았다. 학생 신분이었던 남자와 결혼해 홀로 생계를 책임져야 했으며, 프리랜서 특성상 일이 많지 않은 달에는 생활고에 시달리기도 한 그녀였다.
“마음씨 좋은 남편이 어려운 친구를 돕는답시고 진 카드빚에서 빠져나오느라 한동안 허우적댄 적도 있어요. 결혼 후 일이 반으로 줄었을 땐 차비, 하다못해 쌀 한 톨도 없어 힘든 날이 많았지요. 아이를 낳고서는 보름 만에 바로 일터로 돌아가야 했던 아픔도 이루 말할 수 없습니다.”
서울 방송국에서 일하는 작가라고 하면 다들 화려한 모습만 생각할 텐데, 겉보기엔 아무렇지 않은 사람에게도 하나둘 말 못 할 사정은 다 있다고 했던가. 그녀의 진솔한 고백이 지금 이 순간에도 좌절을 거듭하고 있는 이들에게 큰 위로를 준다. 
“저도 그랬어요. 우울할 때면 항상 <여성시대> 인생 선배들의 이야기가 큰 힘이 되었지요. 아, 나만 이렇게 힘든 게 아니구나! 특히나 저보다 더 절망적인 상황에 있으면서도 초연한 분들의 말씀을 들으면 저 또한 다시 일어설 용기가 생기더라고요. 돌이켜 보면 당시 저를 힘들게 했던 일들과 인내하고 희생했던 순간들이 오히려 저를 좀 더 따뜻하고 배려심 있는 사람으로 성장하게 해 주었던 것 같아요.”
그래서일까. 그녀는 문득 20여 년간 <여성시대> 작가로 일하며 깨달은 것들을 후배들에게도 전하고 싶다는 생각을 키우게 되었다. 최근 그녀가 펴낸 에세이 <어떤 삶을 살든, 여자가 절대 포기하지 말아야 할 것들>에도 이러한 그녀의 바람이 듬뿍 첨가되어 있다. 
“누구보다 멋지게 살고 싶지만, 어느 날 갑자기 늘어난 책임과 의무 앞에서 고민하고 방황하는 여성분들이 많은 것 같아요. 저도 비슷한 시기를 지나왔잖아요. 다시 젊은 날로 돌아간다면 바로잡고 싶은 것이 너무 많아요. 한창 지금 그 길을 걷고 있는 분들에게 조금이나마 지혜로운 해결책을 제시해 주고자 했어요. 무엇보다 제 동생, 제 딸, 제 후배는 저보다 덜 힘들고 덜 실수하기를 바라는 마음이 컸지요.”

아이들의 놀라운 능력

여자가 30대가 되면 가장 많이 듣게 되는 말 ‘엄마’. 많은 여성이 엄마 역할은 아이를 가르치는 것으로 생각한다. 그러나 박 자가는 오히려 아이가 부모에게 있어 더없이 훌륭한 ‘교육용’ 존재라고 말했다. 아이들 생일이면 그녀는 동화를 써서 선물하곤 했다는데…. 그때 초등학교 3학년이던 딸이 던진 한마디에 그녀는 그만 얼음이 되고 말았다. 
“딸이 그러더라고요. ‘엄마가 쓴 동화는 재미없으니까 그거 쓸 시간에 나랑 놀아 줘!’ 그 말이 저에게는 이렇게 들렸어요. ‘너 정말 진짜 중요한 게 뭔지도 모르는구나!’ 딸한테 부끄러워 한동안 아무 말도 못 했지요. 생의 가장 소중한 교훈은 다 아이를 기르며 배웠던 것 같아요.”
아이들에게 놀라운 능력이라도 있는 것일까. 잠시 고민한 그녀는 <여성시대> 육아 상담 코너였던 ‘우리 아이 문제없어요’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코너 이름은 누구나 신이 선물한 능력과 천성에 아무 문제가 없다는 뜻이라고 한다. 그녀가 둘째 아이를 처음 어린이집에 보낼 때의 일이다. 당시 그녀의 아이는 어린이집을 한 번 다녀온 후부터 계속 발버둥을 치며 어린이집에 가지 않겠다고 투정을 부렸다. 때문에 그녀는 거의 2주 동안 아이를 데리고 다니면서 일해야 했다. 그런데 어느 순간부터 아이가 갑자기 어린이집을 좋아하기 시작했다.
“아이가 자신이 살 길이 그뿐이라고 생각했는지, 아니면 그곳에서 새로운 재미를 발견했는지는 알 수 없어요. 여느 워킹맘들이 그렇듯 저도 일하느라 아이를 잘 챙기지 못해 늘 미안하고 염려스러웠는데, 실은 그럴 필요가 없는 것 같아요. 아이들에게는 놀라운 능력이 있어서 척박한 땅에도 탄탄하게 뿌리를 내릴 줄 안답니다. 우리 아이들의 능력을 한번 믿어 보세요.”

남편을 선택하는 기준

우리 아이 육아도 큰 숙제이지만, 그보다 훨씬 전에 선택해야 하는 남자에 대한 고민도 여자들에게 있어서는 여전히 어려운 문제다. 그저 많은 남자를 만나다 보면 자신만의 기준에 딱 맞는 사람을 배우자로 고를 수 있을까? 그럴 수도 있고, 그렇지 않을 수도 있다.
“사실 저도 젊을 때 남자를 많이 사귀지 못했어요. 근데 다들 많이 만나 봐야 한대요. 지금 생각해 보니 맞는 말 같아요. 중요하지요.”
그럼에도 그녀는 훗날 남자를 선택하는 기준을 ‘돈’으로 삼는 것에 대해서는 경계심을 보였다. 
“요즘은 결혼하는 데 있어 돈이 굉장히 중요해졌잖아요. 돈 없이 살면 얼마나 힘든지 제가 더 잘 알지요. 그런데도 사랑하는 남자 친구가 가진 게 없어 고민이라는 청취자들의 사연을 접하면 참 안타까워요. 분명한 것은 돈 많은 남자를 만나도 반드시 그만한 대가가 있다는 겁니다.”
뼈 있는 한마디를 던진 그녀는 자신의 친구 이야기를 조심스럽게 털어놓았다.
“부잣집에 시집간 친구가 있어요. 다들 부러워했지요. 시부모님도 엄청 잘해 줬거든요. 그런데 어느 날 시부모님이 친구에게 하시는 말씀이, 자기가 올라가는 계단을 직접 엎드려서 닦으래요. 물론 시부모님 입장에서는 그것이 교육이라고 생각했겠지요. 받아들이는 며느리는 그렇지 않았던 거고요. 잘 사는 사람들은 그렇지 않은 분보다 더 행복할까요? 꼭 그렇지는 않아요. 남자도 마찬가지예요. 꼭 돈을 기준으로 두기보다, 일단 저는 사람의 됨됨이를 잘 살피는 게 중요하다고 말하고 싶어요.”

하고 싶은 일을 더는 미루지 말라

 

아등바등 30년을 엄마, 아내, 특히 일하는 여성으로 살아온 박금선 작가. 그런 그녀에게는 후회되는 일들이 많다. 그중에서도 그녀가 가장 아쉬운 것은 자꾸만 마음이 가는 것들을 애써 외면하고 살아왔던 나날이다. 그녀에게 있어서 그 일은 ‘그림’이었다.
“예전부터 꼭 그림을 그리고 싶었거든요. 한번은 큰맘 먹고 그림책을 만드는 곳에 찾아갔는데, 저보다 훨씬 훌륭한 사람들을 보곤 기가 푹 죽어 돌아왔어요. 평생 그것에 매달린 사람과 제가 어떻게 같을 수 있겠어요. 제가 너무 늦었더라고요. 그래서 후배들에게는 꼭 말하고 싶어요. 하고 싶은 일을 더는 미루지 말라고요.”
뒤늦게나마 자신이 하고 싶은 일을 시작한 사람이 들으면 혹 그녀의 말을 오해할 수도 있겠다. 왜 ‘늦었다고 생각할 때가 가장 빠른 것이다’라는 명언도 있지 않은가.
“물론 늦게 시작한 만큼 하루 24시간을 온전히 그 일에만 올인하다 보면 다는 아니어도 이미 그 길을 걷고 있는 분들과의 거리를 좀 더 좁힐 수 있겠지요. 그것도 한 방법이라고 봐요. 실제로 그러한 분들도 많이 만나 보았고요.”
특히 경력단절 여성에게 이보다 더 빠를 때는 없다고 말하는 그녀. 다시 취업을 준비하고 있는 주부들에게도 그녀는 조언을 아끼지 않았다.
“요즘은 아이를 키우다 일을 하려는 중년 여성들이 참 많더라고요. 정부의 도움을 받아 꾸준히 자격증을 준비해 재취업에 성공한 한 청취자의 사연이 가장 기억에 남아요. 재취업에 대한 강한 의지와 생활력이 단연 돋보인 분이셨어요. 경력단절 여성에게는 무엇을 어떻게 준비해 이러한 길로 가라는 조언보다 용기와 의지, 씩씩한 자세가 무엇보다 중요하다는 말을 꼭 하고 싶어요. 실제로 재취업에 성공한 분들을 보면 다들 의지 하나만큼은 탁월하다는 공통점이 있었습니다.”

나이롱 엄마, 나이롱 작가

‘나이롱’은 진짜가 아니라는 뜻이다. 그런 의미에서 그녀도 자신을 ‘나이롱 엄마’, ‘나이롱 작가’라고 표현했다. 치열하게 글을 쓰지도 못했고, 게으름을 피우며 엄마 역할, 마누라 역할을 대충 흉내만 내고 살았다는 이유에서다. 그럼에도 그녀는 나이롱인 자신을 통해 위안을 찾는다고 말했다.
“헌신적으로 아이를 기르고, 남편을 내조하며, 일에 몰두하다 보면 누구나 그만한 보상을 바라기 마련이잖아요. 그런데 좀 더 게으름을 부리면 무엇인가가 잘못돼도 ‘그래, 내가 잘 못 해줬지’라는 반성에 곧잘 마음을 추스르게 됩니다. 나이롱이니까 나일론 같은 정신으로 버티면 조금씩 나아지지 않을까, 저는 여전히 그렇게 믿어요.”
이제 막 중년에 접어든 박금선 작가. 그녀는 젊은 시절 아쉬운 일이 많았던 만큼 앞으로도 <여성시대>를 통해 숱한 여성 청취자들과 소통하며 못 다한 일을 조금씩 이루어 나갈 계획이다. 소박하게는 남편과 오래도록 사이좋게 사는 아줌마가 되는 것이 그녀의 꿈이다. 그것이 훗날 자녀들에게 보내는 일종의 선물이란다.
“나이 든 부모 걱정 없이 사는 것보다 아이들에게 더 좋은 일이 없지요.”
자꾸 머릿속에 맴도는 그림도 본격적으로 그리며 소설도 쓸 예정이라는 그녀의 향후 행보를 힘껏 응원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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