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춘천의 병원에서 만난 이외수, 2년 전 위암과 벌인 사투 이야기
춘천의 병원에서 만난 이외수, 2년 전 위암과 벌인 사투 이야기
  • 송혜란 기자
  • 승인 2016.03.18 10:49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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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 이외수의 암 투병기를 듣고 싶어 인터뷰를 허락받고 기다리던 중 그의 입원 소식이 전파를 탔다. 우선 떠오른 건 암이 재발이라도 한 것일까. 무거운 마음으로 강원도 춘천에 있는 한 병원의 병실을 찾았다.

취재 송혜란 기자 사진 양우영 기자

그동안 위암 투병으로 몸무게가 무려 20kg 가량 줄었다는 그는 꽤 수축한 모습을 하고 있었다. 그러나 이야기를 나누기에는 큰 문제가 없다고 말하는 그는 환한 아이보리 색의 니트부터 깔끔한 헤어스타일과 짧은 수염까지. 체격만 왜소해졌을 뿐 외모는 오히려 전보다 밝아 보였다. 
“며칠 전에 감기를 심하게 알았어요. 기침하다 폐에 기흉이 생겼지 뭐예요. 굉장히 위험한 상황이었는데, 응급처치를 잘했어요. 앞으로 한 삼일 정도만 더 있으면 퇴원할 수 있답니다.”
다행히 이번 입원도 암과 무관하다는 그의 말에 마음이 편해졌다.

부정과 분노, 인정, 우울, 수용 5단계를 바로 인정하다

2년 전, 갑작스러운 위암 확진으로 모두를 놀라게 한 이외수.  긴급 암 수술과 8차에 걸친 모진 항암치료를 견뎌 내고 완치 판정을 받아낸 그의 암투병기를 암환자와 가족들에게 들려달라고 부탁하자 그가 흔쾌히 그의 경험담을 들려주었다.
목소리를 가다듬은 그는 처음 위암 확진을 받을 때부터 시작해 그동안의 암 투병기를 담담하게 풀어놓았다.
“세월호 사태 이후 계속 술을 마셨어요. 삼개월 간 거의 하루도 쉬지 않고 마셔댔지요. 그러던 어느 날, 화장실에 갔는데 등골이 서늘해지면서 식은땀이 계속 흐르는 겁니다. 화장실을 나오다 쓰러졌어요.”
비슷한 증세가 계속되자 그는 병원을 찾았다.
“그때까지만 해도 별걱정을 안 했어요. 정밀검사를 받은 후 오랜만에 가족들이랑 영화도 보고, 고기도 먹을 요량으로 병원에 갔지요. 그런데 처음 간 병원에서 더 큰 병원으로 가보라는 거예요. 그때서야 무엇인가 문제가 심각하다고 느꼈습니다.”
두 번째 병원에서는 그에게 바로 입원하라고 권했다. ‘영화 한 편만 보고 오면 안 되겠느냐?’고 묻는 그에게 의사는 ‘지금 나가면 30분 안에 다시 앰뷸런스 타고 돌아올 것이다’고 엄포를 놓았다.
“그 정도로 심각하냐고 재차 물었더니, 백혈구와 혈액이 보통사람의 반밖에 되지 않는다고 하더라고요. 저도 모르게 제 몸의 혈액이 계속 변으로 새고 있었던 거예요. 혈변을 보아도 제가 집필에 너무 열중하느라 애가 타서 그런 줄 알았지 다른데 문제가 있을 것이라고는 상상도 못 했어요.”
결국 MRI 검사까지 마친 그는 위암 확진을 받았다.
“순간 아찔하더라고요. 올 것이 왔구나.”
당시 그는 대개 암 확진 환자들이 거친다는 부정과 분노, 인정, 우울, 수용 5단계의 공통된 심리상태를 30분 안에 빨리 정리했다.
“바로 인정하고 수용했어요. 사람은 누구나 태어나면 죽잖아요. 물론 그 시기가 예상치 못하게 빨리 왔을 수도 있지요. 그러나 대한민국에서 40년 동안 소설가로 살며 수많은 독자들의 사랑을 끊임없이 받기도 힘들잖아요. ‘박수 칠 때 떠나라’ 식으로 가도 행복하지 않나 싶었어요.”

항암치료 과정은 상상을 초월하게 혹독하다

착잡한 마음을 뒤로한 채 즉시 현실을 받아들인 그는 곧장 수술을 결심했다. 
“자, 그러면 이제 어떻게 하면 되느냐? 의사에게 물었더니 수술을 해 위를 다 절제해야 한데요. 아들은 수술의 성공 확률을 궁금해 하더라고요. 의사가 하는 말이 ‘내가 하면 100%지!’ 그 말에 신뢰가 갔어요.”
수술이 있기 전날, 그는 ‘위’가 있는 자로서 마지막 고기파티를 즐겼다. 지금 생각해보면 더없이 좋은 선택이었다고 한다. 수술 후 본격적인 항암치료에 들어가면서 음식을 거의 입에 댈 수 없었기 때문이다.
“수술만 하면 다 괜찮아질 줄 알았더니 그보다 더 악마 같은 과정이 저를 기다리고 있었어요. 구역질 나는 항암제를 수없이 먹고 맞아야 했지요. 거의 하루 24시간 내내 극심한 차멀미에 시달리는 기분이었다고 이해하면 될 거에요. 이것을 저는 8차까지 견디어 냈습니다.”
보통 암 환자의 경우 항암치료가 주는 엄청난 고통으로 인해 3차에서 포기하고 만다고 한다.
“설마 이 약이 사람을 살리려고 만든 약이지, 죽이려고 만든 약은 아닐 것이잖아요. 전 세계 의사들이 총동원되어 심혈을 기울여 만든 약이니까요. 악착같이 버티었습니다.”

3차부터 바뀐 생존 전략

물론 그에게도 3차는 가장 큰 고비였다. 신체적으로 면역 수치가 확 떨어지고 정신적으로 자신감마저 바닥을 드러냈다. 이대로는 더 이상 견디기 힘들다고 판단한 그는 전략을 다시 세웠다. 제일 먼저 거울을 하나 샀다. 문하생들에게도 좋은 화장품이 무엇인지 수소문해 물광크림이며 동백오일을 사 모았다. 옷도 우중충한 환자복을 벗어 던지고 밝은 옷으로 갈아입었다.
“그 상태로 자주 거울을 들여다보며 마인드 컨트롤을 했어요. ‘너는 잘생겼을 뿐 아니라, 인간성도 썩 괜찮은 놈이야’ 이를테면 마구마구 ‘자뻑’ 모드로 들어갑니다. 최대한 즐겁고 긍정적인 생각만 했어요. 그러면서 암을 극복할 의지를 불태웠지요. 자뻑이 제 소생의 비밀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에요. 밤낮으로 절 돌보느라 고생한 의료진과 가족, 후배, 친지들의 도움은 이루 말할 수 없고요.”

자뻑은 나의 힘

 

자뻑은 한자어 스스로 ‘자(自)’에 우쭐거리며 자랑한다는 뜻의 우리말 ‘뻐기다’의 축약 어근 ‘뻑’이 합성된 신조어다. 흔히 자화자찬을 일삼는 경우나 자기 자신에게 도취되어 정신을 못 차릴 경우를 표현할 때 쓴다. 이러한 자뻑의 힘을 통해 몸이 조금씩 좋아지는 것을 의식한 그는 자신뿐 아니라 주위 사람도 챙길 여유가 생겼다. 자신보다 훨씬 어려운 환경에 처한 사람들을 격려하고자 그는 매일 트위터에 항암 일기를 올리기 시작했다. 특히 그는 그 울림이 젊은이들에게 전해지기를 간절히 소망했다.
“제가 생각하기에는 요즘 젊은 세대들이 우리 때보다 훨씬 더 불행한 것 같아요. 실제 유행하는 말만 봐도 ‘헬조선’, ‘삼포세대’를 거쳐 ‘오포세대’, 심지어 ‘구포세대’라는 말이 오갈 정도지요. 젊은이들은 마치 희망이 전혀 없는 자각 증상을 보이고 있어요. 그들에게 힘이 되어주고 싶었어요. 마침 제가 암 확진도 받았겠다. 이걸 극복할 수 있다면 그것이야말로 그들에게 큰 위안이 되지 않겠어요?”
결국 그는 암 투병 인고의 시간 1년 반 만에 위암 완치 판정을 받아냈다. 그 중요한 밑천은 단연 자뻑이었다. 그의 이야기가 젊은이들에게도 잘 전달된 것일까.
“요즘 젊은이 중에도 암 환자가 많더라고요. 어떤 친구는 자신이 암으로는 제 선배라며 쪽지를 보내오기도 했어요. 저와 트위터에서 메시지를 주고받은 젊은이들도 지금은 다 완치됐습니다.”

자뻑이 필요한 시대

그는 왜 이리도 자뻑의 힘을 강조하는 것일까.
“우리 모두에게는 절실하게 응원군이 필요해요. 그런데 가족도, 친척도, 친구도, 애인도 내 코가 석자입니다. 모두가 자기 발등에 떨어진 불을 끌 여력조차 없을 지경이에요. 그래서 자기 자신을 유일한 응원군으로 만들어야 합니다. 절실하고 절실하게 자뻑이 필요한 시대이지요.”
자뻑의, 자뻑에 의한, 자뻑을 위한 나날을 보내고 있는 그는 지나치게 과장되거나 근거가 없는 자뻑은 남에게 웃음거리가 될 수 있다고 경계했다.
“자신에 대한 신뢰감을 떨어뜨릴 수도 있지요. 그러나 풍자와 해학이 곁들여진 자뻑은 애교나 매력으로 보일 수 있습니다. 자뻑이 가득한 날을 보내보세요. 그러면 자신도 모르게 의지와 용기가 조금씩 자라기 시작합니다. 오늘부터 한번 실천해 보시지요.”

화, 근심, 걱정도 함께 버려라

그가 강조하는 자뻑은 쉽게 풀이해 마인드컨트롤이라고 할 수 있다. 혹독한 투병생활을 끝낸 그는 마지막으로 “마음을 잘 다스리는 것이 건강을 잘 다스리는 것이다”고 조언했다. 그 역시 세월호 사태 이후 마음을 잘 다스리지 못해 술을 마시다 결국 위 절제 수술까지 받았기에, 그의 마지막 메시지가 주는 의미가 적지 않다.
“슬픔을 다스리지 못하면 폐가 안 좋아져요. 폐는 오행 중 금에 속하거든요. 쇠는 물에 닿으면 녹이 슬지요. 슬픔이 많아 눈물이 흘러 결국 폐를 다치게 하는 것입니다. 화를 잘 내면 간을 다치기 쉽고요. 근심은 위를, 공포심은 심장을 해칩니다. 감정과 오장은 아주 불가분의 관계를 맺고 있어요.”
그 말은 즉 감정만 잘 다스려도 건강을 지킬 수 있다는 뜻이 된다. 그는 화가 나면 참지 말고 바로 뱉어내고 오래 붙잡아 두지 않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고 덧붙인다. 근심도 걱정도 마찬가지다.
“예를 들어 우리가 초등학생 때 근심이 없었나요? 숙제를 안 했거나 아버지에게 거짓말을 했을 때도 오만 근심이 다 있었습니다. 중학생 때나 고등학생, 심지어 대학생 때도 근심의 강도가 세지면 더 세졌지 없지는 않았어요. 근데 생각해보세요. 그때의 근심이 여태 남아 있습니까? 모든 근심은 100% 사라져요. 허수아비 같은 근심을 쓸데없이 붙잡고 있으면 자신만 곤욕이지요. 화도, 근심도, 걱정도 모두 훌훌 털고 잊어버리면 그만입니다. 항상 긍정적인 마인드를 갖는 게 중요해요.”

백수 아닌 작가로

긍정적인 생각은 긍정적인 결과를 불러오고, 부정적인 견해는 부정적인 일을 만들기 마련. 그런 점에서 그는 앞으로 책 제목을 지을 때 더 신경 써야겠다고 말했다. 그도 그러한 것이 <하악하악>을 썼을 때 그는 담배를 끊어 급성장염이 와 수술을 받으며 헐떡거려야 했고, <쓰러질 때마다 일어서면 그만>을 쓰고서는 진짜 암에 걸려 쓰러졌다.
“글에는 구술적인 힘이 있는 것 같아요. 그래서 재작년에는 <뚝>을 썼더니 고통도, 근심도, 슬픔도 모두 뚝 끊겼습니다. 이제는 제가 일어설 때이니 스스로 격려하며 일어나자는 뜻에서 <자뻑은 나의 힘>이라고 썼지요.”
힘든 투병 생활 중에도 작품 활동을 게을리하지 않은 그가 무사히 퇴원 후 내놓을 새 작품의 제목은 또 무엇일까 궁금증이 앞섰다.
“<연애편지를 씁시다>. 문학의 저변 확대를 위해 중, 고등학생들이 좋아하는 시를 써봤어요. 문학의 권위가 독자들과의 거리를 너무 소홀하게 만드는 것 같아요. 그래서 이번 시는 조금 깜찍한 편입니다. 그래야 독자들과의 거리를 조금씩 좁힐 수 있지 않을까 싶어요.”
스스로를 ‘쓰면 작가, 안 쓰면 백수’라고 표현하는 그가 올해는 건강한 모습으로 독자와 만날 수 있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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