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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옥 갤러리 ‘류가헌’에서 마주친 사진전 <홀리우드>
한옥 갤러리 ‘류가헌’에서 마주친 사진전 <홀리우드>
  • 송혜란
  • 승인 2016.03.28 15:2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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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촌 문화 산책1
한옥 갤러리 '사진 위주 류가헌' 입구

인왕산 아래 한옥이 옹기종기 모여 있는 서울 종로구의 서촌. 골목 사이를 걸으며 옛 정취를 물씬 느낄 수 있는 이곳에는 유독 갤러리가 많이 밀집되어 있다. 막다른 길까지 가다 보면 사진위주 ‘류가헌’이 보인다. 서촌 산책길에 우연히 마주친 한옥 갤러리에서는 한창 김상진 작가의 사진전 <홀리우드>가 열리고 있었다.

취재, 사진 송혜란 기자 자료사진 류가헌 제공

‘사진을 으뜸으로 삼는다.’ 류가헌(流歌軒)이라는 이름 앞에 붙여진 사진위주의 뜻이다. 갤러리 자체로서 하나의 다큐멘터리이기를 꿈꾼다는 류가헌은, 늘 전시를 계획하는 사진작가들에게 편히 다가갈 수 있는 공간으로 꾸며져 있었다. 한옥으로 이루어진 건물은 사진과 동떨어진 일반인들조차 쉽게 마음을 열 수 있도록 친숙한 분위기를 자아냈다. 류가헌의 갤러리 명도 ‘흐르면서 노래하는 집’이라는 의미를 품고 있다고 한다.
함께 흐르면서 노래하는 마음으로 대문을 열고 류가헌에 들어섰다. 한옥 두 채가 나란히 기와지붕을 마주 대고 있는 이곳에는 긴 툇마루와 높은 하늘이 들여다보이는 마당이 아담하게 자리해 있었다. 두 한옥의 중심에는 한국 사진가의 사진 책을 한자리에서 볼 수 있는 사진책도서관이 있다. 아늑한 분위기를 자랑하는 도서관에서 따뜻한 차 한 잔을 마시고 나니 추운 날씨로 인해 꽁꽁 얼었던 마음이 서서히 온기로 가득 차기 시작했다. 잠시 몸을 녹인 뒤 전시1관을 바라보니 그때서야 김상진 작가의 사진전 <홀리우드>가 눈에 들어온다. 한국의 정서가 깃든 한옥 갤러리에서 감상하는 할리우드의 풍경은 또 어떤 이국적인 매력을 풍길까? 호기심 어린 마음으로 <홀리우드> 전시회장으로 발길을 옮겨 보았다.

▲ 사진=류가헌 제공

일상을 포착한 로스앤젤레스의 풍경

신사복 차림에 수북한 턱수염을 기른 한 남성. 할리우드 영화에서나 등장할 법한 그의 모습 뒤로 맞은편 거리를 오가는 또 다른 신사들의 그림자가 드리우고 있다. 우연이라고는 믿기 어려울 정도로 그림자가 마치 사진 속 피사체의 남성을 축소해 둔 모습이다. 머리에 눌러 쓴 중절모를 보아도 영락없이 그를 닮았다. 찬찬히 다시 응시해 보니 진짜 그의 그림자인 것 같기도 하다. 정면으로 서 있는 다른 남성의 그림자가 사진을 찍고 있는 작가를 연상케 하기 때문이다.
<홀리우드> 전에는 추위에 온몸을 서리는 일군의 사람들이 한 방향을 향해 걷고 있는 벽화와 진한 화장을 한 여인이 사람들의 발치에 누운 채 웃고 있는 모습, 벨트 목걸이를 찬 짧은 금발의 여인과 팔뚝이 훤히 들여다보이는 민소매 티를 입은 남자가 서로를 응시하며 껴안고 있는 장면 등 로스앤젤레스의 일상을 포착한 사진들이 전시되어 있었다. 영화의 한 장면을 캡처한 것 마냥 자연스러운 사진들. 간혹 해변에서 섹스 돌처럼 풍만한 여자 형상의 튜브를 든 사내가 등장하기도 하고, 남자의 성기를 장난스럽게 표현한 사진도 걸려 있다. 역광을 이용해 찍은 듯한 한 사진은 후광 효과가 빛을 발해 주인공을 예수처럼 비추기도 한다. 실제 영화 속 한 장면은 아닐까 의심이 들던 찰라 작가가 곧바로 미국 로스앤젤레스의 거리 풍경이라고 고백한다. 연출한 사진 또한 아니며, 그저 숱한 관찰이나 길고 긴 기다림을 통해  포착한 이미지라는 것. 굳이 영화와 연관성을 찾는다면 사진을 촬영한 곳이 영화의 중심지로 통하는 할리우드 인근이라는 정도다.
작가는 작업 노트를 통해 “영화란 일종의 ‘꿈을 파는 산업’이라 생각하는데, LA라는 도시가 바로 그 산업의 거대한 현장이다”고 말했다. 실제로 수많은 영화 촬영이 LA 곳곳의 거리에서 이루어져 일상이 마치 영화 속 장면 같기도 하고 꿈속처럼 기이하거나 몽환적이기도 하다고. 10년 넘게 LA에 살고 있다는 그도 여전히 자신을 이방인이라 표현하며, 때로 그곳에서의 삶이 꿈인지 생시인지 혼돈될 때가 있다고도 덧붙였다.

사진가 김상진은…

<홀리우드> 전에 등장하는 모든 작품은 실제 LA의 이방인인 사진가 김상진의 작업물이다. 2000년에 미국으로 건너가 현재 LA중앙일보 사진부 차장으로 있는 그는, 국내에 있을 때 디자인하우스의 하우스포토를 지냈다. 지면에 미처 싣지 못한 사진들을 통해 그는 사진가 김상진의 이름을 널리 알렸다. 취재차 촬영을 갔다가 마음에 드는 피사체가 있으면 마감 후에도 여러 차례 다시 찾아가는 근성으로 유명한 그다.
윌리엄 클라인, 로버트 프랭크 등 그가 사진학도 시절 롤 모델로 삼았던 사진가들의 활동 무대인 미국으로 떠난 이후, 그는 본격적으로 LA를 사진에 담기 시작했다. 이번 <홀리우드> 전은 미국 전시에 앞서 한국에서 먼저 선보이는 그의 전시 시리즈의 일부다. 전시명 홀리우드에 걸맞게 그의 이번 작품들은 아름답기도 하고 때로는 기괴하고, 우스꽝스럽기도 하다. 한편으로는 슬픈 감정을 불러일으키는 사진들도 있다.
작가는 홀리우드를 “영화 같은 일상의 풍경에 대한 풍자이자 동시에 아무것도 아닌 일상의 거룩함에 대한 예찬을 동시에 품고 있는 조어”라고 표현했다.

 

기묘한 보물섬을 만나다

그의 작품을 통해 유추할 수 있는 LA는 어떤 곳일까? 작가의 말을 빌리자면, 그야말로 보물섬이다. 수백 개의 민족이 수백 개의 언어를 사용하며 다양한 문화가 존재하는 메가시티. 그곳이 로스앤젤레스라는 것. 통합되지 못하고 섞이지 않으며 철저하게 분리되어 있다는 의미에서 ‘Melting Pot’ 혹은 ‘Salad Bowl’이라 불린다고도 한다. 
“LA라는 도시는 정치적, 사회적, 문화적, 인종적, 경제적으로 분리된 각 섬이 각자의 목소리를 내며 거대한 군도를 이루고 있습니다. 각 섬은 온갖 이슈들이 잠재적으로 충돌의 여지를 간직한 채 긴장감을 유지하고 있지요.”
그런 점에서 작가가 앞서 이야기했듯 그는 수많은 섬과 섬 사이를 비집고 다니는 자유로운 이방인이라는 표현이 적절하다. 각 섬에서 벌어지는 모든 일이 그가 살아가는 LA의 일상이고, 그것을 찾아가는 것은 사진가인 그의 일상이기 때문이다. 일상 속에 감추어진 배후를 찾아 그 의미를 찾아가는 그만의 여행. 그의 사진 작업들은 이 섬들을 분해하고 해체하려는 시도들이다. 참 멋진 설명이 아닌가. 일상에서 그의 카메라에 의해 기록되는 이벤트와 이슈들은 그에게 있어 인식의 통로인 셈이다.
1978년 뉴욕 MOMA의 사진 전문 수석 큐레이터 존 자르코브스키는 ‘Mirrors and Windows’라는 전시를 기획한 바 있다. 사진을 크게 두 가지로 분류했는데, ‘Mirrors’ 즉 거울은 자기 자신, 파인아트로서의 사진을 은유한다. ‘Windows’는 다큐멘터리 등 사회적 사진을 내포했다고. 현대에는 두 가지 개념의 벽이 무너지고 있지만, 사진의 분류로서는 가장 정확한 방법이었다고 작가는 생각한다. 그 분류를 그의 작업에 적용하면, ‘홀리우드’ 시리즈는 Windows의 개념에 가깝다. 연출되지 않은 자연스러운 상황들로, 관찰과 기다림을 통해 마주친 한 순간을 기록하는 형식이기 때문이다. 그러한 ‘사진적 만남’을 기대하는 그에게 LA가 기묘한 보물섬인 이유도 다가가면 다가갈수록, 벗기면 벗길수록 다른 모습을 보여 주기 때문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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