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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사 수필가 김애양 원장, 문학이 나의 청진기
의사 수필가 김애양 원장, 문학이 나의 청진기
  • 송혜란 기자
  • 승인 2016.04.27 18:06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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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부인과는 제아무리 여성이라도 발을 디디기 쉽지 않다. 그런데 유독 거리낌 없이 편안한 발걸음으로 많은 환자가 찾아오는 곳이 있어 눈길을 끈다. 그리고 그곳에는 의사 김애양이 있다. 문학을 청진기 삼아 마음마저 치료한다는 그를 만나기 위해 서울 강남에 있는 한 병원을 찾았다.

취재 송혜란 기자 사진 양우영 기자

김애양이 원장으로 있는 병원에 들어서자 화기애애한 분위기가 물씬 풍겼다. 어린아이처럼 천진난만한 웃음이 매력적인 그를 보니 마치 심리상담소를 찾을 듯 편안한 마음이 들었다. 그의 진료실에는 의료전문서적은 물론 세계 문학을 아우르는 다양한 책들이 서가를 가득 채우고 있었다. 지난해 SBS 스페셜 <병원의 고백>에 양심의사로 소개되면서 유명세를 치른 그는 의사집안의 5남매 중 막내로 태어났다. 의사 1명도 배출하기 쉽지 않은데 한 집안에 의사가 무려 18명! 의대를 다니는 자녀들까지 김 원장의 형제와 자녀, 배우자는 모두 현역 의사이다.
“동국대학교 영문과 교수이셨던 아버지는 늘 집에 들어오면 책을 펴 놓고 셰익스피어 작품을 번역하곤 했어요. 어릴 때부터 보고 배운 게 책을 보며 공부하는 것뿐이었지요. 인간은 밥을 먹으면 공부를 해야 한다는 게 지존인지 알고 있던 때이었습니다.”
게다가 그의 아버지는 자식들이 모두 의사가 되기를 바랐다. 애초 아버지를 따라 문학을 하고 싶었던 그의 꿈도 아버지의 설득에 송두리째 흔들리고 말았다.
“아버지는 영문학자로서 굉장히 힘들게 사셨어요. 문학을 버거워하셨죠. 그래서 자식 중에 누구 하나 문학을 하려고 들면 새싹부터 짓밟듯 말리셨어요. 문학은 아무리 노력해도 도달할 수 없으며 배가 고픈 직업이라면서요. 반면 6·25 시대를 겪으신 아버지는 의사가 굉장히 쓸모 있는 직업이라고 생각하셨던 것 같아요. 의사는 전쟁 중에도 아군과 적군 가리지 않고 생명을 살렸으며 어느 편에 잡혀도 죽임을 당하지 않고 의사로서의 본연의 역할에 충실할 수 있었으니까요.”
아버지의 설득에 못 이겨 고등학교를 문과로 갔다가 뒤늦게 이과로 전향했던 그는 다행히 이화여자대학교 의과대학에 합격해 산부인과 전문의, 의학박사가 되었으며, 현재 이 자리에까지 이를 수 있었다.

의사 수필가가 되다

의사가 된 후 그가 본격적으로 글을 쓰기 시작한 시기는 IMF 때였다. 경제위기로 다들 힘들어할 때 무엇인가 보람된 일을 하고 싶었던 그는 집에서 가까운 문화센터를 찾아가 수필을 배웠다. 매시간 그가 쓴 수필을 본 강사는 칭찬 일색이었다.
“어릴 때 책을 많이 읽다 보니 어느 정도 좀 쓰나 보다 싶었지 그때까지만 해도 전 제가 글을 잘 쓴다는 생각을 하지 못했어요. 수필가로 등단한 후에는 등단이 정말 아무나 하는 것이구나 싶어 글쓰기를 멈춰버렸을 정도예요. 의사가 글을 쓰니까 괜히 그 이력 때문에 잘한다고 하는 줄 알았거든요.”
그렇게 8년이 지났는데 왠지 모르게 그는 사는 게 허전하다는 것을 느꼈다. 의사로서 환자만 본다는 게 따분하기도 했다. 이윽고 다시 문화센터 강사를 찾아간 그는 다시 열심히 글쓰기를 시작해 첫 작품집 <초대>를 냈으며, 이 외에도 <의사로 산다는 것>, <위로>, <명작 속의 질병 이야기> 등 다수의 책을 집필했다. 2008년에는 ‘제 4회 남촌문학상’을 수상하기도 한 그다. 
“저의 기쁨을 다른 사람에게도 나누어주고 싶어서 같은 해 한국의사수필가협회를 만들었어요. 저같이 등단한 의사 50명이 함께 모여 서로 윈윈 하는 관계로 잘 지내고 있습니다. 예전과 달리 요즘은 글 쓰는 의사도 참 많아진 것 같아요.”
그 역시 최근 새로운 수필집 <아프지 마세요>를 내놓으며 의사 수필가로서 활발한 활동을 이어가고 있다.

문학이 주는 위대한 힘

의사 수필가가 된 그는 돌이켜보니 아버지에게 감사한 일이 많았다. 아이러니하게도 문학을 향한 자신의 꿈을 꺾고 의사가 될 수 있도록 해준 게 참으로 고마웠다. 아버지가 그에게 준 가장 큰 선물도 바로 자신을 의사의 길로 이끌어준 것이었다.
“현실적으로 글을 써서 밥을 벌어 먹고살기 힘드니까요. 의사라는 전문 직업을 가지고도 이렇게 쓰고 싶은 글을 쓸 수 있으니 얼마나 좋아요. 지금 생각해보니 아버지의 말씀이 맞았어요.”
그럼에도 문학이 의사인 그에게 주는 힘은 대단하다. 사실 병원에는 늘 대하기 편한 환자만 찾아오는 것이 아니다. 예상보다 빨리 치료되었다고 고마움을 표하는 환자부터 왜 나만 아프게 치료하느냐고 짜증을 내는 사람까지…. 어느 병원에서나 마주치기 쉬운 참 어려운(?) 환자가 찾아오면 그는 머릿속에 명작 속 특별한 이야기를 떠올린다.
“환자는 물론 모든 사람은 다들 자신이 특별하기를 바라는 것 같아요. 그런 환자들을 보면 저도 사람인데 왜 화가 안 나겠어요? 책을 읽고 글을 쓰며 저도 모르게 불쑥 튀어나올 수 있는 못생긴 마음과 말을 저하하려고 노력해요. 소설을 많이 읽다 보니 사람을 이해하는 능력이 향상된 것 같습니다. 인간은 참 어리석게도 자신이 경험한 것은 다 알지만 닥치지 않으면 모르잖아요. 문학에는 그러한 케이스가 다 들어 있기 때문에 그만큼 독서가 중요해요.”
마치 소설 속 주인공처럼 스스럼없는 그의 친숙한 태도에 곧 완치된 환자들도 인생 상담을 하러 그를 자주 찾아오곤 한다. 누구나 찾아가 말을 걸고 싶어지는 사람이 김 원장이다. 뛰어난 상상력과 독특한 그의 말투로 문학 이야기를 듣고 있노라면 마치 명작을 함께 감상하는 듯 즐거움으로 가득 차기 때문일 터.
상담 중에 긴장하고 어린 환자에게 “내가 정확히 봐줄 테니까 걱정하지 말고 침대에 올라가 자빠져봐유!”라고 하면 환자는 웃음을 참으며 긴장을 풀고 치료실로 들어가는 일도 다반사다. 생활 속에서 문학적 표현을 즐기는 반면 시골 장터에서 노인들이 쓸 법한 어투로 주변 사람들의 마음을 무장 해제시키고 즐거움을 주는 것 또한 김 원장이 지닌 큰 장점이다.

끊임없이 노력하는 사람

문학이 주는 위대한 힘을 몸소 깨달은 그는 현재 스페인어 공부에 열중이다. 국내에 많이 알려지지 않은 훌륭한 남미 문학을 직접 접하기 위해서다. 오늘의 내가 어제의 내가 아니라 항상 많이 변하려고 노력하는 김애양 원장.
“저희 아버지는 셰익스피어 전집을 우리나라에 최초로 완역한 고 김재남 교수님이세요. 셰익스피어 전집을 완역한 것은 세계적으로도 7번째였데요. 영문학사에 굉장히 중요한 일이었지요. 그런데도 아버지는 평생에 걸쳐 셰익스피어 연구를 지속하셨어요. 왜 그럴까 궁금해서 여쭈어봤더니 아버지가 하시는 말씀이 ‘셰익스까지는 알았는데 피어를 아직 몰라서 그래.’ 제게는 그 말이 안주하지 말고 공부를 계속해야 한다는 말로 들렸어요.”
그러고 보면 김 원장은 자신보다 더 좋은 학벌인데도 성공하지 못한 사람을 많이 보아왔다. 학벌 위주의 사회인 한국에서 대학만을 목표로 달려 왔으니, 이를 이룬 후에는 더 노력하지 않았을 수도 있겠다.
“맞아요. 끊임없이 자기발전을 위해 열심히 노력하지 않아서 그래요. 그 ‘열심히’라는 것도 가치 있는 것 앞에 붙여야 하는데요. 그러한 맥락에서 문학이 제게는 열심히 하기 좋은 가치가 될 수 있지 않을까 싶어요. 문학이 제정신을 고양해 발전하는 데 긍정적인 역할을 해주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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