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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촌 보건위생의 선구자, 이영춘 가옥을 가다
농촌 보건위생의 선구자, 이영춘 가옥을 가다
  • 김이연 기자
  • 승인 2016.04.28 17:28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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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예술인 생가 탐방
 

‘한국의 슈바이처’라 불리는 이영춘 박사는 일생을 농촌의 보건위생에 이바지한 분이다. 그가 작고할 때까지 살았던 가옥은 서양식, 한국식, 일본식 특성이 절충된 독특한 구조로 아름다운 외관을 자랑하지만, 이면에는 일제 강점기 토지 수탈의 가슴 아픈 역사도 깃들어 있다.

진행·사진 김이연 기자|자료제공 군산시청

일제 강점기 토지수탈의 역사가 서린 곳
전라북도 유형 문화재 제200호 이영춘 가옥

군산은 일제 강점기 산미증식 계획에 따라 쌀 수탈과 반출이 집중적으로 이루어졌던 항구 중심지이며, 일본의 토지수탈과 관련된 근대문화유산이 많이 남아 있는 곳이다. 군산 시가지 외곽에 남아 있는 유산들은 대부분 일제 강점기 군산에 있었던 대규모 농장과 관련이 있다. 그 중 ‘이영춘 가옥’은 군산시에 남아 있는 건축물 중에 가장 보존이 잘 된 곳이다. 일본인 농장주인 구마모토 리헤이가 1920년대에 지은 집이다. 당시 조선총독부 관저와 비슷한 건축비를 들여 지은 호화로운 집으로 별장처럼 지었다.
구마모토 리헤이는 대규모 농장을 운영하며 고리대금 등으로 토지를 빼앗아 부를 축적했다. 한인 소작농이 2만 명에 달했을 정도다. 구마모토는 열악한 환경과 고된 노동에 소작인들이 견디지 못하자 의사를 채용했는데, 그가 바로 한국의 슈바이처 쌍천 이영춘 박사다.
쌍천(雙泉) 이영춘(李永春, 1903~1980) 박사는 자혜 진료소 소장으로 부임해 구마모토 농장의 소작인들을 상대로 무료 진료 왕진을 다녔다. 또한 훗날 우리나라 양호교사 제도의 효시인 위생실을 신축하여 교사를 채용하고 아이들의 건강을 관리했으며, 결핵, 매독, 기생충을 3대 민족의 독으로 규정하고 퇴치하는 등 농촌 보건위생에 평생을 바친 분이다.
이 가옥은 일제의 토지수탈 역사를 보여주는 사료적 가치가 있으며 이영춘 박사가 의료계에 미친 영향을 고려해, 2003년 10월 31일 전라북도 유형 문화재 200호로 지정되었다.

서양식, 한국식, 일본식 특성이 절충된 구조
1920년대 근대 주거문화의 이입과 양상을 보여줘

 

이영춘 가옥은 서양식, 한국식, 일본식의 여러 건축 양상이 절충된 독특한 특성을 띠며, 해방 후 이영춘 박사가 거주하며 지금의 이름을 얻게 되었다. 군산시 개정동 구 개정병원 본관 동쪽 언덕 위에 자리하고 있다. 1920년경 일본인 대지주 구마모토가 지은 개인별장으로, 외부의 형태는 유럽의 주거형식을 따르며 평면의 구조는 일본식 중복도형 평면을 바탕으로 서양식 응접실과 한국식 온돌방을 두어 다양한 절충적 특성을 보여준다. 이영춘 박사가 사용하면서 일본식 다다미방을 온돌방으로 개조하였으며, 외관을 포함한 전체적인 주거 구조는 그대로 유지되어 있다. 가옥 내부는 이영춘 박사의 생애와 생활 유품을 전시하고 있다.
이 집은 목조 1층 건물로 기단과 벽난로 굴뚝은 호박돌을 쌓아 만들었다. 외벽은 황토와 회를 섞은 심벽으로 구성하고, 하부는 통나무를 사용한 귀틀집의 구조다. 바닥은 티그목 널로 정교하게 짜여 있다. 가구와 샹들리에 등은 외국에서 수입한 것들인데, 당시 건축비가 조선총독부의 관저와 비슷하게 들었을 만큼 고급 자재를 사용하였다고 한다.
현관을 통해 들어서면 거실에는 넓은 돌출 창을 설치하여 정원을 감상할 수 있도록 하였고, 상부는 스테인글라스로 장식해 중세시대 유럽의 건축물 내부에 있는 듯한 느낌을 준다. 거실 한 편에는 서양식 벽난로가 설치되어 있다. 중복도의 남쪽으로는 커다란 다다미방이 있고 북쪽에는 온돌방이 있으며, 복도 끝에 작은 공간을 두어 부엌과 다용도실, 화장실로 연결되도록 만들었다. 외관의 붉은 벽돌과 굴뚝은 유럽풍 가정집을 떠올리게 하는데, 내부에서는 서양식 벽난로와 한국의 온돌방, 일본의 다다미방을 한 눈에 관찰할 수 있어 매우 독특했다. 천장의 높낮이에서도 고유의 건축 특징들을 감지할 수 있었는데, 서양식 공간은 샹들리에와 장식품들로 꾸며졌고 일본식에 비해 한국식 천장이 더 낮았다. 또한 출입문의 목조 구조나 창살들이 매우 정교하게 만들어졌다.
이 건물은 근대의 새로운 주거문화의 이입과 양상을 보여주는 건축물로, 외관과 평면의 구성을 볼 때 뛰어난 건축적 구성을 하고 있다. 이처럼 서양식, 일본식, 한국식 가옥의 양식이 결합된 사례는 국내 주거건축에서 흔치 않은 사례로 꼽힌다.

“농민이 건강하면 한국은 장래 부흥할 수 있다”
농촌 및 공중 보건의 아버지, 이영춘 박사

 

이영춘 박사는 1903년 평안남도 용강군 귀성면에서 5남 1녀 중 막내로 출생했다. 1922년 평양 고등 보통학교를 졸업하고 경북 성주군 멸창학교의 교사로 사회생활을 시작했으나 질병을 얻어 그만두고, 1925년 세브란스 의학 전문학교(현 연세대학교의료원)에 입학해 1929년 졸업했다. 이후 부모님의 권유로 황해도 평산군에서 잠시 의원을 개업했는데, 이 때 가난과 질병으로 고생하는 민족의 참상을 이해하게 되었다고 한다. 1933년 의원을 폐업하고 세브란스 의학 전문학교 병리학 강사로 부임했다. 33세 되던 해인 1935년 평양 고등 보통학교 시절 담임교사이던 경성제국대학 와타나베 교수의 소개로 구마모토 농장 직영 의료원인 자혜 진료소 소장으로 부임했다. 구마모토에게 적어도 5년 후 농촌위생 사업을 지속적으로 추진할 수 있는 기관을 만든다는 약속을 받은 이후였다.
구마모토 농장에 가게 된 동기에 대해 그는 “나도 농민의 자식이고 비록 일본의 통치 하에 있지만 농민이 정신과 육체적으로 건강하면 한국은 장래 부흥할 가능성이 있다는 생각을 희미하게 했습니다. 그래서 나는 그 사업을 시작한 것입니다.”라고 말했다. 그는 구마모토 농장의 소작농들을 상대로 무료 진료 왕진을 다녔다. 1939년 개정 초등학교에 우리나라 양호 교사 제도의 효시라 할 수 있는 20평 규모의 위생실을 두었고, 이어 1941년 대야국민학교와 1942년 화호 국민학교 등에 위생실을 신축하여 기증하고 양호 교사를 채용하여 아동들의 건강을 관리하는데 힘썼다. 한편 구마모토 농장의 농장주를 설득하여 개정 심상소 학교에서 학생 340명에게 급식을 3개월간 실시하기도 했다.
1945년 전라북도 도립 군산 병원장을 겸임하면서 1948년 개정 농촌 위생 연구소를 설립하고 연구 소장으로 부임하였으며, 결핵, 매독, 기생충을 3대 민족의 독(毒)으로 규정하고 퇴치에 앞장섰다. 1948년 개정 중앙 병원의 설립에 기여했고, 간호사 양성의 필요성을 느껴 현재의 개정 간호 대학의 전신인 개정 고등위생기술원 양성소를 설립했다. 또한 1952년 개정 농촌보건원을 설립하여 지역 의료체계를 구축했다. 이후 대한공중보건협회장, 보건사회부 보건위원, 군산 로타리클럽 회장, 한양대학교 의과대학 외래교수와 연세 대학교 의과대학 외래교수 등 농촌과 공중 보건을 위해 노력을 기울이다 1980년 2월 25일 향년 78세로 작고하셨다. 1980년 11월 이영춘 박사에게 대한민국 국민 훈장 무궁화장이 추서되었다.

<이영춘 가옥 관람안내>

주소 전북 군산시 개정동 413-1
개관시간 10:00~17:00(매주 월요일, 1월 1일 휴관)
입장료 무료
문의 063-452-888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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