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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G분야 최고 전문가, 카이스트 노준용 교수의 인생 법칙
CG분야 최고 전문가, 카이스트 노준용 교수의 인생 법칙
  • 송혜란 기자
  • 승인 2016.05.12 16:33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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힘든 오늘에 치이고, 내일이 불안한 사람들…. 청년 실업과 수저 계급론이 오고 가는 이 가혹한 시대에 우리에게 가장 필요한 것은 무엇일까? 바람 앞에 촛불처럼 흔들리지 않고 중심을 잡는 법을 익혀야 한다. 미국 할리우드에서 CG 분야 최고 전문가가 되어 돌아온 카이스트 노준용 교수의 블록버스터 인생의 법칙을 들여다본다.

취재 송혜란 기자 사진 양우영 기자

우물 안 개구리는 어떻게 스크린 세상을 바꾸었나?

할리우드 영화 <해피 핏>부터 <수퍼맨 리턴즈>, <나니아 연대기>, <가필드>, <80일간의 세계일주>, <리딕>에는 공통점이 있다. 화려한 컴퓨터 그래픽을 활용해 높은 완성도를 이루었음은 물론, 모두 카이스트 노준용 교수의 손끝에서 탄생했다. 미국 서던캘리포니아대(USC)에서 컴퓨터 사이언스 박사학위를 받은 그는 대학 졸업 후 미국 할리우드의 대표적 시각 특수효과 제작 전문회사인 ‘리듬 앤 휴즈 스튜디오’에서 그래픽스 사이언티스트로 활약했다. 그래픽스 사이언티스트로서 그의 역할은 디지털 아티스트들이 영상을 만드는 데 필요한 기술과 프로그램을 개발하는 것이었다. <가필드>의 생생한 표정은 노 교수가 박사 학위 논문에서 제시한 기법을 활용해 만들어졌고, <나니아 연대기>의 웅장한 전투 장면은 그가 고안해 낸 ‘지형자동생성기술’을 통해 완성되었다.
이후 2006년 한국으로 돌아온 그는 카이스트 교수로 변신해 몰입형 극장 시스템인 ‘스크린엑스’ 기술을 세계 최초로 개발, 상업화하는 데 성공했다. 가히 CG분야 최고 전문가라고 불리는 이유이다.
그러나 사실 그가 처음부터 스포트라이트를 받는 삶을 산 것은 아니었다. 학창 시절 공부를 잘하고 싶은 마음은 누구보다 간절했던 모범생이었지만 결과는 번번이 뒤통수를 맞는 쪽에 가까운 사람 중의 한 명이었다. 이 세상이 저 혼자 밤새 가며 발버둥 친다고 들인 노력만큼 정직한 결과가 나오는 곳이 아니라는 것을 일찍 깨달았을 뿐이었다.
인생에는 그보다 훨씬 중요한 것들이 있다. 그 역시 가끔은 자신이 알고 있는 것들을 조금만 더 일찍 알았더라면 얼마나 좋았을까, 하는 생각을 하기도 한다. 우물 안 개구리가 스크린 세상을 바꾸게 한 그 깨달음은 무엇이었을까?

유학을 선택한 삼수생
 
‘시간이 자꾸 흘러가는데 왜 한 문제도 못 풀겠지? 이러다 올해도 망치겠어….’ 아직도 매년 12월이면 대학 입학시험을 치르는 악몽에 시달린다는 노준용 교수. 우수한 성적에도 두 번이나 명문대 불합격 통보를 받은 그는 자신보다 남 탓을 하지 않고는 견딜 수 없었던 당시의 심정을 잊을 수 없다. 한국이 싫고 세상이 싫어졌다. 대학 수준을 낮추어 지원하는 것도 그에겐 용납되지 않았으니 삼수 말고는 답이 없었다. 삼수 생활은 영영 낙오자가 되어 전전긍긍하는 삶을 살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으로 그의 숨통을 죄었다.
한없이 황폐해져 가는 그를 보고 결국 부모님이 유학을 권했다. 그리고, 한국에서 내리 두  번이나 진흙탕에 코를 박았던 그가 몇몇 미국 명문대에서 바로 합격 통지서를 받았다.
“한국에서는 단 한 번의 시험으로 실패자가 되었던 제가 미국에서는 고등학교 성적표와 자기소개서, 추천서만으로 덜컥 합격한 거예요. 참 허탈했어요. 이렇게 쉽게 갈 수 있는데 왜 그동안 한국이라는 틀 안에서만 경쟁하고 있었을까….”
이후 그는 국가라는 틀이 자신이 활동하는 영역의 한계가 될 수 없다는 큰 깨우침을 얻었다. 이에 그는 소리친다.
“틀을 깨려는 용기가 필요합니다!”
최근 이와 같은 메시지를 담은 저서 <틀을 깨려는 용기가 필요해>를 출간한 그를 서울역 인근에 있는 한 아담한 카페에서 만났다.

너무 많은 틀에 사로잡힌 우리

우리는 참 많은 들에 사로잡혀 사는 듯하다. 그렇다고 꼭 틀, 규칙이 나쁜 것은 아니다. 처음 만들어진 틀은 기준을 제시한다는 점에서 큰 도움이 된다. 문제는 환경이 바뀌어 더 이상 유효하지 않은 틀이 계속 유지되고 있다는 점이다.
“시간이 흐르고 세상이 바뀌었는데 아직도 많은 사람이 ‘예부터 그렇게 해왔으니까 지금도 이렇게 하는 거야’ 식의 관성에 파묻혀 있는 것 같아요. 그런 식의 틀이 깨지지 않았다면 아마 저희는 아직도 상투를 틀고 다녔을지도 몰라요. 살다 보니 그런 부분이 굉장히 많더라고요. 그런데 사실 자신이 옳다고 생각하는 것들이 남에게 피해를 주는 게 아니라면 언제든지 그 틀은 쉽게 깰 수 있는 것이거든요. 그런 이야기를 하고 싶었어요.”
노 교수가 말하는 틀이란 공간적으로 보면 한국이라는 나라가 될 수 있다.
“저는 저 스스로를 ‘지구인’이라고 소개하는데요. 굳이 한국이라는 틀 안에서 사는 게 바람직하지는 않다고 봐요. 우리가 충청도나 경상도에서 태어났다고 이 지역을 위해 살 필요가 없듯 한국도 마찬가지입니다. 세상을 더 넓게 보고 자신이 꼭 어느 나라 사람이 아니라 이 지구에서 태어난 사람이라고 생각하면 할 수 있는 역할과 가치관도 훨씬 넓어져요.”
관습적인 부분 역시 우리가 깨야 할 하나의 틀이다.
“‘그동안 이렇게 해왔으니까 남들 눈치 때문에 이렇게 한다’ 식의 사회적 통념도 많은 것 같아요. 예를 들어 여름이 되면 무척 덥잖아요. 요즘은 에너지 절약 때문에 관공서나 회사에서 에어컨도 잘 안 틀어주는데…. 그럴 때 반바지를 입고 회사에 가면 어때요? 양복에 넥타이를 매는 것보다 반바지 차림이 일을 하기에도 더 편하잖아요. 처음엔 그게 옳다 그르다 말이 많았는데 요즘은 분위기가 많이 바뀌어 그래도 괜찮다 하니까 사내 옷차림이 많이 달라진 것 같아요. 이런 식의 틀을 조금씩 깨 가자는 겁니다.”

경쟁보다는 협업

우리 주위에 산재해 있는 수많은 틀 중에서도 그가 제일 아쉬워하는 부분은 우리가 너무 경쟁에 몰려 있다는 점이다.
“대부분의 사람이 옆에 있는 사람보다 더 뛰어나기 위해 그들을 물리치고 더 높이 올라가려고 하는 것 같아요. 사실 옆 사람은 중요하지 않습니다. 중요한 것은 현재의 나보다 미래에 내가 더 발전할 수 있느냐, 아니냐 하는 것이지요. 그러려면 주변의 사람들과 경쟁이 아니라 협업을 해야 해요. 협업을 통해 내가 더 나아졌을 때 진정한 행복도 찾아옵니다.”
진정한 행복이란 무엇인가에 대해 접근한 그는 곧 행복은 과정에 있다는 깨달음을 얻었다. 이를 악물고 공부하면서 전혀 행복하지 않았던 그 역시 행복을 어디서 찾아야 할지 모를 때가 있었다. 그가 학창 시절의 끝을 삼수의 악몽으로 장식했던 것도 대학 입시만을 위해 공부만 하던 때가 그리 행복하지 않았기 때문일 터. 진정 즐겨야 할 것은 결과가 아니라 과정이었다.
“명문대에 가는 것을 목표로 하되 공부하는 것 자체를 즐겼다면 학창 시절이 저에게 평생 깊이 남을 트라우마로 남지는 않았을 거예요. 결과는 한 순간이지만 과정은 깁니다. 과정에서 소소한 즐거움을 놓치지 않아야 행복도 길어져요. 과정을 즐길 줄 알아야 나중에 결과가 어떻든 상처도 받지 않을 수 있습니다.”

최종 목적지가 없으면 답이 없다

단 그는 목표 없이 즐기는 과정에 대해서는 철저히 경계했다. 가는 길은 몰라도 되지만 최종 목적지를 모르면 답이 없기 때문이다. 교수인 그가 가끔 학생들과 상담을 진행할 때 반드시 던지는 질문이 있다. ‘인생의 궁극적인 목표가 무엇이기에 대학원을 가려고 하나요?’ 이 질문에 선뜻 답할 수 있는 학생은 별로 없다. 그저 현재 자신의 목표가 일류 대학원에 진학하는 것일 뿐 그 이후의 삶은 구체적으로 계획해보지 않았다는 것이다. 
“궁극적으로 성취하고자 하는 목표 없이 순간의 최선을 선택하면서 인생을 살아간다는 것은 참으로 위험한 일이에요. 지향점이 없는 삶은 표류하는 배와 같아서 흔들리며 흘러가다가 결국 뜻하지 않은 곳에서 운명을 다할 수 있거든요.”
그는 자기의 전공분야인 전산학 이론 중에 그리디 알고리듬을 예로 들어 자신의 주장을 더욱 견고히 했다.
“그리디 알고리듬은 매 단계 선택해야 하는 상황에서 현시점에 가장 좋아 보이는 결정을 하다 보면 궁극적으로 최상의 결과에 도달하게 될 것이라는 이론이에요. 그러나 그리디 알고리듬은 대부분 실패합니다. 더 먼 미래를 내다보지 못하고 순간의 선택을 한 결과이니 어찌 보면 당연하지요.”
이는 인생도 마찬가지. 단기 목표만을 정해놓고 순간의 최선에만 의존해서 살아간다면 우리는 그리디 알고리듬과 같은 한계에 부딪힐 수밖에 없다. 이를 극복하는 유일한 방법이 앞을 내다보는 것이다.
“한 치 앞이 아닌, 궁극적인 목표를 설정하고 매 순간 최종 목적지를 전제로 한 최선의 길을 선택해야 합니다. 그래야만 지금 내가 쏟아붓는 노력과 열정이 쓸데없는 삽질이 되지 않아요. 비록 지금 한참 돌아가는 것처럼 느껴지더라도 목적지를 향해 가기만 하면 훗날 돌아보았을 때 그게 가장 빠른 길이었다는 것을 깨달을 수 있을 거예요.”

자신을 행복하게 하는 직업

행복하기 위해 과정을 즐기는 데 있어 목표 설정만큼 또 하나 중요한 것이 있다. 바로 ‘직업’이다. 직업은 평생의 동반자이다. 매일 아침부터 밤까지 자신에게 주어진 대부분의 시간을 함께하는 것이 일이고, 온종일 내 생각의 대부분을 점령하는 것도 일이다. 그러니 자신이 선택하는 직업은 당연히 스스로 좋아하는 것이어야 한다.
“좋아하지 않는 일을 하면서는 어느 한순간도 행복할 수 없습니다. 일이 주는 스트레스에 관심도 없는 일을 꾸역꾸역 해야 하는 스트레스까지 받아야 하기 때문이지요. 그러다 보면 자발적으로 한 걸음도 앞으로 나아갈 수 없게 돼요. 반면 자신이 진정 좋아하는 일을 직업으로 삼으면 이 세상을 참 보람차게 살 수 있습니다. 앞서 행복은 과정에 있다고 했듯 행복하기 위해 일을 하는 것이 아니라 일하는 것 자체가 행복해야 함을 잊지 마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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