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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호성 학생의 유학 성공기
원호성 학생의 유학 성공기
  • 권지혜 기자
  • 승인 2016.05.12 16:4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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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어는 나의 일상

처음 영어를 접한 것은 아버지께서 근무하시던 미군 공군기지를 자주 방문하면서부터였다. 부대 내에 있는 수많은 학교, 도서관, 음식점, 그리고 영화관 같은 편의 시설들을 이용하려면 영어를 할 줄 알아야 하니, 자연스럽게 영어에 흥미를 느끼게 되었다. 또한 초등학교 저학년 때부터 나의 일과는 학교가 끝난 뒤 집에 와서 항상 텔레비전을 보는 것이었는데, 당시의 카툰-네트워크는 한글 자막만 달린 영어 방송이었고, 나는 이것을 보는 것을 무척이나 좋아했다. 같은 방송을 수십 번 넘게 보다 보니 대사와 문장들을 기억할 수 있었다. 더 나아가 초등학교 고학년 들어서서는 영어 방송에 한글 자막이 나오는 디스커버리 채널을 보았으며, 중학교 때에는 자막 없이 CNN을 보기 시작하였으니, 이때부터 이미 영어 듣기에 문제가 없는 수준이었다. 후에 영어 학원에 다니긴 했지만, 직접적인 영향은 미미했다. 주변에서 조금씩 주는 영향들과 내가 좋아서 보기 시작한 것들로 흥미를 갖고 영어를 배웠다.

유학, 변화의 시작

나는 워낙 미국에 관심이 많았다. 미국은 나에게는 정말 큰 꿈이었다. 유학의 기회는 중학교 3학년 때에 찾아왔다. 공군 자녀 해외 유학 협력 업체인 드림아이에듀에서 실시하는 영어 시험 테스트를 미군 공군기지에서 보게 되었다. 일반 고등학교에 보내는 것보다는 미국으로의 진출을 원하신 부모님께서는 나에게 미국 공립학교를 제안하셨고, 나는 그 제안을 받아들였다.
첫 번째 유학은 J-1 비자로 미국 북동부에 있는 뉴햄프셔 주의 한 공립학교에 간 것이었다. 그때 아들이 하나 있는 젊은 미국인 가족이 나를 선택한 것에는 큰 이유가 있었는데, 바로 한국에서 입양한 5살짜리 아들에게 진짜 한국인 형을 만들어 주기 위함이었다. 이런 특별한 계기로 미국에 사는 한글도 모르는 한국인 동생을 얻은 나는 일 년간 많은 특별한 경험을 했다.
엄한 호스트 가족의 부모로부터 미국의 문화와 예절을 엄격히 가르침 받았으며, 최대한 미국생활에 적응하고 동화되기 위해 힘썼다. 미국 가족은 지금까지도 나에게 큰 조언을 주고 훈계를 해 주고 있다. 그들은 내가 미국 생활을 하는 데 결코 없어서는 안 될, 지금도 의지하고 있는 미국의 가족이다.
첫 번째 공립학교에 이어서 나는 캔자스시티에 있는 록허스트 고등학교로 전학했다. 비록 캔자스시티에서 처음 일 년간은 적응하는 것과 여러 가지 일에 어려움이 있었다. 하지만 혼자 미국에 와 있는 이상, 투정만으로는 일이 해결되지 않는다는 생각으로 최대한 스스로 해결하기 위해 노력하고 견디었다.
한번은 잘못된 소포를 한국으로 보냈다가 문제가 발생한 적이 있었다. 나는 우선 드림아이에듀에 통보한 뒤, 문제 해결을 위해 내가 할 수 있는 데까지 최대한 노력했다. 미국 정부와 편지와 이메일을 수십 차례 주고받으며 매우 힘든 상황을 보냈다. 한국이었으면 스스로 할 엄두조차 못 냈을 것 같다. 하지만 미국에서는 내가 벌인 일인 만큼 직접 해결하겠다는 의지가 있었고, 결국은 미 정부와 더 큰 문제없이 결론지을 수 있었다. 나는 이 일을 계기로 많은 자신감을 얻었다.
캔자스시티에서의 두 번째 해는 좀 더 편안하고 원만한 가정에서 대학 입학 준비를 원활히 했다. 대학을 지원하는 12학년 동안 주변의 많은 지인과 호스트 가족에게 조언을 아낌없이 받아 우여곡절이 많았던 캔자스 생활을 잘 마감했다.

미국 대학 생활은 친구들과의 관계

현재 대학 생활은 당연히 호스트 가족과 살던 때와는 다르다. 모든 것이 개방적이며, ‘가족과 나’가 아니라 ‘친구들과 나’의 관계로 변했다. 공부도 혼자서 하기보다는 항상 친구들과 스터디 그룹을 만들어 공부한다. 자유로운 대학에서 내가 항상 원했던 무선통신 자격증을 취득하고, 대학 내의 클럽에서 부회장이 될 때까지 많은 노력이 필요했다. 지금은 교수님을 비롯한 다른 팀원들과 AMSAT 연구에 동참하고 있다. 또한 피아노를 독학하여 클럽에 들어가고, 무인기(Drone) 클럽에도 들어가 미국에서 몇 안 되는 합법 무인기 개발 대학 부서에서 지원을 받으며 만들기도 한다.

변화의 과정 위에 서서

미국 생활에서 절대 해서는 안 되는 말이 “한국에서는 이렇게 한다”이다. 대학에서 많은 해외 유학생을 보며 느끼는 것이다. 내가 이 말을 처음 미국의 호스트 부모에게 했다가 크게 혼난 적이 있다. 그런 생각으로 미국에 왔다면 당장 돌아가라는 것이었다. 이후로 나에게 많은 변화가 생겼다. 미국을 이해하기 위해 친구들과 어울렸고, 그들 문화의 일부인 군인들과 소방관들을 존경했다. 내가 실수했을 때는 변명 대신 ‘미안하다, 고치겠다’라고 말하게 되었다.
미국에서 정말 많은 것을 배웠고, 수많은 사람을 만나 친분을 쌓았으며, 관계를 넓혔다. 미국에는 내가 머물고, 도움을 받을 수 있는 가족이 있으며, 다양한 분야에 대해 조언을 해 줄 친구들이 있다. 또한 나의 진로는 엔지니어링이지만, 여러 가족과 지내며 비즈니스, 보험, 과학 계통 등 다양한 분야의 전문적인 견문을 넓힐 수 있었다. 지금까지도 도와주고 있는 이들에게 고마움을 느끼며, 특히 나에게 고귀한 기회를 주신 부모님과 민은자 대표님께 항상 감사의 말씀을 드린다.

글 사진 원호성(Engineering in Virginia Tech 버지니아 폴리테크닉 주립대학교 기계공학 전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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