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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루오션 직업 ‘디지털 장의사’가 뜬다
블루오션 직업 ‘디지털 장의사’가 뜬다
  • 송혜란
  • 승인 2016.05.27 15:57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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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의 과거를 지워 드립니다~
 

일시적인 필요로 인해 가입했던 특정 사이트. 한동안 이용하지 않아 내가 어느 사이트에 가입되어 있는지조차 기억나지 않는다. 간혹 포털사이트에 떠도는 내 흔적은 지우고 싶은 과거로 남기도 한다. 그렇다고 우주같이 광활한 인터넷 공간에서 내가 새긴 발자취를 일일이 찾아내 없애기도 힘들다. 누군가가 온라인에 남아 있는 내 과거를 찾아 지워 줄 수는 없을까?

취재 송혜란 기자 | 사진 서울신문

누구나 한 번쯤은 해 봤을 법한 생각들…. 실제로 인터넷이나 SNS에 올렸던 게시물을 없애기 위해 발 벗고 나서는 사람들이 늘고 있다. 이러한 사람들은 산업의 관점으로 보면 과거에는 없던 새로운 소비자들! 이에 요즈음 이러한 니즈를 충족시키는 온라인 기록 삭제 전문 업체, 일명 ‘디지털 장의사’가 성행하고 있다.

취업·결혼의 족쇄, 온라인 흔적

공무원 시험을 준비 중인 황모 씨. 황 씨는 최근 한 여경이 고등학생이던 12년 전 밀양에서 일어난 집단 성폭행 사건 당시 온라인에 가해자를 두둔하며 올렸던 글 때문에 골머리를 앓고 있는 것을 지켜본 후 불안해지기 시작했다. 철없던 시절 특정 대통령을 옹호하거나 비판했던 글뿐 아니라 시비가 갈릴만한 사건사고에 대해 쓴 욕설이 온라인에 버젓이 떠돌고 있었기 때문이다. 기억나는 몇 개의 글은 직접 찾아내 지웠지만 안심할 수는 없었다. 기어코 온라인 기록 삭제 전문 업체에 전화를 걸어 수십만 원을 지불한 채 자신의 과거 기록을 모두 지운 그는, 공무원 시험 합격 후 일어날 수 있는 공무원 자격 논란에 대한 걱정을 떨칠 수 있었다.
결혼을 앞둔 김모 씨의 상황도 비슷하다. 김 씨는 직장에서 만난 한 남성과 약혼한 후 결혼을 준비하다 대학생 때 만나 헤어진 옛 애인과 찍은 사진들이 포털사이트에서 검색되는 것을 보고 깜짝 놀랐다. 다소 수위가 높은 사진까지 있어 그 역시 디지털 장의사를 찾아 당장 문제를 해결했다.
취업문이 막힐 것을 우려한 황 씨부터 옛 애인과의 추억을 지우고 싶은 김 씨까지 온라인 흔적을 지우려는 사람들의 이유는 다양하다. 이들은 하나 같이 모두 “우리는 ‘잊힐 권리’가 있다”고 입을 모은다.

인터넷상 ‘잊힐 권리’ 가이드라인 마련

최근 이와 같이 ‘잊힐 권리’에 대한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지난 2014년 유럽사법재판소(ECJ)가 잊힐 권리를 인정하는 취지의 판결을 내린 후 세계적으로 이와 관련한 논의는 활발하게 진행되고 있다. 특히 2014년 ECJ의 판결은 인터넷 업계에 큰 반향을 일으켰다. 당시 스페인 변호사인 마리오 곤살레스는 과거 빚 때문에 집이 경매에 넘어간 내용이 적힌 기사가 구글에서 검색되지 않게 조치해 달라며 구글을 상대로 소송을 제기했다. 당시 재판부는 사생활 침해 가능성이 있으니 검색 결과를 모두 지우라고 판결해 세계적으로 큰 화제를 모은 바 있다.
이에 정부도 인터넷 사용자가 온라인상에 떠도는 자신의 흔적을 다른 사람이 검색할 수 없도록 하는 가이드라인을 마련했다. 이름 하여 ‘인터넷 자기게시물 접근배제요청권 가이드라인’. 그러나 다른 사람이 올린 글이나 사진, 동영상은 차단할 수 없고 자신이 올린 게시물만 차단할 수 있어 반쪽짜리 가이드라인이라는 지적이 나온다. 이 가이드라인은 아직까지 법적 구속력도 갖고 있지 않아 추후 개정 여부를 더 지켜봐야 할 것으로 보인다.

‘디지털 장의사’도 어엿한 직업

상황이 이렇다 보니 잊힐 권리를 기술적으로 해결하는 분야가 발전하고 있다. 이미 인터넷상에 있는 과거 흔적들을 찾아 제거해 주는 디지털 장의사는 성업 중이다. 디지털 장의사는 온라인에 떠돌아다니는 원치 않는 정보를 대신 지워주는 사람이나 업체를 말한다. 온라인 상조회사로도 불린다. 사람이 죽으면서 온라인에 남아 있는 사진을 삭제하고, 사이트 계정 탈퇴 업무까지 맡는다.
이러한 디지털 장의사는 최근 한국고용정보원이 발표한 5년 내 부상할 신직업 37개 중 하나로 손꼽히기도 했다. 정부가 이러한 디지털 장의사를 공식 직업으로 인정하는 작업에도 착수한 상태다.
한편 정부는 디지털 유산 등에 대한 법제화 방안도 논의하고 있으며, 설정한 시간이 지나면 데이터가 자동으로 소멸되는 ‘디지털 소멸 시스템’이라는 특허도 출원돼 상용화를 앞두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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