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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돈 500만원으로 연매출 100억원 달성, 장진우가 누구야?
단돈 500만원으로 연매출 100억원 달성, 장진우가 누구야?
  • 송혜란 기자
  • 승인 2016.06.22 06:02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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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년 창업신화
 

이태원의 경리단길. 그곳엔 어디에도 없고, 누구와도 같지 않은 작은 식당이 하나 있다. 단 하나의 테이블, 여덟 명만이 앉을 수 있는 의자. 오늘은 또 어떤 사람이 올까? 매일 새로운 문화를 만들어가고 있는 남자 장진우 대표. 단돈 500만원으로 시작해 연매출 100억원을 달성하며 청년창업신화를 쓴 그는 모두가 궁금해하던 순간에도 늘 베일 속에 싸여 있었다. 이제 그도 자신의 이야기를 할 때가 되었다.

취재 송혜란 기자 사진 양우영 기자

“성공 ‘노하우’요?, 새벽부터 밤까지 일 생각만 해요”

“장진우가 누구야?” 모두가 수군댈 때, 그에 대한 소문은 무성했다. 중학교를 중퇴하고 홀로 상경해 식당 하나를 차렸다가 대박이 났다더라, 친한 연예인도 수두룩하고, 근데 직접 만나보니 성격이 참 별로더라…. 장진우란 사람이 도대체 어떤 사람이길래? 그를 만나러 가는 길이 호기심으로 가득했다. 이윽고 만난 그는, 참 특이한 사람이라는 표현이 맞을 것 같았다. 솔직하지만, 마음속에 든 생각을 말로 풀어내는 데는 거침이 없다. 성공비결이나 전공을 묻는 질문 따위는 진부하다며 까칠하게 군다. 대신 그는 자신의 취향, 성공 철학이라든지 사회문화, 예술에 대한 이야기를 할 때 눈이 초롱초롱 빛난다. 음식과 음악, 책을 좋아하고 사진 찍는 일도 잠시 업으로 삼았을 만큼 꽤 즐기는 편이다. 경리단길에 가게를 10개까지 늘리고 나서야 가능했던 일이지만 일상이 지루해질 때 쯤 잠시 여행을 떠나 한 달 동안 살고 오는 일도 그에겐 또 다른 행복이다.

취향을 파는 사람

2011년 불을 밝힌 장진우식당은 이러한 그의 모든 취향이 한데 모여 만들어진 집합체다. 그의 지방과 해외 탐험기는 바로 다음 날 메뉴로 표현되고, 상징적인 오렌지색 나무문도 까다로운 취향을 지닌 그가 직접 디자인한 것이다. 장진우식당에는 그만큼이나 독특한 사람들이 찾아온다. 여배우는 배가 고파서, 기타리스트는 비를 피해서, 디자이너는 식당에서 흘러나오는 음악이 좋아서, 또 어떤 이는 얼굴도 없는 누군가가 그리워서…. 모르는 이들이 비좁은 공간에 나란히 앉아 서로에게 스미듯 친밀함을 품고 떠날 때도 잦다. 글 쓰는 일도 마다치 않은 그는 그들의 이야기를 간직하기 위해 최근 저서 <장진우식당>을 펴내기도 했다.

근면성실, 공과 운

이쯤 되면 그가 이태원의 브랜드로, 장진우거리라는 대명사로 세간의 입에 수없이 오르내리게 된 이유도 어렴풋이 짐작이 갈 것이다. 그래도 굳이 성공비결을 물으면 그는 한마디로 딱 잘라 근면하고 성실했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사람들은 엄청나게 대단한 답을 원하는 것 같아요. 그런데 정말 이것밖에 없어요. 근면, 성실했을 뿐입니다. 아침 6시에 일어나 자정에 잠들 때까지 가게 고민만 해요. 다 아는데 실천하기가 쉽지 않은 거죠. 밤늦게까지 술이나 마시고 늦게 일어나 TV만 보면 어떻게 성공할 수 있겠어요.”

그러나 요즘은 모두가 열심히 해도 일부만이 성공할 수밖에 없는 바늘구멍 뚫기 식의 사회에 대한 한탄을 많이 하는데…. 취업난, N포세대, 열정페이라는 말도 심심치 않게 나오며 상황 탓을 하는 젊은이들도 많다. 상황과 운이 뒷받침되지 않으면 성공하기 힘들다는 이야기도 있다. 

“그건 열심히 노력하지 않은 사람이나 하는 말이에요. 저도 뭐 운만 좋아서 이렇게 됐겠어요? ‘공’이라는 글자를 거꾸로 세워보면 ‘운’입니다. 운도 공을 들여야 오는 거예요. 소위 사탕 발린 말로 ‘노하우?’ 없어요. 실패를 두려워하지 않고 열심히 했습니다. 리스크가 와서 누군가는 7일 동안 타격을 받는다면 근면 성실함은 바로 일어날 힘을 줘요. 성공한 사람 중에는 간혹 좋은 집안이나 태어날 때부터 탁월한 재능이 있었던 경우도 있죠. 저는 아니에요. 근면 성실함으로 컸어요.”

그가 이렇게까지 확신한 데에는 다 그럴 만한 이야기가 있다. 매일이 사고뭉치였던 어린 시절을 보낸 그는 동네에서도 아주 알아주는 문제아였다. 사춘기가 찾아온 중학교 때는 퇴학을 당했다. 당시 아버지는 그에게 혼자의 삶을 살라며 서울로 유학을 보냈다. 산전수전을 다 겪은 그도 다 포기하고 고향으로 내려가고 싶은 위기에 봉착한 적이 있다. 그때 한 친한 선배가 건넨 한마디는 그에게 큰 용기를 북돋워 주었다.

“앞서 말한 공과 운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다 그 선배가 해준 말이에요. 한때 저도 운이 지지리도 없는 사람인가 보라며 한계를 느낀 적이 있어요. 생각해 보니 운도 공을 들여야 오더랍니다.”

인맥이 다양한 이유

그렇게 다시 마음을 다잡은 그는 연예인 화보를 찍어주는 포토그래퍼의 일에 뛰어들었다. 배우 공유와 김민희, 박상원과의 친분도 다 그때 쌓은 것이다. 그러면서도 친한 연예인에 대한 이야기는 진저리치며 꺼리는 장진우 대표. 사실 그는 굉장히 다양한 인맥을 자랑하는 마당발 중에 한 명이다. 배고픈 친구를 위해 요리해주고 나눠 먹던 자신만의 공간에 소문을 듣고 친구의 친구까지 찾아오면서 어쩌다 식당 주인이 된 그는, 가게에 찾아온 손님을 모두 그의 특별한 사람으로 만들었다.

그 중에는 아모레퍼시픽 서경배 회장과 대림미술관 이해욱 관장, 뮤지션 마이큐, 디자이너 준지 등도 있다. 그렇다고 그가 이러한 인맥을 만들기 위해 기를 쓰고 친구가 되려고 한 것은 아니다. 음악과 미술, 문학 등 가릴 것 없이 어디서든 누구와도 대화할 수 있는 그의 깊은 지식이 빛을 발했다. 어릴 때부터 책 읽는 습관을 들이며 숱한 문학작품을 섭렵한 그는 특히 김훈 작가의 소설을 굉장히 좋아한다. 김훈 작가 이야기가 나오니 또 한 번 눈이 반짝이는 장진우 대표.

“김훈 작가님은 제가 제일 좋아하는 소설가예요. 한창 <등대지기>나 <가시고기>, <국화꽃향기>같이 서정적이거나 감성적인 소설이 유행할 때 나타난 김훈 작가님의 소설이 얼마나 신선했는지 몰라요. 맨날 울고 짜기만 하다 건조하고 묵직한 주먹 하나가 날아온 듯한 기분이었죠. 언젠가 김훈 작가님을 꼭 한번 만나고 싶습니다.(웃음)”

남달랐던 부모님의 교육

장진우 대표의 이러한 폭넓고 깊은 지식, 성실함은 긍정적인 사고가 모토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긍정심은 어릴 때부터 부모님의 교육 하에 몸에 배지 않으면 마음속에 심기도 쉽지 않은 일이다. 그 역시 부모님이 무엇인가를 가르치려 들진 않았지만 그들에게 배운 것이 많다고 말한다.

“일 열심히 하고, 외박 안하고, 자식이 맛있는 거 많이 먹을 수 있도록 해준 아버지의 모습을 보고 자라며 성실함을 몸에 익혔어요. 포항에서 내로라하는 봉사왕이셨던 어머니 덕분에 저뿐 아니라 다른 누군가를 위한다는 것이 무엇인지 알 수 있었고요.”

그래서 그는 못 박는다. 장진우 회사의 가장 큰 목적은 사회공원과 사회 환원이다. 회사의 몸집을 키우고, 돈을 버는 것 자체가 중요한 게 아니라는 뜻이다. 열심히 벌어서, 장진우다운 방식으로 새로운 나눔을 실천하겠다는 데 모든 것을 걸었다고 그는 말했다.

“제 영원한 롤 모델은 세상의 그 어떤 훌륭한 성인, 대단한 예술가도 아닙니다. 바로 저의 어머니, 아버지세요.”
 
장진우에게 성공이란

장진우 대표의 목표는 어느 정도 실현되고 있다. 식당이 유명해지자 함께 일하고 싶다고 찾아오는 사람들이 많아져 그는 그들을 다 고용하기 위해 가게도 하나둘 늘려 갔다. 지금의 경리단길이 장진우거리라고 불리는 이유도 어떻게 보면 그의 고용창출이 한몫한 셈이다.

“좋은 사람들이 하나둘 찾아와 여기서 일하고 싶다고 하는데 가게가 워낙 작으니까…. 매번 ‘내가 가게 하나 더 내면 너 꼭 뽑을게!’하고 돌려보내곤 했어요. 그렇게 하나둘 더 오픈하다 10개까지 된 것 같아요.”

그가 직원을 뽑는 기준도 독특하다. 가장 불안해 보이고 겁먹은 사람들 위주로 뽑는다. 실력은 안 본다. 자신보다 잘하는데 그의 밑에 들어와 있을 이유가 없지 않은가. 그가 면접을 볼 때 던지는 질문은 딱 하나다. ‘열심히 해볼 수 있니?’ 끈기와 성실함이 제일이라고 믿기 때문이다. 그랬기에 지금 장진우 회사의 직원들은 모두 그와 잘 어울리는 친구가 될 수 있었다. 누군가는 그들을 ‘장진우 사단’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사회 환원을 위한 그의 행보는 여기서 멈추지 않았다. 창업을 꿈꾸는 이들에게 조금이나마 자신이 가진 것을 나누기 위해 ‘장진우 창업스쿨’ 프로젝트도 시작했다. 가장 우수한 성적을 받은 학생 4명에게는 가게를 오픈해 준다. 권리금과 보증금도 받지 않고! 기술이 있는데 돈이 없거나, 아이디어는 있는데 어떻게 창업으로 연결할지 모르는 사람들에게 지금껏 그가 경험한 장사의 기술을 모두 전하는 것이 요즘 창업스쿨에서 하는 일이다. 

그래서 그는 말한다. 자신이 행복해야 문화가 되고, 그 문화가 사회를 풍요롭게 해줄 수 있다고. 그런 그에게 있어 성공의 의미도 더욱 거창한 듯싶다.

“성공의 비결을 물으면 제가 할 말이 별로 없는 게, 저는 제 자신이 성공했다고 생각하지 않기 때문이에요. 어떻게 하면 사회 모든 구성원이 행복해질 수 있을까? 원대한 질문에 대한 답을 계속 고민하고 만들어가는 중입니다. 아직 완벽하게 이루지 못했죠. 기껏해야 지금은 제 직원을 행복하게 해주는 것이 먼저라는 것 정도만 알아요. 훗날 저같이 아무것도 없이 시작한 사람도 번듯하게 성공했다고 보여주며 절망에 빠진 사람들에게 희망을 주는 사람이 되고 싶어요. 앞으로 더 열심히 살 겁니다.”

특이하지만, 속이 꽉 찬 이 남자. 남들이 성공했다고 이야기해도 안주하지 않고 보다 큰 꿈을 위해 돌진하고 있는 장진우 대표가 원하는 세상이 하루빨리 이루어지길 응원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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