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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적인 문화인류학자 재레드 다이아몬드
세계적인 문화인류학자 재레드 다이아몬드
  • 송혜란
  • 승인 2016.06.29 13:46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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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기니의 전통적 양육법과 건강 유지법을 접목하라’
 

어떻게 살 것인가? 삶에 대한 이 중대한 고민의 답은 최근 인공지능의 등장과 사회 각 계층의 불평등으로 인해 도무지 갈피를 잡지 못하고 허공 속을 맴돌고 있다. 시시각각 많은 것이 변하는 이 혼돈의 시기에 미래사회에 대한 불안감을 더욱 커지고 있는데…. 최근 저서 <재레드 다이아몬드의 나와 세계> 출간을 맞아 방한한, 세계적인 문화인류학자 재레드 다이아몬드의 미래사회를 위한 특강을  ‘서울포럼2016’에서 들었다.

취재 송혜란 기자 사진 김영사 제공

미국 캘리포니아 주립대 의대에서 생리학 교수로 재직 중인 재레드 다이아몬드는 세계적인 문화인류학자이자 문명연구가이다. 캠브리지대학교에서 생리학을 전공하며 과학 인생을 시작한 그는 조류학, 진화생물학, 생물지리학으로 그 영역을 확장해나가고 있다. 주로 과거의 역사를 바탕으로 미래를 예측하는 책들을 쓰고 있는데, 한국에서는 베스트셀러 <총, 균, 쇠> 작가로 널리 알려져 있다. 인문학적 논제를 과학적인 방법으로 풀어가는 그의 해법은 논리적이지만 지나치게 아카데믹하지 않아 흥미를 끈다.
우선 그는 한국에 대한 애정을 표하며 강연회의 포문을 열었다.
“한국은 최고의 문자 체계를 가진 국가입니다. 한글의 문자 수는 적지만 굉장히 많은 단어를 만들 수 있지요. 덕분에 전 세계 어느 나라의 사람들보다 글자를 더 빨리 읽을 수 있어요. 결과적으로 한글이 한국의 빠른 경제성장을 주도하지 않았나 생각해 봅니다. 한국인의 근면 성실함과 뛰어난 교육열도 한몫 했지만요.”

뉴기니가 위험에 대처하는 자세

이날 강연회에서 그는 1964년부터 전통사회인 뉴기니를 주 무대로 조류생태학을 연구하며 얻은 여러 교훈에 대해 이야기했다. 그것이 현대 혹은 다가올 미래를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지, 그 물음의 답에 대한 일만의 실마리가 될 수 있기를 바라는 마음에서다.
“여러분은 현대사회에 익숙하죠. 문자를 읽고 쓰는 것은 물론, 음식과 옷도 다 스토어에서 살 수 있습니다. 직접 생산하기보다 소비를 하지요. 그러나 인간이 이렇게 살게 된 것은 불과 600년도 채 되지 않았습니다. 아직도 아마존 사람들은 전통사회에서 살고 있고, 또 우리와 공통적인 문제를 고민합니다. 어떻게 미래사회에 닥칠 위험에 대처할 것인지부터 아이들의 양육, 건강한 고령화 문제까지 스스로 고민하고 해결해요. 그들이 깨우친 방식이 현재 우리가 원하는 솔루션이 될 수 있지 않을까 싶습니다.”
가장 먼저 그는 뉴기니가 위험에 대처하는 자세에 대해 언급했다. 뉴기니에서 생활하던 당시 그에게 캠핑하는 것은 일상사였다. 주로 낮에는 높은 고도에서 새를 관찰하고, 해가 지면 야영할 곳을 찾아다녔다. 하루는 캠핑하기 딱 좋은 장소를 발견한 그가 함께 간 뉴기니 사람들에게 텐트를 치자고 제안했다. 아주 평평하고 멋진 숲이 있는 곳이었기에 당연히 동의할 줄 알았던 그는, 우거진 큰 나무가 죽어있는 것을 보고 진저리 치는 그들을 보고 당황함을 금치 못했다. 죽은 나무가 쓰러져 죽을 확률은 1000분의 1도 되지 않기 때문이다. 그들이 느끼는 불안이 그에겐 과장된 두려움, 즉 편집증으로 보였다.
그렇게 하루하루 뉴기니에서의 삶을 이어간 그는 하루에도 몇 번씩 죽은 나무가 쓰러지는 모습을 목격한 후 생각이 바뀌었다. 뉴기니인들의 우려를 단순 편집증이 아닌 건설적인 편집증이라고 부르기 시작한 것이다.
“수년간 위험도가 누적되면 사망 확률 또한 높아진다는 점을 간과했던 것 같아요. 비록 그날 나무가 쓰러질 확률은 1000분의 1에 미치지 않지만, 매일 죽은 나무 밑에서 잔다고 가정하면 당연히 그 확률이 높아질 수밖에 없지요. 그들의 불안감은 이유가 있는 편집증, 즉 건설적인 편집증이었던 겁니다. 그들은 반복되는 위험의 발생 가능성을 몸소 체득해 미리 대책을 세워두었던 거예요. 아마존에 사자와 같은 야생동물이 많음에도 그들에게 물려 죽은 사람이 별로 없는 이유도 매한가지입니다.”
그들이 위험에 대처하는 태도가 뉴기니에서 배운 가장 큰 교훈이라는 재레드 다이아몬드. 이에 그는 오늘 아침 아주 위험한 일을 하고 나왔다고 너스레를 떨었다. 다름 아닌 샤워인데, 그가 그토록 샤워를 무서워하는 이유 또한 건설적인 편집증과 궤를 같이한다.
“정말이에요. 저는 샤워하는 게 가장 두렵습니다. 미국의 평균 수명이 88세인데, 제 나이가 올해 70을 넘었으니 앞으로 15년을 더 산다고 예측해 봅시다. 매일 샤워를 한다면 욕실에서 넘어져 죽을 확률이 매우 높습니다. 실제로 우리는 잘못된 리스크에 대해서는 걱정을 지나치게 하는 반면 발생 가능성이 큰 위험은 전혀 고려하지 않는 경향이 있어요.”
그러고 보면 현대사회와 전통사회가 느끼는 위험의 종류에는 큰 차이가 있다. 뉴기니와 같은 전통사회에서는 죽은 나무와 전염병 등 환경에 대해 예민하게 반응하는 한편 한국이나 미국 등 현대사회에서는 오히려 테러, 비행기 사고, 심근경색, 암 등 비전염성 질병을 이기기 위해 고군분투한다. 서로 각기 직면한 위험을 다르게 보는 것이다.
“현대사회가 위험을 감지하는 방식의 문제점은 우리가 통제할 수 없는 테러와 원자력 사고, 비행기 사고, DNA에 기반한 사고 등에 더욱 초점이 맞춰져 있다는 겁니다. 실제 발생할 확률이 높은 알콜, 낙상 사고와 같은 위험에 대해서는 과소평가를 해요. 아침 신문 부고를 한번 들여다보세요. 사망원인이 대부분 낙상으로 인한 골절사입니다. 생각만 조금 달리하면 미래사회에 닥친 여러 위험에 우리도 충분히 대처할 수 있어요.”

전통사회의 양육방식

위험에 대처하는 자세뿐 아니라 우리가 전통사회에서 배울 것은 무한하다고 말하는 재레드 다이아몬드. 보통 현대사회의 사람들은 전통사회의 원주민들이 야만적이라고 말하는데…. 물론 그 역시 전통사회인들의 야만성을 부정하지는 않는다. 단 인류 공통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많은 실험을 하는 그들의 생활방식이 끊임없이 삶의 질을 개선하기를 원하는 현대사회에 많은 시사점을 준다고 강조했다. 특히 그와 그의 아내는 뉴기니 사람들의 양육법에서도 많은 교훈을 얻었다고 털어놓았다.
“뉴기니인들은 아이들에게 최대한의 자유를 줍니다. 아주 어린 아이들조차도 스스로 의사결정을 내리는가 하면 다섯 살만 되어도 어른들과 협상을 해요. 아이들을 체벌하는 일도 절대 없지요. 덕분에 그들은 어릴 때부터 책임감을 느끼고 자랍니다. 저희 또한 그들의 양육법에 따라 아이들을 때리지 않고 직접 의사결정을 할 수 있게 키웠어요. 한번은 아들 맥스가 세 살이 되었을 무렵 처음 뱀을 보고 너무 좋아해서 집에 147마리가 넘는 양서류를 키우기도 했지요.”
세 살 때부터 스스로 결정하는 삶을 살고 있다는 그의 아들은 현재 셰프가 되겠다는 꿈을 품고 요리학교를 졸업한 후 연구실에 들어가 일하고 있다고 한다. 간혹 자녀의 인생에 지나치게 개입하는 부모들이 있는데, 이는 아이들이 자립감을 갖는 데 큰 방해 요소가 된다고 그는 경고했다.

건강하게 나이 드는 법

재레드 다이아몬드의 이야기 중엔 현대사회가 전통사회에서 배울 점이 하나 더 있다. 노년층이 매우 끔찍한 삶을 살고 있다는 미국. 이는 비단 미국만의 이야기가 아니다. 일본뿐 아니라 한국에서도 급속한 고령화로 인해 현대인들의 가장 큰 숙제가 노후설계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여기서 우리가 주목해야 할 점은 한국과 미국, 일본과 달리 뉴기니에서는 노년이 최고의 시대라는 것이다.
“뉴기니 사람들은 노년이 되어 더욱 의미 있는 삶을 삽니다. 사회적인 연결성뿐 아니라 건강도 꽤 잘 유지하고 있어요. 현대사회인의 질병인 뇌졸중이나 당뇨병, 암으로 고통스러워하지도 않고요. 비결은 라이프스타일에 있습니다. 가공식품이 없는 전통사회에서 뉴기니인들은 과일이나 채소, 육류를 날 것으로 살짝 조리만 해서 먹습니다. 자동차와 같은 이동수단 대신 항상 걸어 다니기 때문에 운동량도 많음은 물론입니다. 다섯 개 이상의 언어를 배워 알츠하이머도 예방하지요.”
강연회 내내 현대사회보다 전통사회에 대한 찬사만 늘어놓은 것이 마음에 걸렸던 것일까. 마지막으로 그는 40분 가량 이어진 강연회의 핵심 내용에 대해 재차 강조하며 마무리하였다.
“현대문명을 포기하라는 말이 아닙니다. 전통사회의 생활 자체를 다 채택하자는 것도 아니에요. 제가 뉴기니에서 배운 것을 제 삶에 적용했듯 여러분도 현대문명을 유지하되, 전통 생활 방식에서 무엇인가 배울 수 있는 게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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