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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딸기 디저트
산딸기 디저트
  • 김도형
  • 승인 2016.08.31 07:5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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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 토요일에 아침을 먹고 바람을 쐬러 집에서 차로 십여 분 거리인 현천리로 갔다. 고양 현천리는 서울과 경계를 이루는 마을이지만 아직도 시골의 전원 풍경을 간직하고 있어 고향 생각이라도 나면 간혹 찾는 곳이다. 그 때가 망종 무렵이어서 현천리에는 누렇게 익어가는 보리도 있었고, 일찍 모내기를 마친 논에는 먹이를 찾는 하얀 두루미들의 모습도 한가로웠다.

아침나절이었어도 햇살이 따가워 그늘을 찾지 않을 수 없었는데 언덕배기 참나무 밑에 차를 세우고 창을 여니 몇 그루 딸기나무에 야생 산딸기가 빨갛게 무르익어 있었다. 보고파 했지만 오래도록 보지 못한 사람을 우연히 마주친 듯 반가운 마음으로 얼른 손을 내밀어 한 줌 따먹어 보았는데, 입안을 감돌던 그 맛은 내 꼬마시절 여름 한 때의 추억을 고스란히 불러왔다.

여름방학을 앞둔 시절이 산딸기가 열리는 때라는 것을 알고 있는 우리는 두되짜리 노란 주전자를 하나씩 들고 집에서 한 시간 가량을 걸어 오백여 미터 높이 마을 뒷산의 중턱으로 올라가 가시에 손을 찔려가며 산딸기를 땄다. 집을 나설 때는 주전자 가득 딸기를 따오리라는 생각을 했지만 따도 따도 두되 짜리 주전자를 딸기로 채우기는 힘들어 결국은 반 정도 채우고는 옷을 훌렁 벗어 던지고 차가웠던 계곡물에 텀벙텀벙 뛰어들었다.

이렇게 높은 곳에도 물고기가 사는 것에 신기해하며 헤엄치며 놀다 체온이 내려가 입술이 파래지면 햇볕에 달궈진 편편한 바위에 드러누워 찜질도 하고, 팔뚝만한 칡뿌리를 캐서 먹기도 하다가 서산으로 해가 기울고 배가 출출 해지면 우리 무리들은 산을 내려왔다.

집으로 가져간 딸기는 소주를 가득 부은 되병에 담겨 여름 내내 술과 함께 익어갔는데, 방학이 끝날 무렵 식탁에 오른 빨간 딸기 주를 음미하며 “우리 아들이 따온 딸기로 담근 술이라 맛이 더 좋네” 라고 하시던 아버지의 말씀에 뿌듯했던 기억이 아직도 남아 있다.

내가 고향을 떠난 후 그 산의 딸기는 사십 번도 더 열렸다가 지기를 반복했을 것이다. 아무 걱정 없이 뛰놀던 어린 시절 그 여름의 한 때가 온통 그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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