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있는 그대로의 색을 보다 연남동 골목 기행
있는 그대로의 색을 보다 연남동 골목 기행
  • 최효빈
  • 승인 2016.10.31 14:33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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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기행

누군가에겐 무질서한 동네, 또 다른 누군가에게는 삶의 자극이 되기도 하는 동네 연남동. 꾸며진 것이 아닌 자연스러운 모습 그대로 어제보다 하루만큼 더 짙어진 색을 내뿜는 연남동 골목에서 본연의 색을 찾는 시간을 가졌다.

글·사진 최효빈 기자

 

 

내가 대학 생활을 하던 때는 ‘사이좋은 사람들’이 많다는 인터넷 사이트에서 미니 홈피를 운영하는 것이 대유행하던 시절이었다. 현금처럼 사용할 수 있는 도토리를 충전한 후, 신곡은 아니지만 느낌은 매우 충만한 배경 음악을 깔고(나의 경우 제이슨 므라즈나 스티비 원더의 곡이 몇 곡 있었던 걸로 기억한다), 여기에 스웨그 넘치는 메인 화면까지 걸어 두면 그게 그렇게 뿌듯할 수가 없었던 때였다(그때는 ‘스웨그’란 단어를 사용하진 않았지만 지금 생각해 보면 그게 바로 스웨그였던 것 같다).
지금이야 물론 해시태그 하나로 간편하게 내가 찾고 싶은 정보, 나와 같은 취향과 관심사를 가진 사람들을 무궁무진하게 찾을 수 있지만, 그때만 하더라도 직접 미니 홈피 주소를 찾아 접속하거나 파도를 타 들어가야 했었기 때문에 누군가의 미니 홈피를 방문한다는 건 ‘그 사람에 대해 더 알고 싶다’는 뜻이 되었고, 또 그 사람에 대한 거의 모든 것에 대해 알 수 있게 된다는 뜻이기도 했다. 왜냐하면 요즘 많이 사용하는 SNS에 비해 미니 홈피는 더 사적인 이야기를 더 분명하게, 더 많은 분량으로 표현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때문에 난, 미니 홈피를 참 열심히 했었다. 그것도 오로지 ‘글’을 쓰기 위해서.
이십 대 초반의 나는 어쩜 그리도 생각이 많았는지 매일 써내려 간 일기장이 넘치고 넘쳐 그마저도 부족할 때면 미니 홈피에 접속해 못 다한 말들을 쏟아 냈다. 누가 볼 건 아니지만 혹시라도 누가 보게 된다면, 그리고 그 누군가가 내 생각에 동의라도 해 준다면 그때의 나로서는 더 바랄게 없겠다고 생각하면서.
그렇게 학교를 졸업할 때까지 종종 게시물을 업데이트하며 나는 ‘나’라는 색깔을 더 진하게 내뿜었던 것 같다. 그리고 나중에는 알게 모르게 내 미니 홈피를 찾아와 글을 읽고 가는 사람들이 있다는 얘기까지 들렸던 걸 보면 ‘공감’을 원했던 나의 바람이 조금은 이뤄진 것 같기도 하고.
지금 돌아보면 열정적이었고, 솔직했으며, 꾸미지 않는 멋이 나만의 색으로 굳어져 ‘어쩌면 조금은 매력적으로 보였을 수도 있었겠다’라는 생각이 든다. 계속 글을 썼더라면 참 좋았을걸.
아쉽게도 ‘나만의 글쓰기’는 취업과 동시에 종료되고 말았다. 그게 미니 홈피 열풍이 사라졌기 때문인지, 내가 글을 쓰는 것을 직업으로 삼게 된 이유에서인지는 잘 모르겠지만(어쩌면 그 둘 다인지도) 나는 더 이상 글을 쓰지 않았다. 아니, 글은 썼지만 ‘내 글’은 쓰지 않았다. 그리고 내가 내 글을 쓰지 않는다는 사실조차 까먹어 버린 채 오랜 시간이 흘러버린 지금, 새삼스레 깨닫게 되었다. 이번 호 서울 기행 촬영을 위해 연남동을 찾던 날에 말이다.
억지로 꾸민 모습 하나 없는 그 동네를 걸으며 나는 느꼈다. 이게 바로 ‘색’이라고. 나는 지금 ‘나의 색’을 잃어버렸다고.
매일 아침 출근길에 지나치는 계획적이고 절제된 광화문의 풍경은 이제 더 이상 나에게 감흥을 일으키지 않았다. 대신 삐뚤빼뚤하고 제각각인, 전혀 일관성 없는 가게들이 너도나도 마구잡이로 붙어 있는 연남동의 거리거리와 ‘도대체 장사가 되기는 할까’ 보는 내가 다 염려스러운 개성(이 너무) 넘치는 가게, 일주일에 한 번만 열린다는 동진시장 7일장의 생생함이 오히려 이제 나에게 자극이 되고 영감을 주고 있다.
멋있고 화려한 것은 질리기 마련이다. 물론 멋있고 화려한 것 또한 그만의 색이 될 수도 있겠지만, 누군가에게 자극과 영감을 주는 것은(이것이 성급한 일반화라면 최소한 나에게는) 꾸며진 것이 아닌, 자연스러운 그 모습 그대로 간직한 색이 아닐까 싶다.
어느 동네를 가든 늘 바라는 바이지만, 부디 이 연남동은 특히 프랜차이즈 커피 매장들과 화장품 가게들로 즐비한 거리가 되는 일이 없기를. 계속해서 누군가에게 자극을 주는 날것 그대로의 모습을 갖춘 ‘미니 홈피’와 같은 동네로 남아 주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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