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악인이 되어 돌아온 정우성
악인이 되어 돌아온 정우성
  • 송혜란
  • 승인 2016.11.29 17:39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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빛보다 강하고, 선보다 강렬했다
 

정우성. 이름 석 자만으로도 흐뭇한 미소를 짓게 하는 남자. 그가 영화 <아수라>의 한도경이 되어 돌아왔다. 전작 <내 머리 속의 지우개>에서 보여 준 순애보 어린 모습은 온데간데없다. 악하고 독해졌다. 한도경은 그의 필모 중 가장 지독한 인물일지도 모르겠다. 처음부터 끝까지 살벌한데, 그게 정우성인지라 또 너무 멋있다. 거기엔 왠지 모를 처절함까지 묻어나 19년 전 <비트>에서 선보인 청춘의 아이콘이 되살아난 듯싶다.

취재 송혜란 기자 사진 서울신문

세상에 이렇게 멋진 남자가 또 있을까? 브라운관에는 좀처럼 모습을 드러내지 않던 정우성이 방송 전파를 탔다. 그것도 드라마가 아닌 예능이다. 영화 홍보차 동료 배우와 함께 MBC <무한도전>에 출연한 것이다. 우아하게 진지한 이야기만 할 것 같던 그는 모두의 예상을 뒤집었다. 무한도전 팀의 요구에 황정민, 곽도원, 주지훈, 정만식과 함께 혼신을 다해 즉흥 연기를 선보이는 등 영화 홍보를 넘어선 열정으로 큰 화제를 낳았다. MC 유재석의 “본인이 잘생긴 것 아느냐”는 질문에 바로 “네”라고 긍정해 웃음을 자아내기도 했다. 이윽고 박명수가 “잘생겨서 안 좋은 점이 있을 것 아니냐”고 물었고, 그는 “없다”는 단호한 대답으로 폭소를 안겼다. 그의 숨겨둔 예능감이 폭발한 것 아니냐는 호평이 이어질 만하다.
내려놓음이란 이런 것일까. 그의 출연만으로 <무한도전>은 영화인지 예능인지 분간이 안될 만큼 꿀잼 컬래버레이션이 되었다. 무한도전 팀과 아수라 팀을 예능신 팀, 연기신 팀으로 나누어 진행된 추격신에서 그는 상대편을 약 올리려는 박명수를 포획하는가 하면 하하를 줄로 묶어 놓자는 아이디어를 내기도 했다. 하하가 “영화 속에서 나와라”라고 말하자 그는 “실제처럼 해야 한다”며 열의를 보였고, 결국 하하는 줄에 묶여 끌려다녀야 했다. 영화 같은 비주얼에 예능인을 능가하는 센스를 선보인 그는 주말 안방극장을 그야말로 웃음 폭탄으로 만들었다. 그의 새로운 면모에 혹한 시청자들은 영화 <아수라>까지 보기 위해 극장으로 향했는데….

한결같지만 늘 새로운

‘남편과 정우성이 나오는 영화를 보러 갔다가 옆을 보니 오징어가 팝콘을 먹고 있었다.’ 요즘 여자들 사이에서 심심치 않게 오가는 우스갯소리다. 1994년 영화 <구미호>로 강렬하게 데뷔한 정우성은 언제나 스타였다. <비트>와 <태양은 없다>로 가진 것 없이 날아올랐다 추락하는 청춘의 아이콘이 되고. <무사>에서 긴 창을 휘두르고, <놈놈놈>의 시그니처 신인 질주하는 말 위에서 라이플을 한 손으로 돌려 장전하는 스타일리시한 액션 연기, 그리고 <내 머리 속의 지우개>, <호우시절> 등의 멜로에서는 순애보의 주인공으로, 그는 늘 관객의 선망 심리를 자극하는 멋진 배우였다. 불혹이 넘은 나이에도 여전히 굴욕 없는 외모를 자랑하는 정우성.
영화 <아수라> 속 그는 기존과 또 다른 모습이었다. <아수라>는 지옥 같은 세상, 살아남기 위해 싸우는 악인들의 전쟁을 다룬 작품이다. 그가 맡은 역할은 생존형 비리 형사 한도경. 한도경은 말기 암 환자인 아내의 치료비를 위해 악덕 시장 박성배의 온갖 더러운 뒷일을 처리해 주며 돈을 받는다. 박성배의 수행팀장으로 가려 했지만 검찰에게 약점을 들킨 후 모든 계획이 무너졌다. 검찰은 박성배를 잡기 위해 그를 벼랑 끝으로 밀어간다. 점점 더 목을 조여 오는 검찰과 박성배 사이에서 그는 태풍의 눈이 되어 살기 위해 발버둥 친다. 살아남기 위해 혈안이 된 나쁜 놈들 사이에서는 서로 물지 않으면 물리는 지옥도가 펼쳐진다. 신사 이미지가 강한 그는 의외로 악인의 캐릭터를 완벽하게 표현해 감탄을 자아냈다.
“한도경이라는 사람을 이해하고 받아들이기 위해 노력했어요. 이해 못 할 구석도 없었죠. 한도경은 악한 사람인데, 큰 그림에서 보면 더 큰 악인들 사이에서 갈팡질팡하는 나약한 인물이거든요. 그의 스트레스를 그대로 표현했습니다. 관객들이 한도경을 보고 정우성의 다른 표정이 보인다고 이야기하는 것도 이 때문인 것 같아요. 어떤 악보다도 버티려는 독함. 거기에 더 치중했습니다.”

김성수 감독과의 특별한 인연

김성수 감독과는 네 번째 작품인 그는 영화 제작 보고회 당시 감독에 대한 무한 애정을 과시했다. 시작은 19년 전 <비트>였다. ‘박동하는 청춘의 또 다른 이름’이라는 카피처럼, <비트>를 통해 그는 청춘의 아이콘이자 한국인이 가장 사랑하는 스타로 자리 잡았다. <비트>는 액션과 로맨스, 조직과 맞서는 개인, 복수, 끝이 어디인지 알면서도 가는 비장함 등을 두루 갖춘 신선함으로 김 감독을 스타 감독 대열에 올린 작품이기도 하다. 이후 김 감독과 정우성이 함께한 <태양은 없다>는 비루한 청춘의 모습을 공감 가게 묘사하며 한국 버디 영화의 효시로 남았고, <무사>는 중국 촬영으로 고려시대로 간 ‘무사’ 정우성의 새로운 모습과 시대극의 차원이 다른 스케일을 소개했다.
“영화 <무사> 이후로는 15년 만에 감독님과 함께한 작품이에요. 개인적으로는 상당히 의미가 깊죠. 그렇다고 감독님과의 관계나 세월이 주는 단순한 의미에 매몰되면 안 된다고 생각했어요. 무엇보다 작품의 본질에 다가가서 관객들에게 사랑받는 것이 중요하다고 봤죠. 물론 다시 만나니 제가 왜 김성수라는 감독님을 좋아했고, 왜 그토록 그와의 작업을 그리워했는지 알겠더라고요. 그만큼 치열했던 겁니다. 더 독해지셨더군요. 그래서 제가 감독님을 좋아하기는 하지만요.”
관객보다 한발 앞서 배우 정우성이 가진 새로운 모습을 발견하고 이를 관객에게 소개해 온 김성수 감독. 그와 정우성의 협업은 이번에도 관객의 예상을 비껴가는 새로운 장르, 신선한 캐릭터, 그리고 두 사람의 시너지가 빚어내는 플러스 알파의 즐거움을 선사하는 데 성공했다.

치열했던 액션

김성수 감독의 이야기가 이어지자 불현듯 영화 <비트> 속 그의 명대사가 떠올랐다. ‘나에겐 꿈이 없었어….’ 그때 그 시절 정우성은 청춘을 대변했다. 자유를 위해 방황하고, 폭주하는 모습은 정우성 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이미지였다. ‘난 인간들이 싫어요.’ <아수라> 속 그의 오프닝 독백을 들은 이들이 그래서 더욱 한도경이 민의 미래라고 말하는지 모르겠다. 청춘을 꿈꾸던 그가 결국 삶을 증오하게 된 것이다. 스타일은 물론 살기 위해 싸우는 대역 없는 강렬한 액션신은 또 어떤가. 그의 액션 역시 짜임새 있기보다 마치 억지로 움직이는 듯한 느낌을 더했다. <비트> 때와는 확실히 달라진 모습이다.
“한도경은 원치 않은 상황에서 가해자가 됐습니다. 그걸 벗어나기 위해 발버둥 치는 나약한 인간이죠. 그래서 액션을 할 때 트릭이나 기교가 필요 없었어요.”
놀랍게도 그는 액션에 생각, 고뇌를 담았다.
“액션이 액션으로만 끝나면 안 된다고 생각했어요. 한도경이 가지고 있는 불안, 짜증, 분노를 다 담아야 했죠. 표정만으로는 한계가 있으니까요.”
연기 이야기를 할 때 유독 진지해지는 그는 액션 신에 대한 호평이 끊이지 않자 겸손하게 자신을 낮출 줄도 알았다.
“제가 꼭 위험한 걸 해낸 것은 아니고요. 실질적인 충돌과 그렇게 했을 때의 강렬함, 치열함을 관객들이 고스란히 느껴야 했기 때문에 할 수밖에 없었던 일이에요. 다행히 감독님이 잘 이끌어 주셨죠.”
영화 <아수라>를 본 이라면 정우성이 선사했던 그 살기 어린 눈빛이 뇌리에 꽂혔을 터. 그의 연기 혼이 내뿜은 한도경의 모습이 너무나 강렬했기에 어쩌면 그의 이미지가 오랫동안 각인돼버릴지도 모를 일이다. 그럴 때 UN 난민기구 친선대사로 활동하고 있는 그의 사진 속 눈빛을 다시 한 번 들여다보길 바란다. 지독하게 악한 한도경 뒤에 착하고 잘생긴 배우 정우성이 한결같이 그 자리를 지키고 있으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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