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꿈 멘토로 돌아온 골든벨 소녀, 김수영
꿈 멘토로 돌아온 골든벨 소녀, 김수영
  • 송혜란
  • 승인 2016.11.30 10:49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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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고 싶을 만큼 살기 힘드세요?
 

CD 붙인 노란 야구 모자를 푹 눌러 쓴 채 실업계 고등학교 사상 최초로 골든벨을 울린 여수 소녀 김수영을 기억하는가? 불우한 어린 시절을 보낸 그녀는 이후에도 꽤 파란만장한 삶을 살았다. 그녀의 나이 불과 서른다섯에 말이다. 이미 30만 독자의 인생을 바꾼 베스트셀러 <멈추지마, 다시 꿈부터 써봐>를 다시 펴낸 그녀가 또 무슨 이야기를 전하고 싶었던 것일까. 그 궁금증을 풀기 위해 꿈 멘토 김수영을 만났다.

취재 송혜란 기자 | 사진 양우영 기자

지독한 곱슬머리가 콤플렉스였던 그녀는 중학교 2학년 때 과산화수소수에 머리를 담갔다. 생머리가 된다는 말에 혹했기 때문이다. 결과는 참혹했다. 샛노랗게 변한 머리로 학교에서 문제아로 낙인찍힌 그녀는 방황 끝에 결국 자퇴서를 제출했다. 찢어지게 가난한 집에서 엄마, 아빠는 늘 돈 문제로 다투기 일쑤였다. 누가 보아도 불행한 소녀였다. 그래도 희망은 있었다. 우연히 신문에서 이스라엘 군인의 총에 맞아 죽은 아들을 품에 안고 오열하는 팔레스타인 아버지의 사진을 접한 그녀는 두 가지 생각이 들었다고 했다.
‘여수를 벗어나면 세상은 넓고, 나보다 더 전쟁같이 사는 사람도 많구나.’
이윽고 기자가 되겠다고 마음먹은 그녀는 검정고시로 다시 여수정보과학고에 들어갔다. 대학에 가기 위한 준비도 철저히 했다. 뭇 사람들은 비웃었지만, 그녀는 당당히 골든벨까지 울리며 연세대 영문학과에 합격했다. 무슨 일이든 간절히 원하고 최선을 다하면 다 이룰 수 있다는 것을 몸소 증명해 보인 셈이다.
보란 듯 글로벌 투자회사 골드만삭스 취업에도 성공한 그녀. 그런데 이게 웬 날벼락인지…. 입사 직후 건강검진에서 암세포가 발견된 그녀는 다시 내리막길을 걸어야 했다. 눈물 콧물 없이는 도저히 들을 수 없는 그녀의 인생사는 서른 살도 채 안 된 사이에 벌어진 일이라 놀랍기 그지없다.  
다행히 암은 수술로 완치됐다. 그럼에도 그녀의 질주는 멈추지 않았다. 죽기 전에 꼭 해 보고 싶은 일을 써내려 간 그녀는 73가지의 꿈을 담은 버킷리스트를 완성했다. ‘인생의 3분의 1은 한국에서 살았으니 다음 3분의 1은 세계를 돌아다니고, 마지막 3분의 1은 가장 사랑하는 곳에서 살고 싶다.’ 그녀가 적은 첫 번째 꿈이다. 그렇게 세계 도전은 시작됐다. 런던대에서 석사를 마친 그녀는 세계 매출 1위 기업인 로열더치셸 영국 본사에 입사해 연 800만 달러의 매출을 책임지는 카테고리 매니저로 근무하는 행운도 거머쥐었다. 모두 6년 전 출간된 그녀의 첫 책에서 나오는 이야기다.

상황 탓 말고 그릇부터 키우세요

저서 <멈추지마, 다시 꿈부터 써봐> 이후 <당신의 꿈은 무엇입니까>, <드림 레시피>, <당신의 사랑은 무엇입니까>를 연이어 펴낸 김수영은 여행가, 작가, 강연가, 기업인, 콘텐츠 크리에이터, 다큐 감독, 작사가, 번역가 등 직업만 해도 무려 10개가 넘는다. 그중에서도 가장 김수영다운 수식어는 꿈 멘토가 아닐까 싶다. 전 세계를 떠돌다 지금은 사회적 기업 ‘드림파노라마’를 설립해 강연, 드림워크숍, 전시, 축제로 수십만 명의 사람들과 꿈의 씨앗을 나누고 있는 김수영. 특히 스스로를 흙수저라고 부르는 현대 젊은이들에게 그녀는 하고 싶은 이야기가 무궁무진한 듯했다. 
“부모님 잘 만나 별 어려움 없이 큰 사람 많죠. 그러나 부모덕은 자신의 꿈을 이루는 도구 중 하나일 뿐이에요. 포크가 없으면 젓가락, 정 안되면 손으로 먹으면 되듯 일단 자신의 그릇부터 키우세요.”
인생에는 부모 못지않은 변수가 꽤 많다. 드림파노라마와 사랑파노라마 프로젝트를 수행하기 위해 전 세계 47개국에서 500명을 인터뷰한 그녀는 25개월 동안 숱한 인간 군상과 마주쳤다. 개중에는 왕족이나 엄청난 재벌은 물론 빈민가나 난민촌, 사창가를 전전하는 이들도 있었다. 참 재미있는 사실은 그들의 행복에 환경은 그리 큰 영향을 미치지 않았다는 점이다.
“우리는 눈앞에 보이는 것을 기준으로 끊임없이 서로 비교하는 것 같아요. 특히 요즘은 SNS가 워낙 발달해 있다 보니 사람들이 다 잘사는 모습만 보잖아요. 비교하려면 한도 끝도 없죠. 그런데 아프리카에 가면 비교 대상 자체가 없어요. SNS도 안될뿐더러 다들 어렵게 사니까 딱히 불행할 이유도 없죠. 그들의 행복도가 우리보다 훨씬 높다는 점에 주목할 필요가 있습니다.”
자신에게 주어진 것이 반이라면 나머지 복은 후천적으로 충분히 만들어 갈 수 있다.
“아직도 세상이 너무 불공평하다고 불평불만만 늘어놓을 건가요? 세상이 왜 공평해야 하죠? 인류 역사상 세상은 한 번도 공평한 적이 없었어요. 앞으로 세상이 공평해져야 할 이유도 없지요. 자꾸 스스로 기준을 만들어 놓고 그것을 채우지 못해 힘들어 하는 것 같아요. 이럴 땐 그 결핍을 외려 삶의 원동력으로 써 보세요. 이대로 주저앉을 것이냐, 다시 일어설 것이냐는 자신의 선택에 달려 있습니다.”
그릇이 커진 만큼 결핍도 늘어나니 큰 그릇을 무엇으로 어떻게 채울지는 방법을 찾기 나름이다. 물론 그 과정이 결코 쉽지만은 않다. 특히나 우리 같은 사람은 뭘 해도 안 된다는 좌절감과 패배주의에 휩싸일 때면 상황은 더 악화되고 만다.
“자신을 뛰어넘기 위해 남들보다 몇 배는 더 부단히 노력해야 해요.”

결핍이 가장 큰 에너지

그녀가 말하는 그릇이란 인생의 크기, 즉 꿈의 크기라고 이해하면 쉽다. 그릇이 크고 작은 게 좋고 나쁘다는 이야기가 아니다. 예컨대 사업가가 되어야 할 정도로 큰 그릇을 가진 이가 부모의 말에 등 떠밀려 대기업에 들어가거나 공무원이 되었을 땐 만족스러운 삶을 살기 어렵다. 한 팀의 일원으로서 무엇인가를 하기에 그 사람의 그릇이 너무 큰 것이다. 반대로 어떤 사람은 안정된 직장에 들어가 평범하게 사는 게 맞는데 불가항력적으로 회사에서 떠밀려 나 프리랜서가 되면 인생이 고달파진다.
“사람은 각자 사는 방식이 달라요. 대부분의 사람이 자신의 가능성은 확인해 보지도 않고 그냥 다들 공장에서 그릇 찍어내듯 살고 있으니 안타까운 겁니다. 꿈이라는 것도 사실 무엇을 봐야지 가질 수 있는 거거든요.”
대학생 때 자신의 학비와 용돈은 물론 부모의 생활비까지 책임져야 했던 그녀는 과외부터 아파트 청약 상담원, 미스터리 쇼퍼 등 무려 20종의 아르바이트를 모두 소화해 냈다. 학업에 열중하며 생계형 아르바이트까지 해야 했던 나날은 고통의 연속이었지만, 어느덧 그 경험이 큰 자산이 되어 쌓이기 시작했다.
“세상에 별의별 일이 다 있다는 것을 알게 됐죠. 과외를 하며 부잣집, 가난한 집도 다 가 보고요. 다행히 등록금은 장학금으로 충당이 돼서 아르바이트비를 모아 저는 방학 때마다 배낭여행을 다녔어요. 세계 각지에서 직접 보고 배운 게 많죠. 그러다 보니 자연스럽게 제 꿈도 커졌고, 그 꿈을 이루기 위해 열심히 살다 보니 여기까지 왔어요. 제가 가지고 태어난 게 없었던 것만큼 피나게 노력했지요. 일단 그릇부터 키우고 나면 그다음은 조금 수월해져요.”
그녀에게 결핍은 삶의 가장 큰 에너지였다. 많은 부모가 그녀의 강의에 와 묻는다. “우리 아이가 꿈이 없는데 어떻게 해야 할까요?” 부족한 것 없이 자란 아이가 스스로 꿈을 찾아 열심히 살기는 쉽지 않다. 자신이 배가 고프고 목이 말라야 움직이게 되어 있다. 식사할 때도 아이는 가만히 있고 엄마가 떠먹여 주기만 하면 아이는 반찬 투정만 하게 될 터. 
“배가 고프면 혼자 요리를 해 먹고, 먹을 게 없으면 마트에서 무엇을 사 오고, 그것을 살 돈조차 없으면 밖에 나가 일을 하는 것처럼 결국 결핍이 우리를 움직이는 원동력이라고 생각해요. 선택은 이를 받아들이는 사람의 몫이죠.”

연금술사

한 시간 넘게 이어진 그녀의 이야기를 듣다 보니 스무 살적 읽었던 소설 <연금술사>가 떠올랐다. 꿈을 믿고 그것을 실현하기 위해 먼 길을 떠나는 어느 양치기의 여행을 통해 세상에 존재하게 된 우리 모두에게 진정한 자아 탐색이란 무엇인지 묻는 훌륭한 작품이라 기억된다. 지난 10년간 노트에 적은 버킷리스트를 하나씩 지우기 위해 전 세계 각지를 여행한 그녀의 깨달음이야말로 현대판 연금술사가 아닐지….
“요즘 젊은이들이 운운하는 헬조선은 스물다섯 살의 저에게 해당되는 말이었어요. 그때 처음 한국을 떠났죠. 저를 둘러싼 모든 것이 다 싫었던 것 같아요. 그런데 이제 와 돌이켜보니 사실은 제 마음이 헬이었습니다. 제 마음이 행복할 때는 세계 어디를 가도 행복한데, 제 마음이 불행할 때는 제아무리 좋은 곳을 가도 불행한 거예요. 내 마음의 상태가 중요하더라고요. 내가 어디서 무엇을 하는지가 중요한 게 아니라는 것을 깨닫는 데 10년이 걸렸습니다.”
예전에는 빙하를 찾아 아르헨티나나 산티아고를 순례하는 데 목을 맸다면 지금은 동네 산책만 나가도 무척 행복하다는 김수영. 정상 하나만을 보고 고통스럽게 산을 오르던 지난날을 떠올린 그녀는 목표를 달성하는 것보다 그 과정을, 지금 이 순간을 즐기는 일이 더욱 중요하다고 말했다.
“이제는 제가 있는 이곳이 너무 좋고, 제 옆에 있는 사람이 매우 소중하며, 제가 하는 이 일이 참 즐겁습니다. 여기저기 피어 있는 꽃들도 굉장히 아름답고요. 이 좋은 것들이 항상 내 옆에 있었구나…. 이것을 찾기 위해 세계를 떠돌아다녔는데 다시 원점이었어요. 너무 오래 걸렸죠. 비로소 제 삶의 주인이 되기 위한 준비를 다 끝마친 것 같아요. 누구나 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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