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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가부 차관 지낸 엄마 이복실 & 430대 1 뚫고 OECD 합격한 딸 최안나
여가부 차관 지낸 엄마 이복실 & 430대 1 뚫고 OECD 합격한 딸 최안나
  • 송혜란
  • 승인 2016.12.06 07:28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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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녀의 아름다운 도전 인생
 

1985년 제28회 행정고시에 합격한 후 공직생활을 시작한 이복실 전 여가부 차관. 여성가족부 최초 여성 차관을 지낸 그녀는 30년 만에 공직에서 물러나 글쓰기와 강의에 집중하고 있다. 묵묵히 하루하루 열심히 일했던 탓에 가족과 보낸 시간이 적어 못내 아쉬움이 많았던 그녀이지만, 참 자랑스럽게도 큰딸 최안나 씨는 스스로 잘 자라주었다. 도전에 큰 의미를 두고 용기 있게 출사표를 던진 OECD에 당당히 합격한 그녀를 엄마 이복실 전 차관과 함께 만났다.

취재 송혜란 기자 사진 양우영 기자

국제기구인 경제협력개발기구(OECD)는 세계인이 일하고 싶어 하는 꿈의 직장이다. 바늘구멍보다 좁다는 OECD에 우리나라 여성이 430대 1의 어마어마한 경쟁률을 뚫고 합격했다는 것은 실로 엄청난 성과다. 최안나 씨가 지원했던 영 프로페셔널 프로그램(YPP)은 33세 이하의 젊은 인재를 발굴하는 OECD의 신규 직원 채용 시험이다. 2년마다 있는 YPP에 지원하기 위해서는 OECD 공식 언어인 영어나 불어를 능숙하게 구사할 수 있어야 하며, 석사 학위 소지자의 경우 3년 이상의 유관 근무 경력이 있어야 한다. 그 중에서도 서류전형으로 400명을 걸러낸 후 필기시험을 거쳐 120명을 선발, 면접을 통해 최 씨를 비롯한 22명을 최종 선발했다. 채용 과정만 해도 1년이 넘게 걸리는 길고 긴 여정이었다.
“심적으로 그 점이 가장 힘들었어요. 연락이 너무 안 오니까요. 차라리 떨어졌다고 통보라도 해주면 빨리 마음을 접을 수 있을 텐데 말이죠. 실제로 이메일을 여러 번 보내며 결과가 어떻게 됐냐고 독촉도 했었어요. 안 됐다는 말은 안 하고 일단 좀 기다려 보라고 하더라고요. 이제는 저도 여기서 일을 해보니 왜 이렇게 오래 걸리는지 알겠지만, 모르는 사람에게는 마치 희망 고문처럼 느껴질 거예요.”
면접 요청도 급작스럽게 받은 그녀는 하루 만에 짐을 부랴부랴 싼 후 곧장 파리로 향해야 했다. OECD에서 비행기와 호텔, 식비까지 모든 비용을 지급하며 그녀가 지원한 부서에만 8명을 불러 모아 점심 자리를 마련했다.
“그때 긴장감이 폭발했죠. 서로 웃으며 이것저것 물어보는데 그게 마치 정보를 캐내려는 것처럼 보였어요. 한국에 있는 엄마한테 여기 무섭다며 하소연하기도 했는데…. 결국 제가 최종 합격 통보를 받은 겁니다. 벅찬 감동과 함께 안도의 한숨이 나왔어요.”
그렇게 그녀는 지난해 8월부터 OECD 교육직능국의 정식 직원이 되었다.

세계인의 꿈의 직장, OECD 합격 비결은

최안나 씨는 고등학교 때 교환교수였던 아버지를 따라 미국으로 건너가 UC버클리대 경제학과를 졸업하고 코넬대에서 정책학 박사 학위를 받았다. 그녀가 지원한 부서에는 하버드, 예일대를 나온 쟁쟁한 후보자가 수두룩했다. 이들을 모두 제치고 그녀가 당당히 합격대에 오를 수 있었던 데는 그녀를 꼭 뽑아야 한다고 강하게 주장한 부서장의 입김이 있었다.
“제가 같이 일하고 싶은 사람이라는 인상을 줬대요. 자신감이 중요하기는 하지만, 이 역시 너무 과하면 허풍으로 보일 수 있거든요. 어떠한 과장도 없이 저는 딱 필요한 대답만 했다고 하더라고요.”
물론 이토록 성실하게 모든 질문에 답을 할 수 있었던 것은 영어 실력은 기본, 지원 직무와 관련된 전문성, 국제기구 인턴 경험을 모두 갖춘 그녀였기에 가능했다. 하나의 정책을 만드는 전반적인 과정에 대해 테크니컬한 질문과 답이 많이 오고 가는 OECD 면접에서 그녀의 능력은 더욱 빛을 발했다.
“사실 영어도 원어민 수준으로 완벽하게 구사했다기보다 정확한 표현을 사용하려고 애썼어요. 아무래도 OECD 하면 정책 이야기를 빼놓을 수 없잖아요. 오히려 제가 쌓은 전문성을 더 어필하려고 했습니다.”

일찍이 만들어진 폴리시 메이커

어릴 때부터 대학교수인 아버지와 고위 공직자인 어머니와 함께 식사할 때면 정책 이야기를 많이 늘어놓았다는 그녀는, 어찌 보면 일찍이 만들어진 폴리시 메이커였는지도 모르겠다.
“이 사회에 도움이 되는 정책은 무엇일까? 이 정책은 무엇이 잘못됐을까? 어떤 정책이 있어야 할까? 엄마, 아빠와 정책 토론하는 게 일상이었어요. 엄마가 UN에서 회의했던 이야기도 전해 들으면 굉장히 재미있었죠. 저도 나중에 크면 국제기구에서 꼭 일해보고 싶다고 생각했어요. 부모님의 영향을 많이 받은 케이스죠.” 
실제로 미국에서 공부하며 한 국제기구에서 3개월간 인턴으로 일해 본 그녀는 이윽고 자신의 진로에 확신이 생겼다.
“아프리카에서 사람들이 노동 규정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지 조사 후 데이터로 만들어 페이퍼를 작성하는 일이었는데요. 한창 박사 과정에 있을 때 논문이나 원서를 보는 것보다 사회에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어떠한 정책을 만드는 일에 더 관심이 가더라고요. 그래, 이 길이다 싶었어요.”
확신은 들었지만 OECD에 지원서를 낼 만한 용기는 부족했다. 영어는 자신 있었지만 불어는 물론 파리에 대한 백그라운드가 약해 스스로 어려울 거라며 포기하기 일쑤였다. 망설이고 있는 그녀에게 엄마인 이복실 전 차관이 다가갔다.   
“처음에는 안나가 OECD에 어플라이 할 생각도 안 하더라고요. 제가 하라고 했어요. 지원도 해야 기회가 오지요. 결과가 어떻게 될지 모르지만, 그것도 도전해 봐야 알 수 있는 겁니다. 제가 옆에서 용기를 북돋아줬어요.”
사실 그녀가 엄마로서 도와준 건 그게 전부라고 말하는 이 전 차관. 그동안 너무 바빠서 많이 못 챙겨줬는데도 딸은 스스로 정말 잘 커줬다.
“공부하란 소리도 일체 한 적 없었는데…. 애가 공부를 썩 잘한다는 것도 중학교에 가서야 알았어요. 엄마, 아빠가 열심히 사는 모습을 지켜보며 비교적 일찍 철이 들었던 것 같아요.”
그녀의 딸은 이제 막 OECD 업무에 적응해 가는 중이다. 연구가 메인 업무일 것이라는 그녀의 예상과 달리 다른 부처와의 협업은 물론 컨퍼런스, 발표, 해외 출장까지 하루에 끝내야 하는 일만 해도 수두룩하지만, 신입 직원의 훈련을 위한 멘토링 프로그램이 활성화돼 있어 시간 관리만 잘하면 큰 문제는 없다. 한국과 달리 야근이 전혀 없는 직장 문화도 꽤 이색적이다.
“오히려 늦게까지 남아 일하는 직원을 설득해요. 너의 라이프가 있어야 한다고요. 밤 9시가 되면 아예 건물이 셧다운 돼버리죠. 1분 1초도 헛되이 보내지 않고 일에 집중하니까 가능한 일이기도 합니다.”
재택근무 시스템도 잘 마련돼 있어 일하며 아이 키우는 워킹맘에게는 더할 나위 없이 좋은 곳이다. 출산 휴가나 육아휴직도 OECD는 외려 환호하는 편이다. 휴직자의 공백을 채워줄 임시 투입 시스템이 잘 정비돼 있기 때문이라고. 여성은 맘 편히 아이 낳고 기를 수 있고, 임시 직원은 새로운 업무를 배우는 경험을 쌓을 수 있어 모두에게 이득이다. 유럽에서조차 OECD가 꿈의 직장이라고 불리는 이유다.

전 세계를 자신의 무대로

그럼에도 국제기구에서 일하는 한국 사람이 몇 안 된다는 사실에 그녀는 아쉬움을 가득 내비쳤다.
“OECD만 해도 일본 사람은 비교적 높은 요직에 많이 있는 반면 한국 사람은 절대적으로 인원이 적을 뿐더러 고위직에 오른 사람이 거의 없어요. 한국도 취업난이 엄청나다고 들었는데, 젊은 친구들이 용기를 갖고 많이 지원했으면 합니다. 꼭 OECD가 아니더라도 한국만 고집하지 말고 전 세계를 자신의 무대로 삼아봤으면 해요.”
여기에 이 전 차관은 좀 더 실질적인 조언을 덧붙였다.
“물론 철저한 준비가 필요하겠지요. 그러나 어떤 순간에도 완벽한 준비란 없습니다. 준비만 하다가는 세월 다 가요. 조금 미숙하더라도 일단 도전해보세요. 한번 도전해서 떨어졌다고 좌절하지 말고 진정 자신이 원하는 일이면 100번, 200번 문을 두드리는 담대함도 필요합니다.”
특히 사회 각 계층의 여성 리더를 많이 만나 온 그녀는 자기 정체성을 먼저 깨닫는 것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나는 누구인가? 무엇에 관심이 있나? 진정으로 하고 싶은 일은 무엇인가? 수없이 되뇌어 보자.
“요즘 사람들이 자기 정체성을 찾기보다 남들이 한다고 하면 다 우르르 몰려가는 성향이 강한 것 같아요. 누가 국제기구에 들어갔다고 하니까 국제기구, 또 대기업, 공무원까지 자신의 정체성과 무관한 일에 자꾸 휩쓸려요. 나중에 분명 후회합니다. 자신이 무엇을 하고 싶은지 먼저 찾고, 그 분야에 대해 알아가기 위해 투자를 해야 해요. 가끔은 세상과 담을 쌓고 외로운 시간을 가질 줄도 알아야 합니다. 오로지 나에게만 집중하는 힘을 기르세요!”
여성으로서 성취욕이 우월했던 이복실 전 여가부 차관과 그녀의 딸 최안나 씨. 밝고 긍정적이며 자신감 넘치는 모습의 모녀가 꼭 닮았다. 인터뷰 내내 친구처럼 티격태격하기도 한 이 모녀가 그려갈 미래도 힘껏 응원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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