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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악숙녀 송소희, 풋풋한 스무 살의 꿈
국악숙녀 송소희, 풋풋한 스무 살의 꿈
  • 송혜란
  • 승인 2016.12.07 17:47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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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BS <전국 노래자랑>에서 국악신동으로 주목받았던 어린 소녀가 어엿한 숙녀가 되어 돌아왔다. 사랑과 삶을 대하는 태도도 제법 진지해진 송소희. 천천히, 그리고 친근하게 다가가는 국악인이 되고 싶다는 그녀를 만나 스무 살의 꿈에 대해 들어보았다.

취재 송혜란 기자 사진 양우영 기자

파주 임진각 평화누리 공원. 공연 리허설을 앞둔 송소희가 있는 곳으로 향하는 길에 그녀의 최근 음원 두 곡을 들어보았다. <사랑, 계절>과 <비밀이야기>는 이전에 그녀가 들려줬던 노래와 확연히 달랐다. 우선 그녀의 가장 큰 강점으로 통했던 파워풀한 목소리가 최대한 자제되고 잔잔하며 편안했다. 국악 특유의 구수함은 그대로 살리되, 마치 동요를 떠올리게 하는 어여쁜 음색도 이색적이었는데…. 실제 말을 건네는 듯한 콘셉트는 여느 국악과도 차별화되었다.
리허설을 마치고 걸어오는 그녀를 멀리서 바라보니 그 변화가 어디서 왔는지 일정 부분 설명되는 듯했다. <전국 노래자랑>은 물론 SBS <스타킹>, TV 광고에서 보던 송소희는 온데간데없었다. 한복이 아닌 사복차림으로 등장한 그녀의 미모는 한창 물이 올라 성숙미가 물씬 풍겼다. 간헐적으로 쏟아지는 소나기 탓에 인터뷰 장소를 거듭 옮겼는데도 전혀 피곤한 내색 없이 오히려 상황을 즐기는 그녀는 스무 살의 순수함 그 자체였다. 국악 이야기가 이어지자 이내 곧 진지해지는 송소희.
“이번엔 좀 편안함을 주고 싶었어요. 대중들이 저의 강점으로 꼽는 힘찬 고음을 잠시 내려놓고 최대한 편하게 부르려고 했죠. 그게 더 어렵긴 했지만요.(웃음)”
그럼에도 그녀는 음악인으로 살아가며 다양한 장르의 스펙트럼을 만들기 위해 최선을 다했다. 스무 살에 자꾸 의미를 두고 싶은 마음도 컸다.
“왜 스무 살만이 담을 수 있는 가장 순수한 목소리 있잖아요. 그 목소리로 신중한 위로를 주고 싶었어요. 복잡하고 깊은 위로가 아니라, 가볍지만 진심 어린 위로를 담으려고 했죠. 지금 아니면 못할 것 같았거든요.”
키워드는 사람과 삶이었다. 요즘 사람들의 가장 큰 고민이 뭘까, 고뇌한 그녀가 잡은 주제다.
“계절이 돌고 돌 듯 갈 것은 가고 올 것은 오므로 이제는 좀 인정하고 기다리면서 살았으면 좋겠어요. 봄은 항상 옵니다. <사람, 계절>에는 그 메시지를 담으려고 했어요.”
<비밀 이야기>는 좀 다르다. 평소 글 쓰기를 즐기는 그녀는 이 노래의 가사를 직접 작곡하는 열의까지 보였다.
“제가 하고 싶은 위로를 담아야 하는 앨범인데, 저의 손길도 들어가야 하지 않을까 싶었어요. 다행히 제게도 기회를 주시더라고요. 앨범 첫 기획 단계부터 끝 마스터링까지 제가 이 정도로 많이 참여해본 적은 처음이에요. 의미가 특별할 만하죠.”
갓 스무 살에 접어든 숙녀가 왜 위로에 대해 생각하게 되었을까? 높은 옥상에서 밑을 내려다본 적이 있는 그녀는 일찍이 사람의 눈에서 공허함을 읽어낼 줄 알았다.
“사람들이 굉장히 바빠 보였어요. 사람도, 차도 모두 빠르게 움직였죠. 참 열심히 사는구나 싶더라고요. 그런데 밑에서 한 사람 한 사람을 관찰해보니 다들 눈은 너무 공허해 보이는 거예요. 굉장히 모순적이죠. 이를 제가 감히 직접적으로 위로해드릴 수는 없고, 자연과 하늘, 구름에 빗대어 은유를 통해 위로해주는 말을 가사에 고스란히 담았습니다.”

국악의 미분음에 매료되다

송소희, 그녀는 꽤 다부지다. 처음 국악을 시작할 수 있었던 것도 그녀의 진득한 성격이 한몫 했다. 다섯 살 때 우연히 집 근처에 있는 국악원을 찾은 그녀는 하루 이틀 만에 발길을 끊는 여느 아이와 달리 꾸준히 국악 수업을 받았다.
“방송에서 좀 과장된 부분이 있는데요. 제가 무언가 소리에 이끌려 이 소리가 내 소리다 식의 영감을 받았던 것은 아니었어요. 솔직히 다섯 살 어린아이가 뭘 알았겠어요. 음악적 재능이 뛰어나지도 않았죠. 보통 아이들이 국악원에 들어오면 오래 못 가거든요. 길어봤자 2년인데, 제가 반항 한 번 없이 진득하게 앉아 꾸준히 수업 듣는 것을 본 선생님이 이 길로 가면 잠재력이 보인다고 하니까 부모님이 그 말을 믿고 쭉 키워주셨죠.”
이후에도 그녀가 꼭 국악에 재미를 느낀 것도 아니었다. 부모님 말씀은 기막히게 잘 들었던 그녀는 당연히 부모님이 시키니까 해야만 한다고 생각했다. 의무감과 책임감이 전부였다. 그렇게 몇 년이 흘렀을까. 고등학교에 입학한 자신에게 어느 순간 순수 우리 음악인 국악의 매력이 보였다.
“저조차도 한국 사람인 것은 못 속이겠더군요. 당시대 사람들의 정서를 곧이곧대로 다 느낄 수는 없지만 제 몸에 우리의 피가 흐르는 것만으로도 자부심이 들었어요. 제가 진짜 멋있는 음악을 하고 있구나 싶더라고요. 그래서 더 국악을 사랑하게 되었고, 사랑하니까 더 공부하게 되었죠. 아는 만큼 보인다고 그때부터 진짜 재미를 느꼈어요. 자신감도 생기고, 그런 저를 친구들이 멋있게 봐주니까…. 정서적인 이유가 컸죠.”
특히 정확한 음이 있는 서양음악과 달리 무엇으로 나타낼 수 없는 국악의 미분음이 그녀를 묘하게 긴장시키면서 심장을 후벼 파듯 짜릿함을 주었다.
“국악에는 딱 떨어지는 음이 존재하지 않아요. 이를 미분음이라고 부르는데요. 미분음이 기분 좋게 저를 간지럽히면서 흥분시키는 데 큰 매력을 느꼈던 것 같아요.”
 
부모님의 남달랐던 교육 방식
 
그녀가 이렇게 온전히 자신만의 길을 걸을 수 있게 된 데에는 어릴 적 부모님의 교육 방식이 가장 큰 자양분이 되었다. 애초 그녀를 예술적으로 키워주고 싶었던 부모님은 어릴 때부터 그녀에게 다양한 예술적 경험의 토대를 마련해 주었다. 일단 남들 다 간다는 속셈학원보다 미술학원이나 바이올린, 피아노학원을 우선적으로 보냈다. 공연이나 전시회에도 자주 데리고 다니며 최대한 다양한 음악을 듣고, 그림도 많이 보게 도와주었다.
“예술과 익숙해지면서 감각을 익히길 바라셨어요. 꼭 국악을 시키려고 했던 것은 아니었다고 하세요. 앞서 말씀드렸다시피 국악원이 있는 것을 보고 우리 음악이니까 한번 배워보라고 한 부모님의 권유가 여기까지 온 거예요.”
그렇다고 그녀의 집안이 부유했던 것은 아니다. 주어진 환경 안에서 어떻게든 많은 가능성을 주고 싶었던 부모님은 그녀에게 어떠한 강요도 하지 않았다. 자유롭게 놓아준 덕에 노래 연습에 대한 부담감이나 압박감을 전혀 느끼지 못했다고 한다. 부모님은 그녀에게 ‘부모의 역할이란 본래 아이가 어떠한 재능이 있는지 스스로 발견할 수 있도록 길을 열어주는 것’이이라고 늘 말했다고 한다.
“그냥 피아노, 바이올린, 국악 학원 등에 보내놓고 저더러 그곳에서 한번 뛰어놀아보라고 하셨어요. 그 안에서 제가 조금씩 교집합을 찾았던 것 같아요. 아, 내가 예술에 관심이 많고 특히 음악을 좋아하며 그 중에서도 노래를 잘하는구나! 진로를 빨리 결정했기에 누구보다 행복한 삶을 살 수 있었어요. 저는 지금 정말 행복합니다. 주위에 이렇게 생각하는 사람이 별로 없더라고요. 제가 건강한 생각을 할 수 있도록 키워준 부모님이 참 존경스러워요. 늘 감사합니다.”
스스로 선택한 길이기에 그녀는 지금도 국악인이라는 점에 단 한 번 회의를 가진 적이 없다.
“저도 사람인데 당연히 연습하기 싫고 놀고 싶을 때도 있죠. 근데 그게 다예요. 저도 참 신기한데요. 국악을 한 지 15년이나 됐는데 이 일을 그만두고 싶다거나 다른 길을 꿈꿔본 적이 한순간도 없어요. 이제는 이게 제 운명이다 싶어요.”

새내기 대학생의 당찬 꿈

이제 막 대학생이 된 새내기 송소희. 그녀는 올해 단국대학교 국악과에 입학했다. 같은 음악을 하는 친구들을 만난 그녀는 공감대가 많아 대화가 잘 통한다며 한껏 신이 났다. 치열하게 연습하는 친구들을 보며 스스로 경각심을 갖고 선의의 경쟁도 하게 된다는 그녀는 우월한 동기애를 과시했다.
“초, 중, 고등학교 친구들과는 더 깊게 친할지언정 사실 음악적인 대화는 어렵잖아요. 동기들과는 그런 게 잘 되니까 서로 많은 도움이 되고 있어요. 이제 딱 한 학기 지났는데 마치 일 년을 만난 것처럼 급속도로 친해졌어요. 동기들 덕분에 대학생활도 수월하게 하고 있답니다.”
이에 힘입어 앞으로 그녀가 국악인으로서 펼칠 꿈도 기대감에 앞선다. 스무 살 새내기 대학생의 포부는 소박한 듯 당차다.
“대중이 지금처럼 국악을 친근하게 느낄 수 있었으면 좋겠어요. 그래서 요즘은 미디(MIDI)도 열심히 배우고 있어요. 작사뿐 아니라 작곡까지 하려고요. 이제는 노래만 잘해선 안 되고, 음악 전반을 꿰뚫고 만들 줄 알아야 합니다. 전 사람들이 언제 어느 때든 직접 찾아서 듣는 노래를 만들고 싶어요. 물론 강요하지는 않아요. 천천히, 마음을 열어줄 때까지 다가가고 싶은 게 국악인으로서 갖는 소박하고 큰 꿈입니다.”
음악인으로서는 더 넓은 스펙트럼을 가진 아티스트가 되고 싶다는 송소희. 인간 송소희로서는 주위 사람 잘 챙기면서 행복하게 살고 싶다. 지금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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