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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경리 정류장
박경리 정류장
  • 김도형 기자
  • 승인 2016.12.13 11: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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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경리 기념관과 묘소를 꼭 한 번 가보리라고 마음먹고 있었던 차에 무작정 통영 행 버스에 탔던 것이 지난 달 하순이었다. 서울 남부터미널을 출발해서 대전 통영간 고속도로를 경유한 버스는 불과 네 시간여 만에 통영에 도착했고 버스에서 내린 나는 묘소가 있는 산양면으로 가는 시내버스로 갈아탔다.
고향인 고성과 이웃한, 한때 충무라고 불린 통영 시내를 버스를 타고 지나쳐 가보기는 삼십 년도 더 되었는데 사진에 취미가 있었던 내가 작품 사진을 찍는답시고 통영을 뻔질나게 다녔던 고등학교 그 시절이 차창 밖으로 아련했다. 옛 뱃머리 맞은편 대로변에서 사진관을 하시며 사진에 많은 조언을 아끼지 않으셨던 정선생님의 가게는 흔적을 찾을 수 없었다.
해저터널 위로 놓여있는 대교를 지나 산양면 일주도로로 접어들면서 차로 스며드는 진한 갯내음을 맡으며 추억에 젖어 있는 동안 버스가 목적지에 도착했다.
아담하게 지어진 기념관 뒤로 난 오솔길을 따라 조금 올라가 보니 묘소가 있었는데 박경리 선생님이 우리 문학에 끼친 업적에 비해서는 조금 평범해 보였다. 유언을 그렇게 하셨다 하니 후손들도 어쩔 수 없었을 것이다. 묘소에서 묵념을 올렸다고 블로그에 올린 사람들을 더러 보았으나 나는 큰 절을 두 번 올리고 소설 ‘토지’를 세상에 남기고 떠나신 선생님께 존경과 감사의 마음을 전했다.
깨끗하게 닦여진 상석 위에 야생화 한 묶음이 놓여져 있었는데 누구였는지 선생님을 기 리는 마음이 나 못지 않아 보였다. 기념관을 둘러보고 다시 시내버스를 타러 정류장으로 갔는데 정류장에는 선생님의 얼굴 사진이 붙어 있었다. 더운 날씨에 버스를 타고 기념관 을 찾은 사람은 나밖에 없었던지 정류장 의자에 홀로 앉아 차를 기다리며 소설 토지가 완 간 되었을 즈음에 박선생님을 뵈었던 기억을 떠올렸다.
고향은 통영이지만 당시 원주에 계셨던 선생님은 기자 기피증이 있으신 때여서 만나 뵙기 참 힘들었는데, 음료수를 한 통 사 들고, 재치 있게 고향이 통영 옆 고성이라고 소개한 나를 천만 뜻밖에도 집으로 들이셨다. 비록 잠깐이나마 고향을 비롯한 몇 가지 얘기를 나누고 사진도 몇 장 찍고 돌아올 때는 마치 고모님을 뵙고 오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선생님을 뵙고 와서 나는 토지를 읽기 시작했다. 분량이 워낙 많았어도 지루한 줄 모르고 21권이나 되는 소설을 단숨에 독파했다. 평생 용이를 향한 지순한 사랑을 보여준 월선이 죽는 장면에서는 눈시울이 붉어지기도 했다.
욕지도 사량도 등지에서 배를 타고 척포로 나온 사람들을 가득 태운 버스가 도착했다.
박경리 정류장! 이 정류장에서 선생님은 ‘버리고 갈 것만 남아서 참 홀가분하다.’라는 시를 남기고 천상 행 차를 타고 먼저 가셨고, 나는 통영 터미널 행 시내 버스에 몸을 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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