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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 화단이 주목한 한국 차세대 작가, 이진우 화가
프랑스 화단이 주목한 한국 차세대 작가, 이진우 화가
  • 백준상 기자
  • 승인 2016.12.15 16:16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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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작가 일하는 방식이 독특하다!’ 독특한 작업방식과 작품에서 뿜어져 나오는 심상치 않은 아우라로 프랑스 화단으로부터 먼저 주목 받은 이진우 화가가 얼마 전 내한해 개인전을 열었다. 힘든 노동을 투사하여 삶의 의미를 작품으로 길어내는 이진우 작가를 만나 그의 작품과 예술관에 대해 들었다.

취재 백준상 기자  사진 양우영 기자

한국에는 널리 알려지지 않았지만 프랑스가 주목하는 화가가 있다. 천에 붙인 숯과 한지를 쇠솔로 문질러 독특한 질감의 작품을 만들어온 이진우 화가이다. 1980년대 프랑스로 건너가 30여년 작업을 해온 그가 몇 년 전부터 프랑스 화단의 집중 조명을 받고 있다.
파리시립미술관이 그의 작품을 소장하기 시작했으며, 프랑스 세르누치 박물관은 지난해 10월부터 올해 2월까지 연 ‘프랑스의 한국작가들’ 전시회에 김환기 이우환 등 대가와 함께 이진우 작가를 포함시켰다. 프랑스 일간지 ‘르 피가로’는 1세대 단색화가를 이을 실력 있는 차세대 작가로 그를 꼽았다.
고흐 피카소 이우환 등 많은 대가들의 화집을 출판해온 프랑스 미술전문 출판사 악뜨쉬드는 기획한지 5년여 만인 최근 그의 작품들을 수록한 상당한 두께의 화집 ‘LEE JIN WOO’를 펴냈다. 이진우 화가가 김환기·박서보 화백을 잇는 차세대 한국 현대화가로 당당히 떠오르고 있다.
이진우 화가는 한·불 수교 130주년 기념사업 중 하나로, 지난 10월 19일부터 24일까지 서울 광화문 조선일보미술관에서 국내 첫 개인전을 가졌다. ‘비움과 채움’을 부제로 한 이번 전시회에서 지금까지 보기 힘들었던 독특한 기법의 그의 단색화 작품 32점이 관람객들의 눈길을 끌었다.

노동을 통해 비우고 채워 나가는 작업 방식

‘비움과 채움’이라는 이번 전시회의 부제는 작가의 작품 활동을 한 마디로 함축하고 있다. 손  끝의 노동을 통해 나 자신을 비우며 가장 가치 있는 무언가로 작품을 채워나가고 싶다는 작가의 바람을 담고 있는 것이다. 미술 작업이 필연적으로 노동을 수반하기 마련이지만 이진우 작가의 작업에서 노동의 강도가 상상 이상으로 느껴졌다.
인터뷰를 위해 처음 만났을 때 받은 첫 인상은 그가 엄청 ‘근육질’이라는 것이었다. 그의 커다란 손과 굵은 팔뚝을 보고 놀라자 “30년 노동을 하다 보니 자연스레 근육이 붙었다”고 말했다. 그는 분명 ‘미술작업’이란 말은 생략하고 노동이라고만 했다. 모르는 사람이 들으면 그를 막노동꾼이라고 생각할 수 있었을지도 모르겠다.
이진우 작가의 작업은 아크릴 바인더 용액을 바른 린넨 위에 일정한 크기로 부순 숯을 뿌려 다닥다닥 붙인 다음, 그 위에 한지를 덮어 붙여 쇠 브러시로 문지르고, 다시 한지를 덮어 붙여 쇠 브러시로 문지르는 노동을 반복한다. 작품에 입체감을 부여하는 행위인 것이다.
보통 한 작품을 할 때마다 한지를 10번 덮고 갈아내는데, 많을 때는 30번을 덮고 갈아낸 적도 있다고 한다. 한 작품을 만들 때마다 수 백 번, 아니 그 이상의 쇠 솔질 노동을 감내해야 하는 것이다. 그가 한 작품을 완성하는 데는 보통 한 달 정도가 소요된다. 여러 작품을 동시에 작업하는 경우가 많고, 길게는 영감을 얻느라 4년이 걸린 작품도 있다고 하니 그의  총 노동량이 어마어마함을 짐작하기 어렵지 않다. 그는 왜 이렇게 힘든 노동을 자처하는 걸까?
 “한지를 덮고 쇠 솔로 갈아내는, 무한하며 무목적의 반복행위를 통해 제가 사라지는 것을 꿈꾸었습니다. 한지를 덮는 것은 저를 무효화시키는 행위구요, 흰 눈으로 사물을 덮듯 제 자신의 추한 것, 모자란 것, 부끄러운 것을 속죄하는 마음으로 덮으려 한 것입니다. 원래 저의 이탈하려는 마음과 더불어 솔로 갈아낼 때마다 더럽고 추한 것들이 떨어져나가길 바랬지요.”
작가의 힘든 노동이 투입된 쇠 솔질에 숯의 군집은 닳아져 입체적 문양을 이루고 한지는 복잡한 거미줄처럼, 또는 오래 쌓인 먼지처럼 하얀 배경을 이룬다.
숯과 한지로 결국에 만들어낸 풍경은 매우 독특한데 거기에는 숯과 한지는 따로 존재함이 없이 융합된 세계, 본래의 물성을 초월한 다른 DNA를 지닌 세계가 펼쳐져 있다. 사람들은 그 세계에 속절없이 끌리고 ‘힐링’되는 느낌을 갖게 된다. 비로소 ‘비움과 채움’이라는 부제가 마음에 와 닿는 대목이다. 힘든 노동을 통해 자신을 지우고 비우고 거기에 채운 세계가 보다 고고하고 정신성이 깃든 세계라는 것을 보는 사람들은 단박에 느낄 수 있다.

숯과 한지 작업으로 자신만의 정체성을 확립하다

이진우 작가의 작품은 크거나 작은 숯들의 군집은 비슷한 크기로 안정감을 느끼게 하지만 자세히 들여다보면 군집들이 일정한 패턴을 형성하는 경우도 있다. 작품마다 제작 과정에서 제목과 스토리를 갖게 되는데 작가는 그러한 것들을 무시하고 최종적으로 ‘무제’라는 타이틀을 붙인다. 그래서 그의 작품들은 모두 ‘무제’라는 하나의 제목만을 갖게 되었다. 
그의 작품들 중에 구상작품처럼 봉분이나 잉태를 다룬 것도 있는데 생명을 잉태하거나 죽어서 땅에 묻히는 상징물로서 모두 동일한 표현으로 타나난다. 이는 삶이나 죽음이나 결국 같거나 순환되는 것이라는 작가의 의식을 반영하고 있다. 그런 맥락에서 그의 작품들은 모두 생성과 소멸에 대해 얘기한다. 이는 윤회사상과 연결되는데 그가 동양의 감수성과 정체성을 가진 작가라는 것을 말해준다. 
2년 전 파리에 있는 갤러리에서의 전시를 위해 마레지구 온 박서보 화백은 묵는 호텔의 로비에 걸린 이 작가의 그림을 보고 한국 사람이 그린 것을 단박에 알았다고 한다. 그래서 호텔 직원을 통해 수소문해 이 작가를 찾았다는 얘기는 그의 작품에 박힌 동양적, 한국적 특성이 얼마나 명확했는지 잘 알려준다.
이진우 작가를 요즘 유행하는 단색화가의 틀에 가둘 수만은 없지만 그의 작품이 동양적 정신성의 세계에 부쩍 다가서 있음을 알 수 있다. 그는 좋아하는 화가로 겸재 정선과 명나라 말의 유민화가인 팔대산인(八大山人)을 꼽았다. 그는 화가의 길로 들어선 초창기, 겸재 정선의 ‘박연폭포’ 에 감동받아 그 앞에서 눈물을 흘리며 30분간 서 있었고 훌륭한 예술가가 되겠다는 꿈을 다잡았다고 회고했다. 그는 프랑스에 유학 와서 화가로서 자신만의 정체성을 갖는 일로 고민하고 노력했지만 그 귀결은 명약관화했다.
“프랑스 미술계에서는 유행을 좇기보다는 자기정체성이 분명한 작가를 인정해줍니다. 동양이나 서양 중 한 곳이 더 우수하다는 뜻에서가 아닙니다. 20세기 이후 서양미술에서는 회화가 침체되었습니다. 반면에 한국 작가들은 아직도 단순하고 담백하며 명상적인 단색화를 꾸준히 양산해 내고 있습니다. 한국미술이 지닌 강점인데 수묵화 특히 남종화의 여백미나 선비적 정신을 현대미술로 표현하는 것이 아닌가 생각됩니다.”
이진우 작가에게 동양적 정체성을 실체적으로 부여한 것은 한지와 숯의 사용이었다. 그의 작품은 일반 회화로는 쉽게 이룰 수 없는 감흥을 주는데 이는 애초에 재료를 대해 잘 알지 못하고 잘 쓸 수 없다면 불가능한 일이었다. 그는 파리국립미술학교에서 7년 동안 미술재료학을 공부해 재료에 대한 이해가 깊었다.
“처음에 물감을 살 돈이 없어 숯을 사용하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숯이 지닌 검정은 동양에서는 삼라만상을 내포하고 정신적인 것까지도 포함합니다. 만물이 하나의 점으로 소멸하는 것 역시 검정으로 가능합니다. 생성과 소멸의 공존을 표현하는데 이만큼 좋은 재료는 없다고 봅니다.” 
이 작가는 한지를 사용할 수 있었던 것에 대해서는 감사의 심경을 드러냈다.  한지는 견고하고 알면 알수록 굉장한 물건으로 한민족의 가장 위대한 문화유산이라는 것이다. 그는 특히 그에게 견고하고 품질 좋은 한지를 조달해 준, 인사동 화방인 ‘송지방’의 고 송재천 사장에게 감사를 표했다.

가난은 예술가의 숙명, 초심 잃지 않을 터

이진우 작가는 파리 뱅생 지역에 있는 작업실에서 작업을 한다. 작가로 나서고 10여 년 동안 집 없이 떠돌았던 그에게는 매우 소중한 공간이다. 한때 한국에 돌아가기도 했으나 2005년 다시 파리로 돌아와 정착했다. 미술을 전공한 부인과의 사이에 고등학교에 다니는 딸 하나를 두고 있다.
그는 “한 번도 괜찮은 적이 없었다”라고 말 할 정도로 생활고를 겪었다. 신혼 첫해에도 그는 월세를 전전하는 가난 속에서 하루 18시간이나 쉬지 않고 일해야 했다고 기억해 냈다. 밤에 집에 들어와서는 탁 쓰러져 잤으며 자는 도중에도 통증으로 인해 신음소리를 냈다고…. 아침에 일어나서도 “으~”하는 신음과 함께 작업실로 나가는 생활을 반복했다고 했다.
그는 예술가에서 가난은 숙명이라고 했다. 성직자와 같은 직업으로, 내놓고 희생해야 얻을 수 있는 직업이라고 했다. 대중에게 정신적 양식을 주려면 고생과 고난을 딛고 감각이 없어질 때까지 훈련과정을 거쳐야 한다는 것이다. 다 누리고 ‘성불’할 수 없다는 것이 그의 생각이다. 참아내지 못하고 동굴 밖을 나가면 사람이 되지 못하는 곰으로 남는 격이라 했다. 그래서 그는 고난을 관통하여 타성에 젖지 않고 습관적인 것을 뛰어넘어 관조할 수 힘을 지닌 대가들을 존경한다고 했다.
프랑스 화단은 물론 중국, 일본 화단에서까지 주목 받는 그는 이제 유망 작가로 떠올랐다. 그에게 물질적 어려움은 더 이상 없을 가능성이 높다. 하지만 그는 초심을 잃지 않겠다고 분명히 했다. 정선과 모네의 그림을 보고 감동 받아 눈물을 흘리며 꼭 좋은 작품을 남기겠다는 의지를 굳혔던 장면이 그에겐 아직 생생하다. 
“아직 갈 길이 멀다고 생각합니다. 특별한 계획 같은 것은 없습니다. 그저 지금까지 해온 것처럼 해나갈 것입니다. 주변에서 주시는 관심과 격려에 감사하고, 초심을 잃지 않고 꾸준히 나아가겠습니다. 항상 근신하고, 겸손하게, 열심히 작업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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