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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동 준비 끝~ 김장 하던 날
월동 준비 끝~ 김장 하던 날
  • 유화미
  • 승인 2016.12.27 11:33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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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집 텃밭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월동 준비 문화인 김장. 옛날엔 겨울이 오면 푸릇한 채소를 보기 힘들어  겨울이 오기 전에 미리 김장을 담가 두어야 길고 긴 겨울을 무사히 날 수 있었다. 김치를 담가 이웃끼리 서로 나눠 먹는 우리의 김장 문화가 지난 2013년 유네스코 인류무형문화유산에 등재되었다. 텃밭에서 집적 채소를 재배해 김장을 하고, 이웃과 나눠먹던 옛 방식과 감성을 그대로 간직한 김장 현장에 찾아가 보았다.

글·사진 유화미 기자

김장철을 앞두면 바구니 물가는 하늘 높은 줄 모르고 치솟는다. 지난 여름, 기록적인 폭염 때문인지 올해는 채소 값이 유독 비싸게 느껴진다. 한국농수산식품유통공사가 모니터링 한 결과에 따르면 김장재료 구입 비용(4인 가족, 배추 20포기)은 전통시장에서 구입할 경우 24만8천원이며 대형유통업체는 26만5천원으로 조사되었다. 서민들에게는 꽤 부담스러운 가격이다. 조금 수고스럽지만 작은 텃밭에서 직접 채소를 재배해 김장을 준비하면 비용을 훨씬 아낄 수 있다.

텃밭에서 김장 준비하기

인천 외곽 지역에 위치한 마을에서 작은 텃밭을 소일거리 삼아 가꾸고 있는 이경숙 씨는 전통적인 김장 방법을 고수하고 있다. 여름에 미리 고추를 수확해 태양 볕에 잘 말려두었다가 고춧가루를 만들어 놓고 가을이 오기 전 미리 텃밭에 김장 작물을 든든히 심어 두었다. 가장 먼저 해야 할 것은 김장의 하이라이트인 배추 심기다. 가을배추는 보통 말복이 지난 8월 말부터 9월 중순 사이에 심어야 한다. 배추는 보통 심은 후 70일 이후에 수확하게 되는데 이 때 심었다면 김장철에 맞춰 11월 중순 즈음 수확할 수 있어 안성맞춤이다.
이경숙 씨는 배추는 물론 고추와 파, 그리고 무, 순무, 알타리무 등 김장에 필요한 모든 작물을 직접 재배해 수확했다. 시중에서 구매하는 것보다 모양과 크기는 훨씬 떨어지지만 맛과 영양만큼은 뒤처지지 않는다. 유기농으로 재배해서 여기저기 구멍 난 배춧잎과 배추벌레가 더러 눈에 띄지만 이런 것이 바로 텃밭을 일구는 묘미가 아닐까.

온 동네가 함께 준비하는 우리 집 김장

또한 이경숙 씨는 요 며칠간 김장 준비에 눈코뜰 새 없이 바빴다. 미리 쪽파를 수확해 하나하나 다듬어 두어야 했기 때문이다. 평소 요리 솜씨가 좋아 여기저기 달라는 이가 많아 해야 할 김장의 양이 꽤 많았기 때문에 쪽파를 수확해 다듬는 데에만 꼬박 반나절이 걸렸다. 그 다음 날에는 인천에 있는 연안부두에 들려 김장에 필요한 새우젓과 생새우, 까나리 액젓을 구입했다. 가까운 마트에서 구입하는 것보다 훨씬 신선하고 저렴해 김장을 하기 전에 꼭 이곳에 들러 재료를 구입한다고.
재료가 좋아야 제대로 된 김치 맛을 낼 수 있어 일년 동안 풍성한 식탁을 누릴 수가 있단다. 추가적으로 제철을 맞아 싱싱한 굴도 넉넉히 구입했다. 김장의 별미인 수육에 굴이 들어간 배춧속 양념이 빠지면 섭섭하기 때문이다. 그 다음날에는 온 가족이 텃밭으로 출동했다. 그동안 지극정성으로 키워둔 배추와 무, 알타리무 등을 수확하기 위해서다. 한여름 지나치게 뜨거웠던 햇빛 때문인지 생각보다 배추와 무의 크기가 그리 크지 않았다.
“이럼 어떻고 또 저럼 어떤가요. 어차피 우리 가족이 먹을 것이니 있는 대로 먹고 아님 말죠. ”
작은 텃밭을 일구기 위해 가장 필요한 자세가 바로 욕심을 버리는 것이라고 말한다. 기술과 경험이 부족한 초보 농부는 베테랑 농부와 같은 결과물을 얻을 수 없는 것이 당연하기 때문에 완벽함을 추구하지 않으면 누구나 쉽게 만족스런 수확물을 얻을 수 있다. 4인 가족이 끙끙 대며 밭일을 하고 있으니 삼삼오오 동네 사람들이 모여 들기 시작했다. 일손이 많으니 생각보다 빨리 수확을 마칠 수 있었다.
“아니, 무가 이게 뭐야. 뭘 키운 거야. 우리 무 좀 줄 테니 가져가요.”
손에 쏙 들어오는 알타리무 같은 무를 본 한 이웃이 선뜻 자신이 키운 무를 내놓았다. 하마터면 무가 모자라서 살 뻔했는데 다행이라고 웃어 보이는 이경숙 씨. 유네스코에 우리의 김장문화가 등재될 수 있었던 이유가 오직 한국에서만 찾아 볼 수 있는 이런 ‘이웃의 정’ 때문이었으리라.

금강산도 식후경

김장 준비는 여기서 끝이 아니다. 배추가 소금에 절여지기 까지 시간이 꽤 걸리기 때문에 하루 전날 미리 손질해 소금을 뿌려 둔다. 너무 오래 절여두면 먹을 수 없을 정도로 짜지기 때문에 시간에 맞춰 건져내는 것도 중요하다. 손바닥만 해서 걱정이라던 무도 깨끗이 손질한 후 채칼을 이용해 채를 썰어두어야 한다.
본격적인 배춧속 넣기가 시작되자 앞치마와 고무장갑을 낀 동에 아낙들이 하나둘 모여 들기 시작했다. 도와주러 온 사람들을 위해 한 쪽에선 삼겹살을 굽기 시작했다. 연한 배춧잎에 신선한 굴을 넣은 배춧속 양념을 올리고 갓 구운 삼겹살 한 점을 싸서 먹으니 그간의 고생이 눈 녹듯이 녹아내린다. 고기 냄새를 맡은 지나가던 동네 사람이 하나둘 씩 모이기 시작하니 어느 새 동네잔치가 되어버렸다. 산같이 쌓여 있던 배추와 김장 매트에 가득 담겨 있던 배춧속 양념이 ‘김장 품앗이’ 덕분에 어느새 김치가 되어 김치 통에 차곡차곡 쌓여갔다.
김장 하는 날에만 먹을 수 있는 음식은 또 있다. 뜨끈한 국물 맛이 일품인 ‘속대 찌개’가 바로 그것이다. 절여진 배추와 김치 속 양념을 버무려 찌개로 끓여낸 것인데 김치찌개와는 또 다른 맛을 선사한다. 힘이 들긴 하지만 맛있는 음식과 따뜻한 이웃의 정을 느낄 수 있는 우리의 소중한 김장 문화다.

김장 품앗이를 기억하시나요?

꼭 비용 때문이 아니더라도 김장을 직접 담가야 할 이유는 많다. 더불어 살아가는 재미를 느낄 수 있다는 점 때문이다. 어떤 임산부가 입덧으로 고생해 아무것도 먹지 못하고 있었는데 김장 하는 날에만 먹을 수 있는 잘 절여진 배추 속대에 배춧속 양념을 싸서 먹는 그 음식이 유독 먹고 싶었다고 한다. 그래서 온 동네를 돌아다니며 속대를 얻어먹어 무사히 건강한 아이를 출산했다는 일화도 있다. 이처럼 우리는 김장철이 되면 이웃이나 친지의 집을 돌아다니며 서로 돕는 ‘김장 품앗이’가 성행한다. 김장철이 다가오면 날짜가 중복되지 않게 김장 하는 날을 서로 의논하여 번갈아 정하고 앞치마와 고무장갑 등 나름의 연장을 챙겨 이웃집을 방문한다. 김장이 끝나 집으로 돌아가는 길엔 김치를 한 봉지씩 들려 보내는데 그래서인지 온 동네의 김치 맛이 비슷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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