UPDATED. 2024-04-20 19:35 (토)
 실시간뉴스
손지애 전 CNN 특파원이 만난 미국 언론계의 대모 지니박
손지애 전 CNN 특파원이 만난 미국 언론계의 대모 지니박
  • 송혜란
  • 승인 2017.01.04 12:03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세계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미국 시사지 <Time> 조사부 기자를 시작으로 처음 언론계에 발을 디딘 지니박(Jeannie Park). 미 여성지 <Insyle>, <People>, <Entertainment Weekly>에서도 활발한 활동을 이어 온 그녀는 아시안계 여성 사상 최초로 최고위 자리에 오르는 등 선구자의 길을 걸었다. 제니스민, 주주장, 수지박 등 수많은 한국 여성이 세계를 무대로 능력을 펼칠 수 있었던 데는 그녀의 멘토링이 지대한 역할을 했다는 평가가 나온다. 재미 한국인 차세대 리더 네트워크인 넷캘의 행사에 참여하기 위해 한국을 찾은 그녀를 손지애 전 CNN 특파원이 인터뷰했다.

진행 송혜란 기자 | 사진 양우영 기자

‘아태계를 빛낸 언론인’, ‘꿈과 희망의 전도사’, ‘미국 언론계의 대모!’ 지니박에게 따라붙는 수식어는 한둘이 아니다. 재미 교포이자 이민 1세대의 자녀였던 그녀는 하버드대 생화학과를 우수한 성적으로 졸업했다. 지금으로부터 어언 30년 전 전쟁터와 다름없는 언론계에서 여기자로 산다는 것은 분명 녹록치 않은 일이었을 터. 그럼에도 당당히 유리천장을 깨고 미국 인물지 <People>의 부국장 자리까지 꿰찬 그녀의 성공담은 현대 워킹 맘의 귀감이 되기 충분하다. 아들 역시 하버드대에 보낸 그녀는 자녀 교육 철학은 물론, 아시아인 아메리칸 저널리스트 협회 창립자로서 후배 저널리스트들에게 보내는 조언도 아끼지 않았다. 미국 대선 결과에 대한 그의 견해 또한 궁금증을 자아냈는데…. 트럼프 대통령 당선인은 <People> 여기자인 나타샤 스토이노프를 성추행해 논란이 된 바 있다. 지니박 전 <People> 부국장과 손지애 전 CNN 특파원의 대담 내용을 일문일답으로 정리해 보았다.

손지애_1985년 세계적으로 저명한 미국 시사지 <Time> 조사부 기자를 시작으로 여성 패션 잡지 <Instyle>, <Entertainment Weekly>를 거쳐 주간지 <People> 부국장 자리까지 오르셨습니다. 사실 그 당시에는 한인 여성이 미국 저널리스트로서 활동하고 있는 롤모델도 없었을 때인데요. 처음 기자를 꿈꾸게 된 계기가 어떻게 되는지요?

지니박_저는 하버드대에서 생화학을 전공했어요. 부모님이 이민 1세대였기 때문에 자녀에 대한 기대치가 높을 때였지요. 아버지도 과학자셨고…. 이민 1세대 자녀 중에는 고학력자가 많아요. 그때만 해도 좋은 대학을 가는 것이 목표였던지라 제가 왜 생화학을 공부하고 싶은지에 대한 고민이 별로 없었어요. 보통 의대에 가기 위해 생화학과를 들어가는 경우가 많아 실제 의대 대학원 시험도 쳐 보았고, 한번은 변호사가 돼 볼까 싶어 로스쿨 시험도 봤어요. 제가 정말 변호사가 될 것이란 기대감에 들뜬 부모님이 서류가방을 사주셨던 기억이 나네요.(웃음) 그렇게 여기저기 원서를 쓰다가 제가 글 쓰는 일을 참 좋아한다는 사실을 알게 됐어요. 자기소개서를 많이 썼지만, 저에 대한 글보다는 남의 이야기를 하는 게 또 더 좋더라고요. 대학 시절 부모님이 일본에 가 계셨을 때 동생들과 함께 한국에 와 여름방학을 보낼 기회가 있었습니다. 1984년이었던 것 같아요. 연세대 어학원을 다니며 잠시나마 <코리아 헤럴드>에 들어가 기사도 써 보았어요. 사실 그곳이 언론인으로서의 제 첫 직장이었고, 그때부터 조금씩 저널리스트의 꿈을 키워 나갔지요. 물론 미국에 돌아갔을 때를 돌이켜 보니 언론계에 저널리스트라는 큰 모델이 없었어요. 먼저 앞서간 선배가 있었다면 좀 더 빨리 저널리스트라는 직업을 알게 됐을 텐데 아쉬움도 많습니다. 제가 평생 저널리스트로 열심히 활동했던 것도 기자를 꿈꾸는 아시안계 여성에게 롤모델이 되고자 했던 바람이 있었기 때문이에요.

손지애_오늘날 지니박이라는 멘토가 있었기에 제니스민, 주주장, 수지박 등 많은 한국 여성들이 세계적인 미디어 및 엔터테인먼트에서 활약할 수 있었다고 평가됩니다. 아시아 여성으로서 미국의 가장 영향력 있는 잡지에서 최고위 임무를 수행하며 선구자의 길을 걷는 일은 분명 녹록치 않았을 거라고 봅니다. 어떤 점이 가장 힘들었는지요?

_단연 일과 가정의 양립이 가장 큰 과제였지요. 여느 엄마들처럼 저 역시 자녀들이 인생을 사는 데 적극적인 역할을 하고 싶은 욕심이 컸어요. 항상 일과 가정의 양립에서 많은 어려움을 겪었지요. 여성지에 있을 때는 주로 여직원들이 많아 평일에는 일에만 몰두하고 주말에는 전적으로 아이들과 함께 시간을 보내면 됐을 뿐 다행히 큰 어려움은 없었습니다. 물론 가정 도우미가 있어 많은 도움을 받았고요. 일과 가정 어느 곳에서든 최선을 다했어요.
 
손지애_과거 <Time> 기자로 일했을 때는 어땠나요? 여기자보다 남자 기자들이 많은 잡지사는 여성지와 또 많이 달랐을 것 같은데요.

지니박_지금은 많이 서양화됐지만 1980, 90년대 미국 사내 문화도 한국과 많이 비슷했어요. 하루 일과가 끝나면 늘 회식을 즐겼지요. 언론계는 특히 낮에도 사무실 내에서 서로 술 한잔씩 나누고 하는 분위기가 있었잖아요. 남자들은 다 함께 어울려 술도 마시며 서로 네트워킹을 쌓아 갔는데, 사실 저는 그러고 싶지 않았어요. 집에서 늘 아이가 저를 기다리고 있었기에 술자리에 참석할 수 없었습니다. 그렇다고 네트워킹을 포기할 수는 없었으므로 저만의 방식을 찾아 실행에 옮겼어요. 한 달에 한 번 점심때마다 <Time>에서 일하는 아시아인들을 모아 정기 모임을 했습니다. 그때는 제가 지위가 좀 있었지만 직위 막론하고 모두 만나 각 부서에서는 어떤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부터 사적인 고민까지 모두 공유하며 친밀감을 쌓아 갔어요. 개중에는 저 같은 워킹 맘들도 있었고요. 그때 만났던 사람들이 현 아시아인 아메리칸 저널리스트 협회 창립 멤버가 되었습니다.
 
손지애_다방면으로 많은 노력이 있었던 것 같습니다. 그중에서도 지니박이 미국 언론계의 대모가 될 수 있었던 가장 큰 성공 요인은 어디에 있다고 보나요?

지니박_기본적으로 저는 사람을 워낙 좋아해서 사람과 관련된 활동을 즐깁니다. 말에 어폐가 있을지는 모르나 사실 기자가 사람의 문제를 다루는 것을 좋아하지는 않는 것 같아요. 늘 스토리를 찾아 기사로 쓰는 게 기자 본연의 업무이지요. 그러나 신문사나 잡지사도 하나의 조직, 회사잖아요. 저는 항상 어느 기자에게 어떤 기사를 주고, 이 기자를 어떤 곳에 발령을 내야 각자 최고의 능력을 발휘할 수 있을까를 고민했어요. 보통 글 쓰는 사람들은 숫자를 다루는 일에 두려움이 많지만, 저는 생화학을 전공했기 때문에 숫자 다루는 일에 익숙해 사내 예산 배분 문제에도 관여했어요. 쉽게 말해 매니지먼트, 행정적인 일에 능했지요. 이는 사람을 다루는 일의 연장선에 있다고 봐요. 제가 부국장으로 있었을 때도 조직을 위해 어느 기자를 어떻게 활용할지 결정하는 데 중요한 몫을 했습니다. 물론 행정 일을 한다고 편집 업무에서 동떨어지고 싶지 않아 기자직도 손에서 놓지 않았고요. 제게 편집력과 더불어 행정 능력이 모두 있었다는 게 큰 장점으로 작용했다고 생각합니다.

손지애_어떻게 보면 지니박이 했던 일들이 회사 조직 내에서의 중간 채널링이라고도 볼 수 있는데요. 이민 1세대 자녀들이 미국 사회와 가정 사이에서 해야 했던 역할도 비슷했다고 알고 있어요. 
지니박_부모님이 영어를 잘하셨지만 당시 교포 2세들이 부모, 미국 사회와의 중간 다리 역할을 많이 했어요. 특히 저는 딸이 셋인 집안의 장녀였거든요. 이를테면 동생이 몸이 아파 학교에 결석계를 써야 할 때도 부모님이 아니라 제가 직접 쓰곤 했지요. 미국 사회에서는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지에 대한 정보 전달을 많이 하며 동생들도 돌봤습니다. 어릴 때부터 자연스럽게 조직적인 일의 훈련을 하게 됐던 것 같아요. 그게 첫 단추였던 셈이지요.

손지애_지니박의 아들도 하버드에 입학했지요? 자녀교육법에 대해 궁금해할 독자들도 많을 듯합니다.

지니박_저희 부모님이 제게도 항상 하셨던 말씀인데요. 저 또한 아이들에게 노력을 강조했어요. 무슨 일이든 시작은 늘 어렵고 재미가 없을지 모르지만, 욕심을 가지고 무언가를 배우려고 할 때 그것을 더 잘하기 위해서는 많은 노력이 필요합니다. 그래야지만 훗날 큰 보람도 느낄 수 있어요. 인생에도 그런 측면이 많지요. 첫 직장을 들어가도 사회생활 초반은 적응기이기 때문에 당연히 어려울 수밖에 없어요. 앞으로 어떻게 해야 할지 결정을 내리기도 처음은 늘 어려운 법이지요. 그러나 매사 자신의 능력을 배양하고자 노력한다면 나중에는 좀 더 수월해집니다. 노력이 최고다! 그런 교훈을 많이 줬어요. 특히 딸에게는 더욱 자주 하는 말인데요. 시대마다 제각기 껴안고 있는 문제가 있게 마련이지만, 지금 저희 딸이 사는 세상은 과거와 달리 훨씬 더 자신의 운명을 스스로 관리해 나갈 기회가 많아졌잖아요. 예전에 우리가 생존을 위해 무엇이든 하려면 기회부터 찾아 나서야 했다면 확실히 지금 우리 딸에게는 이미 많은 기회가 주어졌으니 본인이 노력만 한다면 얼마든지 자신의 꿈을 이룰 수 있다고 봐요.
 
손지애_한국에도 세계적인 저널리스트, 리더를 꿈꾸는 지니박 딸 또래의 여성들이 많습니다. 아시아인 아메리칸 저널리스트 협회를 창설해 후배 저널리스트 양성에도 힘쓰신 만큼 기자 지망생에게 조언 한 말씀 부탁드립니다.

지니박_저희 때만 해도 기자의 역할은 단순했는데요. 요즘은 기자에게 글 쓰는 능력뿐 아니라 사진 스킬, 컴퓨팅, 소셜 미디어 능력까지 많은 부분을 요구하는 것 같아요. 기자가 되는 과정 자체가 우리 때보다 많이 어려워졌지요. 그렇다고 기자가 돈을 많이 버는 직업도 아니고…. 그러나 경제적인 혜택을 넘어선 무언가 더 깊고 큰 의미는 분명 존재합니다. 만약 미국 대선을 취재하기 위해 지금 그 현장에 있다는 것만으로도 굉장히 익사이팅한 일이니까요. 그런 보람을 느낄 수 있는 사람이라면 기자로서 갖춰야 할 소양은 충분합니다. 어느 정도의 각오가 필요해요.
 
손지애_안 그래도 요즘 트럼프가 모두의 예상을 깨고 미국 대선에서 승리해 전 세계가 떠들썩한데요. 최근 <People>에서 트럼프를 옹호하는 커버스토리를 다루어 곤욕을 치르고 있는 것으로 압니다. 더군다나 트럼프가 <People>의 여기자를 성추행한 사실을 보도하면서 그를 비판한 게 엊그제 일인지라 미국 대중들의 반발이 더 거센 듯합니다.

지니박_사실 미국 대선이 있을 때부터 한국에 있었던 터라 선거 이후 <People>의 동향은 잘 못 살폈는데요. 나타샤 스토이노프라는 여기자가 지난 2005년 트럼프, 멜라니아의 결혼 1주년 인터뷰를 하러 갔다가 강제로 키스를 당했다고 폭로했을 때 바로 옆에서 지켜본 저에게 트럼프는 대통령 후보가 될 사람이 아니었어요. TV에 나오는 스타에 불과했지요. 나타샤는 그에게 성희롱을 당한 후에도 이를 외부에 알리지 않았습니다. 구설에 휘말리는 일을 원치 않았기 때문이라고 믿어요. 한창 잘나가던 그에게 성희롱을 당한 여기자가 나타샤뿐만도 아니었을 거예요. 결국 나탸사가 성희롱 사실을 폭로했을 때 트럼프 지지자들에게 공격도 참 많이 당했습니다. 그가 성희롱 사실을 일체 부정하며 나타샤가 그 정도로 예쁘지 않았다는 말까지 서슴지 않았으니까요. 그런 그가 대통령이 되리라고는 미국 저널리스트 대부분도 전혀 예상치 못했던 일이에요. 그야말로 미국 언론계는 쇼크 상태였을 겁니다. 그러나 언제까지 쇼크 상태에 머무를 수는 없고, 이제는 우리 앞에 와 있는 도전과 과제가 무엇인지 깊이 사고해야 할 시기라고 봐요. 제가 왈가왈부할 일은 아니지만, 새로운 세상을 대비하는 차원에서 <People>도 많은 고심을 했을 거라고 봅니다. 잡지사로서 대통령이 된 그를 아예 안 다룰 수는 없지 않을까요. 어떠한 과정이 있었는지 저도 잘 모르지만 쉽지 않은 위치에 가 있는 것만은 확실한 것 같아요. 그럼에도 어떤 측면에서는 이번 선거 결과가 여성계에 하나의 경종을 울리지 않았나 싶습니다. 미국 사회가 한 번은 꼭 겪어야 할 과정을 앞으로 어떻게 대처해 갈지, 이왕이면 미국 여성계가 한 차례 더 도약할 수 있는 계기가 되기를 소망해 봅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