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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아 오빠 권순훤, 피아니스트 아빠가 아들을 키우는 법
보아 오빠 권순훤, 피아니스트 아빠가 아들을 키우는 법
  • 송혜란
  • 승인 2017.01.23 08:2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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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집 음악교육

가수 보아의 집안은 음악가 집안으로 유명하다. 큰오빠 권순훤은 서울대 음대를 나와 피아니스트가 되었고, 둘째 오빠 권순욱은 뮤직비디오 프로덕션 메타올로지 대표로 활약하고 있다. 특히 권순훤은 굳이 보아 오빠라는 타이틀이 필요 없을 만큼 실력 있는 음악인으로 인정받고 있다. 단순히 피아노 연주를 선보이기보다 공연 중간중간 클래식의 재미있는 해설을 곁들이는 이지 클래식 콘서트의 포문을 연 주인공이다.

서른 살에 덜컥 아빠가 된 그는 어느덧 클래식 태교 이야기로 주목받고 있는데…. 피아니스트 아빠가 아들을 키우는 법까지! 음악가의 특별한 자녀 교육법을 엿보았다.

취재 송혜란 기자 | 사진 양우영 기자

“축하합니다. 임신입니다.”
결혼도 하기 전에 산부인과 의사 선생님에게 들은 여자 친구의 임신 소식은 부모 선고나 다름없었다는 권순훤. 아이가 찾아온 걸 처음 알게 된 날 그가 들었다는 헨델의 <수상음악>을 감상하며 청담동에 위치한 네오무지카를 찾았다. 헨델이 인생의 갈림길에서 새로운 각오를 되새기며 작곡한 <수상음악>은 진정한 행복감과 동시에 무거운 책임감을 느꼈던 그에게 딱 필요했던 음악인 듯했다.

네오무지카에서 만난 권순훤 대표는 저서 <아가야, 지금 이 음악 듣고 있니?> 출간으로 분주해 보였다. 인터뷰를 위해 만사 제쳐 놓은 권 대표. 그는 아들이 벌써 초등학교에 입학했다는 이야기로 운을 뗐다.

“이름이 권성우인데요. 올해 초등학교 입학식 때 학생 대표로 선서도 했어요. 아주 건강하게 잘 커 줬어요. 초음파 검사하며 들은 아이의 콩닥콩닥 심장 소리에 가슴 설레고, 출산 때 직접 탯줄을 자르며 펑펑 울었던 게 엊그제 같은데 시간 참 빠르죠.(웃음) 어느 날 아이가 뒤집기를 하고 두 발로 서는가 싶더니 이제는 슈퍼도 혼자 가요. 조금씩 커 가는 아이를 볼 때의 기쁨은 이루 말할 수 없습니다. 아, 아빠가 된다는 게 바로 이런 거구나 싶어요.”

물론 이러한 행복을 만끽할 수 있게 된 데는 워킹 대디인 그의 숨은 노력이 있었다. 그는 서른 살에 덜컥 아빠가 된 순간을 회상했다.

“사실 여자 친구에게 임신했다는 이야기를 들었을 때 정말 큰일 났다 싶었어요. 아직 결혼도 하지 않았거니와 미래에 대한 계획도 확실치 않던 시절이었거든요. 그래도 남자라고 자연스럽게 나온 첫마디가 ‘빨리 좋은 거 먹으러 가자!’였어요. 그리고 음악인이라는 게 다람쥐 쳇바퀴와 같아서 멈추면 죽는 직업인지라 가장으로서 책임을 다하기 위해 정말 열심히 일했습니다. 타고 싶었던 차, 배우고 싶었던 운동도 아이를 위해 일단 미뤄 두고요.”

그러나 육아는 산 넘어 산이라고 했던가. 아빠가 되는 길은 결코 녹록치 않았다. 최고의 고비는 아이가 두 돌쯤 됐을 때 찾아왔다. 시도 때도 없이 울어대느라 밥 한 끼를 먹어도 입으로 들어가는지 코로 들어가는지 전혀 알 수 없었던 나날들…. 또 아이에게 밥을 먹이려면 엄청난 인내심이 필요했다. 간신히 다 먹이고도 잘 토닥여서 재워야 하고, 잠들었나 싶었는데 어느새 다시 깬 아이로 인해 그는 ‘엄마 배 속으로 다시 들어가서 일주일만 있다가 나왔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간절할 때도 있었다고 한다.

“더 솔직히 말하면 아이를 침대에 던져 버리고 싶었던 적도 있었어요. 물론 실제로 그런 적은 없지만요. 그만큼 힘들었다는 얘기예요.”
 

내 아이를 브람스처럼

아이를 어떻게 키울 것인가? 요즘 부모들의 최대 고민사가 아닐 수 없다. 권 대표도 여느 부모와 다를 바 없다. 그 역시 사교육에 올인하는 사회 분위기에서 자유롭지 못했다고 고백했다. 아빠들 모임에서 자식만 아니었으면 삶의 퀄리티가 훨씬 높아졌을 것이라는 농담이 빠지지 않고 등장한다고. 문제는 아이들이 꼭 부모의 바람대로 자라지도 않는다는 점이다.

“성우가 갓난아이일 때 아이 엄마가 명품 유모차를 고집했어요. 할 수 없이 해 주고 싶다는 대로 다 해 줬는데, 성우는 어떤 유모차를 탔는지 기억을 못 하더라고요. 하루가 다르게 크는 아이에게 한철밖에 못 입을 비싼 옷만 사 준 것도 후회돼요. 제 친한 친구도 미국에서 태어나 네 살까지 살다가 귀국했는데, 영어요? 저보다 조금 잘합니다. 부모로선 아이에게 엄청난 비용과 시간을 투자한 것인데, 그야말로 사교육의 함정이자 배신인 셈이지요.”

이에 그는 오늘날 사교육과는 전혀 무관한 자수성가형 작곡가 브람스를 롤 모델로 삼아 아이를 키우기로 결심했다. 브람스는 콘트라베이스 주자인 아버지에게 음악의 기초를 배워 14살 때부터 작곡을 시작했는데, 집안 형편이 어려워 어린 시절부터 연주로 돈벌이를 해야 했다. 다행히 그는 1853년 인생의 은인을 만났다. 로베르트 알렉산더 슈만의 이야기다. 당대 유명한 작곡가였던 슈만은 한눈에 브람스의 재능을 알아봤고, 물심양면 지원했다. 여기에 브람스 본인의 지독한 노력이 보태져 훗날 그는 바흐, 베토벤과 어깨를 나란히 하는 거장으로 성장했다. 슈만의 도움이 있었던 것만큼 자신도 안토닌 드보르자크라는 불세출의 작곡가도 발굴해 냈다.

“브람스의 인생을 보며 저도 성우를 자립심 강한 사람으로 키워 보기로 했어요.”

자식을 키우다 보면 새삼 부모의 마음을 이해하게 된다고 했던가. 사실 그는 너무 이기적이다 싶을 정도로 자신이 하고 싶은 일만 하며 산 아버지를 어릴 때 굉장히 미워했다고 털어놓았다. 국회의원이 되겠다며 선거에도 내리 두 번이나 출마하느라 집안 사정이 매우 어려워졌기 때문이다. 지금은 그게 더 멋있는 아빠의 모습이라고 인정하는 권 대표.

그는 사회생활을 하면서 극과 극의 경우를 봤다고 한다. 착실한 회사원인 아버지 밑에서 별 어려움 없이 자란 한 지인이 최근에 아버지가 몇 억 원짜리 집을 사줬는데, 세금을 안 내줘서 원망스럽다고 했단다. 받기만 하는 게 당연한 줄 아는 것이다.

“저희 부모님은 자식에게 올인 안 하고 스스로 인생을 즐기며 사셨어요. 덕분에 저뿐 아니라 보아나 권욱이도 자립심 강한 사람으로 컸고요. 솔직히 아빠라는 존재가 매달 월급봉투만 갖다 주고 주말에 피곤해서 잠만 자며 자기 인생이 없다면, 누가 아빠가 되고 싶겠어요? 아들을 어느 정도 키운 후 저도 그동안 미뤄뒀던 제 취미, 골프, 스포츠카를 즐기고 있어요. 가끔 성우랑 여행도 다니고요. 성우 또한 어릴 때부터 제가 즐겁게 사는 모습을 보며 아빠가 된다는 것에 더욱 쉽게 접근해 갈 수 있었으면 해요.”
 

임신부를 위한 클래식 음악

다행히 천생 부지런한 성격 덕에 시간을 효율적으로 쓰며 워킹 대디로서 어느 정도 안정감을 되찾은 그는 그동안 아들을 키우며 겪은 소소한 에피소드도 입가에 미소를 띠며 이야기할 수 있게 되었다. 가끔은 이랬으면 더 좋았을 걸, 하는 아쉬움도 있다는 그는 그중 하나가 클래식 태교라고 한다. 세상에서 가장 쉬운 태교 역시 수백 년 동안 사랑받아 온 클래식 음악 감상이다. 귀만 열어 놓으면 저절로 마음이 안정되기 때문이다. 동서양을 막론하고 무려 200~300년 동안 생명력을 유지했다는 것은 그만한 힘이 있다는 증거일 터.

그러나 모든 클래식 음악이 임산부에게 좋은 것은 아니다. 그는 음악에도 ‘T.P.O’가 있다고 강조했다. 이를테면 임신 우울증으로 기분이 가라앉았을 때는 베토벤의 <피아노 소나타 7번> 2악장을 듣고, 입덧으로 괴로울 때는 스트라빈스키의 <페트루슈카>가 제격이다.

“스트라빈스키의 <페트루슈카>는 실제 제 친구가 입덧에 효과를 본 음악인데요. 수많은 패시지와 쿵쾅거리는 소리에 몰두하다 보니 입덧의 고통을 잠시나마 잊을 수 있었다고 합니다.”

불면증에 시달릴 때는 바흐의 <골드베르크 변주곡>이 안성맞춤이다.

“<골드베르크 변주곡>의 경우 많은 자녀를 키우느라 늘 적자에 시달리던 바흐가 심한 신경증과 불면증으로 고생하던 카이저링크 백작에게 바쳐 두둑한 작곡료를 받아 낸 곡이에요. 아리아와 30개가 넘는 변주로 구성된 50여 분의 대작인데, 카이저링크 백작이 이 곡을 듣다가 잠들었을 정도로 불면증에 효험이 있습니다.”

이 외에도 그는 친정엄마가 그리울 때는 모차르트의 <피아노 변주곡 K.265>을, 출산 과정이 두려워질 때는 앤더슨의 <워털루 전투>를 추천했다.
 

경제 교육도 함께

스무 살이 되면서 아르바이트로 등록금과 생활비를 직접 마련한 그는 대학생 무렵부터 가계부를 쓰고 있다.

“대학교 4년 동안 피아노 레슨 강사를 하며 무려 1억 원을 벌었어요. 문제는 써 버린 돈이 9,600만 원이었다는 거죠. 학비는 장학금으로 해결하고, 집세 내며 옷도 사 입고, 술도 먹느라 그랬지만, 절대 허투루는 안 썼습니다. 100원 단위까지 가계부를 적었거든요. 그게 다 자립심을 키우는 데 도움이 됐던 것 같아요.”

경제관념 투철한 아버지 밑에서 자라는 아들은 어떨까?

“저는 벌써 아들한테 용돈을 줘요. IPTV에서 애니메이션 한 편 보면 500원 정도 드는데, 네다섯 살까지 그냥 보게 한 탓에 한 달에 몇 만원씩 나오더라고요. 그래서 용돈을 주며 딱 그만큼만 쓰게 했더니 진짜 그 한도 안에서만 보더군요.(웃음) 가장 뿌듯한 건 성우가 친구랑 마트에 가서 맘에 드는 장난감을 골랐는데, 수중에 있는 돈으로는 못 사겠던지 용돈을 모아서 나중에 사야겠다며 돌아서더랍니다. 갖고 싶은 장난감 다 사 주면, 애들은 고마운 줄 모르고 당연한 줄 알겠죠. 내가 잘 키우고 있구나, 흐뭇했습니다.”

앞으로도 아들이 자립심 강한 아이로 자랐으면 좋겠다는 권순훤 대표. 늘 ‘너희 뭐 해라’라는 말보다 ‘너희 뭐 하고 싶니?’라는 질문을 많이 했던 부모님처럼 자신도 아들에게 그런 아빠가 되고 싶다고 한다. 그 답이 자신은 피아니스트, 둘째 동생은 뮤직비디오 감독, 막내 동생은 가수였듯 아들 성우 역시 자신만의 답을 곧 찾을 수 있지 않을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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