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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주은 건국대 교수의 그림 해설
이주은 건국대 교수의 그림 해설
  • 송혜란
  • 승인 2017.02.13 11:4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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빅토리아 시대 명화로 보는 여성사(史)
 

국내에 처음으로 선보인 미술 마음치유 에세이 <그림에, 마음을 놓다>를 통해 10만 독자들의 사랑을 받아온 베스트셀러 작가 이주은 교수. 프랑스 인상주의에 매료되었던 사람들의 관심이 점차 영국 라파엘전파 그림으로 옮겨가자, 그녀는 10년 동안 켜 묻어 두었던 자신의 전문 분야 ‘19세기 영국 빅토리아 시대 미술’에 대한 이야기를 꺼내놓았다. 아름다운 명화에는 비밀이 있다고 했던가. 당 시대 그림에서 결혼과 성이라는 기준으로 억압받은 처절한 여성사를 읽어낸 그녀는 “우리는 혹시 또 다른 빅토리아인들이 아닐까?”라고 자문했다.

취재 송혜란 기자 사진 양우영 기자

건국대학교 컨텐츠학과 연구실에서 만난 이주은 교수는 지난해 출간한 저서 <아름다운 명화에는 비밀이 있다>에서 보여준 문체와 화법이 크게 다르지 않았다. 그림을 읽어주던 청아한 목소리도 상당히 매력 있는데….
제일 먼저 그녀가 빅토리아 시대 미술을 지금, 선보이게 된 이유에 대해 물었다.
“1인 가구가 해마다 증가하고, 꼭 결혼을 해야 하나, 고민도 깊어지는 시대가 왔어요. 결혼이라는 것이 모든 사람에게 해당되는 보편적인 제도이던 때는 분명히 지나간 것 같고요. 그런 만큼 가족 단위보다 개인 단위로 삶의 환경이나 사고방식도 바뀌어야 할 텐데, 아직은 쉽지 않아 보입니다. 결혼이 고정관념이 되었기 때문이죠. 이처럼 인간을 결혼과 가족이라는 틀 안에서 바라보기 시작한 때가 19세기 영국 빅토리아 시대였어요.”
즉, 남자에게는 아버지로서 돈 버는 역할이 강조되고, 여자에게는 어머니로서 가족을 돌보는 임무가 덧씌워진 것이 바로 이 시대부터이며, 아동에게는 자녀답게 부모에게 순종하는 면모만을 기대하기 시작한 것도 빅토리아 시대였다.
“빅토리아 여왕이 가정을 굉장히 중요시했거든요. 언뜻 보면 그럴 듯하지만, 대체로 통제의 기능이 컸습니다. 개인을 하나의 틀에 가두기 위해 가정을 정치 이데올로기로 삼은 셈이지요. 가정의 영역 밖에 있는 사람은 무엇인가 문제가 있는, 비정상적인 부류로 치부받기도 했어요. 가정 안에서의 미덕 중에는 남자다움, 여자다움, 아이다움이 다 포함되고요. 지금 남아 있는 ‘~다움’이라는 것도 다 그 당시 논해졌던 기준입니다.”
특히 빅토리아 시대는 결혼과 성이라는 기준으로 여자를 매우 구체적으로 분류, 편견을 강화한 시기라는 점도 주목할 만하다. 요즘도 서양에서는 ‘빅토리아 시대 같다’고 하면 매우 보수적인 의미로 받아들이는 경향이 강하다. 특히 여자들이 성적으로 많이 억압되어 있던 시대가 바로 빅토리아 때였다.
“동시에 여자들의 생각이 조금씩 깨기 시작한 시기이기도 해요. 빅토리아 시대는 20세기를 향해 가면서 1901년에 막을 내리지요. 여자들이 조금씩 자아를 찾고, 자기 목소리를 높이며, 여성의 권리를 향상시키기 위한 과정을 겪어 나가는 과도기라고 보면 될 듯합니다. 오늘날 여자에게 들러붙는 고질적인 편견들에 대해 논하려면 빅토리아 시대의 여자 이야기부터 꺼내는 게 필수라고 생각했고, 그래야 여자들이 어떻게 자기 권리를 찾아갔는지 살펴볼 수도 있을 거로 봤어요.”

영국 아카테미 미술에 반기를 든 라파엘 전파

해외여행이 자유로워지면서 영국을 다녀온 사람들의 관심이 자연스럽게 프랑스 인상주의에서 영국 미술로 옮겨가고 있는 요즈음. 그 중에서도 이 교수는 주로 라파엘전파 그림에 대해 이야기하는 데 주력했다.
19세기 빅토리아 시대 예술계에서는 라파엘전파 외 국가에서 운영하는 왕립미술원 소속 화가들도 왕성하게 활동했다. 다만 그들은 국가 심사위원들의 검열을 받아야 했기 때문에 빅토리아 사회 정부가 추구하는 가정중심 사상의 내용을 다룰 수밖에 없었다. 반면 라파엘전파는 현실에서 관찰한 내용을 사실주의에 따라 있는 그대로 고스란히 그림에 녹여냈다. 본래 그림이란 사실성에 의거해 그리는 게 맞지, 한 나라의 가치관을 담는 것은 옳지 않다고 믿었기 때문이다. 지극히 이상화된 영국 아카데미 미술에 반기를 든 예술 단체가 라파엘전파였다. 
라파엘전파는 조금씩 유미주의로 나아가기도 했다. 라파엘전파가 관찰을 통한 그림을 그렸다면, 유미주의 화가들은 오직 아름다움만을 추구했다. 예술이 도덕의 노예가 되어서도 안 되고, 예술에서 기쁨이나 쾌락은 중요하지 않다고 본 것이다. 오히려 유미주의는 형식적인 차원을 더욱 강조했던 사조다.
즉, 빅토리아 시대 화파는 왕립미술원, 라파엘전파, 유미주의 총 세 가지로 나뉘었는데, 사실 유미주의를 크게는 라파엘전파의 한 부류로 보는 경우가 많아서, 간단히 정부 차원의 화파, 비정부적인 화파로 분류되던 시대였다.
“프랑스 인상주의도 딱 이 무렵에 등장한 화파인데요. 인상주의도 라파엘전파와 마찬가지로 옛날 방식만 답습하는 아카데미에 반발하는 그림이었죠. 프랑스 인상주의의 경우 조형적인 기법이 예전과 확 달라졌는데요. 라파엘전파는 개혁의 의지가 분명히 있었는데도 기법적인 차원에서 크게 변화된 점은 없어요. 자세히 봐야 갈색조가 원색으로 변하고, 표면을 아주 매끈하고 광택 있게 칠해진 게 눈에 띌 정도예요.”

명화에 담긴 당 사회적 함의

라파엘전파의 그림은 그동안 ‘아름다운 그림’, ‘마음을 편하게 해주는 그림’으로 소비되어 왔다. 그림의 소재는 대부분 아름다운 여자들이며, 그들은 나른하고 아름답게 묘사되어 있다. 색채 또한 화려해 실제로 보면 매우 산뜻한 느낌이 든다. 더욱이 19세기 영국의 회화는 문학을 기반으로 하고 있어, 철학과 미학을 토대로 한 현대미술이나 상징의 언어로 싸여 있는 중세나 르네상스 미술에 비해 쉽게 공감할 수 있다.
물론 아름다운 명화라고 불리는 이 작품들에도 현재까지 이어지고 있는 사회적 함의가 다수 숨어 있다. 우리가 당연하게 여기는 고정관념의 역사, 특히 여자에 대한 편견의 역사적 맥락이 그것이다. 가장 대표적인 예로 그녀는 1851년 존 에버렛 밀레이가 그린 <마리아나>라는 그림을 소개했다.
“셰익스피어의 원작 <자에는 자로>에 나오는 여주인공인 마리아나는 결혼하러 가다가 바다에서 결혼 지참금을 모두 잃어버리고, 결국 정혼자로부터 버림받게 된 가엾은 여자예요. 밀레이의 그림에서 마리아나는 당시 결혼해 실패한 여자답게 수녀원에서 조용히 여생을 보내던 중 지루했던지 허리를 펴면서 물끄러미 창밖을 내다보고 있습니다. 결혼이라는 게 여자의 인생을 이토록 틀지어 놓았구나, 라는 사실을 알 수 있어요.”
또 하나, 윌리엄 홀먼 헌트의 <샬럿의 공주> 그림도 있다. 시인 알프레드 테니슨은 중세문학에서 영감을 얻어 1833년 <샬럿의 공주>를 발표했는데, 이 시는 빅토리아 시대 화가들에게 꽤 좋은 소재가 되었다. 샬럿의 공주는 창밖의 세상을 직접 볼 수 없고, 오직 방 안에 있는 거울을 통해 비추어진 환영만을 바라보면서 살아야 하는 저주에 걸려 있다. 그녀는 탑에 갇혀 거울에 비친 세상의 모습을 직물로 짜며 저주가 풀리기를 기다린다. 그러던 어느 날, 거울 속에 비친 랜슬롯이라는 남자를 보고 첫눈에 반한 그녀는 몸을 휙 돌려 금기를 깨고 만다. 그 순간 거울이 깨지고 직물이 갈기갈기 찢겨 풀어진 실이 그녀의 몸을 휘휘 감기 시작하는데….
“윌리엄 홀먼 헌트가 그린 <샬럿의 공주>에서 공주의 이미지는 꽤 히스테릭해요. 머리카락은 치솟아 있고, 실은 엉켜 온몸을 휘감고 있지요. 그녀 뒤편으로 보이는 거울 양옆으로 부조 장식이 있는데, 그 중 선악과를 따고 있는 아담의 모습이 전면으로 제시돼 있습니다. 샬럿의 공주가 금기를 깨는 순간을 성서 속의 아담이 에덴의 금기를 깨는 것에 비유한 거지요. 당시 빅토리아 시대 여성의 상징성이 매우 큰 작품이라고 할 수 있어요.”

페미니즘에 관한 오해

빅토리아 시대 여성이 20세기를 향해 결혼, 가정에 대한 고정관념과 여성에 대한 편견을 깨고 21세기까지 오면서 여성의 권익은 나날이 신장해 갔다. 오히려 요즘은 여성혐오 사상이 강력범죄까지 야기하는 등 어두운 그림자를 드리우고 있다. 특히 페미니즘이란 말에도 예민하게 반응하는 남자들이 많은데…. 이에 이주은 교수는 한 번쯤 페미니즘에 대한 오해를 바로잡을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유독 한국에서는 여자가 남자보다 더 우월하다거나 다투고 논쟁하기를 좋아하는 골치 아픈 여성들을 일컬어 페미니스트라고 부르는 것 같아요. 사실 그런 사람을 우리는 페미나치( feminazi 급진적 여성주의)라고 지칭하는 게 맞습니다. 페미니즘은 순전히 빅토리아 시대와 같이 억압된 삶을 살았던 여성들이 자신의 권리를 주장하고 실현해 가는 게 목표예요.”
꼭 여성이 아니어도 가정 내에 어머니, 누나, 아내, 딸이 있는 남성도 그들의 입장에서 한 번 더 생각해 보는 페미니스트가 될 수 있다고 말하는 이주은 교수. 미국 오바마 대통령도 자신은 페미니스트라고 밝혀 화제가 된 바 있다.
“페미니스트들에 대한 오해가 여성 혐오사상을 더 조장하지 않을까 우려스러워요.”
물론 현대 여성들이 매일같이 모여 카페에서 수다나 떨며 SNS에 셀카, 맛집 사진을 즐겨 올리는 현상이 뭇 남성들에게 동질감은커녕 괴리감을 느끼게 할 수 있다. 어떻게 보면 남성들은 사회에서 살아남기 위해 매일같이 투쟁하고 있는데, 여성들은 자신을 꾸미는 데 치중하고 있는 것을 보며 비호감 이미지를 품을 수도 있을 터.
“겉으로 보기에는 충분히 그럴 수 있을 것 같아요. 남자는 이래야 한다, 여자는 저래야 한다는 것 역시 빅토리아 시대부터 이어온 잔상인데요. 그래서 더욱 남녀 간의 소통이 절실합니다.”
이 교수가 라파엘전파의 작품을 보여주고 그 내막을 설명하며 그림의 이해를 도왔듯, 겉으로 보이는 여성들의 모습이 전부가 아니라는 점을 상기시킬 필요가 있다.
“이제 여성들도 여성의 권리만 주장하기보다 인간 대 인간으로 남녀가 상대방을 존중하고, 양성 모두가 평등해지는 게 훨씬 중요한 과제이기도 해요. 그런 사회가 되려면 올바른 개념의 페미니스트들이 더 많아지면 좋겠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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