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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재심> 속 실제 주인공, 박준영 고졸 변호사가 일군 희망의 역사
영화 <재심> 속 실제 주인공, 박준영 고졸 변호사가 일군 희망의 역사
  • 송혜란
  • 승인 2017.03.14 07:38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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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례 나라슈퍼 3인조 강도사건부터 익산 택시기사 살인사건까지! 2016년, 대한민국은 재심 전문 변호사 박준영으로 인해 후끈 달아올랐다. 모두가 안 된다고 할 때 그래도 끝까지 나아간 박 변호사 덕분에 억울한 사법 피해자들은 명예를 되찾을 수 있었다. 그러나 사비까지 털어가며 물심양면 사회적 약자를 도운 그는 얼마 가지 않아 파산 지경에 이르고 말았는데…. 이후 그에겐 믿기 어려울 정도로 놀라운 일들이 벌어졌다.

사진 [Queen 양우영 기자]

박준영 변호사가 재심을 통해 무죄 선고를 받아낸 이들은 대개 힘없고, 가난하고, 지적장애가 있거나 미성년자인 상태로 피고인이 된 사람들이었다. 짓지 않은 죄를 자백할 수밖에 없었던 이들을 먼저 찾아가 재심을 청구하자고 설득했고, 자신의 돈과 시간을 쏟아 부어 밤새 변론을 준비했다.
자기 조직의 잘못을 감싸려고만 하는 검사에게, 판사에게, 고문 경찰에게 몹시 화가 나 크게 소리 지르거나 꾸짖어야 했던 지난날. 한여름 땡볕에 혼자 앰프를 끌고 기자회견을 준비한 이 열혈 변호사가 시국 사건도 아니고, 일반 형사 사건의 재심은 아예 불가능하다고 생각한 사람들의 뒤통수를 치듯 재심에 힘쓰다 파산 직전에 갔다는 소식은 다름 아닌 포털 사이트 스토리 펀딩 기사를 통해 알려졌다.
저널리스트 박상규 씨가 올린 프로젝트의 제목은 ‘하나도 거룩하지 않은 파산 변호사’. 측은지심으로 똘똘 뭉친 박 변호사의 사연을 전해들은 시민들은 곧 그에게 반해 ‘우리들의 변호사’라 칭하기 시작했다. 결국 지난해 93일 동안 1억원을 목표로 시작한 스토리 펀딩은 며칠 만에 2억 원 이상의 후원금을 확보하는 데 성공했다. 엄청난 기적이 아닐 수 없다.
“처음에는 후원자, 기부금 숫자가 막 올라가는데 정신을 못 차리겠더라고요. 잠을 못 잘 정도였어요. 휴대폰을 꼭 옆에 두고 자다가 중간에 깨면 스토리 펀딩 상황부터 확인하는 등 꽤 흥분되던 시기도 있었어요. 어느 순간에는 문득 부담감으로 다가오더군요. 시민들이 댓글로도 응원의 메시지를 보내고 하는데, 정말 똑바로 살아야겠다 싶었어요.”

재심전문 변호사가 된 이유

전라남도 완도의 작은 섬 노화도에서 태어나 가난하고 힘겹게 살아온 박준영 변호사. 실제로 만난 그는 우리와 별반 다르지 않은 평범한 사람이었다. 부모님을 도와 연탄과 오징어를 팔고, 장례식에 쓰이는 종이꽃을 접으면서 자랐다. 중학교 때 엄마가 돌아가신 후 가출과 방황을 일삼는 문제 청소년이기도 했는데…. 고등학교에서는 근면 성실하나 준법성이 요구된다는 평가를 받을 정도였으며, 어렵게 들어간 대학도 군대 제대 후 자퇴하고 말았다. 우물 안 개구리는 군대에 들어간 후 육사 출신의 대대장을 보고 더 넓은 세상이 있음을 깨닫게 되었다. 
“무엇인가 변화가 필요했어요. 그렇다고 제가 좋은 대학을 나온 것도 아니고, 고시가 유일한 길이었지요. 마침 군대에서 만난 배 병장이 사법고시를 준비하고 있기에 그를 따라 법 공부를 시작했고, 어렵사리 2002년 사법고시에 합격했습니다.”
그러나 인생은 산 넘어 산이라고 했던가. 사법고시만 패스하면 인생이 고속 성장할 것이란 기대와 달리 그 뒤엔 또 다른 난관이 자리해 있었다. 소위 판검사나 든든한 집안, 뛰어난 학벌이 없는, 섬?고졸 출신 변호사에게 사건을 맡기는 의뢰인이 없었던 것이다. 자신이 능력 있는 변호사라는 것을 증명하고 싶었던 그는 우수한 실적을 낼만한 사건이 필요했고, 국선 변호에 열중하던 그가 답을 찾아낸 곳은 재심 사건이었다.  
“솔직히 처음부터 정의감에 불타 재심사건에 매달린 것은 아니에요. 공적인 이야기로 포장할 만큼 제가 그리 대단한 사람도 아닙니다. 분명한 것은 개인적으로 성공하고 싶은 욕심에 도전했던 여러 재심사건 때문에 저 자신에게 조금씩 변화가 일어났다는 거예요. 지금은 공익적인 이유가 훨씬 크지요. 아직도 돈 받고 변론하는 사건은 없습니다.”
요즘은 너무나 포장된 세상에 살고 있다고 말하는 박준영 변호사. 그는 자신을 특별한 사람이라고 여기는 세태에 대해서는 극히 경계하는 모습을 보였다.
“제가 처음부터 공익을 위해 재심사건만 맡았다고 하면 너무 과장된 이야기이지요. 현실도 절대 무시할 수 없습니다. 오히려 저를 포장하면 사람들은 애초 제가 특별한 사람이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라며 좋은 선례는 여기서 끝내고 말 거예요. 제 이야기를 듣고 많은 사람이 제가 자신과 크게 다르지 않다는 것을 깨닫고 스스로 믿는 바를 위해 계속 도전했으면 좋겠어요.”

만들어진 범죄자의 특징

2008년 운명적으로 수원 노숙소녀 살인사건을 만난 그는 국가기관의 도움 없이 최초로 형사재판 재심에서 무죄를 이끌어내는 데 성공했다. 탈북자 간첩사건을 변호한 후 본격적으로 재심과 공익사건만 맡겠다고 결심한 그는 개인 재정이 파산 지경에 이르던 순간에도 오로지 만들어진 범인을 찾는데 열을 올렸다. 그들의 결백을 박 변호사는 어떻게 확신할 수 있었을까?
“사실 어느 날 갑자기 저를 찾아와 억울하다고 호소해도, 설사 그 모습이 매우 절실해 보인다 해도 사람을 믿는다는 것은 참 힘든 일입니다. 저 같은 경우 그 사람이 억울함을 주장했던 시간이나 과정에 의미가 있는지를 봐요. 어떻게 보면 억울하지 않으면서 억울하다고 주장하기도 그리 쉽지 않습니다. 그럼에도 오랫동안 여러 형태로, 특히 주변에서 함께 자신의 억울함을 주장해왔다면 그 의미는 매우 크다고 할 수 있지요.”
언론을 통해 끊임없이 문제 제기가 계속됐다면 더욱 확신을 갖기 더욱 쉬었을 터. 그가 맡은 사건들도 대부분 언론 보도를 통해 접한 것들이다.
“실제로 판결 자료들을 찾아보니 제가 봐도 억울할 만했어요. 당사자를 직접 찾아가 그의 느낌도 봅니다. 때로는 백 마디 말보다 침묵이 외려 더 절실해 보일 때가 있어요. 세상에 좌절한 사람이나 거짓말하는 사람은 눈빛 돌아가는 것만 봐도 구별할 수 있습니다.”

뭘 해도 다 잘되는 남자

복이 많은 해에는 뭘 해도 다 잘된다는 말이 있다. 재심전문 변호사로 활발히 활동하던 그는 스토리 펀딩으로 시민들의 후원을 받아 2016년 10월 28일 지적장애를 안고 있어 제대로 된 항변도 못한 채 짓지 않은 죄를 자백하고 감옥에 갇혔던 삼례 나라슈퍼 3인조 재심을 무죄로 이끌었으며, 2016년 11월 17일 열다섯에 택시기사 살인사건의 범인으로 몰려  10년 동안 형을 살아야 했던 사법 피해자도 연달아 무죄 판결을 받아내는 데 성공했다. 일명 ‘익산 약촌오거리 택시기사 살인사건’으로 불리는 이 사건은 김태윤 감독의 영화 <재심>으로 만들어져 2월 16일 개봉을 앞두고 있다. 배우 정우가 실제 주인공인 박준영 변호사 역을 맡아 열연한 것으로 전해졌다.
우리나라 사법역사의 새로운 길을 제시하고 있는 박준영 변호사. 그는 2016년 헌법재판소의 모범 국선대리인에 선정돼 표창장을 받았다. 국선대리인으로 헌법소원 사건에 참여해 교도소 수형자가 다른 사건의 형사재판 피고인으로 법정에 출석할 때도 사복 착용을 허용하지 않는 ‘형 집행법’이 헌법에 어긋난다는 헌재 결정을 이끌어 낸 것이 큰 성과로 인정받았기 때문이다.
지난해 말 JTBC 예능 <말하는 대로>에 출연해 사과하지 않는 공권력을 향한 분노를 보인 그는 국민들의 열렬한 환호 속에 ‘국민 변호사’라는 애칭을 얻기도 했는데….
“2016년은 저에게 뭘 해도 되는 해였던 것 같아요. 국민 변호사라는 애칭은 정말 과분하지요. 그보다 우리들의 변호사, 동네 변호사로 불리는 게 맞는 것 같아요.”

우리들의 변호사

그간 맡은 재심사건 중 가장 기억에 남은 사건에 대한 질문에 노코멘트를 선언한 그는 재심사건을 맡으며 가장 힘들었던 점에 대한 이야기로 답을 대신했다.
“요즘 그 질문을 많이 받는데요. 제가 특정한 사건만이 의미 있다고 언급하면 다른 사건의 당사자가 섭섭해 하지 않겠어요?(웃음) 그보다 재심사건이 상당히 오래 걸리잖아요. 억울한 일을 겪은 사람에게는 하루하루가 고통이에요. 극단적인 선택을 한 사람도 많이 봤고…. 제가 법리를 통해, 증거 수집을 통해 돕는 일은 정말 열심히 잘할 수 있지만, 개인의 정신적인 고통까지 케어 할 수 없는 게 참 힘들더라고요. 저 혼자 힘으로는 한계가 있어요.”
이에 사회적으로 여러 시스템이 결합해 심리치유 프로그램을 도입하는 등 억울한 사법 피해자를 돕는 게 절실하다고 그는 호소했다.
“앞으로는 제 경험을 잘 정리해서 우리 사회가 필요로 하는 것이 무엇인지 시민들에게 이야기하고, 또 그것을 만들기 위해 다 같이 노력해보려고 해요.”
사회정의를 실현하는 변호인의 사명을 누구보다 성실히 이행하고 있는 박준영 변호사의 삶은 최근 저서 <우리들의 변호사>에도 잘 녹아나 있다. 앞으로도 대한민국 최고의 재심전문 변호사로서 사회적 약자들의 억울함을 풀어주는 우리들의 변호사로 살아갈 계획이라는 그를 힘껏 응원해 본다.

[Queen 송혜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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