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시간뉴스
유경희의 서양미술사, 배꼽에서 눈물까지 ‘디테일’에 집중하세요
유경희의 서양미술사, 배꼽에서 눈물까지 ‘디테일’에 집중하세요
  • 송혜란
  • 승인 2017.03.16 18:12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아무도 꽃을 제대로 보지 않는다. 꽃은 너무 작고 우리는 시간이 없다. 그리고 친구를 사귀는 데 시간이 드는 것처럼 보는 데에도 시간이 필요하다.” 미국 화가 조지아 오키프가 한 말이다. 그림을 볼 때 키워드를 무엇으로 잡느냐에 따라 미술 감상법은 매우 다양하게 나뉜다. 예술가의 유년시절부터 남자의 심리 등에 초점을 두어 그림을 심리 치유의 도구로 삼아온 아트 테라피스트이자 미술 스토리텔러인 유경희. 이번엔 배꼽에서 눈물까지 디테일에 집중하라며 깊은 내면의 세계로 안내했다.

사진 [Queen 양우영 기자]

“일반적으로 미술 감상법을 이야기할 때 그림의 내용보다 형식을 보라고 합니다. 그림의 색깔이 어떠한지, 구도는, 그 다음에 텍스처, 질감, 볼륨은 어떠한지를 감상하라고 하지요. 실제 그림을 볼 때는, 사실 그런 것들이 다 생각나지 않습니다. 누구나 어떤 그림을 보든 가장 먼저 꽂히는 게 있기 마련이에요. 그게 디테일입니다.”

디테일, 자신과의 교감

어떤 사람은 그림의 색채에 매료되기도 하고, 또 어떤 이는 손짓, 얼굴의 점, 흘러내리는 머리카락에 시선을 빼앗길 수도 있다. 이를 그녀는 프랑스의 기호학자이자 문화평론가인 롤랑 바르트의 말을 빌려 ‘푼크툼’과 접신하는 경지라고 표현했다. 푼크툼(punctum)은 찌름, 송곳이라는 뜻이다. 롤랑 바르트는 푼크툼을 자신을 찌르는, 상처를 입히고, 자극을 주는 우연성이라고 말한 바 있다.
“모든 그림에는 다른 사람은 모르는, 나한테만 꽂히는 세부가 존재해요. 저는 그 부분을 자신과 만나는 접점이라고 봅니다. 수많은 그림 감상법 중에 제가 디테일을 이야기하는 것도 자기 눈에 들어오는 부분에 집중하라는 거예요. 가만히 가까이 들여다보면 결국 나 자신과 마주하게 되거든요.”
오랫동안 디테일을 바라보게 되면 자신이 던진 시선은 단지 바라보는 것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그림 역시 자신의 시선에 화답하게 된다. 시선이 그저 보는 것(look)이라면, 시선과 시선이 만나 응시(gaze)로써 그림은 감상자를 향해 무언으로 속삭이기 시작한다.
“‘룩’ 내가 시선을 먼저 던지면, ‘게이즈’ 그쪽에서 응시를 보내와요. 시선과 응시가 교차하면 교감이라는 게 이뤄지지요. 시선과 응시가 왔다 갔다 하며 소통을 하게 되는데, 그 대상이 자기 자신이라는 겁니다. 자기를 억압했던, 어릴 적 트라우마일 수도 있고, 자기도 모르게 숨긴 감정일 수도 있어요. 일종의 아트 테라피의 과정을 겪게 되는 거지요.”

그림 속 인간의 몸에 사로잡히는 이유

서양미술사에는 유독 인간의 몸을 소재로 한 작품이 많이 등장한다. 근육질의 로마 조각상이나 풍만한 미적 매력을 지닌 비너스상을 비롯해 여자가 여자의 젖꼭지를 만지는 퐁텐블로파 작가의 그림 <가브리엘 데스트레와 자매>, 딸이 아비에게 젖을 먹이는 페테르 파울 루벤스의 <시몬과 페로> 등 눈길을 사로잡는 작품만 해도 그 수를 헤아리기 어렵다. 오랜 시간 예술가들이 인체를 표현하기 위해 조각을 하거나 그림을 그렸듯 몸은 가장 원시적인 예술 매체이면서 한편으로는 가장 사적이고 치명적인 존재이다. 그 자체가 미술작품으로서 충분한 매력을 지닌다. 우리의 시선이 예나 지금이나 여전히 몸에 사로잡히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미술평론가 유경희 역시 마찬가지다. 언젠부턴가 미술작품의 덜 중요한 부분에 이끌리기 시작했다는 그녀는 그림의 디테일, 그 중에서도 그림 속에 묘사된 몸과 몸짓을 하나의 코드로 두고 서양미술의 세계를 깊게 파고들어 갔다. 배꼽에서 눈물까지 마음을 이끄는 몸의 작은 부분에 대해 면밀히 살핀 그녀는 최근 저서 <가만히 가까이>에 디테일을 조심스레 끄집어냈다.
어떠한 내재적인 아름다움에 이끌려 그녀가 선택한 디테일은 미를 고른 사람의 취향을 고스란히 보여준다. 가령 그녀는 손이 몸의 일부분임을 부정하며 오귀스트 로댕의 <대성당>, 도나텔로의 <막달라 마리아>뿐 아니라 알브레히트 뒤러의 <자화상>, 심지어 어두워서 잘 보이지도 않는 자코피노 델 콘테의 <미켈란젤로의 초상> 속에 묘사된 각 손의 모습에서 그들의 표정과 감정, 생각을 읽을 수 있다고 이야기한다. 그녀에게 손짓은 은밀하고 미묘한 기호들의 천국이다.
“사랑하는 사람들 사이에서 일어나는 손들의 접촉은 은폐된 내적 감정들을 고스란히 드러냈다가 언제 그랬냐는 듯 급격히 숨어버리곤 하지요. 이 때 우리는 이 손들에게 고유한 소망과 감정, 기분과 취미를 가질 권리를 인정합니다. 손이 어떠한 대상을 어루만지거나 붙잡을 때, 새로운 사물 하나가 더 탄생하기도 합니다. 뒤러는 손으로 자존감을 표현했고, 미켈란젤로는 관절이 부은 손을 그림으로 드러내고 싶어 했어요.”

신은 디테일에 깃든다

손뿐 아니라 눈, 머리카락, 유방, 배와 배꼽, 엉덩이 등 머리부터 발끝까지 작품의 구석구석을 살피는 일은 마치 단숨에 서양미술사의 온몸을 훑는 것과 같다는 유경희. 이렇게 작품을 감상하다 보면 전체가 아닌 디테일을 통해 화가가 전하고자 한 의도는 물론 자연스럽게 미술가의 일대기로 관심이 옮겨간다.
“미술을 보는 여러 가지 코드가 있지만 그 중에서도 예술가의 유년시절이나 어떤 부모를 만나 어떤 가정교육을 받았으며 학창시절 어떤 친구, 멘토를 만나 인생의 변화를 맞이했는지 등 그들의 인생을 알고 작품을 다시 보면 그림을 더욱 풍부하게 이해할 수 있어요. 특히 예술가의 삶에 천착했을 때 자신과 동일시되는 부분이 상당할 겁니다.”
그도 그러한 것이 우리가 흔히 잘 알고 있는 화가 오귀스트 로댕을 비롯해 미켈란젤로, 레오나르도 다빈치, 반 고흐까지 모두 불우한 어린 시절을 보냈다. 안정된 환경에서 탈출해 아버지를 거부하고 스스로를 방목하며 부모님이 원하지 않는 결혼을 한 작가들이 대부분이다.
“지금의 나보다 상황이 더 안 좋았으면 안 좋았지 부르주아적인 삶을 살았던 예술가는 없어요. 그럼에도 그들은 역경을 이겨내고 그토록 원하던 예술을 통해 자신을 실현해 갔습니다. 비록 남들이 보기에는 불행해 보일지 모르지만 스스로는 매우 행복한 인생을 살았다고 자부해요. 설사 신체적으로는 장애가 있고, 심리적으로는 우울증이 있었다 해도 그것마저 삶의 커다란 동인, 드라이버, 원동력으로 활용했습니다. 그래서 예술가들의 삶은 늘 힐링의 모티브를 제공해 줍니다.”
우리가 그림을 감상할 때 디테일에 집중해서 얻을 수 있는 것들이 무엇보다 많다고 그녀는 말한다.
“나는 남이 안 보는 것을 본다. 특별함이죠. 신은 디테일에 깃든다. 나는 특별하고, 멋져, 괜찮아. 스스로를 떠받치며 자신을 특별한 사람으로 만드는 거예요.”
디테일은 특별함에 이어 세심함 등 여러 가지 키워드와도 연결된다. 자신이 굉장히 섬세하고, 배려심이 많을 뿐 아니라 관찰하고, 명상하는 사람이라며 우월감을 느끼는 것이다.
“궁극적으로는 무엇인가를 가만히 가까이 들여다봄으로써 내 안의 나에게 몰입하는 일에 돌입하는 거예요. 요즘은 다들 너무 빠르게 살고 있잖아요. 잠시 여유를 갖고 오롯이 나에게 집중하는 시간을 가져보세요. 아주 영적인 순간이 될 겁니다. 내 안에 깃든 신을 만나는 작업이라고 할 수 있을 정도로 굉장히 고즈넉하지요. 나를 반추하기도 하고, 상처받은 자신을 어루만져주는 진정 혼자만의 시간이요. 그림을 통해 명상의 시간을 갖는 것은 스스로에게 주는 선물입니다.”

아름다움을 본다는 것

한양대학교에서 국문학, 홍익대학교 대학원에서 미학을 전공한 그녀는 연세대학교 커뮤니케이션 대학원에서 시각예술과 정신분석학에 관한 논문으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치유의 미술관>, <예술가의 탄생>, <아트살롱> 등 숱한 베스트셀러를 낳은 그녀는 현재 유경희예술처방연구소를 운영하며 사람들과 은밀히 소통하는 강의와 상담을 진행하고 있다. 특히 아트 테라피스트 역할을 열심히 수행 중인 그녀는 ‘아름다움을 본다는 것’의 중요성을 매우 강조했다.
“사람이 그림을 볼 때 시각적인 것에서 만족을 많이 느낍니다. 우리가 아름다운 풍경을 보러 여행을 가거나 전시회에 가서 그림을 감상하는 일이 어떤 치유보다 효과가 단박에 나타납니다. 그래서 아름다움을 본다는 게 중요하다는 거예요. 사람은 보는 대로 되거든요.”
한 사람이 유년시절, 학창시절, 그리고 성인이 돼서 어떤 집에서 살았고, 늘 무엇을 마주했는지가 그 사람을 결정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요즘은 교도소에서 교화 활동으로 소크라테스나 플라톤 등 인문학 강연이나 좋은 성서 이야기를 설파하곤 한다. 그러나 그녀는 그들에게 산드로 보티첼리의 <비너스의 탄생>을 보여주는 것만큼 더 좋은 것은 없다고 단언했다. 아름다운 그림 한 점이 인간의 영혼도 구할 수 있다고 그녀는 확신했다.

[Queen 송혜란 기자 ]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