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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편소설 ‘바르샤바의 열한 번째 의자’ 펴낸 김다은 교수
장편소설 ‘바르샤바의 열한 번째 의자’ 펴낸 김다은 교수
  • 백준상 기자
  • 승인 2017.03.28 05:46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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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다은 추계예술대 교수

중견소설가 김다은 교수의 장편소설 ‘바르샤바의 열한 번째 의자’가 최근 독서가에 잔잔한 파문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우리의 삶에 대한 진중한 물음에 답하는 형식의 소설을 연이어 발표하고 있는 김다은 작가를 만나 새 소설과 그녀의 작품세계에 대해 들었다.

[Queen 백준상 기자 ] 사진 [Queen 양우영 기자]

중견소설가 김다은 교수(추계예술대 문예창작과)가 펴낸 장편소설 ‘바르샤바의 열한 번째 의자’(도서출판 작가)가 평단과 독자들로부터 좋은 평가를 얻고 있다. 폴란드와 한국의 우정을 따뜻한 시선으로 그려낸 이 소설은 한국출판문화산업진흥원에 의해 ‘1월의 읽을 만한 책’으로 선정되었으며, 북 콘서트에도 많은 독자들이 몰려 소설의 인기를 가늠케 했다.

이 책을 읽은 이장호 영화감독(서울영상위원회 위원장)은 “폴란드 영화감독 크쥐시토프 키에슬로브스키 의 ‘베로니카의 이중생활’처럼, 한 할머니와 한 아이를 통해 한국과 폴란드 사이의 역사적이고 정서적인 수수께끼 같은 관계를 추적하는 과정이 통이 큰 작품이다”라며 독후감을 밝혔다.

이근미 소설가는 “이국적인 풍경과 어디나 있기 마련인 아픈 삶들, 묻힐 뻔한 역사를 잘 버무렸다. 어둡고 암울한 기운이 따뜻하게 함께 마무리되면서 많은 생각을 하게 하는 게 장점이다”라고 평했다.

주한 폴란드 대사관 측에서도 한국과 폴란드간의 관계를 다룬 이 소설에 대해 환영을 표했다. 북 콘서트에 참석한 우카시 그라반 정무담당관은 축사를 통해 이 소설이 “올해의 책이 되었으면 좋겠다”는 바람을 밝혔다. 마침 한국과 폴란드간의 직항 노선이 열린 시점이어서 이 소설의 반향은 더 컸다. 폴란드의 한 출판사에서는 이 소설의 폴란드판 출간에 대해 진지하게 검토 중이다.

한국인과 폴란드인이 영혼의 힘으로 서로를 치유하는 이야기

“의외의 반응들에 다소 놀랐어요. 과연 독자들이 이 책을 어떻게 받아들일까 궁금했는데 우선 새롭게
받아들이는 것 같아요. 개인의 삶의 고통에 대한 초점에서 나아가 다른 나라와 역사를 통해 맺어진 관계를 보는 것, 그리고 이를 어떻게 극복하고 풀어나가는가에 대한 관심 때문이라고 봅니다. 영혼의 질문을 던지는 사람이라면 나라와 상관없이 공유할 만한 작품이라고 생각합니다.”

프랑스 파리 8대학에서 불문학 박사학위를 받고 추계예술대 문학창작과 교수로 재직 중인 김다은 교수는 글쓰기에 있어 평소의 글로벌한 시각을 드러냈다. 오래 전 데뷔 소설 ‘당신을 닮은 나라’에서 프랑스 학생들의 얘기를 다뤘던 김 교수는 이번에는 폴란드와 북한간의 역사적 관계에서 시작해 폴란드 가정과 남한 유학생들 각각의 번민을 드러내고 결국에는  얽혔던 매듭을 한꺼번에 푸는 매끄러운 전개방식을 보여주었다.

요즘 좀체 보기 힘든 품격 있는 소설로, 고통 운명과 같은 무거운 주제를 타인에 대한 연민과 사랑으로 극복하는 따뜻함을 보여준다. 1951년 한국전쟁으로 폴란드로 보내진 북한 전쟁고아들을 수용한 프와코비체 양육원에 대한 역사적 사실에 근거한 팩션소설이다.

소설은 프와코비체 양육원에 근무했던 할머니가 치매현상과 함께 예전에 북한 아이를 무작정 기다리는 것으로 궁금증을 자아낸다. 여기에 영화 공부를 위해 폴란드에 온 한국인 여성 조감독 라아, 그리고 그녀를 찾기 위해 폴란드에 도착한 한국인 청년 철화의 이야기가 가세한다. 라아는 자폐증상을 보이는 오빠를 돌보다가 오빠가 성희롱 사건에 휘말려들면서 도피성 유학을 왔지만 자신을 둘러싼 가족과 예술 등 삶의 무거움에 허덕이며, 철화는 세월호 사건으로 아이를 잃은 여동생 때문에 삶이 혼란스럽다.

이 소설에서 폴란드는 결말을 이끌어 내는데 있어 특별하고 적절한 장소로 기능한다.
“우리와 폴란드 사람은 영혼적 쌍둥이 같은 느낌이 있어요. 한국 폴란드 두 나라는 역사적으로 외침을 많이 받았음에도 정체성을 잃지 않고 강하게 살아남았습니다. 폴란드는 심지어 나라가 없어진 적도 있었어요. 제2차 세계대전 전에 가장 많은 유태인들이 살았을 정도로 타인에 대한 이해와 관용이 대단한 나라죠.”

김 교수와 폴란드와의 인연은 파리 유학시절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거주하던 아파트의 주인이 폴란드 사람이었는데 한국인을 좋아했고 한국말 배우기도 즐겼다고 한다. 폴란드에 대한 동경이 있던 작가는 안식년인 2015년에 3개월간의 폴란드 행을 기꺼이 택했고, 그 주인의 초대로 폴란드 가정의 크리스마스이브 식사자리에도 참석할 수 있었다.

인구의 95%가 가톨릭 신자인 폴란드에서는 10월 중순부터 크리스마스 분위기가 나가 한두 달에 걸쳐 가족에게 줄 선물을 준비한다. 폴란드는 마크리스마스이브에 집집마다 저녁 식탁에 빈 의자를 갖다놓는데 이는 ‘구세주 예수’를 위한 자리지만 실제적으로는 오갈 데 없는 사람들, 이방인들, 소외된 사람들을 위한 자리가 된다. 폴란드 사람들의 따뜻한 마음씨를 알 수 있게 하는 대목이다.

작가는 “때로는 빈 공백이 삶에 중요하다”면서 “앞으로 어떤 소설을 써야 할지에 대해 고민하다가 폴란드 집집마다 크리스마스이브의 식탁에 빈자리가 하나씩 놓여 있는 이유를 알게 되면서 작품을 구상하게 되었다”고 말했다.

이 소설에서는 아이들이 비중 있게 다뤄지는데, 북한 고아들이 ‘구세주 예수’를 알게 되면서 권력 우상화를 위해 종교를 금하는 북한 교사로부터 제제를 받는 장면으로 이데올로기에 경도됐던 시대적 아픔을 보여준다. 또 남한의 세월호 사건을 언급하며 그러한 아이들의 고통과 어른들의 책임이 현재진행형임을 일깨워준다.

던져진 질문에 답하는 방식이 나의 소설

“한 문제에 천착하기보다는 그때그때 저에게 던져진 질문에 답하는 방식으로 소설을 씁니다. 지금까지의 모든 소설이 그렇게 창작되었고요. 매번 새로운 질문을 떠올리기 위해서는 일상이나 반복은 좋지 않다고 생각해 방학 기간에는 주로 외국에 나가 있습니다. 지난 겨울방학에는 발칸반도에 다녀왔는데 그곳의 역사와 상징체계를 그물망처럼 재구성해 볼 수 있어 좋았습니다.”

자신에게 던져진 질문에 다가가는 방식으로 쓴, 김다은 교수의 또 다른 대표작이 ‘훈민정음의 비밀’(생각의나무)이다. 프랑스 유학시절 프랑스 사람들에게 한글이 세계에서 가장 과학적인 문자라고 말했는데 그 이유를 설명하지 못했다는 자책감에 10년 세월 끝에 펴낸 소설이다. 훈민정음의 창제 과정에 숨겨진 비밀을 훈민정음 필사본과 살인사건을 통해 조명했다.

선진국에는 하나의 장르로 당당히 자리 잡은 서간체 문학이 한국에는 왜 없을까, 하는 의문에 실험적으로 서간체문학도 본격 도입했다. 국내 최초의 서간체 장편소설 ‘이상한 연애편지’(생각의나무)를 출간했으며, 이후에도 ‘작가들의 연애편지’ ‘작가들의 우정편지’ ‘작가들의 여행편지’ 등을 묶어 펴냈다.

김 교수는 “작가의 편지는 다른 나라에서는 하나의 텍스트인데 반해 우리나라에서는 정보정치로 인해 서랍 속에 가둬야 하는, 숨기고 없애야 하는 기록이었다”며 “쑥스럽지만 작가들과 생각을 공유하여 서간체 문학을 한국문학의 새로운 장르로 자리 잡게 하기 위해 도전해봤다”고 말했다.

김 교수는 1995년 국민일보에서 주최한 ‘1억 고료 국민문학상’에 장편소설 ‘당신을 닮은 나라’가 당선되어 작가로 등단했다. 1995년 프랑스 유학을 마치고 귀국했는데 짐은 배편으로 부쳐 종이와 연필 밖에 없어 2~3개월의 공백기 동안 하루 14~15시간 공부하던 습관으로 써낸 소설이 바로 ‘당신을 닮은 나라’이다.

“오랜 유학생활로 한글 단어도 가물가물 했어요. 언어에 대한 갈망과 한국어를 되찾기 위해  저를 위해 한글로 소설을 써보자고 했어요. 2개월 동안 200자 원고지 2천매를 써냈습니다. 중고교 시절에 글을 잘 쓴다는 소리는 들었지만 소설은 처음이었어요. 세계적인 학자가 되고 싶었는데 문예창작과 교수가 되며 교수와 작가의 길로 들어서게 되었네요.”

김 교수에게 작가의 길은 일사천리로 열렸지만 누구보다도 문학에 대한 진지함과 치열함이 대단하다. 삶에 대한 그리고 작가의 길에 대한 치열한 고민은 그녀의 소설 ‘쥐식인 블루스’(도서출판 작가)에 잘 담겨져 있다. 작가로서의 이력이 늘려 초반의 재치와 발랄함보다는 진중하고 생각을 많이 하게 만드는 소설들을 내놓고 있다.

그녀가 작가가 되는 데에는 교육계에 종사하는 언니의 도움이 컸다. 소설을 써내면 재미있게 읽어주어 그녀가 작가가 되게끔 유도했다는 것이다. 어머니는 무엇이든 하면 좋다며 그녀의 선택을 존중했다고 한다.

그녀는 아직까지 미혼을 고수하고 있다. 유학시절부터 습관이 되었지만 혼자 사는 것이 전혀 불편하지 않다고 했다. 또 문학과 함께, 작가의 길을 지향하는 학생들이 있기 때문이다. 김 교수는 “좋은 학생들을 둔 행복한 교수”라며 “작가를 지향하는 주관이 뚜렷한 학생들과 있는 것이 정말 기쁘다” 고 말했다.

김 교수는 작가가 되려는 학생들에게 창의적으로 생각하는 법을 익히라고 조언했다. 창의적인 상상력을 키우려면 우선 혼자 있는 시간을 늘리고 독서와 여행을 통해 영감이 오게끔 길을 만들어 한다고 설명했다.

“일반인도 휴대폰을 충전하듯 자신을 충전해야 합니다. 하지만 휴대폰과 TV는 우리의 창조력을 소모시킵니다. 한 달에 한권 정도는 책을 읽어야 하는데 대부분 무슨 책을 읽어야 하는지 모르는 게 현실입니다. 운동을 하면 근육이 붙듯이 책도 많이 읽으면 근육이 붙어 탄력 있는 사고가 가능해집니다.”

김 교수는 “처음에는 낯설지만 책 읽는 습관이 들어 근육이 붙으면 어쩐 책을 읽을지 선별할 수 있고, 책의 종류에 따라 통독을 해야 하는지, 발췌독을 해야 하는지도 판별할 수 있게 된다”고 했다. 책 읽기 습관은 아이들이 어렸을 때 부모나 교사가 도와야 한다고 강조했다.

김다은 교수는 다음 작품으로 현재 청소년의 의사소통에 대한 장편소설을 90% 정도 써냈다고 한다. 청소년의 의사소통 실패가 문화적, 정서적, 언어적인 구조적 문제에 기인한다고 귀띔했다. 큰 스케일의 역사소설도 구상 중이라고 했다. 다음 번 그녀의 질문은 무엇이고, 어떤 답을 준비했는지 벌써부터 궁금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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