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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골에서 홀로 투병 생활 중인 ‘산장의 여인’의 가수 권혜경
산골에서 홀로 투병 생활 중인 ‘산장의 여인’의 가수 권혜경
  • 매거진플러스
  • 승인 2007.05.10 21: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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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수 권혜경 씨의 삶은 고난의 연속이었다. 각종 병들이 그녀를 공격했고 감당하기 힘들었다. 하지만 그녀는 아픈 삶 속에서도 다른 사람을 위하는 일을 멈추지 않았다. 충북의 한 산골에서 쓸쓸하게 생을 마감하고 있는 그녀의 바람은 자신의 무덤에 ‘산장의 여인’노래비가 세워지는 것이라고 했다. 최근에 권혜경 씨를 만난 가요평론가 박성서 씨가 그녀의 근황, 삶과 음악 그리고 인생을 들려주었다.

글_ 박성서(대중음악 평론가) 사진_ 최광호(사진작가)

가수 권혜경. 그녀의 이름 앞에는 늘‘산장의 여인’이라는 수식어가 따라다닌다. 흔히들 노래가 사람의 운명을 바꾼다는 말을 자주 하는데 그러한 경우의 대표적인 가수가 권혜경 씨가 아닌가 싶다.
그 노랫말대로 운명이 바뀌어 지금껏 살아온, 그러나 대중 앞에서는 늘 웃는 모습만을 보여주던 가수, 권혜경 씨를 만나야겠다고 생각한 것은 2년 전, 노래‘산장의 여인’의 작사자 반야월 선생과의 술자리에서였다. 당시 작사가 반야월은 어느덧 91세. 그럼에도 하루가 멀다 않고 술자리를 갖는다. 필자 역시 적어도 이틀에 한 번꼴은 그 자리에 합류한다. 어느새 5∼6년째다.
우리나라에서 가장 많은 노랫말을 쓴 작사가, 가장 많은 필명을 갖고 있는 동시에 그가 지은 노랫말의 노래비가 전국적으로 가장 많이 세워져 있는 인물이기도 하다.‘울고 넘는 박달재’,‘단장의 미아리 고개’,‘만리포 사랑’,‘유정 천리’,‘삼천포아가씨’등. 비교적 최근에 세워진‘소양강 처녀’까지 무려 아홉 개의 노래비가 세워져 있는 만큼 그는 가요계의 산 역사이자 증인이다. 그가 불쑥 술자리에서‘산장의 여인’노래비 또한 세워져야 하는 것 아닐까, 주장하다가 화제는 자연스럽게 가수 권혜경 씨의 근황으로 옮겨갔다.
문득 그녀가 지금 어떻게 지내고 있는지 궁금해졌다. 수소문 끝에 전화번호를 입수하고 통화를 했다. 사는 곳은 충북 청원군 남이면이라 했다. 그러면서도 자신이 사는 곳의 위치를 알기 쉽게 설명하지 못했다. 바깥출입을 거의 안 하고 산 지 오래이기 때문이라고도 했고 또 기억력이 자꾸 떨어지는 일흔일곱의 나이 탓이라고도 했다. 마음에 걸렸지만 무작정 주소만 가지고 길을 나섰다.
곧 맞닥뜨리게 될 칠십대 후반의 가수 권혜경의 현재 모습이 쉽게 떠올려지지 않았다. 오래 전 어느 신문에선가 웃고 있는 작은 사진을 본 것도 생각해보니 무려 이십 년 전이다. 이따금씩 들어보는 음반 사진들도 모조리 사오십 년 전 모습들일 뿐이다.
그걸 걱정했을까, 권혜경 씨는 우리가 한눈에 알아볼 수 있도록 빨간 옷을 입고 집 앞에 서 있겠노라 했다. 그러면서 덧붙였다.“나 권혜경은 이제 백발 할머니야.”
그렇게 찾아낸 그녀의 집은 산마을의 거의 끝자락에 있었다.
백발, 빨간 옷, 눈 주위의 짙은 검은 색조 화장, 때문에 더욱 작아 보이던 얼굴. 주름살 가득한 웃음. 헐렁한 트레이닝 바지에다 맨발에 신은 검정 고무신. 이것이 우리가 만난 권혜경 씨의 첫 모습이었다.

꽃나무들이 가득한 정원에 움푹 파인 구덩이에 얽힌 사연
대문 안으로 들어섰다.‘예쁜 집’이다. 열 평 남짓한 정원에 꽃나무들이 가득했다. 그 정원 한가운데 움푹 파인 구덩이가 시야에 들어왔다. 시간 날 때마다 스스로 혼자 팠다고 했다. 나중에 본인이 누울 곳이라고도 했다. 이 정도 크기면 혼자의 몸을 충분히 눕힐 수 있다고 했고 언젠가, 누군가 찾아와줄 사람들과 되도록 가깝게 있고 싶어 일부러 지면에서 얕게 팠다고도 했다. 그 속에 풀이 몇 포기 자라고 있어 판 지 얼마간 지났음이 짐작되었다.
그녀의 꿈은 이 묘 앞에‘산장의 여인’노래비(碑)를 세우는 것이라 했다. 그렇다, 우리는 지금‘산장의 여인’의 바로 그‘산장’에 와 있는 셈이었다.

‘아무도 날 찾는 이 없는 외로운 이 산장에 / 단풍잎만 차곡차곡 떨어져 쌓여 있네 / 세상에 버림받고 사랑마저 물리친 몸 / 병들어 쓰라린 가슴을 부여안고 / 나 홀로 재생의 길 찾으며 외로이 살아가네.’
-반야월 작사 / 이재호 작곡 / 권혜경 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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