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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의 실루엣
아버지의 실루엣
  • 김도형 기자
  • 승인 2017.04.05 0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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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ueen 사진 에세이] 목요일 오후 세시 경에 휴대폰 문자 메시지 수신 음이 울리면 굳이 그걸 열어 보지 않아도 도서관에서 빌린 책을 조속히 반납하라는 내용인 것을 알 정도로 빌려온 책을 제 날짜에 반납해본 적이 없다.

연체된 책을 돌려주고 또 대출하려면 연체한 기한만큼 기다려야 하기도 하고 책 반납에 신경 쓰지 않는 한 주를 보내 보고 싶기도 해서 지난 주말엔 책을 빌려오지 않았다.

별다른 일 없이 보내는 휴일이 심심하여 책장을 훑어보니 딸이 고등학교에 다닐 때 읽었음직한 교과서 수록 소설집 한 권이 눈에 띄었다.

이효석의 메밀꽃 필 무렵, 황순원의 소나기, 김유정의 동백꽃, 하근찬의 수난이대 등의 작품이 있어 다시 한 번 정독해 보았는데 왜 그 소설들이 교과서에 실렸는지 그 이유를 알 수 있을 정도로 마음에 다가와 울리는 감동이 있었다.

하근찬의 수난이대는 일제에 의해 강제징용을 당해 노역 중 한쪽 팔을 잃고 돌아온 아버지와 한국전쟁에 참여했다.

한쪽 다리를 잃은 아들을 통해, 일제강점 이라는 역사적 수난과 6.25 동란이라는 민족적 시련을 그렸는데 소설을 읽다가 어느 대목에서 시선이 묶여 더 읽어 나갈 수가 없었다.

그것은 소설 속 아버지 역의 박만도가 징용에 끌려 가는 날 기차역에서 있었던 다음과 같은 대목이다.


'바로 이 정거장 마당에 백 명 남짓한 사람들이 모여 웅성거리고 있었다. 그 중에는 만도도 섞여 있었다. 기차를 기다리는 것이었으나 그들은 모두 자기네들이 어디로 가는 것인지 알지를 못했다.

그저 차를 타라면 탈 사람들이었다. 징용에 끌려나갈 사람들이었다.

만도는 설마 저희들이 하늘 밖으로사 끌고 가겠느냐고 아무렇지도 않은 듯이 그 들창코로 담배 연기를 푹푹 내뱉고 있었다.

그러나 마음이 좀 덜 좋은 것은 마누라가 저쪽 변소 모퉁이 벚나무 밑에 우두커니 서서 한 눈도 안 팔고 이쪽만을 바라보고 있는 때문이었다.

플랫폼으로 나가면서 뒤를 돌아보니 마누라는 울 밖에 서서 수건으로 코를 눌러대고 있는 것이었다. 만도는 코허리가 찡했다.

기차가 꽥꽥 소리를 지르면서 덜커덩하고 움직이기 시작했을 때는 정말 덜 좋았다. 눈 앞이 뿌우옇게 흐려지는 것을 어쩌지 못했다.'


 
위 대목을 여기 옮겨 적어본 것은 내 아버지도 소설 속 박만도 처럼 러시아 사할린으로 강제 징용을 당했고, 행선지도 알 수 없는 곳으로 끌려 가던 날의 풍경이 소설 속의 그것과 다르지 않았을 것이란 생각이 들어서이다.

글을 쓰기 전에 칠십을 훌쩍 넘긴 큰 누님에게 전화해 누님의 생년을 물어 보았는데 1943년 2월생이라 했다. 누님의 생년으로 유추해 보면 아버지가 떠나갈 때 어머니는 큰 누님을 뱃속에 가졌을 때라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날 아버지를 보내며, 아이를 가진 새댁이었던 어머니의 마음이 어땠을 것이며, 곧 태어날 아이도 못보고 살아서 돌아올 기약도 없는 타국으로 떠나야 했던 아버지의 마음 또한 어떠했을 것인가.

콩깻묵으로 연명하며 노역에 시달리던 사할린 탄광 노동자가 지하 동굴 벽에 '고향에 가고 싶다'라고 쓴 절규의 글씨를 사진으로 본 적이 있다. 마음이 잔뜩 쓰려왔다.

해방이 되어 돌아온 아버지는 징용에서 있었던 노역의 후유증에 시달리며 소박하게 땅만 일구시다 가셨다.


[Queen 김도형기자]  사진 김도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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