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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일 췌장암으로 별세한 배우 김영애, 두 번째 남편과의 열애 스토리
박소이 기자  |  qditor@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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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7.04.09  14:50: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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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우 김영애가 9일 오전 향년 66세로 별세했다.

측근을 통해 지난해 췌장암이 재발해 최근 건강이 악화됐다는 소식을 듣고 있었지만, 꾸준히 방송 출연에 열의를 보여 왔기에 이날 김영애의 갑작스런 별세 소식은 충격적이다.

김영애는 서울의 한 종합병원에 입원해 치료를 받아오던 중 최근 상태가 악화되어 결국 가족들이 지켜보는 속에서 이날 떠났다.

김영애는 2012년 발병한 췌장암이 지난해 재발됐음에도 불구하고, 2월26일 막을 내린 KBS 2TV 주말드라마 ‘월계수 양복점 신사들’ 촬영에 매진, 첫 방송부터 꼬박 50회를 채울 정도로 열의를 보였다.

김영애는 ‘월계수 양복점 신사들’ 촬영을 막 시작하면서 췌장암 재발 판정을 받았으나 ‘월계수 양복점 신사들’ 방송 촬영을 잘 마무리함으로써 마지막까지 연기자로서 자신의 책임을 다했으며, 이것으로 그녀를 사랑하는 많은 팬들에게 떠나는 인사를 대신한 것으로 보인다.

생전 김영애는 췌장암 투병에도 별 내색 없이 연기에 대해 혼신의 열의를 보였지만, 안타깝게도 ‘월계수 양복점 신사들’이 유작이 됐다.

Queen은 2003년 봄, 김영애가 심신 양면으로 어려움에 처했을 때, 새로운 사랑을 만나 황토 사업에 의욕을 불태우던 김영애를 만났다. 전북 정읍 황토 공장에서 단독으로 만난 그녀는 이보다 더 좋을 수 없는 듯 밝은 모습으로 새로 찾아온 사랑을 고백했다. 마냥 행복해 하던 배우 김영애의 한때를 리마인드해 본다.
 

[Queen 2003년 4월호]

사업가로 제2의 인생 살고 있는 김영애, 이혼 후 만나 새 남자와 애틋한 사랑 고백
“사랑하는 새 동반자와 잘 자란 아들... 이보다 더 좋을 수 없는 요즘 내 생활”

탤런트 김영애가 이혼 후 방황을 접고 사업가로 변신해 성공 가도를 달리고 있다. 황토사업을 시작한 후 온갖 고생을 다했는데 그 결실을 맺어 더없이 행복하다는 그녀. 한동안 술이 없으면 잠을 이루지 못할 정도로 방황의 나날을 보냈던 그녀를 다잡아 준 새로운 사랑과 사업에 대한 이야기를 들었다.

글 신규섭 기자 사진 양영섭

탤런트 김영애가 황토관련 사업을 시작했다는 소식을 접한 게 벌써 2년 전이다. 아는 사람들은 모두 그녀를 두고 ‘천상 연기자’라고 할 정도로 평생 연기밖에 몰랐던 그녀가 사업가로 변신했다는 소식은 의외였다. 주위의 걱정도 적지 않았을 터. 사업 2년째인 지금 그녀는 남보란 듯이 성공해 주위를 놀라게 하고 있다.

국내 최대 홈쇼핑 업체가 선정한 최고기업상 수상이 있기 하루 전날 공장이 있는 전라북도 정읍으로 향했다. 마중을 나온 회사 관계자를 따라 곧장 공장으로 향했다. 그녀를 만난 곳은 공장부지 안에 있는 그녀의 황토집. 그녀는 그곳에서 기자 일행을 맞았다.
“어서 오세요. 춥죠? 들어오세요.”

   
 

출연료 몽땅 털어 넣을 정도로 힘들었던 사업 초기

그녀는 내일 촬영을 돕기 위해 먼저 내려온 일행과 함께 있었다. ‘참 곱다’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그녀의 모습은 화사했다. 지난 새벽까지 촬영을 했다며 피곤해서 화장하기가 귀찮다는 그녀에게서, 그러나 피곤한 기색을 전혀 느낄 수 없었다.

그게 다 자신의 공장에서 나온 팩 덕분이라며 한동안 그녀는 제품 자랑에 열을 올렸다. 사진촬영을 하는 동안 온돌방에서 등 좀 지지라며 아랫목을 내어준 그녀가 꼭 친근한 이모 같다는 느낌이 들었다.

공장과 집을 오가며 30여분 동안 분주한 촬영을 마친 후 일행은 공장 인근 음식점으로 향했다. 정읍에 내려올 때마다 즐겨 찾는다는 백숙 집이었다. 식사를 하는 동안 그녀는 그동안 공장을 하며 힘들었던 이야기를 풀어놓기 시작했다.

“몇 년 전에 갱년기가 오는 거예요. 타고났다고 할 정도로 피부가 좋았는데 어느 날 내 피부가 예전 같지 않은 거예요. 그게 좀 오래 되니까 정말 큰 스트레스더라고요. 그때 한번 써보라며 한 지인이 보자기에 싼 황토를 건네주었어요. 근데 얼마 써보지 않고 정말 내 피부가 좋아지는 걸 느꼈어요. 그때부터 황토에 관심을 갖게 된 거예요.”

처음 시작한 사업이 황토로 타일을 만드는 것이었다. 그러나 기대와 달리 상품조차 제대로 나오지 않았다. 그러나 황토로 뭔가를 해야겠다는 생각에는 변함이 없었다. 그때 자신이 썼던 마사지용 황토를 생각해냈다. 그렇게 황토 팩을 만든 게 지난해 초였다.

처음부터 많은 양의 제품을 만들어내지는 못했다. 자금이 넉넉하지 않아 작은 공장에서 시작했기 때문. 매달 나가는 직원들 월급에 공장 운영비를 대느라 드라마 출연료는 고스란히 사업에 들어갔다. 그래도 지금 생각하면 한 곳에 매달려 열심히 일했던 그때가 그립다.

“제품이 나오면 일반에 공개하기 전에 주위 사람들에게 먼저 써보라고 했어요. 친한 여자 탤런트들뿐 아니라 같은 동네에 살던 아줌마들한테 써보라고 했죠. 써본 사람들이 다 좋다고 해요. 되겠다 싶었죠."

어렵게 얻은 열매는 달 수밖에 없는 법. 홈쇼핑을 통해 제품을 소개하자 날개 돋친 듯 팔려나가기 시작했다. 단일 품목으로 최고 매출을 올릴 정도. 요즘은 주위에서 그녀의 제품을 써보지 않은 사람이 없을 정도다.

   
 

황토와 함께 새로운 삶을 열어준 남자

사업 얘기에 열을 올리는 동안 풍성한 저녁 식탁이 점점 비어 갔다. 그 고장 특산물이라는 복분자주를 반주 삼아 몇 잔 마신 후 그녀에게 어떻게 황토와 인연이 닿았느냐는 질문을 던졌다.

“연애하다가!”

그녀의 대답은 의외였다. 이미 그녀가 뒤늦게 사랑을 만났다는 이야기를 들은 터였지만 그녀의 솔직한 말에 뒤통수를 얻어맞은 기분이었다.

지레 겁을 먹고 조심스레 질문을 던졌던 것인데 그녀는 대놓고 얘기를 했다. 그녀에게 든든한 힘이 되고 있는 이는 지금도 곁에서 사업을 돌보며 그녀와 함께 있다.

이혼 후 힘들어하던 그녀를 붙잡아 준 게 그라고 그녀는 말했다. 그를 만나지 않았다면 지금까지 허한 느낌으로 살았을지도 모른다. 그를 만났을 때만 해도 그녀는 약과 술이 없으면 잠을 이루지 못할 정도로 정신적 공황에 시달렸다. 갱년기가 찾아온 것도 그때였다. 허전함을 다독여주고 삶에 대한 애착을 되찾게 해준 사람. 그녀는 그를 참 재주가 많은 사람이라고 했다.

“아로마테라피가 뭔지도 모르던 10여 년 전 이미 그 효능을 알았던 사람이에요. 처음 만났을 때도 벌써 황토의 효능을 알고 연구를 시작해 이미 상당한 수준의 성과를 얻고 있었어요. 그것 말고도 재주는 많아요. 우리 공장도 그렇고, 황토집도 그 사람이 손수 설계해서 지은 거예요. 몇 년 후 공장 근처 바닷가에 좀 넓은 황토집을 지을 생각인데, 그 집도 이미 설계를 다 해놨대요.”

사춘기에 이혼해 아들에게 늘 미안한 마음뿐

그와 함께 그녀에게 늘 미안한 마음을 갖게 하는 남자는 바로 하나뿐인 아들이다. 올해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일본 유학을 준비 중인 아들도 그녀에게 남자가 있다는 것을 알고 있다.

한번은 스포츠신문에 중견 여자 탤런트와 영화감독의 열애설 기사가 났을 때 아들이 대뜸 전화를 걸어 “엄마, 그 아저씨 영화감독이야?”라고 묻기도 했다.

아들은 그때 “엄마 결혼 소식은 신문을 통해 알게 되지 않았으면 좋겠어”라는 말도 덧붙였다. 그런 아들에게 더 이상 어려움을 안겨주고 싶지 않다고 그녀는 말했다.

아들만 생각하면 가슴 한 곳이 바늘에 찔리듯 아프다.
그도 그럴 것이 아들이 중학교 1학년 때 이혼 얘기가 나와 3년을 더 끌었으니 한창 사춘기에 접어들던 아들에게 얼마나 충격이 컸을까. 아들에겐 늘 미안한 마음뿐이라는 그녀. 항상 철없는 아이 같은 아들이 벌써 나이가 들어 “엄마도 좋은 사람 만나서 행복하게 잘 살았으면 좋겠어”라고 말을 할 때면 대견스럽기도 하다.

“아들이 한번은 그러더라고요. ‘엄마도 계속 혼자 살 수는 없잖아. 엄마는 공인이기도 하니까 좋은 사람 만나서 행복하게 잘 살았으면 좋겠어’라고요. 그런 얘기 들으면 가슴이 뭉클해요.”

하지만 고생을 많이 한 사람이 조숙해지는 것처럼 아들도 사춘기에 겪었던 마음고생 탓에 일찍 철이 든 게 아닌가 하는 생각에 안쓰럽기도 하다. 그런 아들을 위해서라도 더 열심히 살아야겠다고 다짐하는 그녀다.

한때 심한 정신적 고통을 겪었던 그녀는 요즘 이보다 더 좋을 수 없을 정도로 바쁘고, 또 지금의 생활에 만족하다. 돈은 둘째 치고라도 제품을 써본 사람들이 한결같이 고맙다는 인사를 할 때면 더없는 보람을 느낀다. 그런 재미가 없다면 촬영으로 바쁜 와중에 서울에서 3시간 30분 거리에 있는 공장을 이렇게 자주 찾지는 않을 것이라고 했다.

사업 얘기가 나올 때마다 정력적으로 변하던 그녀. 이제 긴 고통의 터널을 지난 새로운 봄이 찾아온 그녀의 삶에, 황토집 앞에 이르게 핀 개나리처럼 밝은 날만 가득하기를 기원한다. [Queen 2003년 4월호]

[Queen 박소이 기자] 사진 [Queen D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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